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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끔찍하군."

         

       군대를 거느린 아슈발 할츠 후작은 혀를 찼다. 파라메르의 외벽 아래로 줄줄 흘러내리는 썩은 살점들을 보았다.

         

       꿈틀거린다. 살아있는 생명 마냥 요동치고 있다. 외벽 전체는 물론이고, 안에서 이따금 거대한 생물이 목격될 때가 있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른다. 접근은 할 수 있으나 들어가는 즉시 괴물들이 쏟아졌다.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되살아는 끔찍한 생명체들.

         

       불을 질러도 소용없다. 폭격 마법을 퍼부어도 썩은 살점으로 된 외벽은 다시금 재생한다. 공략 불가능한 파라메르 그 자체.

         

       그나마 다행인 건 건드리지 않는 이상 반응하지도 않는다는 점 정도겠지.

         

       아슈발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병력을 돌아보았다.

         

       주둔 병력은 이천. 기사는 백이 채 되지 않고, 마법사는 삼십에 불과하다.

         

       자신의 영지에서 긁어모은 사병들. 죽기를 결사하고 따라온 이들이지만, 숫자가 적어도 너무 적었다.

         

       처음에는 이토록 적지 않았다. 자신뿐만 아니라, 여러 귀족이 각자의 사병을 끌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제국의 명령에 나머지는 철수했다. 한 달 남짓 동안 별다른 이상 현상이 관측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모두 후퇴했다.

         

       경계군이라는 명분에 따라 남게 된 건 오직 아슈발 할츠의 군대뿐.

         

       "……"

         

       말이 좋아서 경계병력이지, 만에 하나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먹잇감으로 던져질 군대다. 아슈발 할츠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내가 3 황녀를 따르기 때문이겠지.

         

       이제는 거의 남지도 않은 3 황녀의 세력을 아예 짓밟아버리겠다는 건가. 황태자.

         

       아슈발은 천막으로 돌아왔다. 문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골치 아픈 일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앞에 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몇 번의 정찰로 확인해본 결과, 파라메르 안에 있는 것들은 불사의 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부딪히면 죽는다. 돌파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빠져나갈 명분도 없었다.

         

       저 외벽이 무너지고, 3황녀의 마지막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이 없어질 때까지 제국은 이대로 현 상황을 유지하겠지.

         

       …죽는 건 상관없다. 제국을 위해서라면, 이 한목숨 바쳐도 영광만이 남을 뿐이니까.

         

       그저 괴로운 게 있다면, 홀로 남을 주군인가.

         

       아슈발 할츠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정신을 다잡기 위해,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경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군대는 외벽 너머로 거대한 괴물이 움직일 때마다 술렁거렸고, 이탈자들이 서서히 늘고 있었다.

         

       "이, 이건 미친 짓이야…"

       "저게 기어나오기 전에 도망쳐야 해!"

         

       이천이었던 군대가 천팔백으로 줄었다. 기사들이 단속하고 있음에도 그 정도였다.

         

       거기다가 살점으로 뒤덮인 외벽의 활동이 서서히 활발해지고 있었다. 외벽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괴물의 형상도 목격되는 때가 늘었다.

         

       무엇인지 몰라도 터지기 직전이라는 뜻.

         

       "…끝이 다가오는 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각하!"

       "꺼지지 않는 뿔나팔이 평원을 뒤덮을 겁니다!"

       "아슈발 할츠의 이름은 제국 역사에 영원토록 남을 것입니다!"

       "만약 일이 터진다 하더라도, 각하께서는 저희를 방패 삼아 부디 후일을 도모하소서!"

         

       충직한 기사들의 말에 아슈발은 쓰게 웃었다.

         

       "…고맙지만, 그렇게 추하게 살아남고 싶지는 않군."

         

       전선 뒤에는 여러 마을이 있다. 위험성을 경고했음에도 떠나지 않은 이들.

       그들이 떠나지 않은 이유는 별거 없었다.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걱정해 떠나갈 수는 없는 것.

         

       귀족의 삶과 평민의 삶은 다르다.

         

       아슈발 할츠는 그들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기사 서약을 맺을 때부터, 줄곧 제국민을 위해서 검을 뽑을 각오가 되어 있었기에.

