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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뚜둑, 뚜두둑.

         

       “끄으윽!”

       “환장하겠네요, 왜 또 몸을 걸레로 만들어 오셨을까!”

         

       뚜두둑!!

         

       “으음, 가, 감정 실은 거 아니죠?”

       “안 실었겠어요?”

       “성직자가 그래도 됩니까?”

       “성직자도 사람이니까요.”

       “…인정, 내가 잘못했네.”

       “알았으면 됐어요.”

         

       뿌득!

         

       “!?!!”

         

       이번 건 진짜 아팠다.

       너무 아프면 아픈 신음도 내지 못한다고 했던가.

       진정으로 소리도 안 나왔고, 마냥 눈물 나오도록 아프다.

         

       “으으…!”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근육이 터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릿하다.

       그리고 실제로 뼈가 부러지는 고통과 근육이 터지는 격통이 그를 덮쳤고, 이한은 실신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성직자, 수녀 제시는 미간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이렇게 큰 치료술을 며칠 내내 펼치는 것도 간만이네요. 근데 큰 치료술을 사용하면 웬만한 기사도 기절하는 법인데, 이한 형제님은 기절도 안 하네요? 역시 기사라 그런가, 정신력이 강하시네요.”

       “…고통 줄 거 다 줘놓고 이제 와서 칭찬입니까?”

       “사실을 말한 거죠. 잠시 누워 있어요. 약차라도 내올 테니까.”

       “치료할 땐 귀신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무섭더니…, 이러니 또 성직자 같네.”

       “말했잖아요, 성직자건 뭐건 우리도 사람이라고.”

         

       수녀는 싱긋 웃으며 이한을 내버려 두고 약차를 타러 갔다.

       이한은 온몸의 기운이 다 빠진 상태로 그저 누워만 있었고.

         

       ‘이런 경험도 간만이네.’

         

       격통 때문에 기력이 소진한 것이 말이다.

       인체실험을 당하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곤 고통 때문에 기진맥진한 적이 없었거늘.

         

       ‘웬만한 고통에는 면역력이 생겼다 싶었는데, 착각이었네.’

         

       설마 [치료] 과정 중 겸손함을 깨달을 줄은 몰랐다.

         

       아카데미 회복실.

       왕립 아카데미 내에서도 가장 비싸기 그지없는 인력을 보유한 장소이자, 웬만한 귀족조차 받을 수 없는 ‘성법-치유술’을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웬만하면 자연치유력만으로 모든 부상을 해결하기에 성법에 의지하지 않는 이한이었지만, 격렬했던 일전에서 무리가 많긴 했는지 이렇게 회복실을 이용하는 중이었다.

         

       벌써 일곱 번째 치료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몸이 원상복구 되지 않은 상황.

       아마 그 정도로 제 몸 상태가 피폐했었단 거겠지.

         

       ‘확실히 막 굴리긴 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새삼 몸을 함부로 다루었다는 자각이 든다.

         

       학기평가 2주, 그 시간을 통째로 훈련에만 소모했으며, 더 나아가 정말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이뿐이랴?

         

       딱 하루만 쉬어 준 채 피로도 제대로 풀지 않고 마물들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으며, 기어이 포션마저 한계용량을 거뜬히 넘는 다섯 병을 동시 복용했다.

       웬만한 상급 전사조차 이렇게 몸을 함부로 굴렸다간 죽어도 진즉 죽었으리라.

         

       말 그대로 자신이기에 버텨낸 셈이다.

         

       허나 버텨낸 대가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증명하듯, 처음 이한을 치료하려 몸 상태를 확인하던 여사제의 창백한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 이, 이 상태로 버텼다고요? 아, 아니 어떻게…?

         

       여자 얼굴이 실시간으로 창백해진 건 난생 처음 봤다.

       하며.

         

       – 좀 아플 거예요. …아니, 좀이 아니라 상당히 아플 것 같네요.

         

       단호하게 치료 과정이 힘겨우리라 단언하는 여사제였고, 힘들어봤자 별거 있겠나 싶었으나, 막상 받아 보니-.

         

       ‘……거짓말이었네, 상당히 아픈 게 아니라 그냥 생살을 뜯어내는 고통이잖아.’

         

       농담이 아니라 정신이 돌아버리는 격통이었다.

         

       흔히 그가 아는 신성력이란 건 그냥 빛이 번쩍하고 빛나면 사람 몸을 치료해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막상 받아보니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도리어 물리치료나 한의학과 비슷했지.

         

       다만 앞서 언급한 이들이 의료기기와 침으로 사람을 치료한다면 치료 사제들은 성법을 손에 둘러 사용한다는 게 차이점이리라.

       그리고 성법이 몸을 스칠 때마다 찾아오는 시원함까진 좋았으나, 그 뒤에 따라오는 간지러움과 화끈함 등은 도저히 참을 종류가 아니었다.

         

       마치 근육이나 뼈를 퍼즐처럼 부순 뒤, 다시 재조립하는 느낌이랄까?

       응? 무슨 뜻이냐고?

