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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4

    <774 – 용사답게(20)>

     

    저승으로 튀어버린 의리 없는 유피의 원혼들과 달리 이슈타르의 원혼들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무르무르는 이 기개 있는 원혼들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원혼이면 모름지기 제가 달라붙은 숙주를 조져버릴 각오로 저렇게 끈질기게 붙어있어야지! 겁 좀 먹었다고 복수를 할 기회를 깔아줘도 달아나는 것들이 무슨 원혼이냐?”

    “근데 쟤들은 왜 안 달아나지? 솔직히 이슈타르가 유피보다 훨씬 강하지 않나? 성검에 베이면 원혼이고 뭐고 더 아프게 딜 들어갈 텐데.”

    “쉿! 원혼들이 멍청해서 몰랐을 수도 있어요.”

    “니세의 말을 귀담아 들으라냐! 40%는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는 조언이다냐!”

     

    멍청존버설이 빠르게 신뢰를 잃는 사이, 무르무르는 기개 있는 원혼들이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챘다.

    이상한 건 저쪽뿐만이 아니라 당장 이슈타르를 도륙내려고 달려들었던 교수들의 사령도 마찬가지였다.

    진즉 개싸움을 벌여야 할 원혼들이 죄다 우두커니 선 채로 멀뚱멀뚱 있는 것이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이지?

    꼭 고위몬스터 앞에서 상급몬스터들이 주눅에 든 모습이 이랬는데…

    악령의 시선을 따라간 무르무르는 충격을 받았다.

     

    <고위악령 – 파케 히우그마그>

     

    몰로켓 최단기황제로 두고두고 놀림을 받는 전대 황제는 놀랍게도 악령으로서는 1티어의 자질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금기보관소에서 온갖 금기를 연구하고 사악한 지혜를 수집해 전 국민을 지배하려 들었던 정신수양은 비록 그의 원대한 꿈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죽어서나마 고위몬스터가 되도록 도왔다.

    이슈타르조차도 그 강력한 기척이 머리 위에 떡하니 나타났으니,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죽어서 전성기를 맞이한 파케 히우그마그.

    전대황제는 자신에게 말대꾸를 하던 악령교수들을 눈빛만으로 제압하고는 가만히 선 채로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솔직히 두 눈에서 시퍼런 귀화가 남들의 수백 배로 강렬하게 타오르는 황제는 보기만 해도 건드리면 아주 좆되겠다 싶은 무언가가 느껴졌다.

    괜히 악령교수들마저도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찾아온 침묵.

    긴 침묵의 뒤로 황제가 입을 열었다.

     

    “아바마마께서 재단과 드디어 결전을 치르셨군. 재단의 이사장은 세계수를 타락시켜 아차원의 외신의 권속을 소환하고 어둠의 힘으로 세계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고.”

     

    모든 상황을 파악한 그가 선황의 자식이니 선황의 편을 들지, 자신을 죽인 용사에게 복수하고자 재단의 편을 들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파케 히우그마그에게 무르무르가 간교한 꼬드김을 입에 담으려 들었다.

     

    “제국의 황제였던 고귀한 몸에게 제국교수 무르무르가 인사를 올리나이다. 저는 황제폐하의 억울한 죽음의…”

    “그 입 다물라.”

     

    파케 히우그마그는 길게 말하지도 않았다.

    눈을 번뜩였고, 사악한 어둠의 비의로 교수악령 서너 구를 그 자리에서 지옥의 업화를 불러내어 영혼 자체를 불살라버렸다.

    우리 편이라고 신나서 말을 걸려던 궁수 스콜라의 입을 신중한 유피가 재빨리 틀어막았다.

     

    “내세에서의 죽음을 맞이한 이후, 용사를 원망하였고 오래도록 방황하였다. 무엇이 부족하여 패배했는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한 걸음을 위로 내딛기 무섭게 추락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오랜 숙고 끝에 나는 답을 찾았다.”

     

    파케 히우그마그는 용사에게만 패배한 것이 아니었다.

     

    “다크프린세스. 어둠의 비의로 그녀에게서 밀린 것이 내 패도가 무너진 이유였다. 황제의 자리는 한 번이나마 취했으니 아바마마를 향한 원한은 없다. 짐을 죽인 용사조차도 원한을 품을지언정 넘을 수 없는 벽이라 여기지는 않았다. 다크프린세스는 다르지.”

