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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도게자 백작가와 얘기를 끝마치고,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있었던 일은 프란체와 느긋한 여행 정도.

       

       그 사이에 탑 건설도 시작됐다.

         

       인력이 많이 필요한지라, 공고문을 올렸더니 다른 지역에서도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마탑이 건설될 지역은 공작령에 방치된 숲. 여기가 제격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건설 현장에 서 있다.

         

       “탑이 얼마나 높게 올라간다고?”

       “구름에 닿을 때까지입니다.”

       “…그게 가능해?”

       “가능합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다소 걱정이 있었지만, 이 세계의 건축 기술은 예상보다 훨씬 발달 되어 있었다.

         

       “그렇게 클 줄은 몰랐는데.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네.”

       “괜찮습니다. 결계가 탑의 균열 같은 걸 막아줄 테니까요.”

         

       프란체가 “결계?”하면서 눈썹을 좁혔다.

         

       “…이 커다란 탑에 결계를 누가, 어떻게 치는데?”

       “카자르가 있잖습니까. 충분히 칠 수 있을 거예요.”

       “아무리 카자르가 대단한 마법사라도 무리가 있지 않을까?”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카자르는 지금까지 마법만 바라보며 살아온 마법사예요. 마석의 보조를 받으면 거대한 결계를 펼칠 수 있을 겁니다.”

         

       결계 마법은 보조 마법.

         

       남자가 되지 않은 카자르의 주 마법은 속성 마법이지만, 보조 마법이 핵심이다. 속성 마법을 보조 마법으로 덧붙여서 효과를 증폭시킬 정도니까.

         

       그러나 프란체는 내 말이 믿기지 않나 보다.

         

       “그래도 당사자에게 물어보고 하는 편이 좋지 않아? 구름까지 맞닿을 커다란 탑이 무너지면 피해가 막대할 텐데.”

         

       가능하다니까 그러네.

         

       ‘로판소’게임의 막바지에 들어가면 마탑이 건설된다.

         

       그때는 여러 마법사들이 모여 결계를 만들었는데, 마석에서 끌어온 마력의 보조를 받은 카자르라면 혼자서도 만들 수 있을 거다.

         

       “정 불안하시면 물어봐도 좋습니다.”

       “…나중에 물어봐야겠어. 불안하잖니.”

         

       여기서 프란체가 걱정이 심한 건 이해한다. 우리가 건설할 마탑의 크기는 천문학적인 높이와 말도 안 되는 넓이를 가지고 있다.

         

       여태껏 보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건물이 만들어지는 게 믿기지 않을 만도 하지.

         

       “뭐, 아무튼. 이 현장은 백작가에 맡기고, 이제 마석 광산에 대해서 알아보러 갑시다.”

         

       프란체는 “그래, 그러자꾸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곧장 마차에 올라섰다.

         

       “술집 엑시드로.”

       “예이.”

         

       마차의 바퀴가 굴러간다. 이대로 셀다스를 만나 마석 광산 매입을 마무리해야겠지.

         

       “마석 광산 매입이라, 가격이 얼마나 하려나.”

         

       프란체가 손가락으로 마차의 시트를 두드렸다.

         

       “비싸진 않을 겁니다. 지금의 마석은 수요도 없고, 주변 땅도 척박하니까요.”

         

       거기를 광산으로 개발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지.

         

       “흐음. 사업으로 번 돈을 바로 쓰게 생겼구나.”

       “투자라고 생각하십시오. 돈이 돈을 부르는 법이니까.”

         

       게다가 이번 사업만 성공시키면 권력과 부. 그리고 명예까지 단번에 들어온다.

         

       이거에 투자하지 않으면 호구지.

         

       “그래, 네 말이니까 믿지 뭐.”

       “잘 생각하셨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문득 프란체가 물었다.

         

       “그런데 있잖아.”

       “예?”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프란체.

         

       “이번 사업으로 내가 마탑주가 되고 사업가로서 대성공하면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야?”

         

       똘망한 눈빛.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때는 하고 싶은 걸 다 하셔도 돼요. 마법을 더 공부하셔도 좋고, 새로운 사업을 하셔도 좋습니다.”

         

       권력. 부. 명예.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뭘 해도 결과가 따라오는 법이다.

         

       “하고 싶은 거라, 마법으로 성취를 늘리는 게 좋겠네.”

       “마법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묻자 프란체는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너의 병을 치료해야지. 내가 최근 마법서를 읽고 있는 이유가 내 흑마법의 제어도 있지만, 너의 치료가 목적이니까.”

         

       글쎄. 그때가 되면 난 없을 텐데.

         

       “…좋은 취지네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미소를 지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번 사업을 끝으로 저와의 약속은 끝이 납니다. 제국 최고의 권력자가 되실 테니까요.”

         

       그리고, 너와 나의 인연도 끝이 나겠지.

         

       “약속의 끝이라,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몰랐네.”

         

       그러게 말이다. 최소 1년은 보고 있었는데 이제 막 반년이 지났어.

