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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글레이프니르.

       

       

       라그나로크의 예언을 들은 신들이 괴물을 묶기 위해서. 

       

       

       난쟁이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로 만들어진.

       

       

       그 어떤 족쇄보다도 부드러운 그것은 차라리 비단에 가깝지만. 구속한 것은 설령 하늘조차 산조차 끌어당길 수 있는 족쇄. 당연히 처음에는 의심했었다.

       

       

       난데없이 이런 이쑤시개 같은 것을 가져와서 묶을테니 풀어보라고 하다니. 그럼에도, 그녀는 족쇄에 발을 넣었다. 그녀에게 그들은 가족과도 같았으니까.

       

       

       믿고 싶었다.

       

       

       그깟 예언 따위에 흔들릴.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멍청했지. 어리석었지. 이제는 족쇄에 묶여서 끌려다니는 개새끼가 되어버렸으니. 늑대로서 긍지와 명예는 이미 닳고 닳아 저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구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은 무용지물이요. 그저 꼼짝없이 예언의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곘구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포자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갑자기 어떤 인간이 찾아와서 도와주겠다고 지껄이더니. 정말 힘으로 글레이프니르를 끊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녀, 펜리르는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뭐라고 말을 좀 해보지 그러나.”

       

       

       “마스터, 아무래도 고장난 것 같은데요.”

       

       

       “고장이라고?”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가끔씩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눈앞에서 목격하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는데. 그걸 보통 고장난다고 표현하고는 한다.

       

       

       ‘마스터와 함께 하면서 상식이 많이 변하기는 했지.’

       

       

       이를테면, 뼈와 살점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화산에서 수영을 할 수 있다던가. 열심히 단련하면 강철보다 튼튼해질 수 있다던가. 말도 안 되는 상식이 많았다.

       

       

       “엄마! 이제 풀려난 거야?!”

       

       

       “우리 이제 나갈 수 있는 거야?!”

       

       

       “……그렇군, 확실히 그렇다.”

       

       

       늑대들이 펜리르의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제야 펜리르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었지. 풀려나면 함께 바깥을 여행하자는 약속.

       

       

       펜리르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서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하나씩 쓰다듬었다. 설마 그 약속을 지키게 될 수 있다니. 이윽고, 그녀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고맙다. 덕분에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겠어.”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감사가 돌아왔다. 깜짝 놀란 지크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확실히 웃고 있었다. 즐거움과 환희까지 느껴지는 미소였었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가족과 여행을 생각하는 게 아닌. 자신을 묶은 신들에게 복수를 생각하는 미소라는 거겠지만. 그걸 눈치챈 지크는 말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머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자신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저렇게 묶어서 이런 생지옥과도 같은 곳에 유배시켰는데. 누가 분노하지 않을까.

       

       

       “신들에게 복수하려고 하는 건가?”

       

       

       그러나 지크가 머뭇거리고 있었던 바로 그때. 가장 먼저 나선 것은 바로 아이작이었다. 아이작은 아예 작정하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말했다.

       

       

       “당연하지.”

       

       

       그에 질세라 펜리르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참고 또 참아왔다. 쌓이고 쌓인 증오와 울분.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풀어버리기 위해.

       

       

       “특히 오딘. 그 사기꾼은 산채로 씹어먹어도 분이 풀리지 않아.”

       

       

       우리를 낳아준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다. 딱딱하고 재미없어도 가족을 외면하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그래서 믿었다. 우리를 구속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믿음의 결과는 어떻지?

       

       

       나는 족쇄에 묶였고. 뱀은 바다에 버려졌으며.

       

       

       여동생은 저 깊디 깊은 지옥에 유배되었다.

       

       

       백 번 양보해서. 나만 이런 꼴을 당했으면, 어쩌면 조용히 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기어코 선을 넘었다. 나의 동생들마저 건드려버린 것이다.

       

       

       “나의 윗니는 하늘을 찢고. 나의 아랫니는 땅을 부술 것이다.”

       

       

       분기탱천. 그녀의 분노는 그야말로 하늘까지 닿고 있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분노였다. 도저히 꺼질 것 같지 않았던 그녀의 분노가 아이작을 향했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은인이여.”

