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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베네트는 약 10미터가량을 날아가, 허공에서 자세를 잡아 지면에 착지했습니다. 이사악은 상처 없는 몸으로 비틀거리다가, 한 바가지 피를 토해냈습니다.

       

       “크읍, 우웨에엑⋯⋯!”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고, 코와 귀에서도 피가 흘렀습니다.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 같았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이사악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었습니다.

       

       “흐, 하하⋯⋯.”

       

       [분명히, 베어가르는 걸 봤는데⋯⋯!]

       

       “공간을, 공간을 넘어서 피했다가 다시 돌아왔죠. 그 대가로, 굉장히 무섭고 어두운 공간에서 한참을 공포에 떨어야 했지만⋯⋯ 덕분에, 그분과 좀 더 가까워진 게 느껴져요⋯⋯.”

       

       베네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무리를 했는지, 이사악은 자신의 몸을 끌어안고 고통에 떨었으나. 그 눈동자에서 번뜩이는 광신은 좀 더 깊어졌습니다.

       

       “더, 좀 더⋯⋯! 신이시여, 내 모든 것을 가져가도, 좋으니까-! 하하, 아하하하하하!”

       

       쩌저적, 쩍.

       

       공간에 추가로 균열이 생기며, 추가로 두 개의 거품이 틈을 비집고 나왔습니다. 이로서 이사악의 주변을 맴도는 거품의 수는 총 다섯 개. 

       

       그것들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이사악의 주변을 모조리 갈아내고 지워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은, 공간에 작용하는 폭풍, 자연재해에 가깝게 보였습니다.

       

       “⋯⋯여기서 두 개나 늘어난 건가.”

       

       [제가,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니오레⋯⋯?”

       

       [시선을 끌 테니까요.]

       

       파라라라락.

       

       니오레의 손아귀에 쥐여진 마도서의 페이지가 저절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에서 붉은빛이 새어나오며, 주변에서 기괴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허공에서 눈알이 솟아나고, 무언가의 끔찍한 웃는 소리가 들리며, 지면에서는 사람의 입이 나타나 이빨을 갈아댔습니다. 니오레 또한 이사악과 마찬가지로, 외신으로부터 더욱 거대한 힘을 끌어내는 듯.

       

       “니오레, 어째서 여신의 수정을 쓰지 않⋯⋯.”

       

       [우리,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거겠죠?]

       

       니오레가 코피를 흘리면서도 희미하게 웃었습니다. 그녀는 더듬더듬 입 모양으로 말했습니다. 베네트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타라 덕분에, 사람들을 많이 죽이지 않아도. 구할 수 있게 됐어요. 이미 죽은 분들은,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이번 일이 끝나면,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마지막이니까, 요. 이런, 기분 나쁜 힘을 쓰는 것도⋯⋯. 그러니까, 수정은. 베네트가.]

       

       그녀는 베네트가 흑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의 영혼을 깎아가면서 마법을 쓴다는 사실도 알았으니. 양보하고 싶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니오레는 소리 없는 영창을 끝냈습니다.

       

       『삼키기』.

       

       딱.

       

       따닥. 으드득. 뜨득.

       

       허공에서 커다란 입들이 나타나, 이사악의 거품을 씹어 터트렸습니다. 입이 찢겨나가거나, 안으로부터 터져나갈 때도 있었으나. 그럴 때마다 새로운 입이 나타나, 시체에 달려드는 하이에나처럼 씹어대었습니다.

       

       그렇게 외신의 마법이 서로 길항한 끝에, 이사악에게는 하나의 거품만이 남았습니다.

       

       [마지막 한 개는, 부탁해요. 모두들.]

       

       “⋯⋯맡겨 둬.”

       

       베네트는 뛰어들었습니다. 롱소드에 마력을 불어넣어 찬란한 빛을 내며, 있는 힘껏 지면을 즈려밟으며 가속했습니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콰앙,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사악──!”

       

       “죽어버려, 방해꾼들──!!”

       

       이사악은 남은 하나의 거품을, 베네트를 향해서 쏘아내었습니다.

       

       베네트는 웃었습니다. 격앙된 척을 하며 빛을 뿜고, 소리까지 질러대었던 건. 시선을 끌기 위해서. 그들은 셋이서 한 팀이었기 때문에.

