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72

    <772 – 용사답게(18)>

     

    아카데미 교수들은 여러모로 업보가 많았다.

     

    “교수님, 저희 10분 뒤에 다음 강의 들으러 가야 하는데 이만 강의 끝내주시면 안 될까요?”

    “그 교수에게는 내가 연락하지. 걱정 말고 마저 강의를 듣도록.”

    “…”

     

    뒤에 무슨 강의가 있건 내가 가르칠 건 다 가르쳐야 하는 교수님.

    심지어 연락 그런 거 깔끔하게 무시한 다음 강의 교수님은 가차 없이 출석점수를 까버린다.

     

    “교수님, 저희 다른 강의도 많이 듣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과제는 힘들 것 같아요.”

    “학생 땐 잠을 조금 덜 자도 된다네. 나는 젊음의 힘을 믿네.”

    “…”

     

    가혹한 과제로 학생들을 괴롭히는 교수님들.

    덕분에 학생들은 어떤 강의 과제를 제출하지 않을 때 가장 감점이 덜한지를 가늠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다.

    당장에 여력이 남아도 과제가 겹칠 상황을 고려해서 더 많은 강의를 선뜻 듣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저 강의 시간에 들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되어서 추가 질문 가능할까요?”

    “내 시간은 비싸다. 조교에게 물어라.”

    “선배…”

    “잡일을 도와주면 질문을 받아주지.”

     

    결코 무료로 베풀지 않는 지혜와 지식들.

    전부 원인은 뚜렷했다.

    애초에 학생을 가르칠 의무감이나 제 분야에 대한 자부심으로 아카데미에 온 것이 아니라 선황이 교장에게 꼬장부리려고 심은 제국파 교수들.

    사명감이 없으니 학생들을 진지하게 대하질 않았다.

    과제에 치이거나 시간에 치이거나 알 바 아니라며 마이웨이로 학생들을 굴리던 행동에는 다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1학년 새내기 시절에는 이 사실을 몰랐던 981기 학생들도 나름 2년생이 되었다고 그런 실상을 알아차렸다는 데에 있었다.

     

    “이게 누구야. 우리 아카데미 2학년들 아닌가?”

    “자네들, 과제는 끝내고 여기에 온 건가?”

    “배움이 중요한 시기에 벌써부터 실전에 나서고 그러면 곤란하지. 아카데미로 돌아가라.”

     

    배신자 교수들이 뻔뻔하게 내뱉는 말을 듣던 이슈타르가 끝내 어처구니없는 심정을 드러냈다.

     

    “당신들이 뭐라고 감히 배움을 논합니까? 무엇을 위한 배움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교수라면 결코 서서는 안 될 자들의 편에 함께 하는 주제에.”

    “허허. 옛정을 봐서라도 곱게 보내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군. 교수의 무서움을 잊은 학생에게 ‘복습’을 해줘야겠어.”

     

    교수들의 눈에는 음험한 감정이 스쳤다.

    이제는 학생조차도 아닌 ‘여자’로서 자신을 뱀처럼 훑어보는 시선 앞에서 이슈타르는 어떤 의미로 신선한 기분마저 느꼈다.

    쓰레기들이 이렇게까지 대놓고 쓰레기 티를 내어주니 오히려 속이 시원해졌다.

    교수 시절에는 그래도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서 이게 맞나? 싶어도 손도 댈 수 없었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계급장 뗀 민간인처럼 그냥 줘패 버릴 수가 있다.

     

    “옛정은 무슨. 제국의 눈엣가시라며 용사친위대 소속 애들까지 핍박했던 주제에.”

    “인망 없는 리더에게 흔히 있는 일이지. 다음에는 <훌륭한 지휘관이 되는 법> 강의를 필히 수강하도록 하게. 물론 내가 은퇴했으니 그런 유익한 강의를 가르칠 교수는 더 이상 없겠지만 말이네. 하하하!”

     

    이전까지의 이슈타르라면 그 말에 긁혀서 무작정 달려들었겠지만, 지금의 이슈타르에게는 단단히 덫을 파두고 돌진해오기만을 기다리는 교수들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차원폭발에 휘말려 타 차원계에 넘어갔다가 극적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꽤나 무리를 했는지 기운이 적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교수는 교수.

