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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78

        

       때 묻지 않은 눈과 같이 새하얀 소금의 완성.

       손을 대면 행여 저 색이 탁해질까 두려워 만지는 것조차도 꺼려지는 순백의 소금 더미가 완성되었다.

         

       “다케다 신겐이 소금가마를 받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리세는 그렇게 쌓여있는 소금을 보며 옛날 한창 드라마에 빠져있을 때 유명 아이돌이 나왔다고 해서 보았던 전국시대 배경으로 한 사극 드라마를 떠올렸다. 그 사극 드라마는 아이돌들을 대거 기용해서 찍었었는데, 죄다 미소년들을 뽑아서 사용해서 그런지 여성층에 인기가 많았었다.

       그 드라마에서는 중성적인 외모의 미소년으로 유명했던 아이돌이 분장했던 다케다 신겐이 나왔었는데, 봉쇄당한 상태에서 라이벌인 우에스기 겐신이 보낸 소금가마를 받고 감동해서 눈물을 주륵 흘리는 장면이 인기를 끌었었다….

         

       박진성은 그러한 리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는 리세가 떠올리고 있는 드라마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다케다 신겐이 소금을 받았던 일화는 대충은 알고 있었다.

         

       “소금이라는 것은 신뢰와 직결된 것. 군인으로 따지자면 충성과 헌신의 대가로 받는 봉급이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보급품이며, 물물교환으로 따지자면 화폐의 가치를 대신할 만큼의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케다 신겐의 예로 들었듯 적이나 동맹에게 소금을 준다는 것은 곧 굳센 신뢰의 표식과 같음이니. 과연 소금은 신뢰의 상징 그 자체라 할 수 있으리라.”

         

       특히나 소금이 새하얗다는 것은 때가 묻지 않은 순백.

       즉, 아무런 사악한 생각이나 더러운 생각이 묻지 않은 순수한 의도라는 것을 대변한다.

       즉 순백의 소금은 순백의 신뢰, 굳건한 신뢰를 뜻하는 것.

         

       “이 소금은 그러한 신뢰의 상징을 품었다. 이것을 봉급으로 내려준다면 배신에 크나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며, 배신에 보복하기 위한 인과가 충분히 충족되게 만들 수 있게 할 수 있음이요. 이것을 경계용으로 놔두게 된다면 배반하였을 때 소금이 새까맣게 물들어 나에게 경고를 할 것이니.”

         

       그뿐만이 아니다.

       이 소금은 다른 주물을 만들기 위한 재료로도 아주 쓸만했다.

       인신공양에 사용하기 위한 인형을 만들기에도 좋고, 굳혀서 사용할 무기로 사용하기에도 좋았다.

       소금이라는 꽤 쓸만한 재료, 거기에 순백과 신뢰라는 상징에 깃들었으니 다용도로 쓰기에는 좋은 물건이라 할 수 있음이다.

         

       “무녀야, 나의 무녀야. 너에게도 이것을 줄 것이니 부리고 있는 무녀에게 이것을 나누어주어 배신을 경계토록 하여라.”

         

       “후후.”

         

       리세는 박진성의 말에 방긋 웃었다.

         

       살랑살랑.

         

       그녀가 기분이 좋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뒤의 풍경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 그녀의 꼬리가 움직인다.

         

       “이거 혹시 사에에게도 쓸 수 있나요?”

         

       “사에라….”

         

       사에 씨(さえさん) 혹은 사에쨩(さえちゃん).

       이 신사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어떠한 존재의 애칭이었다.

       귀여운 동물이나 어린 여자아이가 떠오르는 이름이지만….

       …이 귀여워 보이는 애칭의 주인은 바로 새타니였다.

       박진성이 신사 건물을 지을 때 인주로 사용하기 위해 기둥 아래에 파묻혔던 여자아이를 재료로 만든 사악한 존재 말이다.

         

       하지만 사악한 존재라고는 하나 리세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같이 지내왔기에 익숙해진 상태였으며, 게다가 성격도 그렇고 평소 모습도 그렇고 조금 음산해 보이는 여자아이 같은 느낌이었기에 ‘사에’라는 귀여워 보이는 애칭으로 부르고 다녔다.

