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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2

        

         

       낡은 빌딩의 안에서 박진성이 창밖을 보고 있다.

         

       “과연.”

         

       펄에 빠졌다가 나오기라도 한 것인지 온몸에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모습.

       머리카락의 끝부분은 불에 그슬리기라도 한 듯 탄 자국이 남아있었고, 머리카락이 탈 때 나는 특유의 기분 나쁜 냄새가 끝에 감돈다.

       불규칙적으로 말려있는 머리카락의 끝부분은 마치 낚싯바늘을 연상시켰는데, 그곳에서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것이 마치 바닥을 훑고 빈 몸으로 주인에게 되돌아간 것만 같다.

         

       몸부림을 치기라도 한 듯 손톱 몇몇 개는 빠져있고, 빠지지 않은 손톱의 아래에는 말라붙은 피딱지와 살점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진흙과 섞여서 더더욱 단단하게 굳어버린 그것들은 단순히 손을 씻는 것만으로는 빼낼 수 없어 보이고, 날카로운 것으로 손톱 밑을 긁어 직접적으로 빼내야 할 것만 같다.

         

       찰박.

       찰박.

         

       몸에는 말라붙은 진흙이 그리도 많았건만.

       박진성이 발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나는 것은 물기를 머금은 진흙이 내는 소리.

       진흙 발로 깨끗한 땅을 문대는 것처럼 이리저리 자국이 남고, 새빨간 색을 품은 물이 이리저리 번지며 제 영역을 넓히려 든다. 방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붉은 진흙에는 채 마르지 않은 핏물이 철분의 향기를 물씬 풍기고, 분화구처럼 푹 팬 곳에 모여있는 물은 알을 낳을 모기들을 환영한다는 듯 얌전히 침묵할 뿐이다.

         

       ‘종교라는 구심점 때문인지 사용할 수 있는 장작이 많기는 하였구나.’

         

       진흙과 핏물 범벅으로 박진성은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

         

       “—”

         

       그것은 밖과 안을 가르지 않는 창.

       안과 더 깊은 안을 가르는 창.

         

       박진성이 직접 세운 유리의 벽들은 단순한 실내와 더더욱 깊은 실내를 구분한다.

         

       박진성이 빌딩에 부여한 상징을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더더욱 의미심장하다.

       빌딩을 얻자마자 위는 천국에, 아래가 지옥에 가깝게 만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일반적인 실내가 ‘지옥’이라면.

       더 깊은 실내는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

         

       “—!!!”

         

       그가 직접 만들어 세운 유리는 지옥을 가르는 하나의 경계.

       그의 빌딩에 부여된 ‘지옥’의 상징을 더더욱 심화시키고 견고하게 만드는 증표.

         

       박진성이 바라보는 저 얇은 유리는 설탕과 레진으로 만들어졌기에 일반적인 유리보다도 약하다. 영화나 몰래카메라 같은 곳에서나 쓸법한 소품인 데다가, 특별한 화학 처리도 하지 않았으니 더더욱 그러하겠지.

       아마 어린아이가 살짝 힘줘서 때리기만 하더라도 저것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얇고 약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지옥의 경계에 어울린다.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넘어가지 못하고, 부술 수 있을 것 같지만 부수지 못하고, 어찌 넘어간다고 할지라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지옥이라!

         

       희망과 절망의 성질을 모조리 품고 있으니 과연 이만한 것이 없다.

       특히 박진성의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지옥과 천국의 주인이 직접 만들어 세웠으니 그 상징은 오죽 특별하겠느냐 이 말이다.

         

       보라.

         

       저 창밖의 사람들을.

       ‘더 깊은 곳’에 붙잡혀 있는 저 사람들의 모습을.

         

       “—!!!”

         

       결코 밖으로는 퍼지지 않을 외침을 계속해서 내지르며 저들은 저곳에 있다.

       지옥의 깊은 곳, 심연보다는 얕은 그곳에서 저들은 붙잡혀 있다.

