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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0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아슈토쉬 싱이 무의식을 탐험한다는 것, 불꽃을 주로 다루는 화염술사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사람의 인생은 황금과 같다고 하였고, 어떤 이는 사람의 인생을 빛과 같다고 하였고, 사람의 인생은 촛불과도 같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비유에서 공통적인 것은 바로 빛을 발한다는 것.

         

       박진성은 옛적 양피지에 적혀있던 글귀 하나를 읽은 기억을 떠올렸다.

         

         

         

        * * *

         

         

         

       「 선생님. 사람의 인생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습니까? 나무입니까? 태양입니까? 돌입니까? 」

         

       「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

         

       「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무엇에 비유하렵니까? 」

         

       「 저는 양초입니다. 」

         

       「 선생님께서는 똑똑하시고 인망도 높으신 분인데 어찌 보잘것없는 양초에 자신을 비유하십니까? 」

         

       「 저는 학생들을 위해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

         

       「 불을 밝히신다고 하셨다면 어째서 태양에 비유하지 않으십니까? 」

         

       「 제가 밝히는 불은 미약하기 때문입니다. 」

         

       「 그렇다면 어째서 달에 비유하지 않으십니까? 」

         

       「 저는 제 몸을 태워 불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

         

       「 그렇다면 어째서 횃불에 비유하지 않으십니까? 」

         

       「 제 삶은 유한하고, 그 끝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

         

         

         

        * * *

         

         

         

       사람의 인생은 빛으로 비유될 수 있다.

       사람의 서사는 빛으로 표현될 수 있다.

       특히나 그 빛을 보고 감명받은 이들이 생길수록, 그 빛을 따라 하려는 이들이 생길수록, 그리하여 그 빛이 더더욱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이어질수록 그 흔적은 짙게 남아 역사라는 이름으로 모두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그것은 길을 인도하는 이정표.

       그것은 길 잃은 자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북극성의 빛.

         

       사람의 삶이란 그렇게 찬란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본다면 아슈토쉬 싱이 말한 ‘장작’이라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면이 있었다.

         

       사람의 정신.

       무의식이 뒤섞인 공간.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의 본질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그 장소에서 그 화염술사는 과연 무엇을 보고 들었을까? 과연 자신이 그곳에서 겪은 경험으로 무엇을 깨달았을까?

         

       사람의 인생이 서사고, 그 서사가 빛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이라는 것은 과연 어떠한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사람의 삶은 유한하고 그들이 자아내는 빛은 언젠가는 꺼진다.’

         

       마치 불처럼.

       태울 것이 사라지면 꺼져버리는 불꽃처럼….

         

       그렇기에 장작이다.

         

       이야기가 빛이라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는 장작.

       자신을 태워 가며 불을 피우고, 빛을 사방으로 뿌리는 장작.

         

       그러한 장작들이 준비되었다는 것은….

         

       하하.

         

       ‘그래. 어째서 회귀 전 용맹한 이들이 그토록 많았는지, 불꽃의 현인을 위하여 목숨을 잃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많았는지 알 것 같구나.’

         

       그들에게 있어서 아슈토쉬 싱은 빛이었으리라.

       제 몸을 불태워 찬란한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는 불꽃.

       화염술사라는 이름에 맞게 제 몸을 장작 삼아가면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빛으로 찬란하게 만들려는 그들의 이정표.

       어두운 밤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장소.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게 만들고, 그 빛에 안도하면서 명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존재.

         

       그렇기에 그들은 아슈토쉬 싱을 존경하였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움직였으리라.

       자신들이 보아왔던 아슈토쉬 싱이 그러했듯이.

         

       불꽃처럼.

         

       ‘그래…. 불꽃이라.’

         

       빛을 발하는 불꽃.

       장작을 먹어 치우며 타오르는 불꽃.

         

       장작.

         

       하지만 아슈토쉬 싱이 내세우려는 것이 장작이라면.

         

       ‘그래. 나도 마침 불꽃을 알고 있지….’

         

       

         

         

        * * *

         

         

         

       인도의 펀자브(ਪੰਜਾਬ) 지역의 한 장소에 수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다.

         

       연회라도 열리는 듯 몰려있는 사람들의 사이사이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고, 사람들은 그 모닥불의 열기를 몸으로 느끼면서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콘크리트를 덕지덕지 붙여서 만든 흉물처럼 보이는 단상이다.

         

       그 단상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볼품없어 보이는 노인.

       어디 고행이라도 하다 왔는지 뼈가 보일 정도로 깡마른 몸은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만 같았고, 맨몸에 짧은 바지인 카차(Kaccha) 하나만을 입고 있었기에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숙자 같은 인상을 준다.

       그나마 옆에 차고 있는 허리에 차고 있는 단검, 키르판(Kirpan)에는 금과 보석으로 장식이 되어있어 정말 길거리 어디에서나 굴러다니는 노숙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게 더더욱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저런 비싼 단검을 차고 다니는 사람이 어찌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가?

       수많은 군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귀히 입어서 그들에게 대접받지 않고 어째서 제 볼품없는 몸을 그들에게 자랑하고 있는 것인가?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전부 알다시피, 이곳은 아주 위험한 장소다.”

         

       단상 위에 올라가 있는 노인은 사람들을 천천히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에는 맹수가 득실거리기 때문이다. 그것도 맹수 중에서도 맹수, 사자(Singh)와 암사자(Kaur)들이 가득하지….”

         

       단언컨대, 사파리의 초원조차도 이곳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노인이 담담하게 내뱉은 농담은 분위기를 풀어지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사자다. 남자는 싱(Singh). 여자는 카우르(Kaur). 우리는 맹수이며, 같은 성을 공유하고 있는 형제이며, 가족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사자이며, 하나의 목적지를 앞에 두고 있는 동지다.”

