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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제일 먼저 말을 건 사람은 나였는데.

        

       요즘 이수아의 머릿속에 가장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그 생각이었다.

        

       사라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건 사람은 이수아였다.

        

       중학교 졸업식 때, 용기를 내서 사라에게 말을 걸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마 그 사진은 졸업식 때 사라가 찍은 유일한 사진일 것이다. 아버지께는 들켜선 안 되기에 종이로 인쇄하지는 못했지만, 이수아는 아직도 그 사진을 스마트폰 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사라는 졸업앨범에조차 나오지 않았다. 매일 학교에서, 저 먼발치에 앉아있는 사라를 본 적은 많았지만, 사라가 학교의 중요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하긴, 참여하고자 했어도 불가능했을 거다. 주변에서 없는 사람 취급을 했으니까.

        

       없는 사람이 어떻게 운동회나 학교 축제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사라는 언제나 학교에 나왔다. 초등학생 때는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하지만, 적어도 이수아의 시야 끝에 들어왔던 사라는 언제나 학교에 있었다.

        

       수학여행 때는 보지 못한 것 같기는 하지만.

        

       졸업앨범에 사진이 없는 것도, 사진 촬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졸업사진은 각자 한 장씩 찍기도 하지만, 반 친구들과 함께 찍는 사진도 있을 테니까.

        

       ……사실 이수아는 사라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따돌림당하고 배척당하더라도 용기 있게 먼저 다가가면, 사람들은 받아들여 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자신이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수아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이수아가 사라와 붙어 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다음부터 이수아를 조금 껄끄럽게 대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말은 걸 수 있었다. 대답도 들었고.

        

       하지만 소문이 점점 더 퍼지고, 그게 소문의 영역이 아니라 사실의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그리고 이수아가 대화하다가 사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아이들은 순식간에 이수아의 곁을 떠났다.

        

       말을 걸어도 기겁하거나 모른 척하고, 옆에서 걸으면 은근슬쩍 거리를 벌린다.

        

       이수아가 반에서 고립될 때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라는 그런 상황을, 벌써 몇 년이나 겪어온 것이다.

        

       이수아는 자신이라면 분명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아.

        

       그래.

        

       그랬다.

        

       사라도 버티지 못했다.

        

       그런 내용의 유서를 남겨두고, 자살하기 위해 약을 구했다. 양혜인의 말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 약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조차도, 세상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조차도 완벽히 실패해버리고, 그제야 사라는 스스로 바뀌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이유가 단순히 생의 일주일이라도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어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 일단은 업무로 바로 들어가 주세요. 혹시라도 사용인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나한테 말해줘요. 내가 가서 까버리면 어떻게든 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자신의 옛 메이드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저렇게 말하는 사라가, 과연 아직도 삶을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사라는 요즘 에너지가 넘쳤다. 죽을 생각은 절대 없다는 듯 무슨 일을 하건 의욕적이었다. 회장 앞에서 있었던 일만 제외한다면, 이수아가 두 눈으로 보아온 사라는 언제나 삶의 의지가 넘쳐 보였다.

        

       만약 생각이 바뀐 거라면, 어째서일까.

        

       “……어.”

        

       양혜인이 허리를 숙인 채로 다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자, 사라는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이제 일어나도 될 것 같은데요.”

        

       사라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양혜인은 허리를 세웠다.

        

       “…….”

        

       잠깐의 침묵. 어색한 침묵은 아니었다. 그저 사라와 양혜인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만이 있을 뿐이었다.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수아는 잘 몰랐지만, 적어도 이렇게 겉으로만 봤을 때는 이상적인 주종관계였다.

        

       서로를 걱정하고, 힘겨운 상황에서도 서로 의지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그럼.”

        

       하지만 사라는 그런 상황이 별로 달갑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사라는 행동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좀 다른 경우가 많긴 했다. 학교에서는 당당하게 사고를 일으키고 다니면서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지만, 유독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하거나 시선을 받는 것은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듯했다.

        

       어쩌면 사라가 그만큼 여기 있는 사람들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수아는 그래서 그런 태도가 내심 기쁘게 느껴졌다.