    반푼이 교수들이라도 그 강함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었다.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교수님들 사이에도 ‘수준 차이’가 뚜렷하더라고요.”

     

    그래서 역으로 긁었다.

    교수들의 얼굴이 분노로 꿈틀거렸다.

     

    “게다가 안데르센만큼 빡센 강의만 골라서 듣는 오크노디가 듣는 강의에는 이상하리만치 제국파 교수가 드물었죠.”

    “감히 제국을 능멸하는 것이냐?”

    “제국이라니요. 섭섭하게. 교수님을 능멸한 거죠. 솔직히 느끼시잖아요? 교수님들도 지금 아카데미에 남아계신 교수님들이 진짜배기고 여러분은 선황폐하께서 아카데미의 수준을 떨어뜨리기 위해 심어둔… 아, 오해는 마시길. 태만이 아니라 정말로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뿐이니까요. 학년수석과 학년차석이 다 거르는 교수님들인데 솔직히 좀 그렇잖아요?”

     

    예로부터 충신이 핍박을 받고 간신들이 중히 여겨지며 귀하게 쓰이는 이유가 있다.

    솔직한 말은 좋게 포장해도 띠꺼운데 그럴 노력을 하려는 사람이 없고, 간사한 말은 대충 교활하게 말해도 듣기 좋은데 정성스레 포장까지 하니 마음의 빗장이 환히 열리기 때문이다.

    그냥 들어도 아니꼬운 말을 면전에서 대놓고 비꼬며 개무시를 해버리니 교수들은 뚜껑이 뒤집혔다.

     

    “신의 선택을 받지 않았으면 한적한 깡촌의 비루한 평민계집으로 자라나 시골영주의 첩실로 생을 마감하는 것조차 운이 좋았을 계집이 감히 입을 놀리다니.”

    “유일신이 너를 용사로 만들었을지언정 <두 번째 용사>가 탄생한 지금은 네게 주어질 가호도 예전과 같지 않음을 모를 성싶더냐?”

     

    기름에 불을 붙인 것처럼 확 피어오르는 교수들의 격한 분노.

    차마 듣기 힘든 폭언과 모독 앞에서도 이슈타르는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고 침착하게 동료들의 조력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중앙시설의 상층부로 우회한 궁수 스콜라와 그의 안내를 받은 벽력성천신교의 니세가 저 위에서부터 기습을 가했다.

     

    <연사>

    <속사>

    <난사>

    <집중>

    <관통>

     

    학기 초, 오크노디마저 능가하는 궁술을 선보였던 스콜라의 사격에 눈부신 섬광이 어렸다.

     

    <궁술의 극의 – 필중의 시간>

    <궁술의 이중극의 – 개벽섬광시開闢閃光矢>

     

    새하얗게 뒤덮인 시야 너머로 니세가 손을 번쩍 들며 기도술을 외웠다.

     

    <기도술 – 성광의 마데우스>

     

    나의 어린 수녀여, 무엇을 기도로 바치겠느냐.

    성광의 마데우스의 의지가 니세에게 닿았다.

    그녀는 수많은 학생을 대표하여 기도했다.

     

    ‘기프트 아카데미 수강생의 교수를 때려서는 안 되는 금기를 참지 않는 해방감. 그 오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순간의 번뜩임을 당신에게 바칠 섬광이자 번개로 정하겠습니다!!’

     

    성광의 마데우스의 힘이 일순간 24신격의 범주를 넘어서는 폭발적인 증가폭을 드러냈다.

    잠깐이지만 상급신을 유일신 소페미아와 같은 대신의 반열까지 올려낸 것은 학생들의 오랜 염원과 의지가 얼마나 간절했으며 그들의 스트레스가 깊었는지를 알려주었다.

     

    [오늘부터 네가 나의 새로운 교황이다.]

     

    니세의 기도에 응하여 내리친 번개가 섬광에 눈이 멀어 막무가내로 방어장치를 가동하던 교수들의 머리 위를 연거푸 내리쳤다.

