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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6

    <776 – 용사답게(22)>

     

    검은세계수의 차원장벽이 무너지고 세상을 집어삼킬 기세로 끝도 없이 솟구치던 암흑마나의 밀도가 빠르게 낮아진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부정한 힘에 연합군 전체가 피폭의 위기에 처했던 상황.

    대괴수 체력올인을 저지하기 위해 선황이 암흑마나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오오, 선황폐하가 우리를 위해 암흑마나를 모두 끌어가고 계신다…!”

    “저분은 그저 단순한 폭군이 아니었던 건가?!”

    “제길, 우리는 선황을 또 숭배해야만 해!!”

     

    선황 역시 교장토벌의 숙원을 이룰 자가 오직 자신과 이사장, 저 글러먹은 작자뿐이라면 쉽사리 제 몸을 더럽히고 경지에 손상을 입힐 힘을 거두어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지금의 그에게는 오크노디라는 늘그막에 둔 우수한 양녀가 있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다.

    이슈타르.

    재단의 기함에 자살돌진을 하고도 모자라 기어이 검은세계수의 파괴에 성공한 당대용사라는 가능성을.

     

    “크하하하! 난세야말로 영웅이 빛나기 마련이지. 짐의 치세 아래 만들어진 평화로는 개화할 수 없었던 영웅이 이렇게나 가까이에 있었는가!”

    “선황. 놀랍군요. 당신처럼 용사를 적대시하던 자가 용사를 이 판 위에 끌어들이다니.”

     

    체력올인의 몸체 일부가 뒤틀리며 이사장의 얼굴로 그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그 괴사를 앞두고도 선황은 일말의 두려움이나 흔들림도 없는 세계의 지배자 특유의 오만한 얼굴로 그를 깔보았다.

     

    “신의 졸개 따위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겨서야 인류는 언제까지나 신의 장기말로 전락할 뿐이다. 네놈도 그 부분에서는 이해가 일치했으나 사법과 외법을 쌓아올린 힘으로 세계를 집어삼키겠다는 네 방식은 틀렸다. 보아라, 이 많은 적을. 짐조차도 만백성의 원성을 들으면서도 이만한 적을 만들지 못했다.”

    “…운이 나빴을 뿐입니다. 제게도 충분한 가능성은 있었습니다.”

    “악운을 이겨내는 것이야말로 용사의 자질이 아닌가. 그대가 진정으로 재단을 통해 아카데미를 넘어서고자 한다면 ‘전대용사’로서 이 정도의 위기는 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선황의 조롱을 이사장은 순순히 수긍했다.

     

    “그렇지요. 운 앞에 쓰러지는 자, 역사에 그 이름은 수도 없이 널렸습니다.”

    “하면 보여라. 이 악운을 이겨낼 수가 무엇이냐. 벌레처럼 짓밟힐 미래가 어찌하면 바뀔 수 있느냐.”

    “멀리 볼 것 없이 ‘마중’을 나와있지 않습니까? 제 악운을 돌파하게 해줄 분들이.”

     

    선황의 의식영역이 이사장의 인도를 따라 무너진 세계수의 차원장벽 너머로 향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나였다.

    하나조차도 선황이 제 저력을 다해가며 틀어막았다.

    그런 괴물과 같은 얼굴이 셋이나 더 늘어섰다.

    <체 력올인패턴파악이좋아 전사>.

    대괴수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무려 셋이나 더!

    선황만 이를 본 것도 아니다.

    연합군의 모두가, 재단의 잔당들이 그 광경을 봤다.

    이건 무리야, 다 끝났어.

    마침내 역전이다. 역시 이사장이야.

    만인의 절망과 희망을 부른 세 대괴수 후보자들이 마침내 행동을 개시했다.

     

    “음?”

    “…이건 대체?”

    “뭐지, 저것들. 이사장의 원군이 아닌 건가?!”

     

    세 체력올인의 공격대상은 대괴수 체력올인이었다.

     

     

    * * *

     

     

    엔딩분기 수집기.

    정상적인 진행 대신, 특전 수색만을 위해 온갖 기상천외한 짓거리를 저지르는 캐릭터.

    체력올인 시리즈는 각 회차별 탐색목표에 따라 항상 기괴한 플레이를 저질렀다.

     

    “157. 넌 무슨 회차였지?”

    “지식을 바치면 힘을 하사하는 지식의 신에게 유튜브 정보를 다이렉트로 무한대로 꽂아주면 어디까지 강해지는지 확인하는 회차.”

    “와 그거 아직도 기억나네. 인류를 지배하려면 한번 디스토피아를 만들고 잿더미 위에서 관리하는 편이 훨씬 적은 지식으로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지식의 신이 중간계를 개박살 내놓은 회차 아니냐?”