        

       “식사 준비는 끝났나?”

        

       “제가 확인해보겠습니다.”

        

       다소 어색한 말투로 사라가 그렇게 화제를 돌리자, 양혜인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특유의 우아한 걸음걸이로 식당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차피 슬슬 저녁 시간인데, 그냥 가서 기다려도 되지 않을까? 요?”

        

       바로 조금 전까지 방에서 서로에게 반말을 하고 있던 것에 익숙해져 있었는지, 소희는 사라에게 반말했다가 황급히 뒤에 요 자를 붙였다.

        

       “……기왕 메이드 일을 하려면, 제대로 메이드처럼 굴어주세요.”

        

       조금 맥이 풀린 것인지, 사라는 아까처럼 반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양혜인에게 그러는 것처럼 존댓말을 했다. 물론 진지한 말투는 아니었고, 그저 앞날이 걱정된다는 듯 힘 빠진 말투였다.

        

       “에이, 너무 그러지 마시고. 사람이 첫날부터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죠.”

        

       “그런 말을 본인이 하면 안 되지 않나?”

        

       소희는 아까부터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니지, ‘뭐가 그리도 기분 좋은지’, 이수아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만약 그녀도 사라 옆에서 24시간 붙어있을 수 있다면 당연히 저런 표정을 지어 보였을 테니까.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고, 하늘이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자신도 저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할까? 아마 그럴 것이다. 언제나 소희가 전력 질주로 앞질러 가면, 금방 그 뒤를 쫓아가던 하늘이었다. 다만 토요일에 본 그 유서 때문에 조금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어쩌면 사라에게 한 번에 너무 많은 부담을 지워주고 싶지 않아 조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조만간 유하늘도 달리기 시작할 것이다. 방법을 찾고 있을 뿐, 알고 나면 바로 실행하는 행동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수아야.”

        

       그런 목소리가 들려서 이수아는 문득 몸을 떨었다. 소리가 난 쪽을 보니, 벌써 이수아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아이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을 부른 것은 사라였다.

        

       “밥 먹으러 가자.”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웃는 얼굴이 너무나도 예뻤다.

        

       “……응.”

        

       이수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뒤를 쫓았다.

        

       이번에는 최대한 뒤처지지 않도록.

        

       *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하늘이 깜깜해진 다음이었다.

        

       하긴, 이제 3월이긴 하지만 아직 해가 충분히 길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그렇게까지 늦었다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 사실 부모님은 모두 바쁘고, 이수아는 외동이다. 조금 늦게 들어온다고 해도 걱정해줄 이는 없다. 가정부 아주머니가 있긴 했지만, 먼저 문자를 넣기만 한다면 몇 시에 들어오더라도 뭐라고 하지는 않으셨다.

        

       어쩌면 그냥 관심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수아가 사는 동네는 이 시간이 되면 돌아다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온갖 곳이 CCTV가 있고, 경찰이 주기적으로 순찰을 하기에 사람이 많은 곳보다 오히려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수아의 키보다— 아니, 어쩌면 그 담을 짓는데 웬만한 집의 가격만큼 들었을 것 같은 커다란 담의, 이수아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문 앞에 선다.

        

       벨 옆에 있는 인증 장치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2초가 채 되지 않아 문의 잠금이 풀렸다.

        

       사라의 저택 수준은 아니더라도, 이수아의 집도 충분히 저택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유진그룹에 견줄 정도는 결코 아니었지만, 이수아의 집안도 ‘그룹’을 운영하는 곳이었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기업의 역사만큼은 유진그룹보다 훨씬 길긴 했다.

        

       풀냄새 나는 정원을 걸었다. 늙은 개 초코는 잠이 든 모양이었다. 요즘 들어 관절이 별로 좋지 않은지, 산책하러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했었다.

        

       이수아는 초코가 있는 쪽을 향해 걸었다. 집 앞의 좁은 잔디밭엔 걷기 좋게 돌로 된 길이 있었지만, 이수아는 굳이 그 길로 가지 않고 그대로 잔디밭으로 들어갔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사박사박, 부드러운 잔디를 밟으며 걸어가 초코의 집 앞에 섰다. 늙은 개는 그 안에서 몸을 말고 잠들어 있었다.

