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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아카드 왕국의 제 2왕자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후, 기적적으로 회복하는데에는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박살난 사지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않고 치료된 것은 기적적인 일이었지만, 제 2왕자에 대한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순례자님들. 안오네….”

       

       “끄응. 슬슬 약이 떨어질때가 되어가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요?”

       

       “글쎄. 나도 모르겠구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노동에 지친 몸을 조금이나마 회복시키기 위해, 순례자들을 찾아가던 평민들이었다.

       

       고된 노동을 하는 그들에게 몇 안되는 낙은 순례자들이 행하는 치료였으니.

       

       지치고 너덜너덜해진 몸이 새롭게 회복되어가는 쾌락은 백성들에게는 달콤한 휴식이었으리라.

       

       

       “뭐? 옆마을에도 순례자님들이 오지 않는다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래유! 촌장! 촌장!! 좀 나와봐유!!!”

       

       “아, 나도 모른다고! 왜 갑자기 순례자님들이 안오는지는 몰라! 모른다고!!”

       

       

       자신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세상을 순례하던 이들이 오지 않게 된 상황. 아프고 지친 몸을 회복시켜주던 순례자들의 부재로 인한 구멍은 점점 크기를 키워나갔다.

       

       

       “어쩌죠? 열이 내려가지 않아요….”

       

       “끄응. 어쩔 수 없지. 옆마을로 가는 수 밖에.”

       

       “하지만, 옆마을은 다른 나라의 마을이잖아요. 괜찮을까요?”

       

       “괜찮고 자시고. 아이가 이렇게 아픈데 무슨 수라도 써야지! 제길…. 순례자들만 왔었어도….”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것은 아픈 이들이었다.

       

       병과 상처를 치료해주던 순례자들이 오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였으니.

       

       그들은, 그들의 가족은 아픈 이를 살리기 위해 다른 나라로 향하거나, 아니면 가족을 죽게 내버려두거나. 두가지 선택만이 남겨져 있었다.

       

       물론 다른 나라로 향하는 것이 안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무시무시한 몬스터가 출몰하기도 하는 시대였으며, 지금은 길을 순례하며 보호해주던 순례자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하지만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는 이들은 존재했다.

       

       아픈 자식을 등에 업고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는 이들도 있었고, 제대로 거동할 수 없는 부모를 손수레에 싣고서 이동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백성들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북적이던 마을에 빈 집이 하나 둘 씩 늘어나자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걱정이 솟아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촌장. 벌써 반이나 비었소. 이러다 마을이 텅 비어버리게 생겼다고. 어떻게든 해주쇼!”

       

       “끄응…. 상인을 통해 들은 소식이네만,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나고 있네.”

       

       “도시에서도?”

       

       “그렇네. 심지어 몇몇 도시에서는 전염병의 징후 마저 보인다더군. 말세로다. 말세야.”

       

       “도시도 그렇다니…. 이 나라가 어찌되련지….”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순례자가 떠난 것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농작물이…. 자라지 않아…”

       

       “싹이 틀 시기는 벌써 지났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농사 뿐만이 아니야. 사냥도 영 꽝이라고. 덫을 몇개를 놔뒀는데 하나도 걸린게 없다니.”

       

       “낚시도 마찬가지에요. 예전이라면 열 마리 넘게 낚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낚이지 않아요.”

       

       

       탄생이 그들의 땅에 등을 돌렸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결실을 맺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움직일 수 있는 동물들은 모두 그 땅을 떠나 먼 곳으로 도망쳤고,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은 조용히 혹독한 시기를 버티기 위해 잠이 들었으니.

       

       아카드 왕국의 인간들이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다 모두 죽겠군! 제길!”

       

       “옆나라는 괜찮은데, 이상하게 우리 나라만 이렇다니. 도대체 무슨 일인거지.”

       

       

       그렇게 마을에 남아있던 이들이 힘겨운 삶을 이어나갈 즈음.

       

       

       “큰일이야! 도시에서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어!!”

       

       “뭐?!”

       

       “이미 겉잡을 수 없이 퍼지기 시작했다는군! 이대로라면 이 마을까지 오는게 시간문제야!! 나는 마을을 떠나겠어!!”

       

       “제길…. 하는 수 없지. 살고 싶으면 다른 나라로 가는 수 밖에!!”

       

       “이, 이보게! 자네들!!! 마을을 떠난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촌장이야말로! 순례자들도 없는 상황에서 전염병이 퍼지면 이 마을이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거요?”

       

       “그, 그렇지만…. 나는 왕께서 인정해준 촌장인데….”

       

       “그렇지만이고 자시고! 이 상황이 될때까지 그 잘난 왕이 무얼 해줬다는 말이요?! 죽고 싶지 않으면 빨리 준비하라고요! 그나마 뭉쳐서 이동하면 몬스터들을 쫓아낼 수 있을테니!!”

       

       

       죽음이 그들의 백성들에게 매정해졌다.

       

       기근과 질병이 아카드 왕국을 가혹하게 몰아쳤고, 아사자와 병사자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으니. 살고자 하는 이들은 다른 나라로 향했다.

       

       물론 그 여정이 안전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많은 수의 인간들은 살고자하는 의지로 왕국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소식이 왕국의 수도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으니.

       

       

       “뭐라고…?”

