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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파스텔은 하얀 빗자루에 걸터앉아 구름을 구경했다.

         

       “우와우와! 오늘 좋은 날인가 봐요! 신기한 구름이 많아요!”

         

       손가락이 구름들을 가리켰다.

         

       “저건 강아지 모양! 저건 병아리 모양! 저건 솜털 모양!”

         

       오잉.

         

       파스텔은 말하다가 혼자 눈이 동그랗게 됐다.

         

       허억.

         

       생각해 보니 구름은 원래 솜털 모양임.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저건 솜털 모양 구름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구름이었어!

         

       충격.

         

       파스텔은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그러다가 멈칫하곤 생각을 전환했다.

         

       평범한 구름일지라도 내가 솜털 모양이라고 부르면 솜털 모양 구름이 되는 게 아닐까?

         

       그냥 평범한 구름을 가리켰다.

         

       “저건 솜털 모양!”

         

       오늘은 신기한 구름이 많아!

         

       『흠…….』

         

       하얀 빗자루에 걸터앉은 분홍 머리카락의 소녀는 구름을 보며 즐거워했다.

         

       이 평화로운 분위기에 많은 사람이 흐뭇하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상을 살펴보면 어째 딴판인 광경이 보였다.

         

       “크아악!”

         

       유리병이 추가로 던져지고 노란 가스가 터졌다. 마비 가스에 또다시 휩싸인 레너드가 비명을 질렀다.

         

       공정한 심판의 실격패 선언을 기다린답시고 가스를 들이킨 바람에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이다.

         

       날아오는 검격을 한 손 방패로 힘겹게 막았다.

         

       “더스틴 이 자존심 없는 놈! 편파 판정 따위에 의존하고도 네가 기사 지망생이냐!”

         

       양손검으로 방패를 밀어내던 더스틴이 움찔했다.

         

       “나도 하고 싶진 않았는데, 파스텔이 자꾸 학생회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며 손을 맞잡고 바라보니까…….”

       “미인계에 끌려다니는 게 아주 자랑이다! 동네방네 소문이라도 내지 그러냐!”

         

       레너드가 언어 도발로 만든 빈틈을 틈타 상대의 양손검을 방패로 후려쳤다. 양손검이 튕겨 나가고 드러난 몸을 한손검이 노렸다.

         

       하지만 노련한 공격인 것과는 별개로 마비된 몸으로 행한 느린 움직임이었다.

         

       더스틴이 가볍게 뒷걸음질쳐 검격을 피하곤 검면으로 레너드의 허벅지를 후려쳤다.

         

       “크악!”

         

       레너드가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야! 심판! 이게 맞냐!”

         

       처절한 외침이었으나 그 심판은 현재 딴 세상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와아! 저건 진짜 솜털 모양이에요!”

       『호오, 정말 그렇군. 뭉게구름의 일종이긴 하다만 테두리 부분이 정말 솜털처럼 흩날리는 형상이야.』

       “그런고로 넌 솜털 구름 2호! 그런데 오리지널보다 더 오리지널 같으니까 특별히 솜털 구름구름이라 불러줄게!”

         

       안녕, 솜털 구름구름!

         

       우왕!

         

       “야 이……!”

         

       레너드의 얼굴이 붉어졌다. 대화도 안 통하는 뻔뻔한 심판에게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경기가 과열될 때의 중재를 위해 대련장 끄트머리에서 뻘쭘하게 대기하던 교수가 보였다.

         

       강렬한 눈빛에 교수가 흠칫했다. 토너먼트 관중의 시선도 쏠리자 양심과 밥그릇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처럼 식은땀을 흘리더니 느리게 양손을 들었다.

         

       양손이 부딪히며 박수 소리가 천천히 울렸다. 그러다 마음이 적응되는지 박수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승자, 더스틴 와일드!”

         

       양심을 내다 판 교수가 밝은 얼굴로 말했다.

         

       “훌륭한 솜씨군! 규정에 따라 아카데미에서 지급하지 못한 전투 물품은 재량껏 준비해 와도 되었지!”

         

       뭣이?

         

       레너드의 눈이 부릅떠졌다.

         

       “연금학 지식을 전투에 활용하다니! 규정을 유연화해 인재를 발굴한 후작 각하의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사례야!”

         

       교수가 손을 휘저었다.

         

       “뭣들 하나! 승자가 결정됐으니 연주를 시작해!”

         

       대기하던 연주가들이 웅장한 연주를 시작했다.

         

       교수가 그렇다 하고 브금도 빵빵하게 틀어지자 관중은 하여튼 환호했다.