         

       적어도 일이 터진다면, 그들이 대피할 시간을 벌어야 하겠지.

         

       죽을 수밖에 없는 자리라면 명예롭게. 아슈발 할츠는 몸을 일으켰다.

         

       "병사들을 좀 쉬게 하도록. 내가 직접 경계를 서겠다."

       "각하!"

       "그런 일을 굳이…!"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다. 이 정도쯤은 할…"

         

       문이 열렸다.

         

       병사 하나가 구르듯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

         

       "각하!"

         

       올 것이 온 건가.

         

       아슈발은 검을 잡았다.

         

       "외벽이 무너졌나? 괴물이 오고 있는 건가?"

       "그, 그게 아닙니다! 무장한 이들이 현재 군 쪽으로 오고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숫자는?"

       "50에서 60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애매한 숫자다. 황태자가 마음을 돌리기라도 한 건가.

         

       "깃발을 따로 들고 있었나?"

       "깃발은 따로 없었습니다만…"

         

       이어지는 말에 아슈발은 의미를 알 수 없어 눈을 깜빡였다.

         

       "입고 있는 복장과, 옷에 그려진 문양으로 보아선…라의 성기사들 같습니다!"

       "…뭐?"

         

       그들이 왜?

         

       대체 여기에 왜 온단 말인가?"

         

         

         

         

       . . .

         

         

         

         

       "라의 교단에서 나온 이단심판관 디모나에요. 아슈발 할츠 후작 각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대의 길에 신의 은총이 깃들길."

         

       아슈발이 떨떠름히 인사를 받았다. 눈을 들어 성기사들을 보았다.

       라의 문양 중에서도 특이한 문양.

         

       이단심문관들이다. 악마와 이단을 단죄하는 이들.

         

       하지만 저들이 왜 파라메르에 왔단 말인가?

         

       "제국이 당신들을 불렀소? 미리 연락을 받은 게 없소만."

       "부르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이곳에는 왜 온 거요?"

         

       대답은 명료했다.

         

       "파라메르 안에 이단심문관이 한 명 잡혀 있어요."

       "…한 명?"

         

       꼴랑 한 명 구하기 위해서 오십 명을 데려왔다고?

         

       "중요한 사람인가 보군."

       "그냥 이단심문관이에요."

       "…무슨 귀중한 정보라도 들고 있소?"

       "아니요. 그저 파라메르 수색대에 참가했던 성기사였습니다."

       "……?"

         

       중요하지도 않은 성기사 하나 구하러 이 고생을 한다고?

         

       아슈발은 쓱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뒤로 나열해 있는 성기사들은 모두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죽음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결사의 각오.

         

       …이단심문관들 중에 제정신 아닌 사람들이 많다지만…그냥 단체로 미친 건가?

         

       사람 하나를 구하겠다고 오십 명을 사지로 몰아넣어?

         

       "파라메르는 보다시피 정상이 아니오."

       "알고 있습니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지."

       "알고 있습니다."

       "죽지도 않소."

       "알고 있습니다."

         

       아슈발은 깨달았다.

         

       그냥 진짜 미친놈들이었군!

         

       "…아니…뭐…굳이 들어가겠다면…말리지는 않겠소만…"

         

       아슈발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교단에서 나왔다는 증명서를 보여주겠소?"

       "없습니다."

       "……? 무단으로 이탈했다는 거요?"

       "맞습니다."

       "동료 하나를 구하기 위해서…이 인원 전부가?"

       "네."

         

       미친 놈들 맞았군!

         

       "길을 터줄 수는 있소만…뒷일은 책임 못 진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소. 내 군대는 여기 그대로 있을 거요."

       "괜찮습니다. 그 정도는 이미 각오했습니다. 막지만 않으신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렇…다면야…"

       "각하!"

         

       병사 하나가 구르듯 뛰어들어왔다. 뭔가 데자뷔가 느껴지는 씬에 아슈발이 슬쩍 물었다.

         

       "외벽이 무너진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다만…!"

         

       병사가 다급히 말했다.

         

       "40명 정도 되는 무리가 현재 군 쪽으로 접근 중입니다!"

       "……?"

         

       아슈발은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라의 교단인가?"

