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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와하하! 더 마셔! 더!”

       

       “우윽, 저는 좀 힘든데요···.”

       

       “에이, 더 할 수 있잖아! 초인이니까!”

       

       “초인도 한계는 있다고요···.”

       

       “몰라 몰라! 마셔! 적셔!”

       

       

       아멜리아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녀석은 지치지도 않나.

       

       제일 많이 마셨으면서 쉬지 않고 술을 들이부으며 도로시를 괴롭혀대고 있었다.

       

       

       “음···.”

       

       

       저 한심한 작태를 보며 아멜리아를 어떻게 말려야 할까 한숨을 내쉬는 사이에, 옆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르테가 꾸벅거리며 반쯤 졸고 있었다.

       

       

       “···아르테? 자?”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반쯤 뜨여있는 붉은 눈동자로 보아 자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유지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아멜리아가 주는 술잔을 거부하지 않고 주는 대로 족족 먹을 때부터 조금 걱정되긴 했는데, 설마 이렇게 될 줄이야.

       

       아르테가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무방비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처음이었다.

       

       

       “아멜리아.”

       

       “응? 왜?”

       

       “아르테 좀 숙소에 데려다주고 올게. 피곤해 보여서.”

       

       

       아멜리아도 반쯤 취해있었기에 그녀에게 부탁하는 건 불가능했다.

       

       취한 사람이 취한 사람을 데리고 갈 수는 없잖아.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그러면 도로시에게 부탁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

       

       그건 내가 싫다.

       

       도로시는 그렇게까지 취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만약 도로시에게 부탁하는 순간 저 주정뱅이가 내게 시선을 돌릴 게 뻔하잖아.

       

       도로시가 보내는 구원의 시선을 무시하자 그녀가 배신감이 뒤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보였다.

       

       절대 안 해주지.

       

       나도 오늘 너에게 배신감을 느꼈단다, 도로시.

       

       나를 속이고 오락거리로 삼은 죄는 그걸로 용서해주마.

       

       

       “다녀올게. 조금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

       

       “어엉. 다녀와아! 자, 도로시! 사람도 적어졌겠다, 마시자! 적셔!”

       

       “아, 안주가 없으니까 조금···그렇지 않을까요?”

       

       “으으응···? 걱정하지 마! 더 있으니까!”

       

       

       콰앙!

       

       도로시가 빈 상자를 보며 탈출구를 찾았다며 기뻐했지만, 그것도 잠시.

       

       상자 속의 식재료는 모두 사라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디에 숨겨놨는지 온갖 식재료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도로시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존재하지 않았다.

       

       

       “자아, 먹쟈, 먹어! 오늘은 먹고 마시고 죽는 날이야!”

       

       “시우 군, 역시 남자가 여자를 데려가는 건···.”

       

       “다녀올게!”

       

       “앗,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앓는 소리를 내는 도로시와 마냥 즐거운 아멜리아를 내버려 둔 채로 길을 나섰다.

       

       

       “아르테, 괜찮아?”

       

       “으음. 괜차나요···.”

       

       

       발갛게 상기된 얼굴. 불안정한 발걸음.

       

       잔뜩 꼬인 혀. 결정적으로 몽롱한 표정까지.

       

       확신했다. 괜찮기는 무슨, 혼자 걷게 했다가는 금방 고꾸라질 게 뻔했다.

       

       

       “···어쩌지.”

       

       “으앗.”

       

       “아르테?!”

       

       

       어떻게 해야 아르테를 잘 데려갈 수 있을까.

       

       그런 걸 고민하다가 잠깐 아르테에게 한눈을 판 사이, 걱정했던 대로 아르테가 발이 걸려 넘어졌다.

       

       

       “괜찮아?!”

       

       “···히.”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멀쩡했구나.

       

       ···아니, 잠깐. 생각해보니까 아르테도 초인이잖아. 괜히 걱정했네.

       

       넘어지는 것 정도로는 상처도 나지 않는다.

       

       그 증거로, 넘어진 자리에는 상처 하나 없이 말랑말랑해 보이는 살결만이···.

       

       

       “으아아아악!”

       

       “···?”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절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즐거운 분위기와 맛있는 음식에 잠깐 머릿속에서 치워둔 것이 떠올라버렸다.

       

       아르테는 지금, 어디를 바라봐도 치명적인 복장을 한 상태라는 것을.

       

       

       “어쩌지, 어쩌지···!”

       

       

       어느새 다시 꾸벅꾸벅 조는 아르테를 바라보았다.

       

       이대로는 숙소에 데려가기는커녕 길 한복판에서 밤을 지새울 판이다.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렇지?

       

       마음을 굳게 먹는 거야, 유시우.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어쩔 수 없는 거다···.

       

       

       “업혀, 아르테.”

       

       “우응···?”

       

       “이대로 가면 날이 새버릴 거야. 빨리.”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는 안 된다.

       

       잔뜩 취한 아르테 혼자서는 길을 가다 잠들어버릴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그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아르테가 우물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풀벌레들이 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서일까.

       

       아르테가 다가오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후우···.”

       

       

       진정하자, 유시우.

       

       이건 별일 아니야.

       

       아르테를 그저 옮겨주기만 할 뿐인 행동. 그저 그뿐이라고.

