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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4

        

         

       ‘간이 신사’라는 것은 이름대로 간이로 지어진 신사다.

       이상한 말버릇을 가진 정치인이 하는 것처럼 ‘어린이는 보호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어리기 때문입니다.’ 등의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을 뭔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지만,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신사라는 것이 일본인들에게 있어 일상적이고, 문화에 아무리 깊게 녹아있다고 한들- 그 본질은 ‘종교 시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 시설은 필연적으로 초월적인 존재, 미신과 관련이 되어 있고 말이다.

         

       보통 이러한 종교 시설에서 행해지는 것은 참회, 신앙, 기복 행위 등이다.

         

       일본의 신사에서 행해지는 것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해마다 찾아가서 새해에 평온하기를 빌면서 참배하고, 일정 나이가 되었을 때 인생에 불행이 찾아오지 않기를 빌면서 기원하고, 지역마다 남아있는 축제에서는 농사부터 시작해서 마을 전체의 안정까지-

       수많은 기복과 기원이 행해지는 시설이 바로 신사라는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 시설’을 간이로라도 옮겨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 아니다.

         

       몇몇 종교들이야 어느 곳에서 기도를 드려도, 어느 곳에서 설법을 해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들의 신은 신전이나 법당 같은 곳에 머물러있지 아니하며,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하지만 일본의 신사는 그렇지 않다.

         

       일본의 민속종교인 신토(神道)는 기본적으로 신사 안에 신을 모셔놓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토리이나 금줄 같은 것으로 신과 인간이 머무는 곳의 경계를 긋고, 신성한 곳과 속세를 가른다. 신이 머무시는 곳을 한정 짓고, 청결하고 깨끗한 이들로 하여금 정성을 다해 신을 모시도록 한다.

         

       그것이 복을 주는 신이건 재앙을 주는 신이건 이러한 대전제는 변화하지 않는다.

       다만 복을 주는 신은 모시기 위하여, 재앙을 주는 신은 가둬놓기 위하여 이러한 일을 행하는 것뿐.

         

       그렇게 신이 거하는 곳을 한정을 짓고 신앙을 보내는 것이 바로 이들이 행하는 기본 원리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기조가 순수하게 종교적인 원리만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기도 했다.

       이렇게 종교가 속세와 분리되는 것은 단순히 신앙뿐만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파이를 줄여서 자신이 먹기 쉽게 만들기 위한 의도, 종교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계급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림수 등 여러 가지가 섞여 있어서 만들어진 것이기도 했으니까.

         

       계급이란 다름으로 이루어지고, 몰이해는 그것을 심화한다.

       그리고 그 몰이해를 믿음이란 이름으로 포장하면 그렇게 계층은 굳어진다.

       신성하면서도 침범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으로.

         

       신토는 그렇게 운영됐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신사에서 매해 축제를 열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려고 노력해도.

       속세와 신사를 분리하기 위한 그들의 의도는 현재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간이 신사’를 길거리에 설치하고, 거기서 무녀가 기도하게 만드는 것은 독단적으로 행할 수 없는 행위다. 작게는 그곳이 신사로 성립되기 위한 상징물이나 신체(神體)의 분체(分體)를 옮겨놓아야 하기에 해당 신사로서는 쉬이 허락할 수 없는 것이며, 크게는 신사의 위엄과 신비함- 다르게 말하면 ‘체면’에 문제가 생긴다면서 신사 모임이나 거대 신사에서 쉽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특유의 매뉴얼 중시 기조로 인해 ‘전례가 없다’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거나, 아주 작은 것까지 세세하게 정하려 해서 질질 끌리다가 흐지부지되거나 뒤늦게 설치가 되는 등의 문제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그렇기에 이례적이다.

       미나토구에 간이 신사가 세워진 것은 말이다.

         

       종교인으로서도 그렇고….

       자신들 나라의 일이니까 어렴풋이 그런 기조를 눈치채고 있었던 미나토구의 사람들 역시도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미나토구 사람들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이렇게 신경을 써주고 있었구나.’

         

       라고 말이다.

