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7

       

       

       

       

       크랫들이 이곳저곳에서 줍거나 훔쳐 온 반짝이는 잡동사니가 담긴 얕은 구덩이.

       

       그 바닥에는 놀랍게도 석판이 하나 더 있었다. 

       

       ‘이중 구덩이?’

       

       나는 곧바로 석판을 옆으로 밀었다. 

       

       드르르륵.

       

       “오오…?”

       “우아아! 이뿌다!”

       

       그 밑에 있던 작은 구덩이에서 나온 건 놀랍게도 보석이었다. 

       

       그것도 두 개나. 

       

       “이건…. 하나는 루비인 것 같고, 하나는 에메랄드인가?”

       

       보석 전문가는 아니지만 하나는 빨강, 하나는 초록인 걸 보면 대충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루비? 에메랄두?”

       “응. 보석 이름이야. 꽤 비쌀 텐데, 이걸 크랫이 가지고 있었네.”

       

       목걸이 하나 찾으러 온 던전에서 무려 보석을 두 개나 발견하다니.

       

       ‘너무 운이 좋은데?’

       

       의뢰비에다, 크랫을 잡으며 얻는 경험치, 그리고 보석까지.

       

       오는 길이 험해 좀 힘들긴 했지만 이 정도면 상상 이상의 수확이다. 

       

       ‘크랫 던전에서 보석이 나올 확률은 진짜 극악인 걸로 알고 있는데.’

       

       크랫들이 반짝이는 걸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보석은 그 자체로 굉장히 희귀한 물건이다. 

       

       그리고 이 펜던트처럼 어딘가에서 보석을 훔쳐 왔다고 해도, 비싼 보석을 소지하고 있을 정도의 사람이면 크랫이 가져간 걸 알고 사람을 고용하든 직접 가든 크랫 던전을 당장 소탕하러 왔을 것이다. 

       

       즉, 그냥 아무런 정보 없이 크랫 던전을 소탕하러 간 사람이 우연히 보석을 얻을 확률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이 보석이 누군가에게서 훔쳐 온 게 아니라 주워 온, 주인이 없는 보석이어야 하니까.’

       

       도대체 어디서 주워 온 건진 모르겠지만, 이 아래의 석판이 처음에는 있는 줄도 몰랐을 만큼 자연스럽게 모래에 묻혀 있던 걸 생각하면 주워 온 지 꽤나 오래됐을 것이다. 

       

       ‘보석 알이 그리 크진 않고, 대충 보더라도 세공도 안 된 것처럼 보이는데…. 진짜로 주워 온 건가?’

       

       대체 몇 년이나 여기 묵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내가 세상 빛을 보게 해 주마. 후후.’

       

       나는 망설임 없이 보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반짝이는 눈으로 보석을 바라보던 아르의 눈앞에 가져다 주었다. 

       

       “맘에 들었나 보네, 아르? 만져 볼래?”

       “우응! 그래도 대?”

       “당연하지. 자.”

       

       아르는 조심스럽게 빨간 보석을 집어 들어서 겉에 쌓인 먼지를 입으로 후우 불었다. 

       

       먼지가 오래 묵어 잘 날아가지 않자, 아르는 입 앞에 보석을 가져다 대고 하아, 입김을 분 뒤 손바닥의 말랑한 젤리로 보석을 뽀득뽀득 문질렀다. 

       

       “우아아! 보석 더 빤짝해져써!”

       

       아르는 밝아진 얼굴로 나에게 루비를 보여 주면서 눈을 빛냈다. 

       

       “그러네. 반짝반짝 빨간색으로 예쁘게 빛나는 게 우리 아르 눈이랑 닮았네.”

       “구, 구래? 아르 눈도 빤짝빤짝 빛나?”

       

       아르는 내 말에 조금 부끄럽다는 듯 빵실한 뺨을 붉혔다. 

       

       “응. 우리 아르 눈이 얼마나 예쁜데.”

       “히히히. 고마어, 레온! 아르, 이 보석 마음에 드러!”

       

       아르가 루비를 양손으로 소중하게 꼬옥 쥐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럼 루비는 아르가 가질래? 요 에메랄드는 내가 가질 테니까. 어때?”

       

       그 말에 아르의 입이 벌어졌다. 

