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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목소리에 액이 껴있구나.”

         

       그 목소리는 걸걸하고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성대를 사포와 쇠꼬챙이로 잔뜩 긁은 게 아닐까 싶은 목소리.

       사람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나 싶은 소리였다.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 흉내를 내서 말을 하고, 그 소리가 무저갱을 거쳐서 올라오면 이런 목소리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세린과 엘라가 움찔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진성에게는 이 목소리가 더 익숙한 것이었다.

       회귀 전 그의 목소리가 바로 이러했으니까.

         

       [ 뭐냐. 너는 누구냐? ]

         

       전화기 너머의 대마녀도 진성의 목소리에 놀란 것인지, 조금은 당황한 듯 되물었다.

       하지만 진성은 그녀의 말에 대답해주는 대신에,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 했다.

         

       “끌끌끌. 아주 액(厄)이 단단히 꼈구나. 마녀란 족속들의 팔자가 참으로 박복하다고는 하지만, 네년은 그게 참으로 심해.”

       [ 너는 누군데 갑자기 끼어든 거냐? ]

       “참으로 기구하고 가엾다. 어찌 그리 액을 껴안고 다니는 것으로도 모자라 목소리에도 싣고 다니는고? 끌끌끌. 보자. 어디 보자. 액막이가 가능할 때는 하지 않았고, 훗날에야 액막이를 몇 번 했지만, 감당이 안 되었구나.”

       [ 뭐? ]

       “아이고, 아주 액받이 인형이 따로 없구나. 마녀야, 너 마녀야. 어디 액막이에 그리 천금을 부은들 그게 될 것 같으냐? 어디 새까맣게 변한 바다에 표백제 몇 숟가락 떨어뜨린들 그게 어디 제 색으로 돌아오게 하겠느냐?”

         

       진성이 자기 할 말만 계속해대자 전화기 너머의 대마녀는 폭발하듯 분노를 표출시켰다.

         

       [ 너 누구야——————!!!! ]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소리의 진동에 스마트폰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진성은 태연하게 말을 계속할 뿐이었다.

         

       “보자. 아이고 아둔해라. 얼마 전에는 비싼 돈을 들여서 인디언 주술사가 직접 만든 드림캐처를 샀구나? 악몽을 잡는 것으로 액을 막으려 하면 그게 되겠느냐? 뜰채는 물고기를 뜨는 것이지 구정물을 뜨는 게 아니다. 네년의 멍청한 행동 덕분에 비싼 주물이 쓰레기가 되었구나.”

       [ 뭐? ]

       “아이고. 상아로 만든 가네샤 신상은 또 왜 샀느냐? 주술사가 아니라 웬 멍청한 위조꾼놈이 만든 것이라 효과도 없는데, 어디 미술품이랍시고 샀느냐? 이름도 없는 위조꾼놈이 만든거라 예술품으로도 가치가 없으니 그걸 세워놓으면 교양도 없다고 욕을 먹기 딱 좋겠다.”

       [ 당신 ]

       “하이고. 가지가지 하는구나. 네 잎 클로버가 가득한 테라리움. 500년 묵은 행운목으로 만든 문고리. 성전에 사용된 무구를 녹여 만든 말발굽. 효과가 없다고는 못하나 액에 비하면 형편없을 정도이니, 전부 쓰레기요 헛수고로다. 어디 그런 걸 돈을 주고 사느냐?”

       [ 당신! 내 뒷조사라도 한 거야? 아니면 옆에 있는 그 짐 덩어리한테 듣기라도 했어?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마녀는 다시 한번 분노를 폭발시키려 했다.

       이어지는 진성의 말만 아니었다면, 분명히 폭발했을 것이다.

         

       “이런 비싼 쓰레기보다는 네가 7살 때 받았던 토끼발이 훨씬 효과가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 말에 터져 나오는 분노는 순식간에 사그라들었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기억이 나느냐? 네 옆집에 살던 한스라는 자가 너에게 주었지.”

       [ … ]

       “오, 막내가 아닌 한-스. 마법사에게 미움도 사랑도 받지 않는 한스. 귀엽지는 않지만 인기가 많고, 용기는 없지만 자상한 남자라네. 한스, 한스. 마법사가 될, 마을의 자랑이 될 한-스.”

         

       진성은 사악한 괴물이 속삭이듯 말을 던졌다.

         

       “기억하고 있겠지.”

         

       그리고 그 의미심장한 말에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침묵 끝에 나온 것은,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

       과거의 망념이 시간을 거슬러 자신을 움켜쥐었을 때 나오는, 어두운 추억이 묻은 목소리였다.