    가히 하늘이 내리는 벌이라 하여 천벌이라 부를 위력의 번개가 수백 수천 다발을 연이어 내리치니, 그 여파로 재단의 기함이 입는 피해만 더해졌다.

     

    -아카데미의 교수들이라면 어떻게든 쓸모가 있겠죠.

     

    이사장의 그런 기대감을 정면으로 배신하며 역으로 더 큰 피해를 입힌 꼴이 되었다.

    앞으로 10년.

    적어도 그만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집사들의 빈자리, 재단 지부장들의 빈자리를 새로이 재단에 영입된 전직 교수들이 대신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타이밍이 나빴다.

    지젤의 연합군과 재단의 기함이 충돌하는 시기와 차원 저편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시기의 텀이 지나치게 짧았다.

    힘은 수복되지 않았는데 용사파티는 이번 잠입행을 거치며 크고 작은 재단의 강자들을 해치우며 경험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심지어 벽력성천신교의 니세는 성광의 마데우스를 모시던 교황이 사라진 이래로 오크노디가 바쳤던 야광공룡의 스트레스보다 더한 역대급 스트레스를 발산하며 성광의 마데우스를 만족시켰다.

    최약의 상태로 최강이 된 신의 권능을 맞았으니, 아무리 교수들이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파지직

    치지직

     

    순식간에 회로가 타들어가 잿더미가 되어버린 마법진들 너머로 이슈타르가 홀리 미러를 열었다.

    그녀의 전투법을 숙지하고 있던 교수들은 마나반응을 감지하자마자 앞이 보이지 않는 몸으로도 홀리미러가 열린 방향들을 향해 재빨리 공격을 퍼부었다.

    만일 여기에 있는 것이 비제국파 교수였다면 위기상황에도 거뜬히 여유롭게 받아쳤을 것이다.

    경험을 쌓고 실적을 쌓아 능히 세계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니까.

    제국파 교수들은 조금 달랐다.

     

    -고대사야 지 꼴리는 대로 해석해도 대충 맞다고 하면 그만이지 뭐. 이 친구가 적당히 실력이 좋으니 고대사 전문으로 올려보내게.

    -이번에 제국교수 한 자리가 새롭게 생겼는데 어디 괜찮은 사람 없나? 이런. 공작가에서 교수할당제에 당첨되었다고? 그 친구가 머리는 나빠도 몸은 튼튼해? 그럼 대충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나 해대는 무술학 권위자 자리 하나만 만들어보게.

     

    제국의 각종 협회나 학회를 통해 세계최고의 인재임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찍어내며 만들어진 인스턴트 교수들!

    실력은 있으나 진정 세계최고라 칭하기 어려운 쭉정이들은 실전에 약했다.

     

    -선배님들, 애들이 너무 똑똑해서 우리 밑천 다 까발려지게 생겼을 땐 어떻게 넘어갑니까?

    -존나게 굴려. 그럼 딴 생각을 못 할 거 아니야.

    -아, 그런 방법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학생 굴리기뿐인 교수들은 학생들에게는 엄격하게 요구했던 위기대처능력을 자신들은 보이지 못했다.

    고대문자의 아름다움을 열변하며 꼬부랑글씨를 쓰고 금서도 열어보며 정신내성에도 시달리고 그러다 제 풀에 지치면 귀찮게 옛 지식을 물어대는 것을 멈추어서 좋다고 킬킬거리던 고대문자의 권위자가 만든 마법진은 신벌 한 번에 박살났다.

    무술에는 성실함이 중요하다며 무술이 뭔지 모르겠으면 산을 한 바퀴 달리고 오게 시키고,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면 중량을 늘려서 달리고 오게 시키고, 늘어나는 중량 속에 모든 걸 포기하고 달아나거나 기초야말로 모든 것이구나! 라며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학생들을 비웃던 교수는 게으른 단련으로 인해 기습을 피하지 못하고 넘어졌다.

     

    퍽!

     

    4단계 영역의 전개조차 시원찮은 교수들의 빈틈으로 제냐의 회심의 손톱찌르기가 적중했다.

    교수 한 명이 쓰러지고, 경험치가 늘어나고, 더 강해진 용사파티가 다음 표적을 노리는.

    바람직한 선순환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낙하산 교수들 컷!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