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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레비나스 앞에 잔뜩 화가 나 있는 소녀가 서 있다.

       언제 주먹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슨일이 있어도 레비나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나는 다급히 그녀에게 달려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저, 저기···”

       

       소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를 막아 세우긴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고의가 아니었지만, 먼저 시비를 건 것은 레비나스였으니, 일단 사과를 먼저 하기로 했다.

       

       “잘못 했어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

       

       내 사과에도 소녀는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얼핏 화가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게임에서 벌어진 일을 현실까지 끌고 온 여자였으니까.

       

       “와, 왕아···?”

       

       내가 먼저 사과를 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던 건지, 레비나스가 뿔토끼눈을 떴다.

       그때에도 소녀는 말없이 우리를 노려볼 뿐이었다.

       

       “레비나스도 어서 사과해.”

       

       “미, 미안하다. 레비나스 용서해 주냐···?”

       

       내 나무람에 레비나스가 어떠한 의문도 달지 않고 사과를 했다.

       충분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줬음에도 소녀는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대체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러는 거지?

       나는 레비나스가 있는 곳까지 뒷걸음질을 쳤다.

       

       “와, 왕아 우리 맞는 거냐···? 최강지존권아린이가 우리 때리는 거냐···?”

       

       “그,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면 때리기야 하겠지.

       그리고 눈앞의 소녀는 그 정도로 화가 나 보이기는 했다.

       아무런 말 없이 나와 레비나스를 내려다보고만 있었으니까.

       

       화가 너무 많이 나면 말이 없어지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소녀 또한 그러한 부류의 사람인 걸지도 몰랐다.

       

       “왕아, 레비나스는 안다. 우리 분명 맞을 거다···”

       

       “그, 그래?”

       

       “응! 레비나스한테 개색기라고 했다! 못된 어른은 개색기라고 한 다음에 마구 때린다···!”

       

       덜덜덜.

       내 옷자락을 붙잡은 레비나스의 손이 떨려왔다.

       그녀가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뭐냐? 방금 애들 때린다고 들었는데?”

       

       “응. 나도 들었어.”

       

       “애기들 겁먹었는데?”

       

       공원내 사람들의 이목이 우리를 향해 집중되었다.

       레비나스가 꽤나 큰 목소리로 외친 덕분이었다.

       

       보는 사람이 이리 많이 있는 데에도 주먹을 휘두르려나?

       그렇다면 정말로 위험한 사람인데.

       나는 손가락만 꼼지락거린 채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왕아, 레비나스 때문에 맞게 생겼다··· 레비나스가 많이 미안해···”

       

       “난 괜찮아. 맞는 건 익숙하거든.”

       

       “아, 아니, 나는···”

       

       소녀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원 내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폭력적인 상황을 참지 못하는 선량한 사람들인 걸까?

       조금이나마 안도감이 들기 시작했다.

       

       “저기, 레비나스 대신 제가 맞으면 안 될까요···? 레비나스는 아직 아이거든요···”

       

       겁에 질린 꼬리가 제멋대로 배꼽까지 올라왔다.

       귀는 축 가라앉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럴 때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귀와 꼬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아니, 아니야, 너도 아이고···”

       

       소녀가 손을 내 저으며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왜 갑자기 아이고 하며 탄식을 내뱉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화가 안 통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인 건가?

       방도가 없는 상황에 두 손으로 꼬리만 잡고 있으니, 인상을 잔뜩 찌푸린 중년 사내가 소녀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이봐, 잠깐 나 좀 따라오지그래.”

       

       “아, 아뇨! 저, 저는, 그런 게 아니라···”

       

       “아니고 자시고 일단 따라와 봐.”

       

       사내가 소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힘이 얼마나 센지, 그녀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저, 저는 아이, 아이들을···”

       

       히이익!

       그녀가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그때.

       누군가 수풀을 헤치며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멀리서 지켜보기로 했던 한여름이었다.

       

       “잠시만요.”

       

       한여름의 목소리에 사내가 멈춰 섰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잡고 있던 소녀의 손을 내려놓았다.

       

       “애들 방금 얘한테 맞을 뻔했어.”

       

       “네. 저도 봤어요.”

       

       “그럼 잘 좀 해줘.”

       

       “넵. 감사합니다.”

       

       꾸벅.

       한여름이 고개를 숙이자, 사내가 말없이 돌아섰다.

       나는 그런 그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레비나스를 이끌고 한여름의 곁으로 달려갔다.

       

       “흐음···”

       

       한여름이 턱을 쓰다듬으며 소녀를 훑어 보았다.

       소녀도 한여름은 부담스러웠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덜덜 떨었다.

       

       “저, 저는, 저는···”

       

       “최강지존권아린?”

       

       “······.”

       

       한여름에게 자신의 정체가 들킨 게 부끄러웠던 걸까.

       소녀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최강지존권아린님?”

       

       “우, 우으···”

       

       뚝-

       

       결국 한여름의 압박감을 못 이겨낸 건지, 최강지존권아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느끼고 있을 두려움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한심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한여름은 그만큼 적으로 만나면 두려운 존재였으니까.

       

       그저 조금 전까지 두려웠던 그녀가 울음을 터트렸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

       

       

       길드의 응접실.

       그 내부에 권아린이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흘러내리는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난 망했다.’

       

       어린 수인족 아이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국가와 여명 길드의 보호를 받고 있는 수인족 아이들을.

       

       쥐도새도 모르게 제거를 당하는 건 아니겠지?

       권아린이 절망스러움에 고개를 떨궜다.

