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76

        

       ‘그리고 난 그 미친 사람의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이죠…에휴.’

         

       나루미는 한숨을 쉬었다.

         

       인생사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지만, 자신이 괴롭혔던 사람에게 목줄을 붙잡히는 신세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아마 짚대 장자(わらしべちょうじゃ)가 강림한다고 하여도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 지혜와 관련된 거니까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天宇受売命)님과 비교하는 것이 맞나…?’

         

       솔직히 동화가 아니라 신화 속 여신이 등장한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것 같다.

       이지메의 피해자가 화려하게 날아올라서 복수를 하는 내용이라니.

       너무 뻔하디뻔하면서도 현실에서 일어날 일이 거의 없을법한 내용이 아니겠는가….

         

       아니, 차라리 거기서 끝이라도 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 창작물은 끝이 존재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지 않은가.

       만약 창작물이었다면 나루미 자신은 자유를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하지만 이건 현실이다.

       심지어 자신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 반쯤 미쳐있는 것 같으니 뭐….

         

       일상 속의 행동거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무슨 광신도라도 되는 것처럼 이상한 목상을 빤히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지를 않나, 목성의 기운을 더 잘 받겠다는 이유로 별이 잘 보이는 밤에 신사 지붕 위에 올라가서 기도를 올리지를 않나, 평소에는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은근하게 묻어나오는 광기를 보여주면서 신주가 나타날 때는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방긋방긋 웃고 다니지를 않나….

         

       ‘무섭다고요. 정말로.’

         

       과거 사이고 리세에게 목줄을 잡히기 전, 신사를 관리할 적에 그녀는 신사 뒤편에서 쿵-쿵- 하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혹시 멧돼지가 들어와서 신사를 때려 부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활을 들고 나갔었는데…. 그때 거기서 그녀는 눈깔을 까뒤집은 채로 신사에 있는 나무에 밀짚 인형을 박고 있는 여자를 본 적이 있었다.

       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은 땀에 푹 젖어 있었고, 머리에 둘러맨 머리띠에는 타오르는 하얀 초가 몇 개나 꽂혀있었다. 게다가 하얀 천으로 대충 만든 것처럼 보이는 하얀 기모노는 마치 귀신이 입는 그것처럼 보였고, 입에서는 연신 침이 흐르고 있기까지 했다.

       밀짚 인형을 박을 때 손가락을 인형과 같이 망치로 찍기라도 한 것인지 손가락 몇몇 개에서는 손톱이 덜렁거리고 피가 질질 나오고 있기까지 했음에도 그 여자는 밀짚 인형에 열심히 못을 박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박다가 나루미가 인기척을 낸 순간 홱 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그동안 보았던 공포물 따위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무서웠더란다.

         

       ‘그 여자보다 더 무섭단 말이죠….’

         

       그런데 말이다.

       나루미는 저주를 위해서 신사에 몰래 잠입해서 ‘축시의 저주’ 의식을 행하던 그 여자보다도 사이고 리세가 훨씬 무서웠다.

       언뜻언뜻 보여주는 광기에, 광신에, 초반에 ‘교육’이랍시고 나루미를 괴롭히면서 때려 박았던 정보들-

         

       하아.

       교육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무슨 컬트 종교의 입문식이나 세례처럼 아주 집요하게 온갖 정보들을 때려 박고, 신주님에게 보일 예절과 행동거지에 대해서도 혹독하게 가르치는데….

       그때 나루미는 이곳이 컬트 종교이고, 자신은 이제 세뇌당해서 인생이 끝장나버리는 줄 알았었다….

         

       뭐, 실제로는 조금 사악한 느낌이기는 해도 컬트 종교는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지만.

         

       ‘아닌가…? 아니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사이고 리세를 찾아오는 권력자들의 눈이 무슨 약을 한 것처럼 퀭하기도 하고, 온갖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주물들을 모으고 있기도 하고, 귀신이 자주 출몰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집을 잔뜩 사들이고 있기도 하고, ‘조건에 맞는 사람’이라면서 곳곳에서 보내온 사람들을 그 흉흉한 소문이 도는 곳에다가 며칠 처박아둔 뒤 데려오기도 하고….