         

       ‘그만큼 정보의 힘이 대단한 거겠지.’

         

       프란체가 빼돌린 돈도 많았고. 기본 자금이 없었다면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을 거다.

         

       짝. 갑자기 프란체가 “아!”하면서 손뼉을 마주쳤다.

         

       “내가 가주가 되는 건 어때?”

       “가주요?”

       “그래. 데카르트 가문을 가지는 거야.”

       “이유가 있습니까?”

         

       프란체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들의 모든 걸 빼앗고 싶어. 다 내가 가진 다음에 에덴도, 라인도, 공작도 쫓아낼 거야.”

         

       의도가 좀 무섭긴 한데.

         

       가주가 된다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근데 그러면 일이 좀 길어지는데.

         

       ‘따로 움직이면 되니 상관없나.’

         

       나는 개별로 움직이고, 프란체에겐 케일을 붙여둔다. 그러면 문제없겠지.

         

       “좋네요. 그런데 가주가 되려면 조건이 좀 필요할 텐데요? 정식적인 후계자는 에덴 소 공작이니까요.”

         

       턱을 어루만지며 고민에 잠긴 프란체. 눈썹을 좁힌 채 마차의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걸 보니 꽤 깊은 생각에 빠졌나 보다.

         

       “으음. 그러기 위해선 공작님의 마음을 돌려야 해. 근데 지금으로선 딱히 생각나는 방법이 없네. 아무리 내가 힘이 강해졌다고 해도 후계자의 자리는 한참 전에 정해졌으니.”

         

       에덴은 이미 후계자로서 결정됐다. 이를 철회하기 위해선 어찌해야 할까…….

         

       ‘우선 공작위 계승을 흐지부지로 만드는 게 우선이겠군.’

         

       여러 계획들이 떠올랐다. 이것만 시행하면 문제 없을 터.

       

       거기에 가신들의 입장에서는 프란체가 차기 가주로 발탁되는 건 매력적인 선택지다.

         

       마탑주이자 제국 대상단의 주인. 그리고 진 바렌베르크와 백귀를 휘하에 두고 있는 여제.

         

       ‘충분하겠어.’

         

       예전에 계획했던 에덴 유폐 작전도 할 수 있겠고. 나머지는 재앙의 파도가 오면 계획 실행이군.

         

       프란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리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니?”

         

       ……내 표정이 음흉했나?

         

       “아닙니다. 계획을 구상 중이었어요.”

       “내가 말했던 거?”

       “예. 충분히 가능할 거 같더군요.”

         

       프란체가 호오, 하면서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내밀었다.

         

       “얘기해볼래?”

       “으음. 아직은 구상 단계라서요.”

       “말해주지 않겠다는 거구나.”

       “죄송하지만 그렇습니다.”

         

       고개를 휘젓고 창밖을 바라보는 프란체. 그러고는 “사람 궁금하게 만드는 거에 재주가 있다니까.”하고 중얼거렸다.

         

       “하하…….”

         

       멋쩍게 웃고는 시선을 돌렸다. 저번처럼 보다가 감정이 움직이면 동기화가 심화할 테니까.

         

       ‘이젠 쳐다보지도 못하네.’

         

       씁쓸하지만 곁에 더 있으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바퀴가 얼마나 굴러갔을까.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시지요.”

         

       마차에서 내리고, 곧장 술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우리 얼굴을 보자마자 눈치채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접수원.

         

       “저 친구는 여전하네요.”

       “그러게. 우리가 익숙해졌나 봐.”

         

       어차피 허락이 떨어질 걸 알기에 그냥 안으로 들어섰다.

         

       “앗! 이렇게 막 들어오시면 안 돼요!”

       “어차피 허락이잖아.”

       “그건 맞긴 합니다만…….”

       “그럼 비켜.”

         

       접수원이 머쓱거리며 비킨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도 사업 때문에 왔나?”

       “그래. 아주 중요한 사업이야.”

         

       책상 위에 다리를 올려놓던 셀다스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양팔을 책상 위에 걸고 비릿하게 웃는다.

         

       “이번엔 무슨 사업이려나?”

         

       최근에 돈맛을 좀 봐서 그런지 잔뜩 기대하는 모습. 뭔가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프란체는 셀다스를 굽어보며 말을 이었다.

         

       “광산 매입. 위치를 알려줄 테니 최대한 싸게 매입해. 의뢰비는 알고 있겠지?”

         

       소파에 앉으며 다리를 꼬는 프란체. 나름대로 셀다스를 누르기 위한 작전인 듯하다.

         

       “의뢰비. 그래, 알고 있지. 순이익의 1할을 떼어준다는 거 아닌가?”

         

       프란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셀다스는 또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체 1할은 부족해. 2할로 늘려줘.”

       “갑자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갑작스러운 협상에 프란체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우리의 순수익이 높아서 지금도 꽤 많이 받고 있는 거라 생각하는데.”

         

       그러나 셀다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반론했다.

