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8

    <78 – 트롤의 딜레마>

     

    지고쿠는 자켓 안에서 총알 한 알을 꺼냈다.

     

    “야, 이거 가져가.”

    “총알이요?”

    “내가 특별히 아끼는 총알인데 너 주는 거야.”

    “?”

    “어디다 팔아서 포인트로 바꿔먹든 가지고 다니든 알아서 해.”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녀석은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니 저런 녀석이 덜컥 죽는 건 싫다.

    운이라도 따라주지 않으면 덜컥 객사해버리겠지.

    그녀가 행운의 탄환을 넘겨준 이유였다.

     

     

    * *

     

     

    갑자기 지고쿠의 호감도아이템을 얻었다.

    뭐지.

    물속성 해적이라 헤엄 잘 치는 여자가 호감인가.

     

    ‘다음에 사다코 교수님이 물귀신 데려오는 강의에 초대하면 좋아할까?’

     

    몰기를 닦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며 탄환을 만지작거리던 도중, 용사와 마주쳤다.

    역시 981기 최강의 사기캐답게 플레이어의 지식과 잔재주 없이 실력 하나로 마법의 세수대야의 방해를 뚫고 기어이 강을 통과했나보다.

     

    “오크노디. 분명 그런 이름이었지?”

    “넹.”

    “너, 내 동료가 되지 않을래?”

    “넹??”

     

    마법탄환보다 더 뜬금없이 영입제안을 받았다.

     

    “갑자기요? 왜요?”

    “해적 녀석이 아이에게 말을 걸 이유는 하나밖에 없으니까. 네 재능을 보고 해적동료가 되지 않겠냐며 제안을 받은 거지?”

    “딱히 그런 건 아닌데요?”

    “그럼 무슨 대화를 했어?”

    “선물을 줬어요. 총알이요.”

    “…하루라도 총을 쏘지 않으면 미치는 여자가 총알을 선물로 줬다고? 그게 동료영입 제안 아니야?”

     

    엑, 그런 건가?

     

    “뭐 이벤트 때문에 한 번은 해적선에 탈 예정이지만 정식해적동료가 될 생각은 없어요.”

    “그럼 용사파티에 들어오는 건 어떻게 생각해?”

    “저를요? 정말로?”

    “정말로.”

    “왜요?”

     

    A그룹 수석이라서?

    상급반 신체단련 강의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서?

    어린 나이에 잠재력을 높이 평가받아서?

     

    “속성 할당제 때문에.”

    “…네?”

    “바다. 화산. 갱도. 용사의 적들은 다양한 환경에 숨어들고, 용사파티는 다양한 전장을 돌아다녀. 오크노디는 수속성 동료후보 1순위야.”

     

    이번 세계의 이슈타르는 제법 똑똑한 용사였다.

    전사만 다섯 모은 전사단 용사파티나 도적만 다섯 모은 배신5초전 용사파티 같은 것보다 철저하게 포지션과 능력을 분배해서 뽑을 생각인가?

    어느 회차에서든 이상한 컨셉 하나에 꽂히는 경향이 있는 이슈타르치고는 제법 건전한 발상이다.

     

    “제안은 고맙지만 거절할게요.”

    “어째서?”

    “같이 다니고 싶은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 사람들인가?”

     

    이슈타르가 수영은 때려치고 근육의 힘으로 물장구를 일으키는 손오천과 헤스티아,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다른 학생들을 가리켰다.

     

    “네. 재밌어 보이죠?”

    “그러네.”

     

    이슈타르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약간의 그리움과 상실감.

    과거를 되짚던 눈은 시선을 돌리며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말해. 적어도 1년간은 네 자리를 비워둘 테니까.”

    “네에.”

    “그리고.”

    “?”

    “교수님이 배가 고프면 프로틴 스프를 공짜로 끓여준다고 전해달라고 했어.”

    “그건 됐어요…”

     

    프로틴쉐이크는 마셨지만 프로틴스프는 선 넘었지.

    먹을 거 가지고 장난 치는 거 아니야!

     

     

    * *

     

     

    이슈타르는 떠올렸다.

