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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1

    <771 – 용사답게(17)>

     

    용사파티는 크리쳐의 복도를 넘어섰다.

    대괴수 크라켄 조우전. 황제토벌. 혈비객 레이드. 카타콤 원정대 등등.

    기프트 아카데미 내외로 오크노디를 둘러싸고 일어난 거대한 이벤트에서 이슈타르의 출전율은 50% 이상이었다.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선두에 나서서 오크노디를 위해 칼을 들었다.

     

    재단의 장학생이라서?

    처음 그녀가 오크노디를 따른 계기는 그것이긴 했다.

    빌미를 잡혔으니까.

    약점이 생겼으니까.

    계약을 해버렸으니까.

     

    지금은 달랐다.

    모든 편견을 떼어놓고 보면 오크노디가 얼마나 마음씨 착한 아이인지 안다.

    얼마나 사려 깊은 아이인지도 안다.

    소꿉친구이자 성녀 유피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그녀를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내 앞에서, 스스로 차원문을 열고 재단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돌아왔다.

    자신의 본심을 잊어버리고, 겁 많고 두려운 어린아이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로, 마치 첫 만남의 선악의 구분이 흐릿한 감정을 흉내 내는 괴물의 모습으로.

    그런 괴물의 모습으로도 오크노디는 떠올렸다.

    자신의 본성을.

    용사를 위하던 자신의 마음을.

     

    “그그극…”

     

    벽면 가득 체액이 가득 튀고 흉측하게 변형된 신체가 바닥을 구르는 복도의 끝.

    가장 거대하고 끈질겼던 크리쳐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입술을 달싹거렸다.

     

    [죽여줘.]

     

    “…미안해. 재단의 ‘폐기작’들.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어서. 용사인 내가 조금 더 빨리 나서지 못해서.”

     

    크고 작은 교전으로 힘을 소진한 동료들도 숙연한 얼굴로 목례하거나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이슈타르가 검에 묻은 크리쳐의 체액을 털고 앞장서서 복도 끝의 문을 열었다.

     

    “가자.”

     

    복도의 너머, 그들을 반기는 것은 집사들과 흡사한 차림새의 비서들이었다.

     

    “용사 이슈타르. 당대의 용사는 민생에 무심하고 공적에만 눈이 멀었다는 평판이 있거늘, 의외로 동정심 같은 무른 감정을 지니고 계셨군요.”

     

    재단의 기함 중앙시설로 향하는 입구.

    선황의 공격으로 기함 내 모든 마법적 함정이 무효화된 지금, 요충지의 보안은 비서들이 대신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중요시설에 지휘관으로 비서실장이 자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너희는… 너희가 하는 짓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쓰레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

    “합니다. 참 많은 사람이 재단의 손에 죽고 목숨이 저당잡힌 채로 이용당하고 있지요.”

    “그걸 알면서, 그런 힘이 있으면서, 어째서 재단 따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거야?”

     

    비서실장이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당신이 아카데미에서 동료모으기에 열중하던 작년 한해, 대륙 전역의 기온은 평균 5도가 상승했습니다. 대륙 전역에서는 흉작과 가뭄, 화재로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지요. 당신은 무얼 했습니까?”

    “천만… 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눈앞에 보이는 편리한 적만을 상대해 왔지요. 인류의 진정한 적은 재단이 아닙니다. 재단조차도 격리, 확보, 제거에 실패한 드래곤 교장이야말로 거악을 넘어선 최악이지요.”

    “웃기지 마. 설령 그 말이 사실일지라도 너희가 한 짓은 어떠한 상관도 없어. 오크노디의 영혼을 찢고 격리하는 행위는 그저 너희가 만든 살인병기를 뜻대로 길들이기 위함일 뿐이잖아!!”

    “…우리는 피차 서로에게 모르는 부분이 많았군요. 그러나 서로를 물리쳐야만 하는 적이라는 관계는 변하지 않습니다.”

     

    대화가 길어져도 서로의 입장은 평행선을 그렸다.

    정면으로 부딪치는 신념과 가치관의 너머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모두가 알았다.

    격돌은 피할 수 없다.

    평화로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엔 너무 늦었다.

    서로를 제대로 몰랐으니까.

    그 사실을 이제는 알았으니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오해를 풀고 타협할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상에서 일어난 뜻밖의 기습이 대치국면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콰앙!

     

    해안가의 연합군 함대 기함.

    해일에 휩쓸려 부서지고 수복되어 가던 배에서 어마어마한 출력의 마나포가 기함을 향해 날아들었다.

     

    <해상강국 피렌체 왕국 기함>

    <최대출력 마나포사격>

     

    기함의 수리기능을 포기하고, 배가 가라앉을 위협마저 감수하며 쏘아 올린 한 발의 포탄.

    그것이 재단의 기함에 유지되던 평형유지장치의 프로펠러와 핀 형태의 날개, 평형마나탱크를 동시에 폭발시키며 기함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

     

    기울어진 함선.