         

       솔직히 컬트 종교는 아닌데, 그것보다 위험해 보인다.

       무슨 비밀결사 같은 느낌 같기도 하고….

         

       ‘…모르겠네요. 저는 말단이니까.’

         

       나루미는 거기서 생각하는 것을 멈췄다.

         

       생각이야 자유라고는 하지만, 생각이 계속되다 보면 그것이 밖으로도 드러나는 법이다.

       괜히 광기 넘치는 암여우가 가끔 예고 없이 행하는 불심검문(不審檢問)에 뭔가 트집이 잡힐 수 있었다.

         

       나루미는 ‘교육’을 다시 받고 싶지 않았다.

       말이야 교육이지…

       그걸 집요하게 몇 번 더 받으면 진짜로 세뇌될 것 같아서 무서웠으니까….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요. 이렇게 만든 지네로 대체 뭘 하는 걸까요…?’

         

         

         

        * * *

         

         

         

         

       새빨간 토리이를 지나 본전으로 가는 참도(參道). 네모난 돌들이 가지런히 깔리고, 양옆에는 규칙적으로 쇠로 만들어진 짧은 기둥이 세워져 있다. 기둥의 끝에 뚫린 구멍에는 새하얀 줄이 걸려서 울타리를 이루고, 그 울타리의 밖에는 석등롱이 이끼 낀 모습으로 방문자를 환영한다.

         

       신도들이 봉납한 것일까?

       화강암을 쪼아 만든 것 같은 석등은 제각각의 크기로 좌우로 서 있고, 어떤 것은 안에 조명이라도 넣었는지 은은한 빛을 발한다. 그 은은한 빛에 풀벌레들이 근처에 모여들어 찌르르 소리를 내기도 하고, 나방 같은 것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가도 타닥타닥하는 소리와 함께 구워지며 바닥에 힘없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끼에 핀 꽃에는 향기도 없건만 날이 저물고 있음에도 나비가 날아들어 그것을 건드리려 하고, 개미도 바퀴벌레도 없는 바닥은 대신에 채 죽지 않은 나방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 바닥을 쓸어내리고 있다.

         

       먼지 한 점 없이 잘 닦인 참도를 걷다 보면 나오는 것은 본전과 배전.

       신체가 모셔져 있을 신성한 공간이요, 신께 허락받은 중요한 이들만 출입할 수 있는 신의 영역.

         

       참도를 걸어 신사에 도달한 이는 본전을 바라보며, 본전에 모셔져 있을 신을 생각하며 참배를 드린다.

       본전의 앞에 있는 배전에서, 돈을 던지는 새전함 앞에서 손을 모으며. 참배자는 굵은 밧줄을 손에 잡고 그 위에 달린 방울, 와니구치(鰐口)로 소리를 낸다.

         

       딸랑딸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기원.

       일본인이라면 몇 번이고 해봤을 익숙한 동작으로 그렇게 참배를 드리고, 손님은 몸을 돌려 어딘가를 바라본다.

         

       신관의 옷을 입고 있는 젊은 남자.

       혜성처럼 나타난 능력자, 사이고 신관.

       여러 권력자와 연을 맺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 콧대 높은 음양청의 음양사들과도 연이 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남자가 저곳에 있다.

         

       사이고 신관이 그에게 다가오며 말한다.

         

       “먼 길을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키하루 사범님.”

         

       “무얼. 신께 기원을 드리는 일인데 고생은 무슨….”

         

       “아닙니다. 최근 성취를 이루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비록 신을 모시는 몸이기에 잘은 모르기는 합니다만 무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성취를 이루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성취를 갈무리하고 완전히 체득하는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 귀중한 시간을 사용하시며 이곳에 방문하셨는데 어찌 제가 환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방금 참배를 끝마친 무인.

       아키하루는 사이고 신관의 말에 웃었다.

       겸양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겸손한 것처럼 보이려는 그의 말과는 다르게, 그의 행동은 달랐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허리가 꼿꼿이 펴진다. 그리고 가슴 근육이 펴지고,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한껏 보였다. 그러고는 자신이 이룬 성취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면서 자신을 높여주는 사이고 신관을 향해 호의의 눈빛을 보냈다.