       

       “정말? 이고 아르 가져도 대?”

       “정말이지, 그럼. 아르랑 나랑 같이 발견한 거니까 하나씩 나눠 가지면 공평하잖아?”

       “징짜 고마어, 레온! 히히.”

       

       하지만 곧 아르는 루비를 바라보다가 뭔가 문득 떠올랐는지 고개를 다시 들고 내게 물었다. 

       

       “근데 이짜나….”

       “응?”

       “실비아 온니는 오떠케? 온니도 반대쪽에서 열씨미 크랫 자바쓸 텐데, 온니한테도 보석 조야 대는데….”

       

       진심으로 시무룩해하는 아르를 보며, 나는 흘러 나오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아휴, 우리 아르. 마음씨도 곱지.’

       

       그 와중에 실비아 씨까지 생각을 해 주다니.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 아르야. 루비는 아르 가지고, 에메랄드는 팔아서 실비아 씨한테 몫을 분배해 주면 되니까.”

       “돈으로 바까서 줄 고야?”

       “응. 이 에메랄드가 좀 더 크니까, 팔아서 나누면 공평하게 맞을 거야.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아마 하급품이라 그렇게까지 높은 값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런 판타지 세계에서 보석이 갖는 가치는 현대에서보다 훨씬 높다. 

       

       현대였으면 이 정도 크기의 상급품 에메랄드를 팔려고 해도 비싸 봐야 백만 원 언저리겠지만, 여기선 하급품이라도 2~3골드 정도는 나올 터.

        

       이것만으로도 의뢰비의 몇 배는 뽑아 먹을 수 있는 셈이다. 

       

       루비는 아르가 맘에 들어 하니 굳이 팔진 않겠지만, 보통 에메랄드보다 루비가 비싸다는 걸 고려해 돈으로 환산하면 가치가 꽤 될 거고.

       

       ‘진짜 운이 좋다, 운이 좋아.’

       

       역시 우리 아르는 운을 몰고 다닌다니까.

       

       ‘잠깐. 근데 그러고 보니 이렇게 이중 구덩이를 파서까지 보석을 감춰 놓을 정도로 크랫들이 똑똑하던가?’

       

       석판을 다시 원위치 시켜 놓고 일어서려던 나는 문득 생각했다.

       

       물론 구덩이를 파는 데에 대단한 지능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일반 크랫들이라면 아무리 보석이라고 해도 대충 모아 놓은 잡동사니 사이에 섞어 놓을 텐데.

       

       나의 본능이 그렇게 위화감을 감지한 순간.

       

       쿠릉!

       

       동굴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어디지?’

       

       깊게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회피 태세.”

       

       [스킬 ‘회피 태세’를 발동합니다.]

       [마나를 이용해 감각 및 반응 속도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리고, 추천 회피 경로를 안내합니다.]

       

       스킬 발동과 동시에 심장 부근에 모여 있던 마나가 일시에 강하게 펌프질을 한 것처럼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주변이 느리게 보였고, 모든 감각이 현재 상황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받아들였다.

       

       ‘위쪽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파악!

       

       위쪽 천장을 뚫고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낙하했고. 

       

       “아르야!”

       “쀼!”

       

       나는 재빨리 아르를 안아 들고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쿠우웅!

       

       아르를 안은 채 바닥을 한 번 구른 뒤 일어선 나는, 천장에서 떨어진 놈의 정체를 확인했다. 

       

       “역시…. 변종 크랫이 있었구나.”

       

       우리가 방심할 때를 노려 기습하려고, 바닥도 아니고 천장 쪽에서 천천히 땅을 파 정확히 우리의 머리 위까지 와서 기다렸다. 

       

       ‘그래. 이중 구덩이를 파서 보석을 감춰 둘 머리면 이 정도 기습은 할 수 있지.’

       

       변종 마물. 

       

       마물을 상대하다 보면 종종 만나게 되는 돌연변이 개체.

       

       보통 마물의 무리 사이에 변종이 끼어 있으면, 해당 변종은 일반 마물들보다 최소 1성급은 높다고 봐야 한다. 

       

       ‘최소가 그 정도지, 운이 나쁘면 2성급 검사가 충분히 잡는 마물이 변종으로 4성급 검사가 와야 잡는 수준이 될 수도 있는 게 변종이야.’

