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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79. 검은 성자를 찬양하여라(5)

       

       

       성자께서 떠나가신 이후.

       대신전 앞에서는 차가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분께서 떠나간지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다들 아직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모습.

       

       어찌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충성을 맹세한 대상.

       그 장본인을, 그 위대한 존재를 직접 마주했던 것이니까.

       

       심지어 그분께서는 그들의 끔찍한 행태를 심판하러 오신 것이니.

       

       멀쩡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도미닉은 어떻게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스렀다.

       

       알아야 할 것이. 

       알아야만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자께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

       그들이 모르고 있다는 그들의 진짜 죄.

       

       그리고 그것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을, 성자께서 그들에게 내리신 처벌.

       

       아무리 그의 마음이 복잡하다 하더라도 신의 뜻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자께서 말씀하셨다면, 도미닉은 그것을 이행해야 했다.

       

       그분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말을 남겼을 리가 없으니까.

       

       도미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짜 죄악.’

       

       신을 분노하게 만든 진정한 죄. 

       그들이 아직 모르고 있는 사실.

       

       그것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지.

       어디에 가야 그것을 깨달을 수 있을지.

       

       그것은 무척이나 당연하게 알 수 있었다.

       

       도미닉 추기경은 다시금 대신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열린 문 뒤로 비치는 참혹한 풍경.

       

       분명 저 시체들은 신께서 천벌을 내리신 흔적이리라. 헌데 그렇다 하면 무척이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과, 저곳의 있는 사람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동일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시다.

       그것에는 절대로 부정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나왔는가.

       

       그 이유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죄의 무게가 다른 것이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대신전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무언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저곳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그것은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해야 할 일만큼은 명백했다. 

       

       그는 아직도 이성을 되찾지 못한 이들을 일으켜 부축하며 걸어나갔다.

       

       피와 살점으로 낭자되어 있는 대신전을 향해서.

       

       *****

       

       널브러져 있는 사람의 장기. 

       아마 카론 추기경의 시체 또한 이곳에 있을 터였지만,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했다.

       

       조각조각난 시체.

       그것에는 더 이상 인간의 형체가 남아있지 않았으니.

       

       옆에 있던 대주교가 참다 못해 구역질을 한다.

       생각해 보면 무리도 아니었다.

       

       성직자로서 일하며,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자주 마주하긴 하지만.

       

       이토록 끔찍한 현장을 보게 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뒷골목 조직 간의 항쟁. 

       

       왕국에서 있을 때 빈민가에 가끔씩 지원을 나갔기에 이런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도미닉도 버티기 힘들 지경이었다.

       

       분노가 느껴진다.

       이것은 상대를 향한 분노가 없이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결과물이다.

       

       상대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런 시체가 나올 리 없다. 

       

       상대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이었을 때만 이런 것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신께서 벌인 일이었다.

       

       사사로운 복수 따위가 아니다.

       그리고 공평하신 신이 아무 이유도 없이 분노하실 리가 없다.

       

       그러므로 이 참혹한 현장이 말해주는 것은 하나였다. 

       

       이들이 벌인 죄가, 그 자비로우신 신을 격분하게 만들 정도로 끔찍했다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신 겁니까 카론 추기경…….’

       

       이곳을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계속해서 느껴지는 불길함이 덩치를 불려 갔다.

       

       이곳에서 엄청나게 끔찍한 악행이 벌어졌을 거라는 확신이 밀려왔다.

       

       성황청에서 가장 뛰어난 추기경.

       신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간이라고도 불렸던 카론 추기경은 대체 무엇을 숨겨왔던 걸까.

       

       “여, 여기에 뭔가 수상한 통로가 있습니다!”

       

       멀리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곳을 바라보니 하나의 문이 보였다.

       

       수준 높은 환상 마법으로 감추어져 있는, 하지만 어째서인지 열려 있는 상태의 문.

       

       도미닉을 포함한 모두는 그 앞에 섰다. 문 너머에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보인다.

       

       아마 이것은 대신전의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이리라.

       

       허나, 그곳으로 먼저 발을 뻗는 사람은 없었다. 

       

       그곳을 발견한 사람도, 도미닉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한 다른 이들도. 모두가 그저 막연히 계단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 

       

       그 이유는 단순했다.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신께서 말씀하신 죄악이 이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하지만…….

       도미닉은 그곳으로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옮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두렵더라도.

       아무리 마주하고 싶지 않더라도.

       

       ‘맹세했으니까.’

       

       신의 뜻을 따르겠다고.

       

       이미 신은 이런 불경한 인간을 원하시지 않으시겠지만, 그럼에도.

       

       과오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대신전의 지하로 향했다.