         

       …나도 모르겠다, 내가 내뱉고도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것 이외엔 설명하는 게 불가능한 격통이었다.

         

       “후우….”

       “어머, 벌써 일어났네요?”

       “이제 좀 살 만합니다.”

       “회복력이 정말 좋군요. 보통 사람보다 다섯 배? 아니 일곱 배 정도 회복력이 좋아요. 마치 우리 형제님들을 보고 있는 것 같네요.”

       “형제님?”

       “‘몽크 형제님’이요. 그분들은 성법을 오로지 육체의 단련과 회복력 상승을 위해서만 수행하세요. 그래서 그런지 회복력이 트롤과 맞먹는 수준이죠. 근데 이한 형제님도 그분들과 맞먹네요. …혹시 어릴 적 몽크에게 수련을 받으셨나요?”

       “일면식도 없습니다.”

       “…그런가요? 그 형제들이 참 좋아할 인잰데, 흠…. 혹시 생각 있으면 몽크 분들을 찾아가 봐요. 소개서를 써줄게요.”

       “소개서?”

         

       뜬금없는 뭔 놈의 소개서란 말인가?

       이한이 눈을 끔뻑이니 여사제가 상큼한 미소를 머금으며 눈 한쪽을 찡긋거렸다.

         

       “이한 형제님 같은 분이라면 그분들도 환영할 테니까요!”

       “하, 저보고 귀의라도 하라는 겁니까? 아니, 그보다. 사제가 스카우트도 합니까?”

       “어디서나 인재난이니까요. 특히 무수한 사람들을 구한 영웅은 어디서라도 환영하는 최고의 인재랍니다.”

       “참 나….”

         

       뻔뻔스러운데 미워할 수 없는 제의.

       만약 배불뚝이 귀족 놈이 저런 제의를 했다면 진즉 주먹부터 날아갔겠지만, 하필 저를 치료해주는 사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귀여워서 참는다.’

         

       전생에 좋아했던 아이돌을 닮은지라 한 번은 봐주기로 한다.

         

       그래도 설마.

         

       ‘여기서도 이 멘트를 들을 줄 몰랐네.’

         

       최근 들어 그를 스카우트 하려는 이들이 많긴 했지만, 설마 신전에서도 이런 제안을 들을 줄이야.

       확실히 영웅 칭호가 제법 엄청난 선전 효과를 내긴 하나 보다.

         

       하지만 내심 여사제에게 하지 못한 험한 말이 목구멍 언저리에서 맴돌고 만다.

         

       ‘내가 미쳤다고 십일조 내면서 신전에 다니랴?’

         

       차마 자길 치료해주는 사람 면전에 험한 말을 할 수가 없어 가까스로 말을 삼키는 이한이었다.

         

       * * *

         

       “으으으!”

         

       밖으로 나온 이한은 가볍게 몸을 풀듯 스트레칭을 했다.

       치료 과정 중 찾아오는 격통은 최악이었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점차 힘이 솟는다.

       활력.

       그러한 것이 온몸에 깃든 느낌이다.

         

       ‘신전 자체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긴 한데, 그 편리성 하나는 끝내주네.’

         

       왕국에도 의사 같은 치유술사 등의 직업군이 물론 있다.

       성법을 쓰는 치유사제는 귀한 인력이니, 아무래도 가급적 다른 치유 수단을 강구하는 게 당연하니까.

       허나 의학이란 아직은 발전이 더딘 학문인 것은 어쩔 수 없는 바.

         

       왜, 당장 19·20세기 의사들만 해도 사람 살리는 것보다, 사람 죽이는 걸 더 잘했다고 했지 않은가?

         

       혈압 낮춘다고 환자의 피를 빼거나, 약 대신 수은을 먹이거나, 위생조차 개판이었다고 하니….

         

       이처럼 아직 팬드래건의 의료 수준은 처참한 수준이었으며, 아직은 신전의 치료술이 더욱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한도 그 치유술의 위상을 몸소 겪으며 감탄을 연발했다.

       반년은 정양해야 할 부상이 모조리 나은 것 같다.

         

       “한 세 번만 더 받으면 더 좋겠네.”

         

       그러면 몸의 활력도 제대로 복구될 것 같다.

       아니, 활력뿐만 아니라 그동안 알게 모르게 몸에 쌓인 내상이나 자잘한 부상조차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가 되는 바.

         

       ‘지금도 몸이 가벼운데, 다 치료받으면 날아다니지 않을까 싶네.’

         

       툭.

         

       “아, 이것도 해결해야지, 참.”

         

       헛생각이 이어지던 중 그의 정신을 문득 차리게 해준 건 주머니 속에 있는 어느 주먹만 한 돌덩어리였다.

         

       대충 허리춤 배낭에 들고 다니는 것이었으며, 얼핏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니고 있으니 그냥 수집하려고 모은 수석 같은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지만, 이건 수석이나 보석과도 비견할 수 없는 천문학적 가치를 가진 보물이었으니.

         

       귀왕의 심장.

