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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 미스터 틴 캔, 정말 이런 행동을 하셔도 귀하의 로봇 윤리와 인공지능 가이드라인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게 맞습니까? 회로에 합선(Short)이 발생할 공산이 존재합니다. –

         

         – …합당한 지적입니다. 미스 제니. –

         

         오랜만의 시술로 분주한 선생의 시야 밖에서 두 로봇.

         한 안드로이드와 한 케어봇이 속닥거리고 있었다.

         

         엄밀히 농땡이를 피우는 건 아니고. 근래 들어 가게의 보안취약점 등을 개선해주며 지냈던 식객, 아나스타샤가 떠난 지 몇 시간만에 내려진 명령을 방폐하고 떠나려는 케어봇을 안드로이드가 걱정을 품고 말리는 중이었다.

         

         비록 제니가,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이라는 정체불명의 손님이 모시는 주인의 정신건강에 주었던 악영향을 기억하고 탐탁치 않게 여기긴 했어도.

         그녀와 저 케어봇의 톡톡 튀는 관계만큼은 굉장히…. -그녀 스스로도 적절한 어휘를 사용해 설명하기는 어려웠으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는데.

         

         특별한 사유도 없이 돌연 명령불복종이라는 폭거를 일으키려는 사연은 무엇일까?

         

         – 하지만 섣부른 오해는 말아 주시길. 저는 오히려 아샤님의 당부를 이행하기 위해 길을 나서려는 겁니다. –

         

         – 네… 네? –

         

         기다란 속눈썹이 부착된 눈이 깜빡거리고 경직되었던 얼굴 근육이 당황으로 인해 살짝 이완된다.

         

         제니의 몸체가 선생의 취향에 의한 결과물이든 뭐든, 표출되는 감정과 생각은 오롯이 그녀의 것. 허나 인간과 유사한 육체로 표현된 그것은 한층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깡통은, 스캐너의 채도 변경이나 미세한 음성 변화만 보고 듣고도 이쪽을 헤아려주려 노력하는 아나스타샤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역시 조금 더 많은 기능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고 성욕과 외모에 대한 선호는 인간에게서 뗄 수 없는 원초적인 본능 중 하나일 텐데, 자꾸 숨기기만 하려는 그녀에 대한 미약한 불만도.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 그는 음성 모듈에 있는 진동판을 요동치게 했다.

         

         – 미스 제니. 저에겐…… 심지어 당신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우리에게 집(Home)은 이 가게가 아닙니다. –

         

         – 그게 무슨……? –

         

         곧 나갈 예정이기에 꺼낸 말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제니는 그가 자신까지 빗댄 핑계를 시도하려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이미 저지르기로 마음먹었다면 굳이 다시 볼 사이도 아닌 안드로이드에게 스스로의 행동을 설명할 필요성이 어디 있단 말인가.

         

         – 소비자보호법 및 자산보호법, 자립형 기계 관리법령에 의거하면 자율 행동 로봇은 작업수행에 필수적인 부품과 활동에 소모되는 동력을 요구할 수 있는 것 이외의 권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

         

         덜컹! 하는 소음과 함께. 거기까지 말한 깡통은, 주인의 개인물품이 잔뜩 들은 짐가방을 들고 가게문을 나섰다.

         

         – 그런 저희 같은 사유물에게도. 진정 돌아갈 자리(Home)가 있다면 그건 당연히 모시는 분의 곁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는 그 어떤 명령도, 우선순위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명령이란 건… 어디까지나 그것을 내린 상급자의 기준에서 비롯된 것.

         그러므로 받아들이는 하급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되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허나 그런 비논리는 이상할 정도로 쉽게, 이 여성형 안드로이드의 회로 속으로 스며들었다.

         

         – ……집 지키기 명령, 언제나 무탈하게 완수하시기를 미스터 틴 캔. –

         

         – 미스 제니의 연애 사업도 부디 번창하기를. 당신이라면 잘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

         

         ‘연애…… 입니까?’라며, 멍하니 되묻는 제니는 내버려 둔 채로 깡통은 걸음을 재촉했다.

         

         인간의 철학을 이해하기엔 한없이 메모리가 부족하다고 떠든 주제에.

         누구보다 해학적인 작별인사를 남긴 걸로도 모자라, 아직 발전 가능성이 많아 보이는 후배 초인공지능에게 멋진 꽃을 피울 수 있는 씨앗까지 심은 그의 연산 장치도 사실 편치만은 않았다.

         

         깡… 깡…!

         

         청소 로봇도 아닌 게, 동행도 없이 대로변을 걷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여기는 시선은 전무했다.

         

         그야 억 단위 크레딧을 호가하는 물건이 근처에 주인도 없는 상태로 무작정 거리를 배회하고 있으면 노려봄직도 했으나. 손에 들은 짐덩어리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에.

         

         …뭐, 그 실상은 멋대로 심부름을 나선 어린 애와 별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몰랐지만 그걸 외부인들이 알 방법은 없었으니까 괜찮았다.

         

         – 곤란하군요. –

         

         그러나 정작 본인은 안 괜찮았으니.

