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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

       예전에 혈교주를 상대할 때 배운 방법이다.

       

       다른 이의 몸을 빌렸다 하더라도 거기에 연결된 정신은 그대로이니 정신을 괴롭혀 주면 몸이 그 어디에 있더라도 공격을 가할 수 있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던 하르키아는 제 발에 걸려 뒤로 넘어져서는 공포가 서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제야 눈높이가 좀 맞는 것 같구나. 아해야.

       

       “넌… 넌 대체.”

       

       공포에 질린 하르키아는 몸과의 연결을 끊으면 그만이라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가보구나.

       

       항상 자신이 남들 위에 서 있다 여기다 약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당혹스러운가보지?

       

       겁에 질리면 생각을 깊게 못하는 것까지 혈교주와 닮았구나.

       

       “기다리거라. 곧 만나러 갈 테니.”

       

       그 때까지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비를 하도록 하라. 내 친히 그대가 준비한 모든 것을 박살내러 갈테니 말이다.

       

       발을 치켜 들어 흡혈귀의 머리를 걷어찼다.

       

       정신을 잃은 듯 흡혈귀의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간다. 이로써 연결은 끊어졌겠지.

       

       <화령 씨. 방금 뭐 한 거에요?>

       “짜증나는 녀석을 처리했다만.”

       <아니! 그게 아니라! 하르키아가 왜 겁에 질린거에요?! 쟤 죽을 때 빼고는 그런 얼굴 안 한 다구요!>

       

       그 소리였느냐. 난 또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살기다.”

       

       평범한 이들이 나의 살기를 견딜 수 없을 것이 뻔해 하르키아에게만 살의를 집약시켰다.

       

       그러니 엔리나 방송을 보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의뭉스러운 장면이었겠지. 내가 다가선 것만으로 하르키아가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을 테니.

       

       <살기요? 그게 진짜 있는 거에요?>

       “그럼. 내게 살기를 느꼈다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을 터인데?”

       <데케이나 이순님이 했던 살기를 느꼈다는 말이 진짜였다고요? 비유가 아니라?!>

       

       단순히 그만큼 두려웠다라는 뜻으로만 받아들였나 보구나.

       

       그 둘도 많이 답답했을 것이야. 자신들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믿지 않아줬을 터이니.

       

       지금이라도 내 입으로 설명을 하여 의문을 풀어주어야겠구나.

       

       “살기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의지에 기를 담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지.

       아마 그대들도 아피스에서 연습을 거듭하면 언젠간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아피스 속의 내 육신이 이른 경지를 빌린다면 수련에 따라 충분히 살기를 사용할 수 있을 터.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이 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치만 여긴 아피스도 아니고 화령 씨한테는 기도 없잖아요.>

       “본인은 예외 중의 예외이니 말이다.”

       

       나에게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거라. 대개는 들어맞지 않을 터이니.

       

       – 그래서 살기는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 데요? 저 급함!

       – 상대 만나자마자 살기로 찍어 누를 수 있다고? 무협지처럼? 이건 못 참지.

       – 화령 말이 진짜면 이거 실전성있는 기술 아님?

       – 실전성 있지. 당장에 화령이 보여준 장면만 해도 몇 개인데.

       

       “나중에 따로 설명을 해주마.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으냐.”

       

       등을 돌리자 벨라와 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분명 공포가 서려 있었다.

       

       내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나 보구나.

       

       동요는 없었다. 저런 눈을 보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었던가.

       

       어제까지만 해도 웃으며 반겨주던 이들이 다음 날 눈물을 흘리며 제발 목숨만은 살려 달라 빌던 것이 나의 일상이었으니.

       

       겁에 질린 자들은 내가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 말해도 듣지 않았지.

       

       벨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만 도망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을 보면 좀 다를 수도 있겠구나.

       

       “벨라. 거기서 쳐다만 보고 있을 것이냐.”

       “아니. 난.”

       “걱정마라. 그대를 해칠 생각이 없다 말했던 것은 여전히 유효하니.”

       

       그리 말을 하자 벨라가 나무 뒤에서 쭈뼛거리며 빠져나왔지만 그녀는 이전처럼 달라붙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선 나를 바라보았다.

       

       내게 익숙한 거리감이었다.

       

       “그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알아. 많이 궁금하겠지.”

       

       딱히 그렇진 않다. 난 그대의 사정에 별 관심이 없으니까.