       

       베네트는 타라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타라는 마법전이 벌어져 그녀가 신경이 다른 곳에 팔린 사이, 이사악의 배후로 접근한 뒤였습니다.

       

       “⋯⋯⋯⋯!”

       

       기척을 눈치챈 이사악이 뒤를 돌아봤을 때는, 늦었습니다.

       

       타라는 주먹을 쥐었습니다. 마지막, 밑바닥에 남은 잔여 신성력까지 한 번에 끌어모아. 한 발을 내딛고, 허리를 비틀고, 주먹을 뻗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수야-!!”

       

       콰앙-!

       

       빛나는 주먹이 이사악의 안면에 틀어박혔습니다. 전신의 힘을 실은 주먹에, 이사악은 몸이 붕 뜨며 지면에 처박혔습니다. 몇 번 경련하더니, 축 늘어집니다.

       

       이사악이 휘감고 있던 불길한 힘도, 공간을 도려내는 거품도,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픽 하고 사라졌습니다. 

       

       타라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베네트는, 남은 광신도들을 처리하는 데 바빴습니다. 승계우화의 지속시간은 상당히 남아있었기 때문에, 이 전장을 정리할 때까지 그를 지켜낼 수 있을 터.

       

       끝났다.

       

       이제는 성녀로서의 힘을 모두 사용했으니, 가진 것 하나 없는 아가씨로서의 삶을 준비해야 할 터. 성녀다운 일을 한 적은 몇 번 없지만, 그래도 세계를 구해내었으니, 성녀 중에서는 가장 알뜰하게 신성력을 쓴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미래를 그리며, 베네트를 기다렸습니다.

       

       ===============================================================

       

       전투가 마무리된 후. 타라는 봉인된 마검을 뽑아 들었습니다. 확인 사살에 날붙이가 필요했으니까.

       

       타라는 죽여버릴 각오로 때렸지만, 이사악은 얕게나마 숨이 붙어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타라는 마검으로 이사악의 목을 겨누었습니다. 

       

       그 순간, 움찔. 하고. 이사악이 눈을 떴습니다.

       

       베네트는 타라의 몸을 감싸 안고 뒤로 물러났으며, 니오레는 코피를 닦아내며 다시 한번 마도서를 펼쳐 들었습니다. 스스로를 번제해서 마지막 자폭 공격을 날릴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모두가 경계심을 최고조로 올렸을 때.

       

       이사악은 풀린 눈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아빠, 아빠, 같이 별을 보러 가요. 우리 같이⋯⋯.”

       

       “⋯⋯?”

       

       “별님이 말을 걸고 계세요, 아빠. 신기하죠, 아빠는 바쁘니까, 저는 별님이랑 친구 할래요⋯⋯.”

       

       “⋯⋯이건.”

       

       [미친 것 같아요. 너무 과하게 마법을 사용한 끝에.]

       

       악신을 섬기는 성녀의 말로였습니다. 헛소리를 주워섬기는 이사악을 보며, 타라는 마검을 꽉 쥐었습니다.

       

       “죽일게.”

       

       “⋯⋯잠깐.”

       

       “왜.”

       

       베네트는, 딸을 잘 부탁한다는 아브라함의 유언을 떠올렸습니다. 사악함에 물든 이사악은 몰라도, 백치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사악은. 살려 두어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

       

       “저 여자가 아브라함의 마지막 혈육이다. 그녀마저 없어지면, 이 세상에 아브라함을 증거할 것은 남지 않게 돼.”

       

       “그렇다고 살려 두자는 거야? 아니, 나는 그렇게는 못 하겠어. 비켜 베네트.”

       

       “살려두는 편이 그녀에게는 더 괴로운 벌일 수도 있다. 네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도 않아.”

       

       “⋯⋯됐으니까 비키라니까! 야, 손 놔. 안 놔? 이씨, 힘은 더럽게 세서⋯⋯! 너 나 신성력 사라졌다고 힘으로 이러기야?! 니오레, 너도 뭐라고 말 좀⋯⋯.”

       

       베네트에게 손목을 붙잡힌 타라가 니오레를 끌어들이려 고개를 돌렸습니다. 니오레는, 어딘가 넋이 나간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타라 역시 자연스럽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

       

       여전히 밤하늘은 기괴하고 불길했으며, 시시각각 더욱 끔찍한 형태로 일그러져가고 있었습니다. 의식은 분명, 제대로 방해했을 텐데.