    “…!”

    “그녀의 비의는 악령이 되어 생전보다 강해진 지금도 넘어설 자신이 없다. 그래서 용사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그녀를 관찰했지. 그리고 그녀의 심상을 비집고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보아서는 안 될 엄청난 비밀을 보고야 말았지.”

     

    전대황제는 다크프린세스를 보고 대체 무엇을 깨달은 걸까.

    오크노디의 남모를 비밀?

    강력한 어둠의 사령술?

    외신 소환의 비술?

    피아를 막론하고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오크노디의 바닥을 알 수 없는 강함.

    그 강함에는 모두가 호기심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이 지켜보는 오크노디.

    하물며 전대황제쯤 되는 이의 시야라면 무언가 다른 것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유령만이 볼 수 있는 시야.

    색다른 견해.

    숨겨진 비밀.

    그 정체가 마침내 폭로되었다.

     

    “오크노디. 그 아이는 무수한 차원을 침략하고자 넘보는 유희세계의 지배자, 외신의 수많은 자아의 편린 중 하나가 깃든 존재다.”

    “잠깐, 오크노디는 그런 위험한 아이가 아니야! 멋대로 그 아이를 헐뜯지 마!”

    “후후. 용사여. 그대가 아는 오크노디란 대체 얼마나 비좁은 의미의 오크노디이지? 아카데미 재학시절, 현생의 기억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 않나?”

    “크읏…!”

    “두려운 기억이었다. 마법과도 같은 힘을 지닌 광선총과 우주함대를 지닌 초고도문명이 <플레이어>의 손에 멸망하고, 속도를 늦추면 폭발하는 차량 속에서 생존을 위해 질주해야만 하는 생명들이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며 <플레이어>는 돈을 걸고 즐겼지.”

     

    현대에 존재하는 수많은 게임.

    그것을 즐기는 플레이어.

    그 모든 광경은 파케 히우그마그의 눈에는 그저 삼천세계의 비극을 창조하고 즐기며 실컷 유린하다가 내팽개치는 잔인함으로만 보였다.

     

    “그 어떤 세계도 한 번의 멸망으로 진정한 멸망을 맞이할 수 없었다. 시간을 되돌리고, 세계선을 비틀고, 세상의 모든 법도가 역행하며 뒤틀리는 악마적인 광경을 그대들은 상상할 수 있는가?”

    “?!”

    “검 한 자루로 행성을 반으로 가르는 꼬리 열 개 달린 미친 십미호 수인이 우주의 성좌를 사냥하며 다니는 외신들의 세계가 저 너머에는 펼쳐져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란, 중간계란 그 광활한 우주의 변방 중의 변방에 외따로 선 너무나도 작고 초라한 세계에 불과함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파케 히우그마그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강해지지 않으면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이런 가혹한 진실들이, 언젠가 그 고강한 외신들이 우리 세계에도 침범하리라는 사실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가?”

    “믿을 수 없어!”

    “그렇다면 보여주지. 내가 본 것을 이 자리에서 너희 모두에게도.”

     

    파케 히우그마그의 기억동조마법이 대치중인 용사파티와 최후의 배신자 교수 무르무르, 살아남은 모든 악령들을 집어삼켰다.

     

     

    * * *

     

     

    하늘 높이 솟구친 롤러코스터.

    놀이를 위해 만들어진 놀이기구는 허공에서 레일이 끊어지며 열차가 공중을 향해 내던져진다.

    수백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호수에 처박히고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한 여자가 그 광경을 보며 박수를 치고 웃었다.

    이슈타르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것이 <플레이어>라는 존재임을.

     

    “우와, 대단해! 관광객이 걸어서 나가면 이용요금이 많이 들고 놀이기구 운행 중에 사망자가 나오면 벌금이 나오니까 호수 아래 지하에 정차공간을 만들고 관광객을 다 밀어넣었구나! 안에서 굶어죽어도 그건 운행이 종료된 뒤의 일이니까 벌금도 나오지 않아! 시체도 호수 밑에 처리할 수 있어! 완전 짱이야!”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것은 순수한 기쁨을 보였다.