    자신의 동료가 되기 위해서 아카데미로 가는 길마다 들렀던 영지의 영주들이 베풀었던 호의를.

    거들먹거리는 귀족남자들이 겨우 4살이 될 법한 아이와의 약혼을 맺자고 제안하거나 서른도 넘은 자신과의 혼약은 어찌 생각 하냐고 묻는 무례함을.

    평민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인생역전, 신분상승, 일확천금.

    욕망에 눈이 먼 사람들이 자신을 동료로 받아달라며 조금이라도 친분을 만들려고 애쓰는 태도는 이슈타르에게 상심만 안겨주었다.

    그런 사람들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자신의 고향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슈타르. 그 아이에게 영입제안을 했다면서요?”

    “미안, 유피. 미리 상담했어야 했는데.”

    “흥. 알면 됐어요.”

     

    유일신 소페미아의 선택을 받은 자신처럼 12주신 중 하나인 <참수의 골고다>에게 선택받은 유피.

    그녀만이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대등한 입장으로, 어떠한 욕심도 없이 동료가 되기를 희망했다.

    짐짓 삐진 척 귀엽게 고개를 돌렸던 유피지만 그녀가 들고 다니는 십자가는 무게만 30kg이 넘는다.

     

    ‘어느 직업이든 힘이 없는 사람은 몸도 마음도 약해지기 마련이야. 플라톤 교수님만큼 극단적인 강함은 아니라도 다소의 강함은 갖출 필요가 있어.’

     

    오크노디는 눈치 채지 못했지만 이번 회차의 이슈타르가 꽂힌 것은 힘.

    직업과 속성을 따지기는 하지만 해당 분야에서 가장 우선시해서 주목하는 스탯은 하필이면 각 직업의 필수스탯이 아니라 ‘힘’ 스탯이었다.

    강바닥까지 잠수해서 수압을 버티고 급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이 어디 보통 힘이겠는가!

    소문으로는 하프오크라서 오크급 힘을 지녔다는 말도 있으니 더욱 호감이다.

     

    “이슈타르.”

     

    그런 친구의 동료선정기준을 정확히 알고 있는 유피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럴 거면 덩치 큰 원숭이수인 손오천이 동료후보로 더 낫지 않아요? 힘도 세고 덩치도 크잖아요.”

    “그건 곤란해.”

    “마나연단법을 익히지 않아서?”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아…….”

     

    그래서 냐냐 거리는 귀여운 고양이수인 여자애가 인사하러 왔을 때도 기겁을 했구나.

    유피의 의문 하나가 해결되었다.

     

     

    * *

     

     

    오늘도 일찍 강의를 마친 덕분에 무사히 2교시에 참석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디스트로이어 교수님!”

    “오냐.”

     

    교수는 왠지 모르게 찝찝하다는 얼굴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 돌아가는지 모르겠는 프로그램을 보는 프로그래머처럼 불안과 초조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니까 괜히 덩달아 찝찝해졌다.

     

    “왜 그러세요?”

    “너, 자각몽은 자주 꾸는 편이냐?”

    “아니요? 잘 땐 꿈 한 번도 안 꾸는 편인데요?”

    “그런데 어떻게 악몽의 시련을 그렇게 간단히 깰 수가 있지?”

    “?”

    “…됐다. 바보같이 해맑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이런 소리를 하는 것도 김이 빠지는군. 두 번째 강의나 시작하지.”

     

    실없기는.

    이 교수님이 친구도 없이 매일 혼자 잘난 체 하면서 놀고 다니니까 심심했나보다.

     

    “너, 지금 뭔가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냐?”

    “아닌데요?”

     

    디스트로이어는 미심쩍다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이내 흥 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지난 번 강의에서는 <줄지 않는 양>을 이야기했었지. 오늘도 이야기를 하나 들려줄 거다.”

    “어떤 이야기인가요?”

    “오늘의 이야기는 <트롤의 딜레마>. 걸어서 여행 다닐 생각은 쏙 사라지게 되는 이야기다.”

     

    목요일 2교시 <은퇴한 전직용사의 모험기담>.

    디스트로이어 교수의 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됐다.