       

       “⋯⋯왜, 왜?! 우리, 막은 거잖아⋯⋯! 베네트, 어떻게 된 거야?!”

       

       “마법진의 축은 제대로 망가뜨렸다. 의식은 실패시킨 게 맞아!”

       

       “그럼 하늘이 아직도 왜 이러냐고!”

       

       패닉에 빠진 타라는 이사악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어댔습니다. 

       

       “야, 돌아와! 정신 차리고, 빨리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설명하고 죽어버려!”

       

       “아빠, 우으⋯⋯ 아빠아⋯⋯.”

       

       

       [베네트. 저희가 놓친 부분이⋯⋯ 있었던 걸까요?]

       

       “놓친 부분이라니⋯⋯.”

       

       혼란. 의식을 막아내었는데도, 악신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뭔가, 이 상황을 설명할 단서가 있었는가. 과거를 헤매던 베네트의 생각이 아브라함의 연구에 닿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째서 은의 황혼 교단은⋯⋯ 아브라함의 연구를 지우려고 한 거지?”

       

       [그건, 알파값을 사용해서 외신을 퇴거시킬 수 있으니까⋯⋯.]

       

       “반대로, 소환에도 쓸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들은 저택을 태우고 아브라함을 죽일 시간도 있었어. 저택에 남은 연구자료를 챙기기만 해도, 그들이 써먹을 수 있었다는 거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네요. 맹목적으로 지우려고만 들었어요.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리스크를 배제하며 안정성을 쫒는 건, 현상 유지만으로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의식을 벌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악신은 자연스럽게 강림한다는 건가? 어째서?”

       

       여기에 더하여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번제당한 장소에 적힌 피로 쓰인 문구.

       

       ‘흠 있는 암컷 염소를 내려주셨으니, 우리들은 마땅히 감사하며 바치옵나이다.’

       

       의식의 진행 장소로 선정된, 운석 구덩이. ‘검은 염소’라는 존재에 대한 니오레의 언급. 분명, 그 염소라는 존재는 부왕(副王)의 아내로 여겨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반대⋯⋯였던 건가.”

       

       처음부터 악신을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지구상에 불시착했던 겁니다. 은의 황혼 교단이 부르기도 전에. 

       

       그것은 우주를 유영하는 부왕(副王)을 계속해서 불러내고 있으며, 그 탓에, 거대한 거품의 형상을 띤 악신은 시시각각 지구와 가까워져 오고 있었습니다.

       

       반대였습니다. 

       

       일행이 노려야 할 것은 반대였습니다.

       

       “우리는, 의식을 막을 것이 아니라⋯⋯ 알파값을 연구해서. 악신을 돌려보낼 생각을 해야 했다. 우리는 막아내는 쪽이 아니라, 공격해야 하는 쪽이었어⋯⋯!”

       

       [⋯⋯⋯⋯.]

       

       

       끄그그그기기기긱──!

       

       하늘이 비명을 지르며 일그러졌습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어느새 달은 두 개가 되었습니다. 별빛은 섬뜩하게 빛났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감지한 생명들이 공포에 질려 울었습니다. 개들이 짖기 시작했고, 새들은 날개를 퍼드덕대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개구리가 울었고, 벌레들은 땅을 파고 들어가 숨었습니다.

       

       온갖 우주의 괴물들이 달빛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수였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도시의 문명과 법과 질서는 폭력 앞에서 의미를 잃을 테고, 그 공백을 고통과 증오가 메울 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막아내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연구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이사악으로부터 그를 지켜냈더라면.

       

       알파값의 연구에 시간을 일부나마 쏟았더라면.

       

       그랬다면, 도시가 무너지기 전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별이 웃었습니다. 타라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신성력의 공백을 느끼며 공포에 떨었습니다. 니오레는 양손으로 자신의 귀를 틀어막고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베네트는, 안일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고 있었던 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 입니다! 두 화 올렸으니까 연참이죠! 좀 짧긴 해도⋯⋯.
    그동안 고봉밥 많이 퍼드렸으니까⋯⋯ 이정도 꼼수는 괜찮지 않을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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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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