    수많은 사람을 벌레처럼 죽이는 과정을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라며 칭찬했다.

    이슈타르의 영혼과 연결된 성검이 말했다.

    진위판별의 결과, 저것은 틀림없는 ‘진실’이자 ‘진심’인 발언이라고.

     

    “아버지, 어찌하여 이러시는 겁니까!”

     

    눈을 돌리니 자식을 묶어두고 눈앞에서 어린 손녀를 범하려는 미친 왕의 모습이 보였다.

    왕은 울고불고 소리치는 손녀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쥐어 당기며 친자식에게 말했다.

     

    “너는 내 피가 섞인 자식이 아니야. 아내가 불륜으로 낳은 자식이지. 플레이어의 <빙의>가 이어지는 것은 피가 이어진 혈족뿐. 그러니 피가 이어지지 않았으면 다시 섞어야 하지 않겠니? 그래야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걸.”

     

    혈족의 몸을 빼앗아 부활하는 미친 노괴에 의해 지배당하는 플레이어의 가문.

    이곳에서는 근친상간과 고문, 필요 없는 혈족을 향한 암살이 끊이질 않았다.

    눈 뜨고 볼 수 없을 참상에서 고개를 돌리자 그보다 더한 광경이 펼쳐졌다.

     

    투쾅 콰과과과광!!

     

    잘 발전된 도시에 수많은 재앙을 풀어놓으며 심드렁한 얼굴을 한 플레이어 시장의 모습이 전광판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아 지겹네. 건물개발도 다 끝나고 재난소환도 하는데 어떻게 참신하지가 않냐? 귀찮으니까 그냥 다 죽어라. 딴겜이나 해야지. 응? 이거 뭐야. 운빨로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

     

    확신했다.

    파케 히우그마그의, 전대황제의 말이 옳았다.

    외신들은 미쳤다.

    외신의 권속들이 즐기는 세계는 결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는다.

    이 세계는 지옥이었다.

     

     

    * * *

     

     

    “이 모든 기억이… <오크노디>를 통해서 본 기억이라는 거야…?”

     

    믿을 수 없어.

    그렇게 착한 아이가.

    말도 안 돼.

    손발을 덜덜 떠는 이슈타르.

    파케 히우그마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선고했다.

     

    “그렇다.”

     

    저 모든 악행을 만끽하던 외신.

    온갖 세계에 흩뿌려진 외신의 파편 중 하나가 바로 오크노디였다.

    파케 히우그마그는 지금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허나 영원할 것만 같던 떨림도 이내 가라앉았다.

    이슈타르는 자신의 품에 안겨 똘망똘망한 눈으로 “잠이 안 옴!”이라며 불평하던 오크노디도, 감정을 되찾고 배시시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던 오크노디도 모두 기억했다.

     

    “뿌리가 같더라도 모두가 같은 존재로 변모하지는 않아. 그 황제의 아래에서도 당신 같은 쓰레기가 나왔나 하면 매스각키처럼 훌륭한 여제도 나왔어.”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느냐에 따라 같은 가능성을 지니고도 전혀 다른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

     

    “설령 오크노디가 외신의 파편일지라도 그 아이는, 그 아이만큼은 저런 존재로 전락하게 두지 않을 거야. 내가, 이 용사가 반드시 지켜내겠어!!”

     

    놀란 듯이 그녀를 쳐다보던 파케 히우그마그.

    전대황제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과연. 이래서 용사인가. 같은 절망을 마주하고도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다니. 이 세계에도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았군.”

    “당신 같은 사람도 세계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존재해?”

    “무엇을 위해 황제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냐. 내 것이니까,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거다.”

     

    파케 히우그마그의 손이 악령교수들을 가리켰다.

    그 손에 닿은 교수들이 연이어 불타 소멸했다.

     

    “그러니 단언하지. 오크노디의 외신타락을 막는다. 그 의지가 변치 않는 한, 나는 네 편이다.”

     

    자신을 죽인 용사와 자신이 죽인 전대황제.

    누구보다도 불편한 관계인 두 사람이 결심했다.

    더 큰 악과 맞서기 위해 산 자와 죽은 자가 한뜻이 되어 힘을 합치기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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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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