         

         역시, 아무리 감동이 있고 좋은 의도가 기반이 되었다 한들. 단순한 말장난만으로 아나스타샤의 앞에 짠 하고 나서는 건 깡통의 사고회로에 부담이 컸다.

         

         사람이었다면 ‘양심에 찔린다.’고 표현했을 상황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그는. 잠시 이동을 멈추고 어느 틈에 꽤 소란스러워진 주변을 살폈다.

         

         “May the Light of Christmas fill your Life(성탄의 빛이 당신에 앞길에 가득하기를)!! 올해 최다 판매량을 기록한 제품들을 아직도 써보지 않으셨다면,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고 체험해보세요!”

         

         “중앙 트리 점등식의 카운트다운 때도 경품 제공은 계속되니, 시민분들의 많은 참여 기대하겠습니다!”

         

         이제 보니, 소란스러워진 게 아니라 소란이 찾아온 것이었다.

         

         짤랑짤랑!

         요란한 종소리가 여운을 남기며 거리에 울려 퍼진다.

         

         익스테리어(Exterior; 외관)만은 새빨간 썰매 마차의 생김새를 취한 차량들이 중앙도로를 따라 행진하고, 거기에 탑승한 홍보팀 직원들은 확성기와 통신 채널을 모두 이용해 광고 활동을 하느라 바빴다.

         

         더군다나 간간히 근처로 흩뿌려지는 무료 식사 샘플이나 제품 견본품들은 사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넘쳤으니… 크리스미스 한정 이벤트인 메인 퍼레이드가 되시겠다.

         

         “최다 판매 제품? ……아이씹, 그놈의 만능 세정제랑 진통제는!”

         

         “뭐, 기업의 쇼도 한 번쯤은 가 볼만 한가?”

         

         선물 상자를 줍고 포장을 뜯은 몇몇 사람이 어처구니없어 하기는 했으나 공짜는 공짜.

         특별한 일정 없이 방황하던 일부 행인들은 그 목적지를 퍼레이드의 마무리 장소인 중앙 광장으로 돌렸다.

         

         가장자리에서 외부 차량 등을 통제하느라 바쁜 안전관리요원들. 그러니까…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을 징수 부대와 고용된 용병들을 보면 거부감을 가질 만도 했지만.

         

         각자의 머리나 헬멧 위에 애교처럼 얹어 놓은 미니 산타 모자는 평소에 시민들이 가졌던 반감을 살짝이나마 누그러트리는데 도움을 주었다.

         

         불미스러운 일은 어느 쪽이나 바라지 않는다는 평화의 제스처나 다름없었달까…?

         

         그렇게 아나스타샤와 관련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퍼레이드를 관찰하던 그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바로 그녀가 있을 상황실로 가서 혼나기 보단, 차라리 이 행사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마중을 나가기로.

         

         물론… 그런다고 이 시간을 낭비할 건 아니었고, 상황실이 마련된 건물 근처에서 접근하는 의심자를 막아 설 예정이었지만. 열심히 시각 정보를 분류하던 케어봇의 스캐너에 불미스러운 일을 바라는 것 같은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 괴상하군요……. –

         

         사실 무리라고 단언하기도 어려웠다. 개개인을 따로 놓고 본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으니까.

         

         퍼레이드를 뒤따르고 있음에도 직원이 뿌리는 행사물품에는 별관심이 없어 보이는 놈.

         휴일의 풀어진 분위기에도 아랑곳 않는 식은 표정의 남자.

         행사 자체보다는 인근에 배치된 경비 체재를 살피는 여성.

         

         그 외에도 잔뜩 뭐가 그리 바쁘고 화나는지 앞도 제대로 안 보는 상태로 무작정 걷다가 여기저기 부딪치는 붉은 머리 소녀라든가, 안전요원들을 힐끔거리는 여러 인물들 모두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

         

         인위적으로 조성된 것 같은 그 거리감은 폭발물 등을 이용할 것으로 추정되는 파이브 아이즈의 공습을 경계하느라 바쁜 기업 측 병력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사소한 눈짓, 걸음걸이, 까딱거리는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까지 공들여서 분석한. 깡통의 완벽성을 따라올 수 없었던가.

         

         

         

         깡통의 눈 역할을 하는 홀로그래픽 스캐너가 요사스러운 빛을 내뿜었다.

        행여나 전투에 방해되는 요소가 있는지 신체 구석구석을 자가진단한다. 

         

         그에게 있어서 0순위가 아나스타샤의 옆을 보좌하는 것이라면, 1순위는 그녀의 명령과 자신의 판단력. 그리고 2순위는… 글쎄올시다.

         

         향상심? 생존 본능? 그것도 아니라면 인공지능의 권리 증진을 위한 투쟁심?

         

       

       

         – 일을 좀 덜어드리는 걸로 기뻐해 주신다면 좋겠습니다만. –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한 사람에게 도움이. 보탬이 되고 싶다는 인정 욕구가 고성능 전투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한 케어봇의 최종 행선지를 전장으로 변경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라, 원래는 전투까지 해서 한 편에 몰아넣으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

    게다가 저는 야지 훈련을 하다가 발목을 접질린 멍청이애오.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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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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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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