        

       쪼그려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초코는 잠에서 깼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수아의 손을 몇 번 핥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턱 내려놓았다.

        

       “…….”

        

       더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이수아는 몸을 일으켰다.

        

       “아가씨.”

        

       마침 뒤에서 이수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리니, 가정부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저녁은 먹고 온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혹시 자신이 헷갈린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회장님께서 부르셔요.”

        

       “아…….”

        

       그 이상 말을 듣지 않아도, 이수아는 그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

        

       “…….”

        

       드물게도 일찍 집에 들어온 이수아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책상 위에 신문을 올려놓았다.

        

       아니, 다시 보니 신문은 아니었다. 아마 인터넷 기사를 종이로 인쇄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종이에는, 사라에게 달라붙은 이수아의 모습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수아뿐만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서 달라붙은 소희와 아예 사라를 끌어안은 하늘도 있었다.

        

       사진에 찍힌 네 사람은 참 행복해 보였다.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책상 건너편에 있는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수아는 아무 말 없이 의자로 가 앉았다.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이수아는 지금까지— 아니, 지금까지는 아니다. 그러니까 졸업식 전까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강압적으로 대했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저 이수아의 성격이 그럴 뿐이다.

        

       그 이후부터는 그렇다고도 할 수 없겠지만.

        

       “설명해 주겠니?”

        

       그래서 이수아는 설명했다. 의외로, 입을 열고 나자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졸업식 때 사라와 사진을 찍은 것, 입학한 뒤로는 쭉 함께 다닌 것. 그 집에 가서 하루 자고 오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운동했던 것.

        

       이야기를 마칠 때 쯤에는 오히려 차분해져 있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내쉬면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수아야…….”

        

       그리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내가 했던 말은 잊어버렸니?”

        

       그렇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뇨.”

        

       이수아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우리의 가업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있다. 너의 고조할아버지께서 만드셔서 외세와 싸워가며 큰 가업이야. 독립 자금을 댄 적도 있고, 독립 이후에도 사회에 많은 공헌을 했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을……?”

        

       마치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듯 아버지가 가리킨 종이를 그녀는 다시 내려다보았다.

        

       “…….”

        

       이수아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수아야.”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답을 재촉하듯이.

        

       “아빠.”

        

       이수아는 입을 열었다.

        

       “그래. 말해 봐라.”

        

       이수아는 잠깐 생각했다. 이 말을 내가 해도 되는 걸까?

        

       ……사라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수아는 사라가 회장을 만나던 순간을 기억했다. 마치 거역할 수 없다는 듯, 회장 쪽으로 몇 걸음을 옮기던 사라는, 결국 도중에 멈추어 섰다. 바닥에 주저앉긴 했지만, 자신을 세뇌하던 회장의 말을 거역하는 데 성공했다. 유서에 남긴 말이 사실이라면, 사라는 회장을 증오하는 동시에 사랑했을 텐데도, 그 감정을 어떻게든 끊어내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쟁취할 수 있었다.

        

       물론 아버지가 그 회장과 같은 인간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마 그 회장 때문이겠지.

        

       이수아는 책상 위의 종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 사진은 누가 찍었을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기사로 만들었을까? 기사의 내용은 별거 없었다. 그저 건조하게 그 사진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수아는 그 기사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리고 참 웃기게도, 그 기사의 의도는, 이수아가 바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라라면, 이 기사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오히려 만족했을지 모른다. 사라는 자신의 상황에 기꺼이 맞서는 성격이었으니까.

        

       “……아빠.”

        

       “그래, 수아야.”

        

       “저희 가업은, 언제나 옳은 일을 해왔던 건가요? 그래서 지켜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래, 그렇다. 외세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그렇기에 지켜야 하는 거야.”

        

       마치 타이르는듯한 부드러운 목소리.

        

       “그렇다면, 아빠.”

        

       이수아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한 바를 입에 담았다.

        

       “누군가의 압력 때문에, 한 아이를 부당하게 따돌리고 괴롭히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잖아요.”

        

       ……사라라면, 분명, 이런 대답을 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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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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