     

    지식의 종말.

    157회차가 본 엔딩분기의 이름이다.

     

    “그럼 네가 가진 힘도 지식의 신에게 하사받았던?”

    “그래. 온갖 마도지식을 대가로 건강을 상실하는 저주를 잔뜩 받았던 회차다.”

     

    체력에 몰빵한 체력올인에게는 이보다 하찮을 수가 없는 저주였다.

    날먹저주를 받고 잔뜩 배운 지식의 내용은 마도술식에 대한 이해와 응용.

    157회차에서 습득한 술식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는 추후 오크노디가 플레이하는 모든 회차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더 많은 마나를 쌓는 <상급마나술>.

    더 정밀하게 마나를 다루는 <마나제어술>.

    사실상 오늘날의 오크노디를 탄생하게 만든 시초나 다름없는 커다란 회차였다.

    심지어 그 많은 추후의 플레이들도 <자동보정>을 통해 157회차의 ‘흉내’를 내는 플레이에 불과함을 고려하면 그는 가장 똑똑한 체력올인이기도 했다.

     

    “229. 332. 너희는 어떤 회차였지?”

    “229회차는 히든아이템 <불사조의 반지>를 착용하고 죽으면 반지의 효과로 살아나는 기능에서 숨겨진 술식을 발견, 착용자가 죽을 때마다 반지의 힘이 오히려 더 상승하는 현상을 탐구하는 회차였다.”

    “그건… 정말 이상하군.”

    “간단한 기믹이다. 반지를 착용하고 죽을 때마다 소실되는 착용자의 ‘경험치’를 불사조가 받아먹고, 그렇게 먹은 경험치가 일정수치를 넘어서면 현계에 불사조가 강림하는 함정아이템이지.”

    “강하냐?”

    “드래곤 교장과 개싸움이 성립할 정도로는.”

    “미쳤군.”

     

    고대의 용종과 맞먹는 신화생물의 강함이란, 엔딩분기에 포함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엔딩의 내용은 불바다니 화염지옥이니, 불사조를 보고 떠올릴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불사조와의 결전에서 대륙이 개판이 난 덕분에 교장이 싫증을 느끼고 중간계를 유기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원본이 말한 ‘외신’과 관련된 존재가 불사조의 몸을 빌린 모양이니, 그쪽 본진에도 깽판을 치러 떠났던 거겠지.”

    “황당하군. 그래서, 229회차의 네가 얻은 능력은 뭐였지?”

    “부활이다.”

    “잘 죽지도 않는 우리한테 그게 필요가 있냐?”

    “100초당 1회 사망 회복. 이 기능을 이용하면 다른 차원계의 정령왕들에게 얻어터지면서도 타 차원계를 둘러보고 보물도 들춰보고 별짓을 다 할 수 있었지.”

     

    맞아도 부활하니 정말 이벤트 탐색용으로 온갖 곳을 다 쏘아 다니며 보스몹과 보물, 기믹 정보를 쓸어모으는 용도로 사용된 회차인 셈이었다.

    157회차는 궁극에 달한 자신의 지식으로도 엿볼 수 없을 차원계의 내밀한 비밀들을 밝혀낸 229회차의 자신을 조금은 인정하게 되었다.

    동시에 자신들이 얼마나 특수한 회차의 존재들인지도 이해했다.

     

    역대 최고의 마도지식.

    역대 최장의 생존기간.

    이 뒤를 잇는 332회차의 자신은 대체 어디서 뭘 하는 미친 놈이었을까.

    157회차뿐만 아니라 229회차도 강한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우리만큼 대단한 뭔가를 뒤의 회차에서 저지를 수 있었을까?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난 정말 별거 없다.”

    “역시, 그냥 머릿수를 채울 용도로 불렸나?”

    “우리만큼은 아니어도 뭐가 있긴 하겠지. 부끄러워 마라, 332회차. 우리보다 약한 건 수치가 아니다.”

    “별건 아니고, 맵 밖의 우주공간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우주탐사를 조금 했을 뿐이다.”

    “…뭐 하는 새끼야 이건.”

    “…너 우리보다 약한 거 맞냐?”

     

    다니라는 아카데미는 안 다니고 우주여행을 하다니.

    발상도 발상이지만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가 더 신기할 노릇이었다.

     

    “뭐 가지고 갔냐?”

    “행성 내 종말이벤트와 연결되는 금단의 마도구는 다 끄집어냈다. 에어오딜론에 마법사는 다 던져주고 각 차원의 좌표를 직접 여행해서 찍었지. 아마 내 뒤의 회차에서는 모든 차원의 좌표를 숙지하고 있기에 마도구의 도움 없이 모든 차원계로 향하는 차원문의 생성이 자유롭게 가능할 거다.”

