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8

       방을 탈출하는 컨셉의 보드게임.

       

       

       딱 한 번만 플레이할 수 있는, 확률 요소는 아무것도 없는 게임.

       

       

       그건 대마법사인 올핀에게도 처음 듣는 개념의 게임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마법사고 뭐고 이 세상에 보드게임은 체스 비스무리한 킬 더 킹 정도 뿐이었으니까. 내가 거기서 몇 가지 보드게임을 더 만들었다 한들 아주 큰 틀에서 킬 더 킹과 완전히 다른 건 아니다.

       

       

       여럿이 플레이하고, 운에 맡기는 요소가 있으며, 본인만의 전략으로 플레이한다.

       

       

       방탈출 보드게임은 그런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부수는 게임이나 다름없었다.

       

       

       ‘나도 처음 접했을 때는 신세계를 경험했으니까.’

       

       

       언락(Unlock), EXIT 등의 유명한 방탈출 보드게임들.

       

       

       보드게임 구성 안에 타이머나 전용 기계장치가 있어 그를 통해 제한시간을 재고, 온갖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그건 순서대로 주어지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에 그칠 수도 있고, 여러 문제를 풀어 그 속의 단서를 찾아 조합하는 식일 수도 있으며, 아예 기계장치가 있어야 풀 수 있는 형식일 수도 있으니.

       

       

       반복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여타 보드게임에 비해 총체적인 플레이 타임은 훨씬 짧지만, 그 대신 딱 한 번의 플레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실로 압도적이다.

       

       

       정말 딱 한 번 화려하게 타오르는 장작이 방탈출 보드게임이었다.

       

       

       ‘왜 지루함을 달랜다면서 이런 류의 게임을 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거지 대마법사가 원한 사항이었으니까. 굳이 그걸 고민할 이유는 없겠지.

       

       

       그리고 그걸 만드는 것 또한 전혀 어렵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게 있었으니까.’

       

       

       내가 가장 처음 플레이했던 바로 그 방탈출 보드게임. 감금된 방이라는 보드게임판에서 여러 장소로 이동하며 단서를 찾고, 그를 조합해 힌트를 얻어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가장 정석적인 전개이지만 그만큼 왕도다. 방탈출 보드게임에 입문하는 용도로는 최고였다.

       

       

       보드게임에 대한 내 시야를 크게 넓혀준 게임이었기에 모든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몇 번 더 플레이했고, 그만큼 수수께끼와 힌트를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전부 기억하는 건 아니였지만 큰 틀만 기억하고 있다면야 나머지 단서나 힌트는 짜맞추거나 새로 만들면 되는 노릇.

       

       

       시중에 나왔던 방탈출 보드게임은 전부 플레이했던 만큼 다른 보드게임에서 가져와 합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밤새 뚝딱 완성한 방탈출 보드게임의 시제품을 올핀에게 건냈다.

       

       

       “이건?”

       

       

       “아직 조악하지만, 일단 큰 틀은 완성했습니다.”

       

       

       “벌써? 설마 밤 사이에 이걸 만든 건가?”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허어………내 아직도 자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었군 그래.”

       

       

       색칠이나 기계장치, 입체적인 도구는 없이 펜으로 슥슥 그리고 흑백으로 칠했을 뿐인 보드게임 판과 수수께끼.

       

       

       완성품은 아니였지만 방탈출 보드게임을 처음 접하는 뉴비가 플레이하기에는 충분했다.

       

       

       샐리에게 건네받은 타이머를 손에 들고, 방탈출 보드게임을 흥미롭게 쳐다보는 올핀에게 미소를 짓는다.

       

       

       “제한시간은 120분입니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가?”

       

       

       “처음이시고,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게임이니 적응하시는 데 시간이 걸리실 겁니다. 거기에 들어있는 스토리와 수수께끼의 양도 상당하니 오히려 부족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

       

       

       다른 방탈출 보드게임을 이미 해본 숙련자가 플레이한다면 1시간 이내로 컷할 수 있지만, 애초에 방탈출 보드게임이라는 개념 자체를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는 2시간은 고사하고 3시간 넘게 끙끙댈 난이도다. 실제로 내가 그랬으니까.

       

       

       같은 기준에 두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같은 대마법사인 올핀이 플레이해보고 재밌게 느낀다면 이걸로 가도 충분하겠지.

       

       

       그리 생각하며 타이머의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좋아. 내 한 번 탈출해보지……!!”

       

       

       그리고.

       

       

       “………제작자.”

       

       

       “…………예.”

       

       

       “이거………재밌네. 지금까지 자네가 만들었던 게임과 전혀 다르고, 완전히 색다른 보드게임이라 굉장히 재밌어. 다만……….”

       

       

       타이머의 시간은, 7분 21초.

       

       

       제한 시간인 2시간, 숙련자 기준 1시간은 커녕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모든 수수께끼를 풀어버리고 탈출한 올핀이.

       

       

       다소 황망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너무 쉬운 것 아닌가?”

       

       

       “………….”

       

       

       아무래도.

       

       

       생각치 못한 곳에서 발목을 잡힌 것 같았다.