    용사 파티를 향해 미끄러지는 집사들.

    이슈타르의 검이 반사적으로 뻗어졌고, 가장 먼저 균형을 잃었던 집사의 목이 떨어졌다.

    수라장이 시작되었다.

    분노한 비서실장의 주먹이 용사의 성검과 충돌하여 강력한 마나파장을 발산했다.

    충돌의 너머, 귀청이 찢어질 금속음이 뒤따를 적에는 이미 두 합, 세 합째의 충돌이 점차 속도를 높이며 펼쳐졌다.

     

    <정령마도구>

    <대지의 상급정령의 건틀릿>

     

    생명을 산 채로 매장하면 힘을 선사하는 부정한 정령무구가 비서실장에게 막대한 힘을 허락했다.

    정령은 오래도록 재단의 창고에서 굶주렸고, 비서실장의 편의적인 계약을 받아들였다.

    매장의 범주를 재단의 지령에 의해 죽어가는 가엾은 장학생들에게까지 넓히도록.

    허기진 정령은 계약조건해석의 확장을 받아들였다.

    비서실장과 비서실을 통해 지령을 하달받고 여생이 매장당한 장학생들의 수만큼 비서실장은 오래도록 힘을 쌓고 또 쌓았다.

    언젠가 자신이 쌓아 올린 희생의 탑이 이사장에게도 닿을 날을 고대하며.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는 깨달아버렸다.

     

    ‘내가 강해지는 속도보다도, 이토록 많은 인재와 생명의 희생보다도, 이사장 한 명이 단독으로 강해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마치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것을 허락받은 용사처럼 그 성장에는 끝이 없었다.

    사람이 죽고 인류의 미래가 암흑에 물들수록 비서실장이 강해지는 성장 폭보다 이사장의 성장 폭이 두 계단은 더 높았다.

    그래서 협력자를 기다렸다.

     

    많은 국가의 조력 요청을 무시했다.

    이사장의 끄나풀의 속임수를 간파했다.

    재단의 새로운 지배자로 만들어주겠다는 정령계의 유혹도 단호히 뿌리쳤다.

    그 강대했던 혁명가의 이중스파이 웨스커조차도 떠나보냈다.

     

    그는 오크노디라는 이름의 암살검을 잡았다.

    언더월드에서의 불길한 준동을 묻었고, 관련된 소식이 이사장의 귀에까지 오르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렇기에 오크노디와 함께 지하에 숨어 힘을 기르던 선황의 기습은 수싸움을 이루었을지언정 재단에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오크노디를 비호하는 암흑상회의 주인 지젤에게 재단지부 습격의 기회를 허락했다.

    많은 기회를 주었거늘 결과는 이 꼴이다.

     

    대괴수 – 체 력올인패턴파악이좋아 전사.

     

    저 하나를 넘지 못했다.

    그러니 용사가 나서야만 한다.

    그녀가 이사장을 넘을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보여다오. 너에게 이사장을 넘을 희망이 있음을!’

     

    비서실장의 주먹이 자신의 가슴팍을 후려치며 일곱 개의 차원석이 동시에 깨졌다.

    일곱 차원의 힘이 깨진 차원석 너머로 흩어지기 전까지 비서실장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공격을 일곱 차원에 분산하여 나누어 받는다.

    넘어설 방법은 하나.

     

    ‘속성력. 편리하게 강해질 수 있는 마나조합이 아닌 순수한 무 그 자체로 분산 불가능한 무학의 극의를 날리는 것.’

     

    이슈타르의 검은 증명에 성공했다.

    그녀의 검은 더 이상 홀리미러의 스택중첩 및 증폭형 공격에만 의지하지 않았으니까.

     

    -이슈타르. 증폭에 몰빵한 검은요, 스택 쌓기에 함정을 끼워 넣으면 단숨에 무너져요! 그러니까 증폭은 함정을 유도하기 위한 심리전 용으로만 쓰고 그걸 카운터 치는 기술을 준비하는 게 어때요?

     

    이슈타르는 감지했다.

    비서실장을 둘러싼 일곱 개의 차원석 가루.

    그중에 <증폭계>의 힘이 있음을.

    힘의 증폭.

    홀리미러를 일점에 중첩하여 단숨에 최고증폭의 위력을 발휘하는 일점증폭의 극의.

    그 편리한 길을 이슈타르는 자신의 의지로 포기했다.

    그 대신, 눈에 보이는 다중의 홀리미러를 비서실장의 주변에 펼쳤다.

     

    ‘황제토벌도 요행에 불과했군. 용사의 자질, 결국 그 정도에 불과한가.’

     

    비서실장의 눈에 숨길 수 없는 실망감이 어렸다.

    이슈타르의 검기가 홀리미러를 타고 들어가자 비서실장은 차원석 가루를 재정렬하여 자신에게 날아오는 검의 증폭을 차원계 저편으로 날려보냈다.