    “하. 그럼 교장 보내고 일백차원 연속러쉬에서 차원 하나 스킵할 때마다 쓰이는 넘버즈 마도구도 아낄 수 있다는 거 아니야?”

    “해당 차원계와 연결된 빌런을 대신 제물로 바치면 못 할 것도 없지.”

    “어쩐지 격리도시니 뭐니 하는 곳에 이상한 빌런들을 수집하고 있었더라니. 이번 회차의 나는 정말 생각이 깊었군.”

     

    157회차와 229회차, 332회차는 서로를 인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힘을 합쳐 오크노디를 도우려면 한 가지의 이해관계가 더 일치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개고생해가면서 탐색하고 얻은 정보를 ‘그게’ 대신 보는 건 어떻게 생각하지?”

    “오크노디. 설마 덩치 큰 인간거구남캐만 파던 내가 미래에는 그런 작은 여캐나 만들고 여캐딸이나 치는 변태로 전락하다니…”

    “머리가 조금 어지럽기는 하군.”

     

    각자 적잖이 고생하며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그 결실을 누리는 대상은 자신들이 아닌 ‘오크노디’다.

    그 모든 희생의 위에 올라선 사람이 멋진 인간 남캐가 아니라 어울리지도 않는 작은 인간 여캐라니,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어떻게 되어버린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래의 자신의 선택을 믿을 수가 없다.

     

    “그래도 애들이 참 열심히 살고 있었지. 연합군이니 뭐니, 우주로 간 회차에선 꿈도 못 꿨어.”

    “아무리 부활해도 있는 게 나밖에 없으니까 더럽게 고독하더라. 역시 사람은 사람이랑 살아야 해.”

    “내 지식이 이렇게나마 모두를 위해 쓰이고 있다면 보람차기는 한데… 오크노디는 지금 이 판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157회차가 갑자기 억울한 기분에 한마디 했다.

    229회차와 332회차도 조금 억울해졌다.

    왜 본체는 손 하나 까딱 안하고 분신생성 딸칵 하고 날먹을 하고 있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자신들을 보내면서 했던 오크노디의 말을 떠올리니 조금은 본체의 마음도 알 것 같았다.

    무력했던 시절.

    온갖 히든요소를 긁어모아서 조금이라도 더 강해서 돌아오리라 다짐했던 시절.

    그때의 굴욕.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회차들.

    그런 자신들이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친구들을 지키고 세계를 지킨다.

     

    “뭐, 이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지도.”

     

    후련한 얼굴로 대괴수가 되어버린 자신들의 분신을 향해 달려드는 세 명의 체력올인들.

    그들의 오랜 한을 풀 결전이 시작됐다.

     

     

    * * *

     

     

    [작은 것아. 무슨 기회를 줬던 거냐?]

     

    드래곤 교장이 보기에 오크노디는 그리 순하기만 한 맹탕이 아니었다.

    암만 봐도 좋은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는데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짓더니 훈훈한 얼굴로 떠나가는 녀석들 보기가 어딘지 모르게 찝찝했던 것이다.

     

    “아 그거요?”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대답이 아주 가관이다.

     

    “삼위일체 아세요?”

    [셋이 하나를 이룬다?]

    “케르베로스는요?”

    [머리 셋 달린 머저리들. 늘 의견이 갈려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법이 없는 멍청한 놈들이지. 삼백 년 전까진 경비견으로 길렀는데 화딱지가 나서 그냥 보신탕 끓여 먹었다.]

    “헉, 그렇다고 체력올인들을 보신탕 끓이시면 안 돼요! 그건 인육이잖아요!”

     

    생뚱맞은 말이지만 대화의 흐름을 고려하면 아주 무시무시한 생각이 엿보이는 발언이었다.

     

    [인간 케로베로스가 안 될 기회를 줬던 거냐?]

    “하나쯤은 바이올린에서 꺼낸 영혼을 심어주면 연주가 질린 영혼이 열심히 도와줬을 거라고 봐요! 그럼 셋이 단합도 안 되고 제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겠죠!”

    [다음 대 마왕이 정해진다면 니가 딱이구나.]

     

    교장조차 혀를 내두를 소악룡스러운 발상이었다.

    천만 다행히도 체력올인 삼형제는 인간케로베로스가 되지 않았고 열심히 대괴수와 치고박고 싸웠다.

    싸우기는 싸우는데…

     

    [뭐 저리 시원찮냐?]

    “교장님이 보는 광경 저한테도 보여주세요!”

    [아니, 대괴수한테 지는 건 아닌데.]

    “저한테도 보여주세요!”

    [이사장한테 찢기겠는데?]

    “으앙, 나도 보여줘!”

     

    교장은 이 악물고 절대로 안 보여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네가 보는 광경을 나에게도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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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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