       

       “최강지존권아린님?”

       

       한여름이 두 잔의 커피를 들고 권아린에게 다가왔다.

       최강 길드에서도 그냥 스틱 커피를 타 먹는구나.

       그 인간적인 모습에 권아린이 희망을 붙잡았다.

       

       “그, 그냥 권아린입니다···”

       

       최강지존권아린 이라니.

       왜 닉네임을 그따위로 지었지.

       권아린은 부끄러움에 얼굴에 피가 쏠리는 걸 느꼈다.

       

       “네. 그럼 권아린님 이라고 부를게요.”

       

       “넵···”

       

       권아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여름이 가볍게 커피를 홀짝였다.

       권아린은 건네받은 커피를 손에 잡고 있기만 했다.

       

       “공원에서 아이들을 윽박질렀다고요? 막 때리려고도 했고.”

       

       “아,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애가 게임 하는 법을 잘 몰라서 그랬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으으···”

       

       한여름이 먼저 사과를 건넸지만, 상황의 주도권은 권아린에게 있지 않았다.

       게임의 룰조차 모르는 아이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초라해질 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현실까지 찾아와 아이들을 때리려고 한 건 그쪽의 잘못이 맞아요.”

       

       “네, 네. 근데 제가 때리려고 하, 한 적은 없는데···”

       

       그렇겠지.

       이는 직접 보고 있던 한여름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이들을 마주한 권아린이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는 걸 볼 수 있었으니까.

       분명 아이인 줄 모르고 왔다가 낭패를 본 걸 테지.

       

       명백한 실수였으나, 잘못을 저지른 건 맞았으니까.

       그냥 보내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뭐, 뭐를요···?”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가 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네, 네···”

       

       보통의 아이들에게 해도 안될 짓을 멸종 직전의 수인족 아이들에게 했다.

       큰 처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엄청 겁에 질린 거 아세요? 막 인간이 너무 무서워서 집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달칵-!

       한여름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 응접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잔뜩 신이 나있는 레비나스와 우물쭈물하고 있는 겨울이었다.

       

       “역시 왕이는 굉장하다! 사과만 했는데 악당을 무찔렀다!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구나!”

       

       “그런 거 아니야···”

       

       겨울의 얼굴은 붉었으나, 꼬리는 살랑거리고 있었다.

       레비나스의 칭찬이 싫지만은 않은 이유였다.

       

       “거, 겁에 질린 거 같진 않은데···”

       

       권아린이 한여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조금 머쓱했던 한여름은 괜스레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이들은 회복이 빠른 편이니까요.”

       

       “아, 그렇죠.”

       

       뭐가 되었든 한여름의 말에 맞장구를 쳐야 한다.

       권아린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레비나스가 달려와 한여름의 무릎 위에 앉았다.

       겨울도 허벅지가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 앉았고.

       

       이런 식으로 달라붙는 것은 무서운 사람 앞에서 안정감을 느끼기 위한 어린 수인족만의 본능이었다.

       수인족에 대해 공부한 한여름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여름아, 내가 아까 왕이한테 들었다!”

       

       “뭐를?”

       

       “이번 건 레비나스가 먼저 잘못한 게 맞대!”

       

       “그래?”

       

       한여름이 헤헤 웃으며 레비나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분위기가 한껏 풀어졌음에 권아린이 안도했다.

       

       “레비나스가 뿔토끼라는 걸 알려주려고 했는데, 그게 또 욕설처럼 들릴 수도 있다고 했다!”

       

       “응. 그런 느낌이 있긴 하지.”

       

       “응! 그래서 레비나스는 최강지존권아린이랑 화해를 하고 싶다! 왕이가 꼭 화해 하라고 했다!”

       

       “어머, 착해라.”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마음씨에 한여름이 미소를 지었다.

       다만, 쉽게 용서해줄 수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죗값을 치러야만 했으니까.

       물론 그렇게 큰 처벌 아니었다.

       어쩌면 권아린에게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조건이 될지도 몰랐다.

       

       “권아린님도 아이들이랑 화해하고 싶나요?”

       

       “네, 네! 꼭 하고 싶습니다!”

       

       “음··· 그럼 이렇게 할까요?”

       

       “어, 어떻게요···?”

       

       꿀꺽.

       권아린의 침 삼키는 소리에 겨울의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

       레비나스가 심심했는지 그 귀를 꼭 움켜쥐었다.

       겨울은 자신의 귀를 붙잡은 레비나스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꼬리만 살랑거릴 뿐이었다.

       

       “권아린님 집에서 게임만 하죠?”

       

       “네, 네···”

       

       역시 여명 길드.

       마음만 먹으면 전부 알아낼 수 있구나.

       권아린이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 한여름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터져 나왔다.

       

       “그럼 길드에서 짐꾼으로 일 좀 하세요. 짐꾼이 부족한 상황이었거든요.”

       

       “네···?”

       

       여명 길드의 짐꾼.

       어지간한 인맥으로도 들어가기 힘든 자리였다.

       여명 길드의 짐꾼은 단순한 짐꾼이 아닌, 모험가를 육성하기 위한 자리였으니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권아린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릅뜨였다.

       

       “저런.”

       

       오로지 겨울만이 상황 파악을 못 하고 미안함을 느낄 뿐이었다.

       자신 때문에 한 소녀가 강제로 길드의 짐꾼이 되어버렸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정말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

    자신을 모욕한 자를 짐꾼으로 만들어 버린 겨울이.
    어마 무시한 고양이네요…!

    ───
    딩딩딩님 55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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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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