       

       

       

       *

       

       

       

       내가 간과했던, 방탈출 보드게임의 문제는 모두 세 가지였다.

       

       

       “멀티 캐스팅(Multi Casting)………말입니까?”

       

       

       “마법에 무지한 이들은 그걸 테크닉이나 재능의 일종으로 생각하지. 하지만 멀티 캐스팅은 엄연한 마법의 일종이라네. 그것도 난이도가 매우 높은 마법이지.”

       

       

       “말 그대로 한 번에 여러 가지 마법을 사용하게 해주는 것 아닙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을 나누는 것’이네. 한 번에 여러 개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한다기보다 생각을 여럿을 나누어 각 생각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지.”

       

       

       “그게 무슨……….”

       

       

       “나와 시샤, 스텔라의 전투를 보지 않았나? 그 때 나는 환상을 수십 가지의 방법으로 운용했었지. 그건 내가 실제로 나 자신의 생각을 수십 개로 쪼갰기 때문이야.”

       

       

       “………….”

       

       

       “다만 생각을 나누는 것 매우 위험한 행위라네. 자칫하면 자아가 분열되고, 이중인격이 될 수 있지. 멀티 캐스팅 자체는 누구나 배울 수 있지만, 생각을 얼마나 많이 나눌 수 있는가는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정해진다네.”

       

       

       “그렇다면 그 멀티 캐스팅으로……?”

       

       

       “이 방탈출 보드게임의 수수께끼 또한 전부 동시에 풀었을 뿐이지.”

       

       

       우선, 멀티 캐스팅이라는 마법의 존재.

       

       

       그 마법 덕에 올핀은 혼자이지만 혼자 생각하는 게 아니였다. 생각을 나누고, 본래 차례대로 봐야 할 수수께끼와 단서들을 동시에 풀고 생각하며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실제로 7분 21초라는 시간 중 4분 정도는 방탈출 보드게임의 룰에 적응하느라 허비했던 걸 생각하면 실질적인 탈출 시간은 고작 3분.

       

       

       생각을 수십 개로 나눌 수 있으니, 단순히 생각해도 한 번에 수십 명의 올핀이 동시에 문제풀이에 임했던 셈이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들 말이네만, 전체적으로 너무 쉽다네.”

       

       

       “……쉽다는 말씀은?”

       

       

       “대부분의 수수께끼가 수학적 문제, 암호 해독, 말장난이더군. 거기에 그 수준도 높지 않아.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마법사라면 보자마자 풀어낼 걸세.”

       

       

       “정말입니까?”

       

       

       “마법이 얼마나 까다로운 학문인지 알고 있나?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해도 두뇌회전이 빠르지 않으면 높은 성취를 보일 수 없는 게 마법일세. 견습 마법사 때는 마법보다 수학, 논리 등을 더욱 집중적으로 배울 정도이지.”

       

       

       “………….”

       

       

       “당연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이런 수준의 문제는 전혀 어렵지 않다네. 멀티 캐스팅을 사용한다면 더더욱.”

       

       

       두 번째는 문제의 수준이었다.

       

       

       만약 이 방탈출 보드게임을 플레이하는 게 그냥 평민이거나 적당한 수준의 사람이라면 문제없겠지만, 이걸 의뢰한 당사자는 무려 대마법사다. 올핀이 사실상 3분 정도에 모든 문제를 풀었다면 디오게네스 또한 비슷할 게 분명했다.

       

       

       사실 문제의 수준이 이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플레이했던 건 결국 보드게임이고, 누구나 탈출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그렇게 적당한 밸런스를 목표로 했으니 마법사와 같은 이들에게는 시시해 보일 수밖에.

       

       

       무엇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걸 플레이할 건 거지 대마법사, 디오게네스다. 어지간한 마법사 수준이 아니라, 대마법사도 시간이 걸릴 정도로 문제의 수준이 높아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난 그런 걸 못 만드는데?’

       

       

       결국 보드게임을 만드는 내 지식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데 있었다.

       

       

       그런 말이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결국 작가의 지능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천재로 설정했다 한들, 작가 본인이 천재가 아니면 안 된다.

       

       

       지금이 딱 그 경우였다. 이제 난 대마법사마저 풀기 어렵고 막힐 수 있는 수수께끼와 단서를 만들어야 하지만.

       

       

       내가 그런 걸 만들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결국 내가 아는 수수께끼들은 다른 방탈출 보드게임에서 풀었던 것 뿐이야.’

       

       

       그리고 내가 풀 수 있었다는 말은, 대마법사에게는 아주 쉽게 풀릴 문제라는 뜻이다.

       

       

       다른 걸 생각해? 그래,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대마법사도 고심할 만한 문제를 하나 생각했다 치자. 하지만 방탈출 보드게임은 고작 문제 하나로 끝나는 게임이 아니다.

       

       

       수십 가지의 문제들, 몇 가지씩 존재하는 수수께끼, 그리고 그보다도 많아야 하는 단서들.

       

       

       내가 그 모든 걸 대마법사 수준으로 만든다는 건 그냥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보드게임은………결국 원래 만들어진 걸 그대로 가져오면 됐었는데.’