         

       존경하는 후작 각하께서 먹으며 구경하라고 미리 관중석에 닭꼬치 세트를 뿌려놔서 환호해 주는 건 절대 아니었다.

         

       “크아악! 순진한 외모로 당당히 뇌물 뿌리지 말라고!”

         

       레너드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

         

         

         

       난 가만히 있었는데!

         

       정말 가만히 있었는데!

         

       레너드와 더스틴이 날 두고 싸우다니!

         

       으아아.

         

       이것이 인기인의 원죄?

         

       너무 인기가 많아서 미안해……!

         

       그런데그런데.

         

       결과가 궁금한 건 사실이야.

         

       누가 이길까?

         

       누가 더 세지?

         

       두근두근 콩닥콩닥.

         

       콩닥콩닥 파스텔은 마검을 휘둘렀다. 검격이 더스틴의 검을 후려쳤다. 굉음이 울렸다. 충격을 버티지 못한 검이 튕겨 나갔다.

         

       소녀는 가볍게 회전했다. 분홍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돌려차기가 더스틴의 상체를 가격했다. 괴력이 묵직한 타격음을 터트렸다.

         

       “컥-!”

         

       더스틴이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대련장 밖으로 펑 날아갔다. 육체가 가벽에 부딪히더니 쓰러졌다.

         

       누가 더 세냐구?

         

       “승자, 파스텔 러브 크래프트!”

         

       파스텔은 해맑은 얼굴로 만세 했다.

         

       “와아! 내가 가장 쎄!”

         

       뿌뿌!

         

       내가 가장 쎄네요~!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춤을 췄다.

         

       “오예! 오예!”

         

       퇴장하며 통로에 놔둔 트럼펫을 입에 물었다.

         

       “뿌뿌~!”

         

       승전보가 상큼하게 울렸다.

         

       통로에서 구경하던 레너드가 터덜터덜 뒤따르는 더스틴을 비웃었다.

         

       “이기면 뭐 하냐.”

         

       더스틴이 힘 빠진 얼굴로 레너드를 봤다.

         

       말없이 시선이 오갔다.

         

       그러자 레너드는 뭔가 동병상련의 감정이라도 느꼈는지 비웃음을 천천히 멈췄다.

         

       손이 더스틴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도 고생이긴 하다.”

         

       에휴.

         

         

         

       #

         

         

         

       “역시 멜리사와 앨시어는 친구친구들을 가뿐히 이기고 올라와 서로 맞붙게 됐네요.”

         

       파스텔은 빗자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었다.

         

       지상의 멜리사와 앨시어가 상당한 거리를 두고 마주 봤다.

         

       막대 지팡이를 손에 쥔 멜리사가 앨시어를 노려봤다. 악연 벨라몬트와 상종도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충고를 충실히 지키는 모습이었다.

         

       앨시어가 은발을 쓸어 넘기더니 도발하듯이 은근히 입가를 올렸다. 너 정도는 가뿐하다는 표정이었다.

         

       멜리사가 바로 반응하며 지팡이를 겨눴다.

         

       으잉.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문은 원수지간이긴 해도 쟤네 꽤 사이가 좋지 않아요?”

         

       악마가 어이없어했다.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보이지?』

       “칙칙한 악마님은 모르시겠지만 친구끼린 싸우며 친해지기도 한다구요.”

         

       파스텔은 양다리를 흔들거렸다.

         

       “그냥 앨시어가 친구 사귈 줄을 모르는 거 같아요. 친구를 대하는데 서툰 느낌?”

         

       마주칠 때마다 괜히 멜리사를 도발하며 일부러 언쟁을 주고받는 게 딱 온화하게 대화를 시작할 줄 모르는 외톨이의 행동이다.

         

       아는 애가 멜리사밖에 없어서 만날 때마다 반가운데 정작 또래와 얘기하는 건 익숙지 않아서 입으로 나오는 건 언제나 도발인.

         

       아마 입학 전부터 계속 그랬을 테니 멜리사도 과민 반응하는 거 같고.

         

       “북부엔 동갑내기가 없나?”

       『있더라도 본래 왕족인 공녀와 친하게 지낼 간 큰 북부 가문은 없을 거다. 북부는 왕국 영토이기도 했으니 그쪽 가문들에겐 왕족 혈통의 체감이 더 크겠지.』

       “헤에.”

         

       파스텔은 생각하다가 밝은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그럼 내가 절친이 되어줘야지!”

         

       오른쪽엔 금발 멜리사와 팔짱 끼고 왼쪽엔 은발 앨시어와 팔짱 끼는 거야!