       

       “내가 궁금한 것은 하나다. 하르키아라는 자가 사는 곳은 어디인지 아느냐?”

       “알아. 그렇지만 알려주진 않을 거야.”

       “왜지?”

       “당신은 너무 강해서. 만약 당신이 흡혈귀가 되어버린다면 하르키아를 막을 수 없게 될 테니까.”

       

       벨라는 하르키아가 흡혈귀들의 적인 태양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과의 거래를 통해 그 방법을 이미 찾아냈으며, 마법을 실행하기 위한 제물이 준비되는 순간 이 세상에서 낮이란 단어는 사라질 것이라고.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하르키아가 있는 곳을 알려줄 수 없다고.

       

       “내가 질 것이라 생각하는가?”

       “하르키아는 강해. 그 사람은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흡혈귀 클랜의 주인이야.

       그와 동시에 천 년 전부터 존재했던 지고한 대마법사이자, 대륙에서 손꼽히는 전사이기도 해.

       그런 하르키아를 당신이 쓰러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통 자신에게 달린 칭호를 자랑스레 떠들고 다니는 자일수록 허약하더구나.”

       

       강함이란 남들이 부르는 것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안에 쌓인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그 흡혈귀의 안에 도사리는 것은 그리 대단찮아 보였다.

       

       “그대가 생각보다 많은 걸 짊어지고 있음은 알겠다.”

       

       마음에 짊어진 것이 세상의 명운인지 아니면 종족의 운명인지는 모르겠다. 허나 그것이 가볍지 않다는 것만큼은 나도 알겠구나.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냐.”

       

       세상이 망하건 말건 내 알바 아니다.

       

       태양이 떨어지고 영원한 밤이 찾아온다한들 그 또한 내가 신경 쓸 것은 아니다.

       

       인간이 흡혈귀들의 가축이 되는 세계가 펼쳐진다 해도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난 단지 내 기분을 잡치게 만든 녀석에게 대가를 치르게 만들고 싶을 뿐이다.”

       

       빌어먹을 혈교주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든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죽일 가치가 전혀 없는 놈임에도 불구하고 그 목을 가져가고 싶단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그러니 말해라. 그 놈은 어디에 있나.”

       

       지금 내가 그대를 배려하고 있음을 알라.

       

       그리고 이 배려가 언제까지고 영원하지 않음을 알거라.

       

       본인은 사람의 입을 여는 많은 수단에 관해 알고 있으니. 이 지식을 그대의 몸을 통해 피로하게 만들지 말거라.

       

       “…북서쪽에 성이 하나 있어.”

       

       기세를 이기지 못한 듯 벨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르키아가 거주하는 곳은 설산에 자리 잡은 성으로 그 근방에는 침입을 막는 거대한 결계가 처져 있다고 한다.

       

       설령 그 결계를 넘어섰다 한들 성 안에는 수많은 흡혈귀가 자리하고 있기에 인간 혼자서 그 안으로 들어갔다간 하르키아를 만나기도 전에 죽게 될 것이라 했다.

       

       <조건 달성했어요. 이제 하르키아가 있는 성으로 찾아갈 수 있어요.>

       “됐다. 그거면 충분하다.”

       

       엔리가 저리 말을 했으니 확실하겠지.

       

       “당신의 자신감을 믿고 말해준 거야.”

       “오냐. 나중에 길을 알려준 감사인사라도 전하러 가마.”

       “…맘대로 해.”

       

       벨라가 떠나간 후에 지도를 열었다. 이전에 새벽의 요새에 찾아왔을 때처럼 지도에 새로운 표시가 떠올라 있었다.

       

       이 곳을 누르면 하르키아가 있는 성으로 갈 수 있는 걸 테지.

       

       <원래라면 성에 들어가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퀘스트가 몇 개 더 남아있긴 한데요.>

       “아직도?”

       <화령 씨라면 다 때려 부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괜찮을 거에요. 아마도.>

       

       안내를 자처한 이치고는 무척이나 적당한 대답이구나.

       

       허나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대답이기도 했다.

       

       지도에 있는 표시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자 주변이 검게 물들었다.

       

       *

       

       무림맹에 속한 누군가가 말하길 혈교의 강시는 그 존재만으로도 인간을 모욕하는 괴물이라 하였다.

       

       혈교와 관련되기 전까지 본인은 그 말을 무림맹에서 나온 헛소리라 생각했다.