         

       전날 오러에 의해 태워지고 남은 귀왕의 유일한 부산물이었다.

         

       이러한 보물을 이토록 함부로 들고 다니다니, 미친 게 아니냐는 막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테지만, 이한은 딱히 보물에 끌려 다니는 성격은 아니었다.

         

       – 행복이 별거냐, 그냥 남 눈치 안 보고 내가 만족하면 되는 거지.

         

       전생 시절, 돈만 모으며 노후준비만 하다 기껏 모은 재산조차 제대로 못 쓰고 죽어버렸던 그였다.

         

       그래서일까?

       현생에 이르러 이한은 재물을 모으되, 자신이 만족할 만한 방향으로 펑펑 써버리는 편이었다.

         

       어차피 결혼 생각은 저주(불능) 때문에 꿈도 꾸지 않았는지라, 최소한의 생활비만 둔 채 쓰는 것이었다.

       어차피 아껴봤자 죽으면 무슨 소용이냔 생각 때문에.

         

       …물론 가난뱅이 성격 어디 안 간다고, 얼마씩은 저축해두는 게 있었으나, 어쨌든 그는 보물에 대해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이걸 누군가에게 빼앗기거나 강탈당한다면 그것도 제 실력이 그 정도에 불과하다는 의미일 터.

         

       ‘자격이 없는 자가 기연을 가지면 불행만 남는다고 했지.’

         

       무협지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기연을 얻은 최초의 발견자는 정파 혹은 사파 무림인한테 걸려 살인멸구 당하는 게 정해진 약속인 바.

       그러니 기연이란 놈은 숨기는 것보다 당당히 가지고 다니며, 잃어버리면 잃어버리는 대로 속 편하게 사는 것이 좋다.

         

       긍정적 마인드.

         

       스트레스 없는 건강한 삶을 위한 삶의 자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뭐.

         

       ‘긍정적으로 살겠다는 거지, 빼앗기며 살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상대가 도둑놈이라면, 도둑놈 또한 그에게 약탈당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번 삶에서 이한이 각오한 규칙 중 하나니까.

         

       당하고만 살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함부로 내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없다.

       만약 이러한 규칙을 건드는 자가 있다면 결코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렇게 나름 살벌한 각오를 되새기며 심장을 매만지던 중, 이한은 다시금 이 심장을 어떻게 할까 고심했다.

         

       ‘장비로 만들까, 아님 그냥 먹을까?’

         

       팔 마음은 없다.

       전날 결심했던 것처럼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을 것이다.

       허나 이런 희귀 소재를 가공할 만한 인재를 찾는 것은 모래사장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렌즈를 찾는 것과 비슷한 난도이다.

         

       ‘그나마 인맥 중 이걸 가공할 수 있는 사람은 누님뿐이긴 한데….’

         

       암브로시아와 같은 신화에 나올 법한 명약을 만들어 낼 인력을 갖추었으리라 추정되는 그녀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녀에게 부탁하진 못할 것 같다.

         

       ‘그 누님은 이걸 홀라당 삼킬 것 같단 말이지.’

         

       아이시스가 들었다면 ‘여가 남의 것을 탐하는 몰염치한 군주로 보인단 말이냐?!’

       -며, 노발대발할 테지만, 안타깝게도 이한은.

         

       ‘뭐든 대가를 요구하겠지.’

         

       신뢰하기에 부탁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의 인생 원칙 중 하나가 다름 아닌 [등가교환].

       부탁한다면 부탁하는 만큼 그 대가를 가져가거나 요구할 것임이 분명하다.

         

       아마 귀왕의 심장 중 절반을 요구하거나, 그도 아니면 더욱 악랄한 요구를 해댈 것이다.

       하여 그녀에게 부탁한다는 선택지는 고이 접어두는 게 맞다.

         

       ‘그럼 다음 후보는 주문쟁인데…, 으음, 둘 다 고만고만하구먼.’

         

       노예 주문쟁이는 전투를 치른 후 골골대며 입원 중이라 논외고, 2번 병아리도 이런 걸 다룰 만한 기술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걔는 학자 타입이 아니라, 나처럼 그냥 직감파란 말이지.’

         

       나름 사람 보는 눈이 있다 자부하는 이한은 아이린 윈들러가 썩 마법사답지 않은 소녀임을 안다.

       아마 이걸 가져다주면 식은땀만 뻘뻘 흘릴 것이 눈에 선하다.

         

       이렇다 보니 어느새 주변 인맥 중 마물의 소재를 다룰 만한 녀석이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달으며 생각이 깊어지던 중.

         

       따악.

         

       “…알 만한 녀석이 있을지도?”

         

       이마를 톡톡 건드리던 검지를 딱 멈추며, 문득 생각나는 얼굴이 있었다.

         

       이번에 힘겹게 편입시켜 데리고 온…….

         

         

       “‘조교. 2호’야, 내가 원하는 걸 좀 읊어보렴.”

         

         

       “…차라리 소심이라고 불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태창이, 아니 데릭이 처음으로 강력한 거절의사를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조교는 아니라며.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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