         

       실제로 이렇게 빠른 속도로 간이 신사가 세워질 일은 드무니 그들의 의견이 틀리지는 않았다.

       특히나 간이 신사가 세워진 이유도 나쁜 일을 겪은 이들을 위로하고, 앞으로 이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께 기도를 올린다는 것이지 않은가.

         

       당연히 미나토구 사람들은 감동을 받을 수밖에.

         

       그렇기에 미나토구 사람들은 그때 있었던 상흔을 보면서 한숨을 푹푹 쉬더라도, 자신이 입었던 손해를 장부에서 확인하면서 시름을 앓더라도, 보험사 직원과 멱살을 잡고 싸우면서 보상이 너무 적니마니 하면서 싸움을 벌이더라도.

       자신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기도를 올리는 무녀와, 그들을 위해서 세워진 저 간이 신사를 보면서 희망을 품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그들을 신경 써준 것이 ‘신사’라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신사는 그들의 문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종교의 경우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뭔가 목적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미나토구 사람들은 다른 종교인들이 행하는 봉사나 자선은 그 자체로 숭고하고 존중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크게 감동하지는 않았다. 결국 그들의 목적은 자신들이 속한 종교가 좋은 이미지를 갖기 위해 행하는 행동이자, 신도를 끌어들이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선교 행위라는 사실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설령 머릿속에 그것을 명확하게 떠올리지 않더라도 무의식중에라도 그것을 떠올리며, 그렇게 조금씩은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신토는 어떤가.

       전통적인 그들의 종교다.

       그들의 삶에 녹아있는 삶이다.

         

       신사를 한 번도 안 가본 일본인이 존재하기는 하던가?

         

       말하자면 신사는 그들의 역사요, 일본 그 자체를 보여주는 또 다른 면이다.

         

       그렇기에 간이 신사가 그들을 신경 쓴다는 것은 곧 명확하지 않은 거대한 집단- ‘일본’, ‘국가’, ‘민족’, ‘전통’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존재에게 포옹이 된 듯한 안락함을 느낄 수 있으며, 어느 거대한 집단에 소속되고 자신이 그들의 일부가 되었음을 실감을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그러한 도움을 받을만한 존재임을 긍정 받음으로써 ‘나는 이 사회에 필요한 존재다.’라는 실감을 받게 해주었고.

         

       비유하자면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이름 모를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면 감사함을 느끼지만, 같은 동문, 같은 동아리, 같은 회사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을 때는 감사함과 더불어 유대감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

         

       미나토구 사람들이 바로 그러했다.

         

       그들은 힘든 자신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신사에 감동하였고, 힘든 와중에도 헌금할 돈을 빼서 헌금함에 집어넣었다. 그럴 여유가 없는 이들은 신사에 찾아가서 참배를 올리는가 하면, 자신도 같이 기도를 올리겠다고 했다가 무녀의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마음만으로도 신께서 기뻐하고 계십니다. 신께 감사를 올리기 위해서는 빠르게 피해를 복구하시고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가세요. 신께서는 그것을 원하십니다.’라는 완곡한 거절을 받고서야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간이 신사는 미나토구 사람들의 마음에 완전히 녹아들었다.

       재난이 일어나기 전이라면 간이 신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신사가 세워진다고 해도, 그 신사가 돈을 처발라서 광고한다고 해도 콧방귀도 뀌지 않았을 테지만-

       신사로서는 전화위복이라 할 법했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을 위해 행한 선한 행동이 좋은 결실로 돌아왔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모든 게 좋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게….

         

       ‘…저 사람들은 알까? 이 신사가 그 암여우랑 관련이 있다는걸….’

         

         

         

         

        * * *

         

         

         

         

       미나토구에 세워진 간이 신사의 모습은 대단한 것이 없었다.

       영산에서 자라난 나무들을 잘라서 만들었다고는 하나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목재로 짜 맞춰 올린 전통적인 느낌의 건물에 지나지 않았고, 3층으로 이루어진 신사는 주위에 널려있는 고층 건물이나 부자들의 저택 때문인지 더더욱 초라해 보였다.