         

       “우리가 하는 일을 생각하라고. 1할을 받기로 한 건 사업을 도와주는 비용이었어. 근데 매장 보호나 사소한 일들은 다 이쪽에서 처리하고 있잖아?”

         

       그런 일들도 사업을 도와주는 것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지만 명백하게 다른 일이다. 그래서 저렇게 돈을 요구하는 거겠지.

         

       나는 프란체에게 속삭였다.

         

       “공녀님 나름대로 협상을 해보고, 안 되면 받아들이십시오.”

         

       프란체가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매장의 보호나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도 사업을 도와주는 거에 포함되어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그리고 우리가 사업을 늘려가면 그 사업의 1할을 더 받으니 결국 2할이 되는 게 아닌가?”

         

       오, 괜찮은 논리였어. 협상의 기본은 개떡 같은 말도 그럴듯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지.

         

       “아니지, 새로운 사업의 순수익 1할을 더 받는 것과 전체 수익의 2할을 비교하면 다른 얘기잖아? 공녀님이 너무 날로 드시려고 하시네.”

         

       그러나 셀다스는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크흣…….”

         

       분한 듯 입술을 머금은 프란체. 잠시 숨을 크게 내쉬더니 눈을 부릅뜨고 말을 이었다.

         

       “그때 했던 협상에서 쓴 계약서에는 사업을 도와주는 대가로 1할을 주겠다는 얘기였어. 계약서를 위반하겠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그때 계약서도 썼지. 조항은 잘 살폈으니 문제없을 테고. 잘 흘러가고 있다.

         

       “계약서라… 그게 걸릴 줄은 몰랐군. 하도 예전 일이라 기억을 잘 못 하고 있었어.”

         

       계약서가 있는데 빠져나갈 구멍은 없지.

         

       “그럼 계약서를 파기하지. 다시 써.”

       “…뭐?”

       “못 들었나? 계약을 갱신하자는 말이다.”

         

       얼굴에 철판이라도 깐 건지 예상치도 못한 뻔뻔함에 프란체의 말문이 막혔다.

         

       “그럼 계약서를 들고 오지. 전체 순수익의 2할을 받는 거로.”

         

       셀다스는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뒤졌다. 그렇게 나온 계약서 한 장…….

         

       “지금부터 조항을 적을 거야.”

         

       어안이 벙벙한 프란체를 앞에 두고 혼자 만년필을 움직이는 셀다스. 여우 같은 놈이다. 괜히 저 자리까지 간 게 아니겠지.

         

       “자, 계약서야. 내용은 꼼꼼하게 잘 확인하고, 마음에 들면 도장을 찍어. 마음에 안 들면 우리와 협력은 여기서 끝이고.”

         

       프란체가 나를 올려다봤다. 이거 어떻게 하냐는 눈빛. 나는 프란체에게 속삭였다.

         

       “공녀님이 잘못한 게 아니에요. 여기선 어쩔 수 없습니다. 엑시드는 저희에게 필요한 집단인지라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프란체. 그러고는 계약서에 이상한 게 없는지 꼼꼼히 살피고 사인을 적었다.

         

       “좋아, 이거로 계약 갱신이네.”

         

       만족스러운 듯 피식 웃는 셀다스. 저거 어떻게 한 방 먹여줄 수 없나?

         

       하지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니 저걸 두들겨 팰 수도 없고.

         

       ‘여기서는 좀 강하게 나가볼까.’

         

       나는 오러를 활성화하며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갑작스러운 중압감과 살기에 셀다스가 움찔거렸다.

         

       “…지금 뭐하는 짓이지?”

         

       계속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거의 근접했을 때 입을 열었다.

         

       “셀다스. 지금은 봐주겠다만, 다음부터 공녀님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보이면 그 날이 엑시드의 마지막이라는 걸 명심해라.”

         

       이 정도는 해줘야지.

         

       “…하, 힘으로 협박할 줄은 몰랐는데.”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걸 돌려주고 싶었어.

         

       “그러니 내 주인님을 잘 대하라는 소리다.”

       “…그래, 알겠다. 명심하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셀다스. 젠부코로스를 혼자서 쳐부순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셀다스가 이마를 부여잡고 손을 휘저었다.

         

       “용건이 끝났으면 이만 나가.”

       “다음에는 좋은 태도를 기대할게.”

         

       프란체가 뒤돌며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 셀다스의 가면 아래로 보이는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그렇게 술집을 나오고, 프란체가 흥분하며 소리쳤다.

         

       “봤어? 잔뜩 겁먹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거?”

       “봤죠.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한 방 먹여줘서 저도 통쾌합니다.”

         

       셀다스에게 엿 한 번 먹여준 게 그리 즐거운 듯, 프란체는 계속해서 미소를 유지했다. 그러고는 내게 팔짱을 꼈다.

         

       “역시 난 네가 없으면 안 돼. 이대로 평생 나와 함께하는 거야. 알겠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이 사업이 끝나면….

    아직 못 풀어낸 이야기가 많아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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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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