         

       노인은 자신이 쓰고 있는 터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기에 오늘은 우리가 공유하는 이 사자의 갈기. 케시(Kesh)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노인.

         

       인도의 사람들이 말하기를 불꽃의 현인이라 부르는 자.

         

       아슈토쉬 싱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 사자들에게 있어서 인연이 없는 곳은 여럿이 존재한다. 떠올려보아라. 우리가 가지 않을, 인연이 없을 장소를. 자, 거기 앞에 있는 사자여. 말해보라.”

         

       “술집입니다!”

         

       “그래. 세례를 받았다면 술을 마셔서는 안 되지. 하지만 술은 되도록 멀리하는 것이 좋으니 그것은 내가 말한 인연이 없는 장소와는 조금 다르다. 그렇다면 옆에 있는 사자가 말해보라. 또 다른 곳은?”

         

       “아편굴입니다!”

         

       “허허. 조금 낡은 표현을 쓰는구나. 그래, 아편도 그렇고 마약도 그렇고. 해서는 아니 되는 일이지. 하지만 그것은 우리 사자들이 아니라 다른 이들 모두가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니, 그것 또한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 자, 그러면 옆에 있는 사자가 말해보아라.”

         

       “어…. 바람 상대의 집?”

         

       하하하하-!

         

       마지막 사람의 대답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어디 배우자를 두고 다른 이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하지만 이 역시 사람이라면 해서는 아니 되는 일이며, 바람 상대의 집이라는 것은 애초에 바람을 피우지 아니하였다면 자연히 가게 될 일도 없으니- 그래. 그 역시 내가 생각한 곳과는 다르다.”

         

       “….”

         

       “다들 정말로 생각하지 못하였는가? 내가 앞서 힌트를 주지 않았던가.”

         

       아슈토쉬 싱은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미용실이다.”

         

       이거야 원, 다들 갈 일이 없다 보니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기라도 했나 보구나-

         

       아슈토쉬 싱은 그렇게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인연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법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직접 발을 옮겨야만 닿는 인연이 있고, 직접 손을 뻗어야만 하는 인연이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명상을 끝내고 생각하였다. 내가 죽을 때까지 다가오지는 않을 인연의 장소. 그래, 미용실에 한 번 구경을 가봐야겠다고 말이야….”

         

       “….”

         

       “솔직히 말이야. 여기 있는 사자들도 궁금하기는 했을 거야. 특히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죄다 머리를 자르지 않은 케사다리(kesadhari)들이니까 더더욱 그러하지.”

         

       케시(Kesh).

         

       10대 구루 고빈드 싱에 의해 확립된 시크교의 5대 상징물 중 하나인 ‘장발’을 뜻하는 단어다.

         

       남자는 머리카락과 턱수염을 자르지 않으며 터번을 쓰고. 여자는 허리 아래로 내려갈 정도로 길게 머리를 기른다.

         

       신에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이 장발은 시크교도들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만으로 시크교도들을 구분할 수는 없다.

         

       모두가 이 케시를 지키지는 않았으니까.

         

       시크교의 세 교파마다 복장이나 교리가 조금씩 달랐으며,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에도 견해가 조금씩 달랐다. 외국에 있는 시크교도들의 경우 그냥 머리를 깎고 다니기도 하였고, 부모님이 죽은 후에 머리를 깎고 다니는 시크교도도 있었으며, 어떤 교파의 경우 서양 문화를 적극 받아들여 머리를 깎고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머리를 깎고 다니는 이들을 ‘모나 시크’라고 부른다.

         

       그리고 머리를 기르는 이들을 일컬어 ‘케사다리(kesadhari)’라 하였으니.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는 이들이 바로 그 케사다리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미용실에 갔다네. 그것도 언제나처럼 머리를 감고, 캉가(Kangha)로 머리카락을 빗어 단정하게 정리하고, 다스타르(Dastaar)를 머리에 둘렀지. 그러고 미용실에 가니, 허허. 미용실 주인이 나를 딱 보더니.

       「 개종하려고? 」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하하하-!

         

       아슈토쉬 싱의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상상만으로도 우스운 상황인데, 과장된 듯한 말투와 몸짓으로 말하는 아슈토쉬 싱의 모습까지 겹치니 도저히 웃음을 터뜨리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보아하니 내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부모가 죽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하기야 내가 젊어 보이는 얼굴은 아니니, 아마 내 부모가 있다고 치면 한 200살은 먹었겠다 싶었을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하-

         

       “무슨 선교를 온 서양 신부처럼 말하는 미용실 주인의 말에 나는 대답했지. 그냥 신기해서 구경하러 왔다. 그러니까 미용실 주인이 또 이러더군.

       「 대머리도 아니고 머리 긴 사람이 구경만 하겠다는 건 처음 보네. 」

       라고 말이야.”

         

       하하하하하-!

         

       다시 웃음이 번진다.

         

       “어쨌든 난 무사히 그 미용실에 들어갈 수 있었지. 어쩌면 그 미용실 주인이 내가 가지고 있는 칼을 보고 들여보내 준 것일지도 모르겠어. 솔직히 머리 깎는 가위보다는 우리가 차고 있는 단검이 더 강하지 않겠는가.”

         

       아슈토쉬 싱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런데, 그 미용실에서 특이한 사람 한 명을 보았지.”

         

       가라앉은 목소리.

       말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다.

         

       “한 젊은 처자였는데, 조심조심 미용실에 발을 디디고는 발목까지 기른 제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을 하더군.”

         

       “….”

         

       “머리카락을 팔려고 하는데, 얼마에 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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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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