       토리이나 금줄이 없다면 신사 느낌의 인테리어를 한 료칸이라고 착각을 할 수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아마 주위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본래 풍경이라는 것은 서로 어우러져야 그 효과가 극대화되기 마련인데, 이 신사는 마치 멀리서 뚝 떼서 갖다 붙인 것처럼 이질적인 느낌이었으니까 말이다.

       뭐, 간이 신사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겉 말고 안은 괜찮은가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나름 신사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을 한 티는 나기는 하나, 곳곳에 뭔가 부족한 느낌이 하나씩 보였으니까 말이다.

       고급 목재를 사용했기에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야 하는데, 건물을 세울 때부터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인지 곳곳이 틀어지며 틈새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목재 몇몇 개는 벌레를 먹은 것처럼 조금 흉한 형태를 이룬다. 거기다가 이름난 목수가 만졌다고는 하는데 이상하게도 구조는 복잡하거나 아름다운 대신에, 가건물을 짜올리는 것처럼 효율적이고 서두른 흔적이 가득하다.

         

       게다가 구조는 또 어떤가.

       일반적인 신사와 비슷하기는 한데, 이게 료칸인지 신사인지.

       안에 신사와 관련된 이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거처를 만들기 위한 구조라고는 하나, 신체를 모시고 신께 기도를 올린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너무 성의가 없는 구조가 아닌가. 신과 인간의 거처는 명확하게 분리가 되어야 하거늘, 1층에 신을 모시는 곳을 만들어놓고는 그 위에 사람이 머무를 숙소를 짓는다는 것은 너무 무신경한 수준이다.

         

       신의 거처 위에 사람이 거처를 만들고 머무를 수 있도록 만들다니.

       마치 사람이 신의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불경하다고까지 느껴지는 구조다.

         

       게다가 지하는 또 어떻고.

       신사에 파견된 무녀만이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지하는 커다란 돌덩이를 가져다가 문을 만들어놨는데, 묘하게 지저분하고 음산한 느낌이 드는 것이 도저히 ‘신사’의 지하에 있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안으로 더 들어가면.

       저 커다란 돌덩이를 치우고 음산한 느낌이 드는 돌덩이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기도를 올리는 곳이 있다.

       거기에는 신을 모시는 제단이 있다.

         

       1층에 존재하는 신께 기도를 올리는 장소가 아니라, 이 신사가 신사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신과 관련된 상징, 신과 연결된 신체, 신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 매개체가 바로 저 음산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 있는 것이다.

         

       돌로 만든 제단.

       길쭉한 돌 두 개가 다리가 되고, 널빤지 같은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올라가 있다.

       고인돌을 떠올리게 만드는 제단의 위에는 새까만 물질.

         

       썩은 한펜(はんぺん) 덩어리처럼 생긴 것이 제단 위에 올라가 있다.

         

       신께 올리는 공양물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어떠한 특별한 힘을 가진 신물이라도 되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저것이 바로 신의 몸이다.

       저것이 이 신사를 유지하게 만드는 존재이며, 옛적 신으로 추앙받았던 물건이다.

       신력을 무녀에게 주는 물건이며, 동시에 중계기다.

         

       그래.

       중계기.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의 무녀이자 이나리의 무녀이며,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섬기는 무녀인 사이고 리세와 연결된 중계기가 바로 저것이다.

         

       그리고 이 간이 신사의 무녀는 저것을 관리하기 위한 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

       중계기에서 보내지는 신력을 받아 몸에 저장해서 무녀 행세를 하고, 사람들이 보내는 기원을 모으는 관리인.

         

       미나토구의 사람들이 보내는 ‘주인 없는 기원’은 신사 곳곳에 설치된 상징과 주술에 의하여 한 곳으로 집약되고, 그것은 에너지와 사념이라는 그릇을 통해 하나의 방향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한 방향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주물(呪物).

         

       …그래.

       미나토구 한복판에 있는 간이 신사는 공장이다.

         

       주물(呪物)을 만들기 위한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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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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