         

       디모나가 화들짝 놀랐다.

         

       "벌써 추격대가…?"

       "입고 있는 옷과 그려진 문양으로 보아…"

         

       이어지는 말에 아슈발은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물을 쥐었다.

         

       "뱀의 교단인 걸로 추측됩니다!"

         

       그쪽은 또 왜 튀어나와?

         

         

         

       . . .

         

         

         

       "사도 에스텔입니다."

         

       거물이다. 거물이 튀어나왔다. 뱀 교단의 사도라면, 종교 측에서는 공작이나 다름없는 인물.

         

       "아슈발 할츠요. 이곳에는 무슨 일로…?"

       "파라메르 안으로 들어가게 길을 비켜주세요."

       "…설마."

         

       아슈발은 혹시나 해서 물었다.

         

       "저 안에 있는 이단심문관 때문이오?"

       "……? 그걸 어떻게?"

       "선객이 있소만."

         

       디모나 이단심판관이 막사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에스텔과 눈이 마주치고 흠칫 놀랐다.

         

       "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그러는 당신은 왜…?"

         

       미묘한 시선이 오갔다. 에스텔의 옆에 붙어있던 이자벨라가 급히 물었다.

         

       "디, 디모나 이단심판관님! 자하드 이단심문관은 살아 있는 겁니까?!"

       "저도 모르니까 일단 오긴 했는데…설마 뱀 교단에서 자하드를 구하기 위해 파병이라도 한 건가요?"

       "아뇨. 제 독단입니다."

         

       이쪽도 탈영병이냐!

         

       아슈발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대체 자하드라는 이단심문관은 뭐길래 두 교단에서 죽자사자 매달리는 걸까.

         

       단순한 인물은 아닌 듯한데…혹시 저 괴물들에 대한 비밀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어쩌면 파라메르를 정상으로 되돌릴 방법이라도…?

         

       "…라다토크."

       "이자벨라."

         

       시선을 교환한 두 성기사가 가볍게 악수를 했다.

         

       "다시 아군으로 만나서 다행이군."

       "그쪽이야말로. 한 번 등을 맡긴 적 있으니, 이번에도 등을 맡기겠다."

       "당신이라면 든든하지."

       "저기요…아니…그렇게 속 편하게 인사 나눌 때가 아닌 거 같은데…"

         

       디모나의 한숨 속에서 병사들이 또 한 번 막사 문을 열고 나왔다.

         

       아슈발은 이제 묻지도 않았다.

         

       "또 누구지?"

       "예, 예? 그, 그게 이번에는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오백의 병사를 확인! 선두에는 다섯 명의 기사가 있습니다!"

       "오백? 종교인들이 아닌가?"

       "아닌 걸로 판명됩니다! 목격한 바로는 가지각색의 무장이 섞여 있는 걸로 보아…용병들인 걸로 추측 중입니다!"

         

       용병?

         

       용병이 왜 여기서 나와?

         

         

         

       . . .

         

         

         

       "…당신들은?"

         

       로즈메리가 눈을 깜빡였다. 눈이 마주친 다니엘이 눈을 크게 떴다.

         

       "사제님! 왜 여기에?!"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왜 여기 있어요?"

       "저희는 한 사내에게 고용 당했습니다. 무척 높은 임금으로 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안에 어린 사제님을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려서…"

         

       다니엘이 로즈메리를 향해 끈적끈적하게 웃었다.

         

       "다시 만난 걸 보면, 저희 약간 운명 같지 않습니까?"

       "처맞기 전에 입 닫아요."

       "……"

         

       용병들의 선두에 섰던 다섯 명의 사람들이 말에서 뛰어내렸다.

         

       "야이씨. 어떡하냐."

       "나 귀족 처음 보는데."

       "예법이 뭐지…?"

       "네가 인사해!"

       "저, 저는 뒤에 짜져 있을게요…"

         

       투닥거리던 사람 중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덩치 큰 남자가 흠흠 목소리를 더듬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귀족 어르신. 저는 헥토르라고 하는데, 다름이 아니오라…"

       "자하드를 찾으러 온 건가?"

       "예? 그걸 어떻게…?"

       "그 친구는 참…"

         

       아슈발은 혀를 찼다.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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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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