       

       물론 변종으로 급이 올라간 마물을 잡을 수만 있다면, 경험치를 일반 마물에 비해 훨씬 많이 주기 때문에 운이 나쁜 게 아니라 좋은 거였다고 볼 수도 있긴 하겠지만.

       

       ‘문제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녀석이 만만찮아 보인다는 거지.’

       

       일반 크랫의 2.5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덩치.

       

       두더지랑 쥐가 아니라, 두더지랑 늑대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위협적인 비주얼. 

       

       게다가 놈의 날카로운 손톱은 방금 천장의 바위층을 쉽게 뚫은 걸 보고 알 수 있듯 굉장히 단단해 보였다. 

       

       “크르르….”

       

       저 봐. 

       

       저게 어딜 봐서 쥐냐고.

       

       ‘쉽진 않아 보이는데.’

       

       아르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파이어 볼과 파이어 애로우를 신나게 난사하느라 마나를 꽤나 소모했을 거다. 

       

       혹시 모를 보스전을 대비해 마력을 남겨 두기야 했겠지만, 그게 단순히 일반 크랫의 우두머리급이 아니라 변종일 거라고는 아르도 생각하지 못했을 터. 

       

       ‘게다가 나도 방금 회피 태세를 쓰느라 마나를 한 번에 많이 소모했어.’

       

       못 싸울 정도는 아니지만, 앞으로 마법을 한 번도 쓰지 않는다고 해도 회피 태세를 추가로 쓸 수 있는 건 두 번이 한계다. 

       

       ‘회피 태세를 쓰면서 놈의 급소를 단검으로 노릴 것이냐, 아니면 나도 스킬 동기화로 3서클의 마법을 불러 와서 화력으로 승부할 것이냐.’

       

       지금으로서는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는 아르를 내려다보았다. 

       

       아르는 깜짝 놀랐는지 눈을 꼬옥 감고 내 옷자락을 잡고 있다가, 내가 내려다보자 천천히 눈을 떠 나를 올려다보았다.

       

       ‘…역시 내가 어그로를 끌어 주는 게 낫겠어.’

       

       혹시라도 함께 화력을 퍼부었다가 빗나가거나 한 번에 죽이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아르가 위험해질 수 있다.

       

       아르 없이 단독으로라면 회피 태세를 쓰지 않고도 어느 정도는 놈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 터.

       

       내가 앞에서 시선을 끌고 그동안 아르가 마법을 준비하는 게 여러 모로 낫다.

       

       그렇게 판단한 내가 아르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르야, 마법 쓸 수 있겠어?”

       “우응…!”

       “좋아.”

       

       나는 아르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전투 과정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며 단검을 빼 들었다. 

       

       “내가 먼저 갈….”

       “레, 레온!”

       “응?”

       

       아르가 당황한 듯 외치자, 뛰쳐 나가려던 나는 잠시 멈추고 아르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루비…. 레온이 준 루비가 업써!”

       

       아르는 나를 올려다 보며 자신의 빈 양손을 뒤집어 보였다.

       아르의 목소리에는 약간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크르르르!”

       

       그리고 그때, 변종 크랫은 마침 우리가 있던 자리에서 무언가를 집어 들고 있었다.

       

       “어, 져기 이써!”

       

       아무래도 아까 놈이 나타날 때 내게 급히 안기느라 떨어뜨린 모양.

       

       “크르.”

       

       변종 크랫은 반짝이는 루비를 집어 들고 조금 만족한 듯 혼자 기분 나쁘게 웃더니 루비를 잠시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게서 에메랄드도 마저 빼앗기 위해 손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타앗!

       

       놈이 이쪽으로 달려들려는 순간.

       

       화아아아아아악!

       

       “…!”

       

       조그만 해츨링에게서 뿜어져 나온 압도적인 마력에, 나와 크랫은 동시에 짓눌리듯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일순 동굴 속이 고요로 물들었고.

       

       “이 납쁜 크랫!!”

       

       아르의 외침과 함께.

       

       “레온이 준 소중한 루비를 낸나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

       

       아르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플레임 캐논이, 변종 크랫을 강타했다.

       

    다음화 보기


           


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