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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1

        

       아슈토쉬 싱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너희는 머리카락을 기른다. 종교적인 이유로, 신에 대한 헌신을 이유로. 하지만 그 처자는 그러하지 않았지. 우리와 같은 종교를 믿지 않으면서도 머리카락을 길렀다. 왜? 헌신을 위하여.”

         

       “….”

         

       “그 처자는 신과 하나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아마 생각한 적도 없을 것이다. 신을 생각하기에는 그 처자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힘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분명히 보았다. 그 처자의 얼굴에는 그 어떤 화장기도 없었고, 고단한 노동으로 인한 주름살이 생겨있었다. 그 처자의 실제 나이보다 그 얼굴이 더 늙어 있음을 나는 확신할 수가 있었다.”

         

       “….”

         

       “흙먼지가 가득 끼어있는 손톱. 3대가 물려 입었을 것 같은 낡은 장신구. 몇 번이고 수선하면서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린 옷만 보더라도 나는 그 처자의 형편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듣는 모든 사자도 나와 비슷한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말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꽤 많았다.

       공감되었기 때문이겠지.

         

       “그러한 상황에서도 그 처자의 머리카락은 꽤 윤기가 흘렀다. 잘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힘든 와중에도 머리카락을 관리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흙먼지와 땀 범벅이 되었더라도 머리를 잘 감았고, 아마 값이 싸면서도 구하기 쉬운 것을 사용해 머리카락을 손질하였으리라.”

         

       그리고 그 손질은 치장을 위한 것도 아니고, 연애하기 위한 목적도 아닐 것이다.

       취미도 아니고, 시크교도처럼 ‘신을 위한 헌신’의 의미로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 역시 아닐 것이다.

         

       “그것은 머리카락을 팔기 위해서다.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물건을 잘 관리하는 것처럼, 그 처자는 힘든 삶 속에서도 노력을 기울여 머리카락을 길렀고, 그것을 팔러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을 판 돈으로 먹을 것이나 필요한 물건을 사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생각해보라.

       잘 관리한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고, 단발이 되어서 돌아가는 처자의 모습을.

       긴 머리카락 대신에 돈을 얻어서 그것으로 먹을 것을 한 아름 안고 가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짧은 머리의 처자가 오는 모습에 어린 동생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작은 발로 뛰어가 그녀를 맞이하고, 그녀의 부모는 미안하면서도 장하다는 표정으로 그 아이를 바라볼 것이다.

       그것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고, 한 사람의 헌신이 만들어낸 따스함이다.”

         

       타닥.

         

       아슈토쉬 싱의 말에 맞춰 불똥이 튀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호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것은 희생이요 헌신이다. 제 몸을 바쳐 헌신에 대한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니 이것을 어찌 갸륵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사자야. 이 처자가 행한 헌신을 깎아내릴 수 있겠느냐? 신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고 이것의 가치를 내려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몸과 마음을 바쳐 힘을 다하라.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은 그 순간에도, 귀찮음이 목 아래까지 차올라 아무것도 하기 싫은 와중에도 행하라. 이 처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힘든 노동과 고단한 삶의 와중에도 머리카락을 기르고 관리하여 가족을 위하여 행동하였던 것처럼. 이처럼 헌신은 일상에 녹아있으면서도 언제든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것이며,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마침내 보답받게 되는 것이다.

       마치 그 처자가 머리카락을 팔아 돈을 받았듯이 말이다.”

         

       타닥.

       타닥.

       불똥이 튄다.

       곳곳에 놓여있는 모닥불에서 불꽃이 흔들거린다.

         

       “나는 어떤 시크교도에게 이러한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머리카락을 기르고 관리하는 것은 그저 귀찮기만 한 일이고, 헌신은 다른 것으로도 얼마든지 보일 수 있지 않으냐고. 신에 대한 헌신이 어찌 머리카락을 기르고 관리하는 것이 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아슈토쉬 싱은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는 한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너 사자야. 말해보아라.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지?”

         

       “참 불경한 말입니다. 케시의 의미가 어떤지도 모르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옆에 있는 너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 게으른 사람이 아닙니까?”

         

       “그 옆에 너!”

         

       “신에 대한 헌신을 어떻게 그렇게 헐뜯을 수 있습니까.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슈토쉬 싱은 그들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너희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

         

       아슈토쉬 싱은 단상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불꽃을 담은 듯한 강렬한 눈동자로.

         

       “우리가 머리를 기르는 것은 신에 대한 헌신의 의미가 맞다. 하지만 그것이 형식적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더 좋은 방식, 더 알맞은 방식의 헌신이 있다면 그것을 행하는 것 역시 옳다.”

         

       “….”

         

       “길을 가다가 굶어 죽으려는 사람을 보았다. 너의 수중에는 음식도, 돈도 아무것도 없지만 머리카락이 있다. 너의 머리카락을 잘라 판다면 그 사람에게 음식을 사서 먹여 살릴 기회가 있다면. 너희는 그를 그냥 내버려 두고 갈 것이냐? 너희는 고작 머리카락 하나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할 것이냐?”

         

       “….”

         

       “너의 집안이 어렵고, 돈이 필요하다. 네 머리카락을 잘라 판다면 그 돈을 마련해 기울어진 가세를 회복할 수 있음에도 너희는 그러할 것이냐? 신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겠다는 이유로 가족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머리카락을 기르고, 그것을 손질하느라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살아갈 것이냐?