         

       [ …그걸 어떻게 알지? ]

       “오오. 그걸 내가 어찌 알고 있을까. 끌끌끌. 혹시 아는가. 한스가 맨날 흥얼거렸던 것처럼. 그 부잣집에 살고 어린아이 챙기기를 좋아했던 그 상냥했던 아이가 말했듯. 요정이 나에게 가르쳐주었을지도 모르지.”

       [ 당신. 나는 지금 장난칠 기분이 아니야. 빨리 말하지 않으면….]

       “오, 나는 사람을 원해. 나는 인간을 원해. 나는 세상의 그 어떤 보물보다도 살아있는 것이 더 좋아(etwas Lebendes ist mir lieber als alle Schätze der Welt).”

         

       진성은 콧노래를 부르듯 경쾌하게 노래를 불렀다.

         

       “오늘은 빵을 굽고, 내일은 술을 빚으리(Heute back ich, morgen brau ich,)”

       [ … ]

       “모레는 왕비에게서 아이를 데려오리니(Übermorgen hol ich mir der Königin ihr Kind;).”

         

       음산한 목소리로 장난치듯 대마녀에게 짧게 노래를 불러준 그는, 낮게 깔리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물었다.

         

       “그래. 마녀야. 끔찍한 탄압을 피해 도망친 부유한 유대인, 너에게 토끼 발을 쥐여주며 훗날의 만남을 기약한 너의 첫사랑을 기억하느냐. 검은 숲 어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자면 슬그머니 나타나 먹을 것을 쥐여주고, 너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고는 너와 함께 놀아주었던 그 한스를 기억하느냐.”

       [ …당신 누구야. ]

       “오오, 한스는 말했지. 토끼 발을 쥐여주며 말했느니. 나에게는 요정이 없어 이렇게 도망을 가지만, 너에게는 분명히 수호 요정이 함께할 것이라고. 나는 소원을 들어줄 난쟁이도 없어 괴물을 피해 도망을 가지만, 너는 재투성이 아가씨에게 호박 마차를 만들어준 착한 요정이 있을 거라고 말했지. 그리고 수수께끼를 남기기를.”

         

       진성은 웃었다.

         

       “내가 불러준 노래의 주인을, 횃불을 피워놓고 이 노래를 부른 요정의 이름을 맞추면 나를 만날 수 있다고 하였느니라. 다만 그 말은 거짓말인지라, 네가 동화책을 읽고 또 읽어 답을 알아내도 첫사랑은 돌아오지 아니하였지. 훗날 돈과 젊음을 손에 넣었을 때도 그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고, 결국 가엾은 마녀는 평생 배우자 없이 홀몸으로 살았다지? 아, 참으로 비극이로다. 참으로 비극이야.”

       [ 당신-! 누구야———!!! ]

         

       다시 한번 스마트폰이 쩌렁쩌렁 울렸다.

         

       “내가 누굴까. 자네의 첫사랑인 한스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네의 최근 근황을 알 리가 없으며, 자네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스를 알 리가 만무하니. 그 두 가지를 아는 나는 대관절 누구이길래, 공존할 수 없는 것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일까?”

         

       그는 약을 올리듯 그렇게 말하고는 통화를 종료해버렸다.

         

       그리곤 스마트폰을 엘라에게 건네주었다.

         

       그녀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기가 무섭게 불이라도 난 듯 스마트폰이 울렸지만, 그는 그녀의 손을 슬쩍 잡으며 받지 말라는 듯 웃는 얼굴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엘라는 방금 진성이 한 일이 뭔지, 한 말이 뭔지. 그리고 그 염세적이고 히스테릭한 성격을 가진 대마녀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그리고 진성이 어째서 전화를 받는 것을 멈추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마녀의 가마솥처럼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한 채 진성의 뜻대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몇 번의 닿지 못한 전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부재중 통화 표시가 5개가 되었을 때에야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 에에에엘-라아아아! 블루조이사이트! 비이인터어어!!! ]

         

       전화를 받자마자 들리는 것은 거의 이성을 놓아버린 대마녀의 외침이었다.

         

       [ 어째서 전화를 받지를 않는 게냐! 아니, 받았으니 됐다! 네 옆에 있는 것이 누구냐! 누구길래 전화기를 잡아채고 나한테 그런 말을 한 거냔 말이다! ]

       “그, 그게….”

         

       진성은 자신의 정체를 추궁하는 대마녀의 말을 듣고는 검지를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대었다. 그리고는 ‘쉿’ 이라고 작게 말했다.