       

       그렇게 되뇌던 나의 다짐은, 아르테가 내 등에 업히는 순간 순식간에 부서져 내렸다.

       

       몇 개월 전, 아르테가 나를 위로해줬을 때.

       

       아르테의 감촉을 느꼈던 적이 있었더랬지.

       

       부드러운 감촉 탓에 잠을 이루지 못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이미 한번 겪어보았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해 두었는데···.

       

       

       “우응, 왜 안가···?”

       

       “···갈게.”

       

       

       터무니없는 소리.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와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나를 위로해주던 그때의 아르테는 옷을 입고 있었지.

       

       레오타드의 감촉이 대놓고 느껴졌지만, 적어도 레오타드라도 입고 있었다.

       

       나도 옷을 입고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레오타드는 무슨, 비키니다.

       

       심지어 술을 먹다가 덥다며 파레오와 상의를 벗어 던졌던가.

       

       그 상황에서 아르테를 업고 가야만 한다니, 고문이었다.

       

       나도 수영복을 입고있어 아르테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둘 수 있는 벽이 없다시피 했으니까.

       

       얇디얇은, 면적이 좁은 천 하나가 나와 밀착한 아르테 사이의 유일한 벽이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등에 눌리는 두 개의 살덩이.

       

       그리고 그녀를 업기 위해 손으로 지탱하는 중인 말랑한 허벅지.

       

       목을 휘감고 있는 가느다란 손까지.

       

       ···솔직히 말하자면 괴롭다. 버티기 힘들다.

       

       나도 아멜리아와 아르테 만큼은 아니더라도 술을 먹은 상태였으니까.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욕망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아멜리아가 필요해.

       

       하지만 이곳에 아멜리아는 없다. 오직 아르테와 나, 둘만이 있을 뿐.

       

       풀벌레들이 우는, 인기척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천천히 걸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있지, 주인공.”

       

       “···나?”

       

       “응.”

       

       

       뜬금없는 말에 의아했다.

       

       주인공이라니,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으니까.

       

       그녀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건 처음이었다.

       

       나를 이상하게 부르는 것도 그렇고, 아르테의 말투가 존댓말이 아니게 된 것도 그렇고.

       

       상당히 취한 모양이었다.

       

       

       “나, 무서워.”

       

       “···뭐가?”

       

       “내가 죽인 사람들이 정말 사람일까 봐.”

       

       “···.”

       

       

       발걸음이 멈췄다.

       

       지금 아르테는 꼭꼭 숨겨두고 있던 자신의 마음을 내뱉는 중이다.

       

       그걸, 시우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있지. 내가 죽인 사람들이, 정말 인형이 맞았을까. 정말로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인형극 속 인형들이 정말로 자유의지가 없는 인형들일까. 나는 항상 고민해왔어. 그야, 알 방법이 없었으니까.”

       

       

       인형극, 인형.

       

       문득 아르테가 관람차 안에서 잔뜩 흥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런 이야기를 했던가.

       

       자유의지가 없는 인형들과는 사귈 생각 없다고.

       

       그때는 무슨 이야기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아르테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인형으로만 보고 있을 뿐.

       

       어째서 그녀가 빌런들에게 그토록 잔혹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일면을 알아낸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자들은 인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정말로 인형이었을까.”

       

       

       아르테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겠지.

       

       술기운에 취해있는 상황이니까.

       

       

       “···.”

       

       

       아르테는 다시 옅은 잠에 빠진 모양이었다.

       

       어깨에 머리를 기댄 아르테가 고른 숨을 내쉬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과 인형.

       

       아르테가 왜 그런 것에 집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애당초, 사람과 인형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나를 주인공이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며 길을 걷고 있자니 어느새 별장에 도착했다.

       

       시우는 별장의 침실에 아르테를 눕히고는 생각에 잠겼다.

       

       의도치 않게 들은 이 이야기가, 아르테의 속마음이겠지.

       

       언제나 여유로워 보이는 그녀가 의도치 않게 보여준 속마음.

       

       그녀는 인간을 사람과 인형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가 인간과 인형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르테는 자신이 인형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잔인해졌다.

       

       라이라를 죽인 것도 그렇고, 위버멘쉬를 잔혹하게 죽여버린 것도 그렇고.

       

       깊은 잠에 빠진 아르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아르테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 그녀가 고민이 있다면 친구로서 기꺼이 도와줄 의향도 있고.

       

       아르테의 의도를 알 수 없는 행동들이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

       

       생각해보면 아르테와 알고 지낸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녀를 향한 두려움은 점점 옅어져만 갔다.

       

       생각했던 것만큼 무서운 사람도 아니었고, 생각했던 것만큼 의도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오늘, 이 해프닝으로 아르테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깨달은 것은 행운이었다.

       

       아르테는 모종의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있었다.

       

       인형인지, 사람인지.

       

       그렇다면 도와줄 수 있다.

       

       아르테가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해결한다면.

       

       그렇다면 아르테는 더는 이런 일로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겠지.

       

       이미 아르테가 저지른 일들은 수습할 수 없을지 몰라도, 더 이상 아르테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도와줄게, 아르테.”

       

       

       나는 네 친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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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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