       

       “백성들의 이탈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아카드 왕국은 점점 사라질겁니다.”

       

       “어찌, 어찌 그런 일이 있단 말인가….”

       

       “생명신전의 순례자들이 찾아오지 않는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며, 다음으로 절망적일 정도의 기근입니다. 농작물은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하고, 사냥은 커녕 가축도 제대로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나라를 철저하게 말려 죽이는 신의 벌. 그 실상을 마주한 왕은 떨리는 손으로 머리에 쓴 왕관을 쓰다듬었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왕관. 이 세계를 지배할 자격을 상징하는 왕관.

       

       이 왕관을 머리에 쓰게 된 순간에는 얼마나 기뻤던가. 마치 세상을 손에 넣은 것처럼 기뻤건만.

       

       어찌하여 신은 이토록 가혹한 시련을 내려준단 말인가.

       

       왕은 한탄했다.

       

       왕은 슬퍼했다.

       

       왕은 왕관을 벗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분명, 예전에 2왕자가 하늘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을 때…. 떠나던 순례자가 했던 말이 있었던가.”

       

       “네. 경비병이 전한 말에 따르면 2왕자님이 생명의 여신님을 모독하여 신벌이 내려졌다고 했었습니다. 그 후 극비에 부쳐서 그 경비병과 저희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자네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왕의 물음에 신하들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2왕자가 속죄의 순례를 행해야 한다는 것을.

       

       생명신전의 순례자들처럼. 가혹한 순례를 해야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2왕자 오르커스. 망나니 오르커스.

       

       늦둥이로 태어난 덕분에 왕이 각별히 아끼는 왕자.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왕국의 문제아.

       

       그런 2왕자를 순례길에 오르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아카드 왕국이 사라지게 되리라.

       

       

       “정녕 어쩔 수 없단 말인가. 다른 방법은 없단 말인가? 생명의 여신께서 노여움을 풀 방법은 없단 말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생명의 여신은 본디 자비로운 신이었으니. 자신의 뜻을 따르는 순례자들로 다른 인간들을 돌보게 할 정도로 자비로운 신이었으니.

       

       그런 생명의 여신을 분노하게 한 오르커스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이미 답이 나와있지만 꺼낼 수 없는 상황에서, 왕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모두 들었습니다.”

       

       

       한 남자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이대로면 이 나라는 멸망합니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반복하는 남자.

       

       제 1왕자. 슈투르.

       

       아카드 왕국의 적법한 후계자이자, 왕위를 잇게 될 자.

       

       

       “왕이시여. 선택하셔야 합니다. 이대로 왕국과 함께 사라지는지, 아니면 못난 동생을 순례길로 오르게 하는지를.”

       

       “슈투르….”

       

       “왕이시여. 아니, 아버지. 더는 시간이 없습니다. 비축한 식량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모아둔 국고로 식량을 사오는 것도 금방 한계가 올 것입니다. 현명한 선택을 해야합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1왕자의 모습에 왕은. 샤르칼 왕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짚고서 말했다.

       

       

       “네가 네 동생을 질투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더냐?”

       

       “질투라….”

       

       

       슈투르는 말했다.

       

       

       “한때, 부모님의 총애를 받는 동생을 질투하긴 했었습니다만. 생명의 여신님께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에 질투하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였는지 알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동생을 왜 질투하겠습니까?”

       

       

       슈투르의 말에 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네 동생인데….”

       

       “여신께 죄를 지은 시점에서 제 동생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그 아이의 잘못으로 이 왕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십시오.”

       

       

       왕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2왕자가 왕국의 멸망을 불러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으니.

       

       

       “그리고, 그 바보를 속죄의 순례에 내모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여력이 있을때 모든 백성을 모아 다른 곳으로 이주를 시도해야 합니다.”

       

       “이주라니, 1왕자님!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버리겠다는 말입니까?!”

       

       “동생의 순례가 언제 끝날지 모르오. 몇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기약없는 길이니. 설령 그 바보가 순례를 끝내더라도 이 나라의 인간이 모두 죽은 후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소.”

       

       “그건, 그렇지만….”

       

       “어쩌면 이 나라의 이름 마저 버려야 할지도 모르오. 이 땅을 버리고, 이 나라의 이름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살아남아야 할지도 모른단 말이오.”

       

       

       1왕자의 말에 신하들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변해갔다.

       

       그렇지 않는다면 멸망만이 남아있을 뿐이니.

       

       왕은 순식간에 수십년은 늙은듯한 얼굴로, 머리에 쓴 왕관을 천천히 벗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어리석은 자식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eMelalo님 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부캐(용사, 조종 안함)
    대신 육성 시뮬 게임을 시작하려는 운영자였습니읍읍.

    양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아, 앙돼! 빨리 끝내고 용사 메이커에 들어가야 한다고!!!

    가능하면 다음편에서 신벌을 끝내고 싶네요. 어흒.

    오늘도 표지를 뽑는다!

    괜찮은 느낌으로 나왔으니 표지 교체에엣!!!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다음화 보기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늬들이 날 수호룡이라 부르든 말든 난 잘거야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story of a human reincarnated as the Creator God of a new world, and her observation logs of the burgeoning new world and life. — Dragons, which have existed since before the birth of human civilization, became the guardian dragons of the empire. But whether you guys call me that or not, I’m going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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