    증폭의 극딜을 이용해 경직을 먹이고 연속공격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얕은 승부수.

    비서실장의 전신에 새카만 암흑오라가 충만하게 차올랐다.

    마나연단법의 극의.

    모든 CC기를 무시하는 슈퍼아머가 펼쳐졌다.

     

    ‘경직이 허무하게 막힌 직후, 빈틈을 노리고 섣불리 들어온 네 손목을 단숨에 비틀어주마.’

     

    성검을 놓친다면 용사는 끝.

    그대로 절명이다.

    어설픈 강함으로 이사장에게 다가가 그에게 ‘경험치’를 선물하는 우를 범하느니, 피어나지 못한 꽃은 이 자리에서 꺾는다.

    그런 일념으로 내지른 손이 허공을 스쳤을 때, 비서실장은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달려들 것처럼 보였던 이슈타르의 신형이 스르륵 뒤로 물러나는 광경을 뒤늦게 목격하였다.

     

    <오크노디 고유검술 – 가속잔상검>

     

    “…!”

     

    달려드는 척, 자세를 무너뜨리며 나아가기를 유도하면서 지면을 뒤로 밀어내며 간격을 피한 이슈타르.

    극성으로 발휘한 슈퍼아머의 짧은 유지시간이 끝나기 전에 비서실장은 이어질 <강공>을 한순간이라도 먼저 받아내고자 역으로 달려들었다.

     

    <대지의 상급정령의 건틀릿>

    <정령개화>

    <변형마법 – 대지의 암살검>

     

    성검조차 받아칠 수 있는 건틀릿이 일순간 손등을 덮는 암살검으로 변형되며 이슈타르의 심장을 깊이 관통하였다.

     

    푸확!

     

    꿰뚫었다.

    심장을 잃은 이슈타르가 비틀거렸다.

    비서실장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손 끝에 감각이 없다.

    한 번이 아니었다.

    이번, 두 번째의 동작마저도 연속페인트였다.

     

    ‘이런 결정적인 국면에서 용사처럼 넘쳐나는 힘을 지닌 존재가 두 번 연속 속임수를 사용했다고?’

     

    허물어지던 신형을 뚫고 이슈타르의 강검이 내질러졌을 때, 비서실장의 몸을 지킬 슈퍼아머는 이미 제 효력을 다한 뒤였다.

     

    콰앙!

     

    헛되이 힘을 분출한 암살검과 함께 산산이 깨져버린 비서실장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훌륭하다.”

    “당신, 아직도 여력이 있었으면서 어째서…”

    “그 정도의 조심성이라면 이사장을 상대로 순순히 당하지는 않겠지. 내 힘을 맡겨도 여한이 없다.”

    “…”

    “끝을 내라.”

     

    이슈타르의 발이 비서실장의 잔뜩 금이 간 머리를 깨뜨렸다.

     

    “너희들의 대장은 죽었어. 포기하지 않겠다면…”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비서실장님을 따르는 수족. 언젠가 이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서실장의 경험치를 적용받으며 실시간으로 다시금 소모한 체력을 회복한 이슈타르.

    그녀의 기세 앞에서 비서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순순히 투항하였다.

    이로써 검은 세계수가 자리한 재단 소속 비공정 기함의 중앙시설로 향하는 길은 완전히 개방되었다.

     

    “하지만 이 앞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남아계십니다.”

    “…재단에 아직도 전력이 남아있어? 설마… 소문만 무성했던 재단 최강의 삼장인 그 <집사장>이?”

    “이번에 이사장님에게 투항하고 목줄이 채워진 전 아카데미 교수들입니다.”

    “?!”

     

    기세등등하게 검은 세계수를 향해 쳐들어가려던 용사파티 전원이 정색하고 멈출 말이었다.

     

    “배신한 교수님들 사이에 혹시 암흑마나에 친숙한 사다코 교수가 있어?”

    “없습니다.”

    “학생이 두 다리로 걸어서 돌아가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극한 난이도 강의만 때리는 플라톤 교수는?”

    “없군요.”

    “안데르센 대공자가 가장 많이 강의를 들었던 날먹강의인 척 학생 때려잡는 데모니카 교수님은?”

    “차원붕괴에 휩쓸렸다는 정보는 입수했지만 배신자 명단에는 없습니다.”

     

    이어지는 교수들의 이름을 듣던 용사파티는 문득 묘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죄다 제국파 교수들이네.”

    “그것도 선황 시절에 권력으로 꽂은 교수님들.”

    “실력은 별것도 없으면서 교수 직함 믿고 과제 좆같이 내주는 교수들만 있다냐!”

    “개패버리고 싶은데 그냥 들어갈까요?”

    “탱커도 실드로 패버릴 수 있습니다!”

     

    동료들의 넘쳐나는 사기를 보며 이슈타르는 자신감 있게 선두로 나섰다.

     

    “교수직함만 믿고 나대던 교수님들이 교수직을 그만두셨으면 업보를 치러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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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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