       덧붙이자면 ‘새타니’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것이 조금 어렵기도 했고…. 과거 그녀가 박진성과 처음 만났을 때 ‘사에’라는 명찰을 단 간호사 형상으로 등장했던 것, 그리고 새타니를 조금 길게 발음하면 ‘사에’가 된다는 점에서 그러한 애칭으로 결정한 것이기도 했다.

         

       “새타니에게는 쓰면 아니 되느니라. 소금은 삿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 역시 담겨있으니, 아마 이것을 새타니에게 사용한다면 큰 타격을 입겠지.”

         

       “그렇군요.”

         

       리세는 마치 ‘강아지나 고양이에게는 초콜릿을 먹이면 안 된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을 주도록 하여라. 성질이 닮았으니 이것을 좋아할 것이다.”

         

       대신 박진성은 소금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곳에서 무언가를 꺼내 리세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아기 주먹 크기의 새까만 경단 같은 것이었는데, 가루 같은 것을 꼭꼭 눌러 담아 뭉친 것으로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흙 경단처럼 보이는 무언가.

       하지만 자세히 본다면 그 안에 묘하게 거친 입자들이 있으며, 뭔가 단단한 털 같은 것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

         

       저것은 지네로 만든 경단이었다.

         

       어떠한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이고 남은 찌꺼기들을 갈아버린 뒤 경단처럼 뭉친 것.

         

       박진성의 말처럼 새타니 같은 삿된 존재가 좋아할 법한 물건이기도 했다.

         

       지네라는 것이 품고 있는 상징도 그렇고, 저 지네가 만들어졌던 과정이라거나, 저 지네가 재료로 쓰인 것들까지 종합해서 생각해본다면…. 새타니에 있어서 저 경단은 일종의 특식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따가 새타니에게 줄게요.”

         

       리세는 박진성이 건네준 지네 경단을 방긋 웃으며 받았다.

       박진성과 함께 지내면서 징그러운 것들에 나름 익숙해졌기에 저런 것조차도 맨손으로 받을 수 있게 되어버린 것이다.

         

       “사에가 포식하겠네요.”

         

       “아마 그러하겠지.”

         

         

         

         

        * * *

         

         

         

         

       일본 무인들이 참가하는 ‘작전’은 돛에 순풍을 받으며 배가 나아가듯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총칼은 무력뿐만 아니라 권력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나 일본은 그러했다.

       전국시대라는 끊임없는 싸움이 일어나는 시대가 있었고,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뭉쳐놓고는 안에서는 해군과 육군이 파벌이 나뉘어서 싸우는…마치 머리가 여럿인 뱀이 다투기도 하는 희대의 미친 짓까지 벌였던 나라가 아니던가.

       이들에게 있어서 무력과 권력은 다른 말이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야 문민통제가 일상화가 되었지만…그렇기에 오히려 무인들의 무력은 경계하고 통제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무인이 탄생하고 있으며, 도장이니 유파니 하는 것에 속해있는 무인들이 입신양명을 꿈꾸며 무공을 수련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정부, 화족, 천황, 기업 등 수많은 곳에 제 몸을 의탁하면서 인맥을 쌓아가고 있기까지 하니- 날이 가면 갈수록 이러한 통제에는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 그러한 위험 요소를 품고 있음에도 문민통제는 철저하게 유지되었다.

       무인들을 적극적으로 기용은 하되 철저하게 문민통제에 따르도록 만들거나, 일본제일무사니 제이무사니 하는 명성을 미끼로 삼아 무인들이 불만을 품지 못하도록 만들고 다른 무인들을 적으로 여기게 만들어 한데 뭉치지 못하게 만들었으며, 랭킹 시스템을 정착시켜서 경지를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내게 했다. 게다가 사다리를 차기 위해 세련된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대대로 정치인이었던 가문들에서 무공을 익힌 이들을 정치인으로 만드는 것으로 ‘무인은 권력에서 소외되지 않았다.’라고 광고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정치인이 대대로 세습되곤 하는 일본의 특성을 생각해본다면 무공을 익힌 정치인의 존재는 말 그대로 사다리차기나 다름이 없었다. 정치 명가에 속해있는 이상 가문의 의도를 최우선으로 따를 수밖에 없기에 무인의 이득을 위해 나설 확률은 매우 낮고, 애초에 무인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그들을 대표할지조차도 의심이 되는 사람들.