         

       사이고 신관은 미소를 지으며 아키하루를 안으로 안내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말이다.

         

       그러고는 미리 준비해놓은 것처럼 보이는 차를 아키하루에게 대접하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전에 연락을 드렸었지요. 아키하루 사범님께 좋은 제안을 하나 하겠다고….”

         

       “내 그렇게 들었소. 무인의 성취에 가장 도움이 될법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외다.”

         

       아키하루는 사이고 신관의 말에 통화로 미리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앞서 ‘합동작전’에 참여해서 귀신과의 실전을 겪으며 유의미한 성취를 이룬 무인들의 예를 들면서, 그들처럼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성취에 도움이 될법한 중요한 경험을 한 번 해보지 않겠냐는- 그런 제안을 말이다.

         

       그때는 통화였기에 자세한 내용을 논의하지는 못했고, 사이고 신관이 말을 빙빙 돌리는 감이 있어 제대로 된 내용은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사이고 신관이 보내는 암시 하나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실전.

         

       세상의 혼란과 함께 같이 줄어들게 된, 무인에게 있어서는 위험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그것.

         

       사이고 신관은 아키하루에게 그 ‘실전’에 대한 암시를 넌지시 흘렸었다….

         

       ‘실전이라. 대련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실전이라면. 그렇다면 이곳에 발걸음을 옮길 가치가 충분하지….’

         

       그렇기에 아키하루는 이곳에 찾아왔다.

       얼마 전 경지를 올리면서 만들 수 있게 된 검사(劍絲)를 다루는 훈련조차 내버려 둔 채 말이다.

         

       사이고 신관이 앞서 한 말처럼 갈무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몸에 체득하는 것도, 그것을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하게 만드는 것도, 그것을 응용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연구하는 것도 전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연습 백 번은 실전 한 번에 미치지 못하는 법.

       만약 사이고 신관이 넌지시 보낸 암시처럼 ‘실전’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가 백 일 동안 연습에 집중하는 것보다도 더더욱 커다란 성취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다음 경지로 가기 위한 깨달음 같은 것이 올지도 모르지.

         

       아키하루는 그런 기대를 품은 채 사이고 신관을 바라보았다.

       옅은 노란색의 차를 홀짝이는 저 젊은이를.

         

       여우 같은 느낌이다.

       잘생긴 건 맞는데, 묘한 느낌이 드는 남자.

       무해한 듯 보이나 언제든 목덜미를 물어뜯고 고기를 뜯어먹을 것 같은.

       신관이라고 하기에는 묘하게 요사스러운 느낌이 드는 남자다….

         

       그리고 그 남자가 입을 연다.

         

       “얼마 전까지 일본과 한국은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격렬한 갈등은 봉합되었고, 지금은 서로 손을 잡고 있지요.”

         

       “그렇소. 저번에 있었던 합동작전도 그런 것이었지….”

         

       한국과 합동으로 대악귀를 토벌했다면서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심지어 지금까지도 합동작전에서 있었던 일 하나하나, 참여했던 인원들 하나하나를 입자 단위로 뜯어서 분해해서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심지어 인터넷만 가더라도 합동작전에 참여한 누가 어떤 기여를 더 했느니, 한국과 일본 중 누가 더 토벌에 이바지했느니 하면서 싸우는 걸 흔하게 볼 수 있었으니….

       아키하루 같은 무인에게 있어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지도 않는 요즈음, 그러한 무훈(武勳)을 세울 기회가 어디 흔하겠냐 이 말이다.

         

       “제가 말씀드리려는 것은 이번도 그와 비슷한 일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아서 하는 작전이니까요.”

         

       “합동작전…? 설마 저번처럼 악귀를…?”

         

       사이고 신관은 아키하루의 말에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것보다 더 비밀스럽고, 더 ‘실전’에 가까운 일입니다. 음- 아마 비밀리에 벌어지는 일이기에 저번 작전처럼 명성을 얻을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우가 웃는 것 같다고 느꼈다면 착각일까?

       사이고 신관의 눈매가 호선을 그린다.

         

       “…사람과의 싸움. 흥미가 있으십니까?”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