         

       머리에 터번을 쓰고 있는 사람들.

       긴 장발을 하거나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는 그들이 저곳에 있다.

         

       시크교도.

       그것도 인도에서 온 사람이 아닌, 한국에서 지내고 있던 시크교도가 저곳에 있었다.

         

       ‘허허. 참으로 빠르기도 하지.’

         

       박진성이 알기로 한국에 존재하는 시크교 사원은 두 곳이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사원.

       북한 멸망 후 정부의 종교 지원 정책에 의해서 파주에 지어지게 된 사원.

         

       그리고 지금 박진성의 빌딩에 붙잡혀 있는 이들은 후자.

       파주 사원에서 온 이들이었다.

         

       ‘그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 DMZ 쪽으로 파견된 종교인들은 과격파가 많다고….’

         

       옛 북한 지역에서 창궐한 귀신들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주술 불모지 소리를 듣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겠지.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종교인들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온갖 혜택을 주면서 그들을 DMZ에 파견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꽤 효과를 봐서, 현재 귀신의 남하(南下)나 침입을 성공적으로 막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종교인도 사람이다.

       당연히 귀신과 싸우는 것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정신력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빙의를 해서 사람을 가지고 놀려는 악령, 물리력을 발휘하며 찢어 죽이려 드는 악귀, 그리고 그들보다는 못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서 인지조차도 힘든 귀신들까지.

         

       그런 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그렇기에 각 종교에서는 DMZ 쪽으로 파견 보내는 이들을 최대한 정신력이 강하고 용감한 이들로 뽑는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 중에서는 소위 ‘과격파’라 불리는 이들이 많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용기와 추진력은 비례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것이 도를 넘으면 만용이 되는 것이고, 아집이 되는 것이다.

         

       이는 시크교 역시 마찬가지.

       DMZ에 들어갈 대기인원들이 가득한 거점, 파주에 있는 사원에는 과격파들이 많았다.

       그리고 용기가 너무 지나쳐서 만용으로 변화하였고, 자신감이 지나쳐서 오만으로까지 변질한 이들 또한 꽤 있었고.

         

       그들이 바로 저들이다.

       별생각 없이 박진성의 거처에 쳐들어왔다가 잡혀버린 저들이다.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거미의 집에 날갯짓해서 붙잡히는 벌레보다도 어리석다 할 것이다.

         

       시크교에서는 오만을 경계하고 멀리하라고 가르치고 있거늘, 저들은 그것을 지키지 못하여 저리된 것이 아니겠는가.

       용맹한 전사나 병사가 될 수 있을지언정 제대로 된 종교인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어. 장작은 장작이지. 사람이 아니라….’

         

       저것조차 장작의 성질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기야 장작의 본분이 어디 잘 조형되거나 잘 자라나는 일이겠는가.

       그저 잘 타면 그만이다.

         

       그리고 의복 역시 마찬가지다.

         

       ‘저들은 의복이다.’

         

       아슈토쉬 싱이 사람을 장작이라 하였고, 박진성은 그 말에 사람은 의복이라 하였다.

         

       의복이란 무엇인가?

       언제든 입고 벗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몸을 가리고, 꾸미고, 여러 용도로 쓰면서도 실제 신체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다.

       편리한 물건이며, 동시에 필요한 물건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의복의 정의라면.

         

       그러하다면 사람 역시 의복이 될 수 있음이다.

         

       애애앵-!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소리.

       박진성의 손짓에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저 멀리에서 다가온다.

         

       모기.

       지하실의 고인 물에서 번식하기를 반복하며 크게 수를 불리고, 검은 안개로 착각될 만큼 엄청난 숫자로 불어난 모기들이다.

         

       박진성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하인들이며, 동시에 살아있는 주사기이기도 하다.

         

       ‘가라.’

         

       애애애앵-!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모기와는 다른 생김새를 가진 그것들은 박진성의 손짓을 따라 자그마한 틈새로 파고들어 창 너머로 넘어갔다.