       

       

       이번에는 전혀 이야기가 달랐다.

       

       

       플레이어가 아무리 대마법사라도, 같은 대마법사가 상대하면 될 뿐인 여타 보드게임과 다르게.

       

       

       1인 전용 보드게임, 방탈출 보드게임은 제작자와 플레이어의 두뇌싸움이라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나와 디오게네스가 싸우면 결과야 뻔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밤중에 이걸 만들 때만 해도 쉽게 해결될 개인 의뢰라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그 문제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올핀의 도움을 받아?’

       

       

       참 역설적인 말이다. 대마법사도 쉽게 풀지 못할 문제를 만드는 데 대마법사의 도움을 받다니?

       

       

       물론 올핀에 스텔라, 시샤, 반타인과 같은 대마법사들과 함께라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만든 보드게임은.

       

       

       ‘카일 바이런’이 만든 게 맞을까?

       

       

       “……아니지, 절대 아니야.”

       

       

       “제작자?”

       

       

       또한 대마법사들이 합심해서 만든 문제라면 복잡하고 어려울 게 뻔했다. 고차원의 수학 문제나 논리 문제, 마법의 이론 등을 다루려면 글 또한 길어질 수밖에 없겠지.

       

       

       그걸 방탈출이라는 요소에 자연스레 녹아내면서, 카드나 소품 등에 전부 적어내는 게 가능할까?

       

       

       아니, 그렇게까지 가면 그걸 보드게임이라 할 수 있나? 그냥 극도로 어려운 문제를 모아놓았을 뿐이다. 그런 걸 풀면서 재미와 유희를 느낄 수 있을까.

       

       

       디오게네스가 의뢰한 건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 보드게임이지, 문제집이 아니란 말이다.

       

       

       ‘빌어먹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문제들이 커진다. 아무리 끙끙거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언젠가 내가 마주해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그저 베껴왔을 뿐인 보드게임으로, 천재 제작자라는 허명에 취했던 나는.

       

       

       기존의 보드게임을 가져오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방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그러게나.”

       

       

       머리가 복잡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나 자신의 모순만이 크게 보일 뿐이었다.

       

       

       난 정말 보드게임 ‘제작자’인가? 그냥 베껴왔을 뿐인 플레이어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아니, 그런 모순이나 자기경멸 따위의 문제는 전부 제쳐두자. 그런 것 따위 언제든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니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디오게네스의 의뢰.

       

       

       ‘방탈출 말고 다른 게……있나?’

       

       

       1인용 보드게임이야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많다. 하지만 그 중 확률 요소가 아예 없는 것 따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탈출이나 추리 등의 보드게임이 최선이었지만.

       

       

       거기서 난 대마법사의 수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

       

       

       “………….”

       

       

       어떻게 해야 하지? 다른 보드게임을 더 생각해봐? 하지만 뭐가 있는데?

       

       

       터질 듯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무엇이든 생각나는 건 전부 종이에 끄적거린다.

       

       

       내가 알고 있는 방탈출 보드게임들, 거기서 본 특이한 문제들, 혹시 조건을 충족할지도 모르는 다른 보드게임들이 무분별하게 쓰이고 덧씌워지고.

       

       

       그렇게 종이를 채워나가고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불현듯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감각에 종이에 파묻듯 했던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왜인지 목이 조금 갈라지듯 아팠다.

       

       

       “샐리? 아니면 물호랑이야? 미안하지만 잠시 날 혼자……….”

       

       

       “……당신.”

       

       

       “………아, 델라?”

       

       

       그곳에는 첫날 이후로 계속해서 날 피해다녔던 아델라가 서 있었고.

       

       

       평소의 무표정과는 다른, 흔들리는 눈동자를 한 그녀가.

       

       

       “무슨 일 있는 것………아닙니까?”

       

       

       “……별 것 아닙니다. 그보다 아델라, 저번의 일은……….”

       

       

       “그건 상관없습니다. 제 일방적인 투정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조용하지만, 따스한 손길로.

       

       

       날 끌어안았다.

       

       

       “마음을 털어놓고, 쉬십시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쉬라고 하셔도……….”

       

       

       “………그 자리에 앉아계신 지 사흘이 지났습니다.”

       

       

       “……네?”

       

       

       “이미 당신의 몸은 한계입니다. 그러니 제발……쉬십시오.”

       

       

       그것이 내가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아델라의 말로, 내가 얼마나 이 책상에 앉아있었는지 자각한 직후.

       

       

       내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다음화 보기


           


Became a Board Game Producer in Another World

Became a Board Game Produc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보드게임 제작자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oard Game Playing Guidelines] Using magic to break dice or tokens does not result in a draw.

Hallucination spells are not tolerated during the game. If caught, the consequences are your responsibility.

Asking spirits to peek at opponent’s cards is cheating. If the spirits are not participating in the game, kindly let them watch quietly.

Making noise by ringing a bell with your hand is acceptable. Using a bell to strike your opponent and make noise is not acceptable.

There is absolutely no racial discrimination, but when playing with Dwarves, please check the game board in advance. It may be a ‘special’ board ga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