       심지어 무인들이 정치에 입문하려 할 때는 ‘이미 정치계에는 충분한 숫자의 무인이 있지 않은가?’라는 핑계를 댈 수 있도록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니 무인으로서는 불만을 품을 만도 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일반화되어 있기도 하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정치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도 있었고, 그리고 거기에 무인들이 탐을 낼만한…달리 말하면 무훈을 세울만한 기회가 지금까지는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얼마 전 한국과 전쟁을 할 뻔했을 때 무인들은 두려워하면서도 잔뜩 기대를 품게 되었다.

       한국과의 전쟁에서 칼을 들어서 무훈을 높이고, 권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망이 그들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품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야망.

         

       칼 한 자루로 권력을 얻었던 옛 위인들의 일대기를 그대로 재현하고픈 그들의 욕망.

       무인으로 태어났으면 역사서에 이름을 크게 새기고 사라져버리고 싶은 그들의 야망.

         

       그렇게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전쟁 위기가 끝났음에도.

       아니, 전쟁 위기가 끝나버렸기에 더더욱.

         

       차라리 부딪치고 깨지고 연소하였으면 차라리 나았으련만.

       화려하게 불태우고 잿더미가 되어버렸다면 만족할 수 있었으련만.

       하필이면 야망만을 불어놓고 제대로 타오르지도 않아버린 것이 문제였을까.

       무인들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과 야망 속에서 번민하기 시작했고, 점점 불씨가 붙으려 하고 있었다.

         

       제 손에 들린 칼을 휘두르고 싶어서, 자신이 쌓은 무공을 뽐내고 싶어서 안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무인들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불만을 달래주기 위해 한국과의 공동작전에 무인들을 꽤 보낸 것이기도 했는데….

         

       …오히려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일본 정부에서는 악귀와의 전투에서 몇몇이 크게 다치는 것을 예상했었다. 아무리 강한 무인이라고 할지라도 대악귀로 향해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악귀과의 싸움에서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치는 사람이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었다면 더 좋았을테고.

         

       보수적으로 생각해서 피해가 적으면 둘에서 셋 정도, 피해가 크면 절반 이상이 다칠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다친 사람이 나오게 된다면 기회에는 위험이 따른다고, 신중해야 한다고, 실력을 더 쌓아야 한다고 그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전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일본 정부의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다.

         

       한때 싸움 직전까지 갔던 한국과 일본이 사이좋게 힘을 모아서 인류의 적을 토벌한다는 일본인이 좋아할 법한 내용. 화려하게 활약을 한 능력자들. 전투가 끝난 뒤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인지 실력이 확 올라가 버린 무인들까지.

         

       일본 정부로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좋은 일은 맞는데,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버린 것이다.

         

       불꽃.

         

       일본 정부가 보기에 무인들은 불꽃이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위협이 될만한 불꽃 말이다.

         

       일본 정부는 저 불꽃을 억누르기를 바랐다.

       막부 시절처럼 사무라이가 권력을 잡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

         

       『 중국이 능력자들의 정보를 빼가고 있습니다. 』

         

       …그리고 기회가 왔다.

       불꽃을 다른 곳으로 던져버릴 기회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오…!
    전편이 777화였군요…!

    주술적으로 매우 행운이 가득한 숫자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늦게나마 777의 축복을 기원하겠습니다…!!!!

    이 상징적인 숫자에 담긴 행운이 Ilham Senjaya 님께 깃들기를…!!!
    행운과 행복이 가득한 하루가 되시기를…!!!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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