       설탕으로 만들어졌기에 끈적이는 부분이 있어 모기들 몇몇이 거기에 착 달라붙으며 버둥거리다가 죽는 사고가 있기도 했지만, 모기들은 그러한 시체를 넘고 넘어 창밖으로 넘어간다. 아니, 오히려 달라붙어 죽은 모기 사체 덕분에 더더욱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도 보인다.

       모기 사체가 달라붙은 곳은 더 이상 끈적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

         

       그렇게 창 너머에 있는 과격파 시크교도들을 덮친다.

       아열대 지역에서나 자라는 종류의 모기들이, 그들의 피부에 가시를 꽂는다.

         

       그들이 매우 놀라며 도망을 쳐도 날갯짓으로 따라붙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도 옷 안까지 파고, 피부를 연신 때려대는 손짓에 터져나가면서도 끊임없이 따라붙으며 그렇게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행한다.

         

       피를 빤다.

       그리고, 박진성의 명령에 따라 중간 숙주의 역할을 해낸다.

         

       그리고 박진성은 그러한 모기들의 용기 넘치는 모습에, 헌신적인 모습에 크게 감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됐군.’

         

       저들은 감염되었다.

         

       모기를 중간 숙주로 두며, 사람을 종숙주로 삼는 기생충.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반크로프트 사상충(Wuchereria banerofti)’에 훌륭하게 감염이 되었다.

         

       그래.

       저들은 이제 반크로프트 사상충이 입는 옷이자 집이 되었다.

         

       ‘장작은 타들어 가지 못하였고, 그 안에 벌레가 알을 낳았으니. 과연 자연의 이치가 이러하다.’

         

       바싹 마른 장작은 오직 그 자체로만 존재하던가?

       아니다.

       장작을 거처로 삼고, 의복으로 삼는 이들은 얼마든지 존재하는 법이다.

         

       껍질 대신에 나무 사이로 파고들어 그것을 거처이자 껍질로 삼는 배좀벌레조개(Teredo navalis)가 그러하고, 목재를 우리 집이자 뿌리 내릴 곳으로 삼는 곰팡이나 버섯이 그러하고, 썩은 나무를 파먹으며 살아가는 굼벵이도 그러하다.

         

       동물부터 식물, 균류부터 어류까지.

         

       세상의 이치가 이와 같다.

         

       그리고 그 이치가 지금 이곳에도 적용되었음이니.

       저들은 이제 제 몸에 파고든 반크로프트 사상충의 껍질이요 의태를 위한 옷이요 모든 것을 내어주는 훌륭한 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인도로 돌아가게 되리라.

         

       ‘내 거처에 침입했다는 사실을 알리면 바로 국외추방이 될 터이니.’

         

       그리고 그렇게 돌아간 저들은 폭발적으로 사상충을 감염시키게 될 것이다.

       그것도 시크교도들을 중심으로.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울 것이며,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

         

       왜냐고?

         

       반크로프트 사상충은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기생충.

       그리고 그 지역 중에는 인도가 포함된다.

       특히 저들을 문 모기 역시 인도에서 볼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니-

         

       하하.

       인도의 기생충에 인도인이 감염된다.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여기에 어디 의심할 여지가 있으랴?

         

       ‘그리고 하나만 쥐어 돌려보내는 것은 정이 없음이라.’

         

       그리고 거기에 덤으로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기생충들도 감염시켰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이 기생충 박멸 운동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기 전에 볼 수 있었던 기생충에 감염시켰다고 하는 것이 옳겠지.

         

       그래.

       저들은 감염원이며, 오염된 옷이며, 생체 폭탄이다.

       그리고 저들 하나하나가 박진성이 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 매개가 될 것이며, 아슈토쉬 싱이 시크교도들을 쉬이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재해가 될 것이다….

         

       ‘뭐. 가벼운 선물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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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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