     

     

    * *

     

     

    지금으로부터 약 14년 전.

    변방에서 <줄지 않는 양> 의뢰를 비롯한 잡다한 의뢰를 수행하며 공적치를 벌던 시기.

    용사파티는 변방마을과 개척마을들을 잇는 외지마을들의 교역중심지에 들렀다.

     

    “야, 이 무식한 체력바보들아. 다리 부러지겠다! 돈은 벌었다가 어디다 쓰려고 아끼냐? 마차 좀 타자 시발것들아!”

     

    디스트로이어는 참다못해 냅다 욕을 박았다.

    용사 니알라토텝과 첫 번째 동료, 전사 알파.

    신의 축복을 받은 용사야 그렇다 쳐도 이 녀석은 근육의 축복을 받았나 싶은 알파 탓에 걸어갈지 마차를 탈지 다수결을 하면 언제나 2 대 1이 뜬다.

     

    “디스트로이어군이 힘들다니 공평하게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걸어라.”

    “하하. 저도 모험은 자신의 발로 걷는 쪽이 즐겁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관계로 이동방안에 대한 안건은 다수결로 걸어서 이동하자로 결정되었습니다!”

    “이런 씹.”

     

    오늘도 다수의 폭력에 학대당하던 용사 니알라토텝의 두 번째 동료, 도적 디스트로이어.

    구원의 손길은 그들의 옆에서 말을 몰던 마부로부터 내밀어졌다.

     

    “허허. 나이 어린 모험가들이 경제관념이 똑 부러진 건 좋지만 가끔은 동료의 투정을 들어주는 것도 좋지 않겠나?”

     

    마을의 <구원자> 칭호를 여럿 모아서 <벽촌의 구호자> 칭호로 승급한 용사파티의 다음 목적지는 무려 걸어서 한 달은 걸리는 먼 곳의 광산마을.

    지금까지는 애써 인내심을 발휘해왔던 디스트로이어가 뚜껑이 뒤집힐 수밖에 없는 거리였다.

     

    “혹시 태워주시는 겁니까?”

    “겸사겸사 마차를 호위해준다면.”

     

    마음씨 좋은 마부는 무상으로 그들에게 마차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허름한 장비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남자 셋.

    이런 조잡한 파티를 호위랍시고 고용할 의뢰인은 흔치 않았다.

    도적인 디스트로이어는 대인관계와 관련된 사교스킬이 다른 동료들보다 높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마부는 정말로 호위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불쌍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임을.

     

    “이번 마차여행은 느낌이 좋아. 아주 재밌겠어. 후후후.”

    “…마차, 내린다.”

    “또 뭔가 사고가 터지는 거 아니야? 아씨, 나까지 걸어가고 싶어지네.”

     

    니알라토텝이 저 따구로 재수 없는 웃음소리를 낸 뒤에는 언제나 사고가 터졌다.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차마 한 달을 노숙을 하며 걸어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던 디스트로이어는 애써 용기를 품었다.

    뭐든 간에 사건이 터지면 해결하면 그만 아닌가.

     

    “걱정 말게. 이 길은 용병 여섯이 며칠 전에 먼저 갔던 길이니 무슨 일이 터져도 그들이 먼저 겪을 것이네. 박살이 난 용병들이 돌아오거든 그때 마차를 돌려도 늦지 않아.”

     

    마부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나, 트롤. 인간 찢는다.”

    “지금 배부르다. 놀이로 봐준다.”

    “한쪽 길 고른다. 전속력으로 지나가면 살려준다.”

     

    웬 미친 트롤이 두 갈래길 앞에서 한쪽의 널따란 길바닥에는 용병 다섯을, 반대쪽의 깎아 지르는 벼랑길에는 용병 하나를 묶어두고 마차로 치고 지나가라는 제안을 하기 전까지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괴왕님의 새로운 팬아트가 공지에 추가되었습니다.

    크로노님 6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6500원의 행복으로 와챠플레이 1달 정기권을 질렀습니다. 열심히 인풋을 해서 업그레이드 된 오크노디를 보여드리는 거시에요!
    브로콜리치킨님 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라이드치킨 공작가의 방계신가요?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