       

       *****

       

       한참 동안 계단을 내려가 도착한 장소. 

       

       이곳은 무척이나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처음에 도미닉은 생각했다.

       여기는 창고일 게 분명하다고. 

       

       대신전은 성황청의 심장과도 같은 공간. 당연히 귀중품들을 보관할 창고는 필요했을 터이니.

       

       아까 본 것처럼 비밀리에 감추어져 있던 이곳은, 성유물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인 장소일 것이라고.

       

       허나 그것은 절반만 올바른 답이었다.

       

       “이, 이럴 리가 없어. 이러면 안 되는 거란 말이다…….”

       

       공화국을 담당하고 계시던, 나이가 지긋하신 추기경께서 비틀거리신다.

       

       그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기적의 샘.

       초대 성녀께서 스스로 몸을 바쳐 희생하여 만들어졌다는.

       

       그리고 다른 성녀께서도 생을 마감하시기 전에 그 곳에 몸을 담구어 힘을 모은, 성황청 그 자체나 다름없는 성유물.

       

       [죽어서도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초대 성녀가 남겼던 말이 적혀 있는 그곳에는… 성혈이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기적의 샘은 매말랐다.

       후대에 찾아올 위험을 막기 위해 이 한 몸을 바치겠다는, 성녀님들의 고상한 의지 또한 날아가버리고 만 것이다.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별을 담은 보관.

       은총의 손.

       광휘의 인장.

       

       하나같이 역사에 이름을 새긴 성황청의 보물들. 그것은 매마른 샘 위에 나뒹굴고 있었다.

       

       이제 그것에선 아무런 신성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기적의 샘뿐만이 아니라 성황청이 소유한 모든 성유물이 힘을 잃은 것이다.

       

       그 끔찍한 상황.

       

       하얀 머리의, 나이가 지긋하신 추기경은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카론 그놈이 제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이런 만행을 저질렀단 말인가!”

       

       카론이 독단적으로 이 모든 성유물을 사용했다고.

       

       카론은 전부터 그 막대한 신성력으로 유명했으니까. 

       

       사실 그놈의 신성력은 성유물의 힘을 몰래 빼앗아서 쓴 것이었던 게 분명하다고.

       

       후손들을 위해 희생하신 성녀님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으니.

       

       신께서 격노하신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밀려온 것이다.

       

       마치 홀린 듯이, 도미닉은 샘을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특별교육실]

       

       얼마 안 가 그런 문구가 적혀 있는 문이 나타난다.

       

       도미닉은 이곳이 대체 무슨 일에 쓰이던 공간인지 의문스러워하며 그 문을 열어젖혔다.

       

       아까 있던 장소보다 더 괴상한 공간이 그를 맞이했다.

       많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진 넓은 방.

       

       연극에 쓰이는 공연장 같은 것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단상 위에 있는 것은 고문기구다.

       

       수백 년 전에는 이단을 심문하는 데에 쓰였지만, 너무나도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예전부터 사용이 금지된 고문기구.

       

       어째서일까.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무척이나 불길한 예감.

       도미닉은 지면에 손을 대고 술식을 구축하였다.

       

       신께서 강림한 여파 탓인지, 대신전에서는 토지에 새겨진 기억이 흐트러져 있었지만.

       

       다행히 이쪽은 거리 탓인지 멀쩡했다.

       

       얼마 안 가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이 도미닉의 눈앞에 펼쳐졌다.

       

       텅 비었을 공간에 아이들의 허상이 떠오른다. 모든 아이들이 단상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단상 위에는…….

       

       아이가 있었다.

       나이가 많아 봐야 7살을 넘지 않을 꼬마가 있었다.

       

       그리고 그 꼬마는… 카론 추기경의 손에 의해서 억지로 그 기구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아이가 살려달라 소리친다.

       허나 아무도 그 목숨구걸에 신경쓰지 않는다.

       

       카론 추기경은 이야기했다.

       이것은, 감히 탈출을 시도한 것에 대한 벌이라고.

       

       네 죄를 씻고 싶으면, 신께 기도하라고.

       

       저번에 성흔을 받은 아이는 살려주었으니 너에게도 희망은 있다고.

       

       신의 사랑을 받아 성흔을 얻으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그리 말하며 카론 추기경은 웃었다.

       

       피와 살점이 낭자한다.

       아이의 사지가 뜯겨져나간다.

       

       허나, 안식이 주어지는 일 따윈 없다.

       아이의 신체는 신성력에 의해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아이는 그럴 때마다 외쳤다.

       

       제발, 저를 구원해 주세요 라고.

       

       도미닉은 이제 알았다.

       알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신이 말한 죄였다.

       너무나도 무거운, 절대 용서받아서는 안 될 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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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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