       

       강시를 만드는 혈술도 이치에 따라 만들어진 것일 터인데 어찌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있겠느냐 여겼지.

       

       허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나도 무림맹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강시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강시를 만들어내는 혈교주는 무림에서 그 누구보다도 먼저 축출해야 할 대상이었다.

       

       바닥에 늘어진 강시를 살피던 나는 무심코 혀를 찼다. 그러자 혀를 찬 소리가 동굴 안에 메아리 쳤다.

       

       이번에도 꽝이었다. 혈교의 지부 중 하나였던 이 곳에도 혈교주는 존재하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혈교주에게 홀린 사이비들과 무인의 시체로 만들어진 강시 뿐이었다.

       

       치솟아 오르는 짜증에 곰방대를 입에 물었음에도 담배의 향은 나지 않았다. 코에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강시에게서 나는 부패해버린 피의 향내 뿐이었다.

       

       오늘 이 곳에서 빠져나가면 한 번 목욕을 해야겠구나. 몸에 강시들의 향이 그대로 뱄을 터이니.

       

       “어이쿠. 강시들의 수가 왜 이리 줄었나 했더니 당신이었습니까?”

       

       바닥에 늘어진 강시들 중 하나의 입에서 목소리가 새 나왔다.

       

       혈교주였다.

       

       “적당히 좀 해주십시오. 이 수를 또 채우려면 한참 고생해야 한다고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가 강시의 얼굴을 박살냈다. 허나 목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이윽고 다른 강시에게서 말이 흘러 나왔다.

       

       “무의미하단 거 아시잖아요? 그냥 잠시 대화나 하자구요.”

       

       재차 박살을 냈으나 여전히 목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하여간 까탈스러운 분이시라니까. 그게 매력이긴 하지만.”

       

       키득거리는 소리가 내 신경을 건드렸다.

       

       내기를 풀어 동굴 전체를 찍어 눌렀다. 그 어떤 것도 온전한 형상을 유지할 수 없도록.

       

       그럼에도 고요는 찾아오지 않았다. 또 다시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서워라. 화가 많이 나셨나 보네요.”

       “…”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제가 기껏 전 소천마님을 위한 선물도 준비했는데.”

       

       그 말과 함께 동굴이 진동했다.

       

       내가 지나왔던 동굴 입구에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분명 내게 익숙한 기운이었다.

       

       “네 놈.”

       “하하! 이제야 대답을 해주시네요. 어떤가요. 멋지죠? 그쵸?”

       

       혈교주의 천진한 물음에 나는 답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한다한들 저 녀석을 기쁘게 해주는 것밖에 되지 않음을 알았으니까.

       

       곰방대를 품 안에 넣고 주변에 퍼트린 기를 거두어 들였다.

       

       지금부터 상대할 자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내가 천마신공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도운 은인의 경지가 어찌 가벼울까.

       

       기가 가까워진 순간 나는 포권을 취한 채 상대를 기다렸다. 얼마 안 가 그의 발소리가 동굴 안에 울렸다.

       

       “소천마 백화령. 은인을 뵙습니다.”

       

       고개를 들자 기억에 묻어두기로 결심했던 얼굴이 보였다.

       

       강시가 되었음에도 특유의 괴팍한 표정은 여전했다. 하여간 저 성질 더러운 노친네 같으니라고.

       

       “오랜만의 재회가 이런 식이 되어 안타깝습니다만 은혜를 받은 이로써 그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포권을 풀고 전신의 기를 끌어 올렸다.

       

       *

       

       다시 눈을 뜨자 눈이 내리는 설산의 모습이 보였다.

       

       제기랄. 그 때의 광경을 또 다시 떠올리게 되다니.

       

       이게 다 하르키아인가 뭔가하는 작자 탓이다. 그 놈이 혈교주를 떠올리게만 하지 않았어도 과거의 기억 때문에 착잡해지지 않았을 터.

       

       <화령 씨?>

       “듣고 있다.”

       <지금 앞에 있는 불투명한 막 같은 게 결계거든요? 그걸 넘어가면 바로 성이 나와요.>

       “부수면 되느냐?”

       <네!>

       

       하르키아. 이는 분명 그대의 죄이니 나의 화풀이를 감당하는 것도 그대여야 할 터.

       

       결계를 향하여 진각을 밟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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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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