       그것은 헌신이 아니다.

       우리의 신께서는 너희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정적이 퍼진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슈토쉬 싱에게 집중된다.

         

       “신과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는 자가 어찌 선행을 베푸는 것을 망설이느냐? 신에 대한 헌신을 그렇게 입에 담으면서도 어찌 신이 사람들에게 행할 법한 헌신을 하는 것은 망설이느냐? 너희는 머리가 명령한 것을 망설이는 오른손을 본 적이 있느냐? 오른손이 하는 행동을 보고 화들짝 놀라 손목을 잡아 막아 세우는 왼손을 본 적이 있느냐?

       너희가 진실로 신과 하나가 되기를 갈망한다면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노인은 말한다.

         

       “우리는 진실을 갈망한다. 우주를 창조하신 그분과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오만을 버리고, 욕망을 경계하고, 탐욕을 버리고, 분노를 다스리며, 집착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증오하려 하지 않으며 죽음과 탄생의 근원에 계신 그분과 하나가 되기를 간절하게 갈망한다.

       그리고 그 갈망 속에서 우리는 명상하고, 봉사하고, 선한 일을 행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존재를 느끼고, 그분을 마주하고, 그분이 우리의 가까이에 계심을. 내 안에 그분이 계심을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그분과 함께하고 있다.

       봉사와 선함으로 그분과 가까이한다.

       그리고 진실로 그분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명예 또한 버릴 수 있어야 한다.”

         

       “….”

         

       “명예란 무엇인가?

       너희의 머리카락이다.

       헌신을 해왔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너희의 머리카락이다.

       관리하기 귀찮고 힘들었음에도 길게 길러서 너희가 신에 대한 헌신을 이만큼이나 해왔음을 알리는 훈장이다.

       하지만 훈장은 훈장일 뿐이고, 명예는 명예일 뿐이다.

       그것에 집착해 타인을 위해 자선을 베풀지 아니하고 배려하지 아니한다면 그것만큼 우스운 꼴이 어디에 있겠느냐?”

         

       “….”

         

       “집착하지 마라. 자신의 헌신을 과시하려 하지 마라.

       봉사하고 베풀어라. 주위를 따뜻하게 하고, 선하게 행동하라.

       중요한 것은 본질이고, 신과 마주하였을 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신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면 그분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힘이 실린다.

       볼품없어 보이는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시선을 놓을 수가 없다.

       강렬한 기세.

       몸에서 따스한 온기를 뿜어내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오늘 하려 했던 말이다.”

         

       “….”

         

       “이것이 내가 너희의 갈기에 대하여 하려 하였던 말이다.”

         

       “….”

         

       “그리고 이것은 헌신에 관한 이야기다.”

         

       아슈토쉬 싱은 그들을 바라본다.

       빛을 발하는 불꽃이 모인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상이다.”

         

       지금, 이 순간.

       이 노인은 불꽃이며 횃불이었다.

         

         

         

         

        * * *

         

         

         

         

       불꽃은 타올라 어둠을 가르고 사람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어둠의 공포 속에서 사람을 안도하게 만들고, 몸을 감싸는 한기에서 벗어나 온기에 안겨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돕는다.

         

       아슈토쉬 싱은 무엇인가.

         

       횃불인가.

       촛불인가.

       그것도 아니면 모닥불인가.

         

       불꽃은 빛을 발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그 불꽃의 은혜에 감사하게 만들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베푼다.

       그것은 음식을 조리하기 위한 열기이며, 어둠을 가르는 빛이며, 맹수의 습격에서 무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보호일 수도 있다. 자려고 하는 이들을 위한 이불이 될 수도 있으며,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하나의 거울이 될 수도 있다.

         

       불꽃의 은혜.

       그것은 무언가를 태우며 빛을 밝히는 불꽃만큼이나 강렬하고 헌신적인지라, 그것을 받은 이들은 그 은혜를 잊지 못한다.

         

       그러한 이치로 아슈토쉬 싱에게는 수많은 인연이 존재한다.

       단순히 종교라는 이유로, 주술사라는 이유로 쌓은 인맥이 아니다.

         

       아슈토쉬 싱이라는 이름의 불꽃에 은혜를 입은 이들.

       긍정적인 영향을 받아왔던 이들이 그와 인연을 맺기를 원하고, 그의 불꽃에 감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제 몸을 태워 불꽃을 피워내 세상을 더 좋게 만들려는 이들도 있으니.

       그들이 바로 장작이다.

         

       “그들이 불꽃의 진격을 막고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을 막을 것이다….”

         

       단상 위.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아슈토쉬 싱은 그곳에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꺼져버린 모닥불의 흔적.

       재와 숯이 되어버린 그 흔적들을 보며 그는 자신이 연락한 이들을 떠올린다.

         

       장작.

         

       박진성이라는, 불꽃과도 같은 주술사를 막기 위해 도움을 주겠다고 한 이들.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는 말에 흔쾌히 허락하였던.

       인종이나 나라에 상관없이 사람을 구하는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였던 이들.

         

       그들이 박진성을 막아 세우는 장벽이 되리라.

         

       방화선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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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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