         

       오잉.

         

       금괴와 은괴?

         

       파스텔은 입이 헤 벌어졌다.

         

       이거 금전운 최고 아니야?

         

       슈퍼 울트라 부자가 될 징조!

         

       친구만 사귀어도 부자가 될 수 있어!

         

       『시작하는군.』

       “앗.”

         

       파스텔은 집중하고 지상을 내려봤다.

         

       교수가 경기 시작을 알렸다.

         

       어디 준기사급의 전투를 참관해 보실까.

         

       앨시어가 창날로 지상을 그었다. 대련장 바닥이 사뿐히 잘려 나갔다.

         

       발을 구르자 충격파가 터졌다. 지면에 균열이 가고 충격량이 거대한 바닥 덩어리를 띄웠다.

         

       창대가 돌덩어리를 후려쳤다. 굉음이 울렸다. 돌덩어리가 마법사 소녀를 향해 포탄처럼 날아갔다.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으에.”

         

       주문을 마친 멜리사가 지팡이를 겨눴다. 무수한 빛 탄환이 거대한 돌덩이를 분쇄했다. 빛이 연달아 붕괴하며 번쩍였다.

         

       앨시어가 지면을 포탄처럼 쏘아대고 멜리사가 침착하게 막아내는 상황이 이어졌다.

         

       “으이이.”

         

       파스텔은 손을 떨었다.

         

       “마석 섭취의 권능으로 마석을 열심히 냠냠하며 몸을 강화한 파스텔은 깃털처럼 날아갈 근력!”

         

       이것이 준기사급?

         

       『그건 네 착각이다. 저 애는 너보다 뛰어난 신체를 갖추진 않았어. 애초에 넌 지금 신체 자체가 사람이 아니지. 순수 근력으로 철을 뜯는 사람이 어딨나.』

         

       악마가 픽 웃었다.

         

       『존재의 격이 일정 경지에 오른 준기사급은 자연 지물에 큰 간섭을 하기 쉬워. 세상 자체가 의지를 현실에 구현해 주지. 나무검으로 철을 베고 발 구름으로 지면을 부순다. 저건 병장기로 하는 마법이다.』

         

       으잉.

         

       “멜리사가 가냘픈 팔로 마법을 쏘아대면 허수아비가 펑펑 폭발하는 것처럼요? 맨주먹으론 절대 못 할 일인데도!”

       『그래. 지형지물은 알아서 세상이 순응해 주니 말도 안 되게 잘 부수지만, 막상 사람은 의지로 간섭하기 어려워서 안간힘을 써야 한다.』

       “잠깐만요.”

         

       두뇌 풀 회전~.

         

       “그러니까, 나무검으로 철갑옷 입은 사람을 상대한다고 생각해 볼게요. 나무검으로 철갑옷은 단칼에 벨 수 있는데 막상 내부의 사람 신체는 못 베서 단순한 때리기가 된다는 거죠?”

       『맞다. 사람은 그 자체로 독립된 세계이기 때문이지. 뭉툭한 나무검으로 신체를 베려는 시도는 작은 세계를 베려는 시도나 다름없다. 상대가 허용해 주지 않으니 당연히 그냥 나무검으로 때린 것과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거다.』

         

       파스텔은 눈이 빙빙 돌았다.

         

       “악마님 갑자기 머리 아픈 형이상학적 얘기를 하시면 파스텔은 바보바보가 될 수 있어요.”

         

       『막상 검을 맞대보면 체감이 올 거다. 저렇게 보여도 네가 훨씬 근력이 세니 검만 맞댈 수 있으면 근접 검술로 밀어붙이기 쉽다. 네가 철을 못 벤다 한들 어차피 사람은 목에 칼이 박히면 죽으니.』

         

       뭐야 그게.

         

       파스텔은 돌덩어리와 빛 탄환이 충돌하는 광경을 내려보며 팔짱을 꼈다.

         

       잘 모르겠지만 해볼 만하다는 얘기?

         

       응응!

         

       “악마님을 믿어요!”

         

       앨시어를 꺾고 1학년 최강자 타이틀을 지키는 거야!

         

       『그래.』

         

       그러다 파스텔은 관중석 한쪽의 경비대원이 붉은 깃발을 들어 올린 걸 발견했다.

         

       긴급 신호다.

         

       오잉.

         

       빠르게 날아가 경비대원에게 얘기를 들었다.

         

       “소속 불명의 비공정이 속도를 늦추지 않고 여기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의도는 알 수 없으나 테러 목적일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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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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