         

       “그, 그게….”

         

       진성은 방긋 웃으며 입 모양으로 소리 없이 단어를 말했다.

         

       주.

       술.

       사.

         

       “주, 주술사예요….”

       [ 주술사? 하, 무슨 주술사가…. 아니. 아니야. 점쟁이? 아니면 계약자? 모르겠군, 모르겠어. 하지만…. 하! ]

         

       대마녀는 주술사라는 단어를 듣고 횡설수설하며 무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엘라! 그 주술사를 바꿔보아라! ]

         

       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그리곤 다시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끌끌끌. 그래, 내가 바로 보잘것없는 주술을 쓰는 사람이요, 자네가 마땅찮아 하는 열등생 마녀와 연이 닿은 주술사이니라.”

       [ 무슨 수로 그 사실을 알았지? 뒷조사라도 한 건가? ]

       “아이고, 마녀야. 생각을 조금만 하면 알 수 있을 것을. 이게 뒷조사를 한다고 조사해지는 것이더냐? 나치의 손길에 한스가 존재했다는 기록 전체가 말소되었고, 그 아이를 아는 이들은 모조리 불에 타 죽었는데 어찌 이걸 조사할 수 있겠느냐? 룬 마법으로 영시를 할 수 있는 수단도 죄다 없애버리고, 오직 마녀 너의 기억 속에만 남은 것을 내가 어찌 뒷조사로 알았겠느냐?”

       [ 그…건. ]

       “마-녀야. 가엾은 아이야. 그래, 나는 너의 과거를 아느니라. 나는 한스의 존재를 알고, 한스가 낸 수수께끼의 답도 알고, 네가 현재 무엇을 하는지도 알며, 머지않은 미래에 네가 할 모습도 알고 있으며, 네가 어찌 죽는지도 알고 있느니라. 이런 나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런 내가 너에게 어찌 불려야 할까?”

         

       과거를 알고.

       현재를 알고.

       미래를 안다.

         

       전지(全知)의 시야를 일부나마 가지고 있는 이들.

         

       [ 당신은…. 아니. 당신께선, 예언자입니까? ]

         

       진성은 그녀의 말에 피식 웃었다.

         

       “그저 보잘것없는 주술사이니라.”

         

         

         

        * * *

         

         

       독심술(讀心術)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람의 생각을 읽는 기술.

         

       과학의 힘이 득세하기 이전에는 타심통(他心通)이나 아즈나 차크라(ajna chakra)의 경지에 이른 수행자나 고행자, 혹은 마음을 읽는 힘을 발휘하는 초월종과 계약한 계약자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고, 사람의 정신과 뇌를 탐구함에 따라 사람을 읽을 수 있는 기술 역시 함께 발전되었으니.

         

       이제 독심술은 이능으로서의 독심술과 첨단과학으로서의 독심술, 그리고 심리학적 방법으로서의 독심술로 나뉘게 되었다.

         

       진성이 사용한 것은 바로 심리학적 방법으로서의 독심술.

       마인드 리딩(Mind reading)이었다.

         

       이 마인드 리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바넘 효과(Barnum effect)와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을 기반으로 하는 독심술, 콜드 리딩(Cold reading).

       뒷조사를 이용해 정보를 축적해 사용하는 독심술, 핫 리딩(Hot Reading).

         

       콜드 리딩의 경우 상대의 몸짓이나 표정, 의상, 머리, 동공 확장 등의 비언어적 신호와 어감, 성조, 강세 등의 반언어적 신호(半言語的表現)로 정보를 얻는다.

       하지만 핫 리딩은 기술이 아닌 뒷조사 등으로 정보를 취득해서 하는 범죄적인 방법이었다.

         

       이 둘 중 진성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핫 리딩.

       회귀 전 대마녀를 상대로 하던 카니발(Carnival)에서 얻은 정보로 행하는, 핫 리딩이었다.

         

       한없이 예언과 같은 독심술이며.

       뒷조사 없이 할 수 있는, 뒷조사보다 위대한 핫 리딩.

         

       진성은 대마녀의 과거를 안다.

       회귀 전 이맘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대략 안다.

       회귀 전 대마녀가 어떻게 죽어갈지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핫 리딩은 그저 독심술인가, 예언인가?

         

       “그래, 마녀야. 대마녀야. 너는 이제 이 보잘것없는 주술사의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되어있느냐?”

         

       다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가 사용하는 것이 핫 리딩이냐 예언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대마녀의 머릿속에서 진성은 예언자가 되어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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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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