       

       

       만약 아이작이 글레이프니르를 끊어준 은인이 아니었다면. 펜리르는 당장에 달려들어 찢어발겼을 것이다. 설령, 그게 가능하던. 가능하지 않았던 말이다.

       

       

       “아니.”

       

       

       하지만 아이작은 그녀의 질문에 긍정하지 않았다. 아이작도 복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도 십분 이해하고 있었으니.

       

       

       ‘가족을 건드렸으면 나라도 그랬지. 암!’

       

       

       컨셉충으로서 십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만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자신의 가족들까리 건드렸으니까. 찐따도 가족을 건드린다면 못 참는 법.

       

       

       “나는 너의 복수를 부정할 자격이 없다. 나 같아도 그러했겠지.”

       

       

       “그렇다면……!!”

       

       

       “그러나, 네 뒤에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

       

       

       애써 눈길을 돌려서 외면하고 있었던 부분을, 아이작은 자비없이 후벼팠다. 그게 너무나도 아프게 느껴지는 펜리르였다. 그녀의 시선이 이윽고 뒤를 향했다.

       

       

       그곳에서는 겁을 잔뜩 먹은 표정으로 그녀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저 변덕에 지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동질감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 아이들이나 나나 다를 게 하나도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남은 아이들을 하나둘씩 거뒀다. 그래, 단지 그것뿐이다. 필요하면 언제든 버릴 수 있어.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의 자비로 살아남은 아이들이니까. 변덕으로 언제든 죽일 수 있다고. 어차피 진짜 가족도 아니라고. 그런데 어째서일까. 잘 모르겠다.

       

       

       “복수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때를 기다리라는 거지.”

       

       

       “…….”

       

       

       “너의 가족들을 전부 다 구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헛소리도 그 정도면 예술이네.”

       

       

       펜리르는 어이가 없었다. 그나마 자신은 어떻게 구해냈다고 해도. 다른 동생들은 나보다 훨씬 더 구하기 힘들 텐데. 펜리르는 아이작의 말을 대놓고 비웃었다.

       

       

       “네가 그 녀석들을 다 구해주겠다는 거야? 신에게 맞서 싸우면서까지?”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깨닫기를 바랬다.

       

       

       그러나.

       

       

       “알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 * *

       

       

       아이작은 지크와 논의하여 펜리르와 늑대들이 살 수 있는 곳을 정했다. 다행히 지크는 부마스터에 버금가는 해박한 지식으로 길드의 사정을 전부 꿰고 있었고.

       

       

       덕분에 아이작은 펜리르와 늑대들에게 훌륭한 거처를 마련할 수 있었다. 물론 펜리르도 바보는 아니다. 애초에 그녀는 믿었던 신들에게 속아서 이곳에 왔다.

       

       

       그런데 인간이 더하면 더했지. 덜 하리라는 법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아주 깐깐하게 여러 질문을 던졌다. 오죽했으면 아이작조차 대답하지 못할 정도였다.

       

       

       “너희들의 제안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내 질문에 대답해라.”

       

       

       “기꺼이.”

       

       

       “…….”

       

       

       덕분에 장르는 자연스럽게 지크와 펜리르의 랩배틀로 넘어갔다. 펜리르는 무수히 많은 질문을 통해서. 속임수라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찾으려고 했고.

       

       

       지크는 자신을 믿어주고 모든 것을 온전히 맡겨주신 마스터에게 보답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보답받았다. 펜리르는 깊은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한치의 거짓조차 없는 모양이군.”

       

       

       “아무렴. 내가 누구의 이름으로 협상을 진행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인정하지. 네가 그 이름을 누구보다도 명예롭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

       

       

       정작 길드 마스터인 아이작은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지만. 그러나 그건 둘째치고, 펜리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짓으로 말하면 어떻게든 티가 나게 된다.

       

       

       그러나 방금 전에 대화에서 펜리르는 한치의 거짓말이나 수상함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신들과 대화에서도 속임수를 눈치챌 정도로 영특한 그 펜리르가!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

       

       

       “아직도 의심을 풀지 못한 거야?”

       

       

       “아니, 적어도 너희들이 진심이라는 것은 알겠다.”

       

       

       “그렇다면…….”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그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어째서 초면인 자신을 이렇게까지 도와주냐는 것이다. 그것도 라그나로크에 세상을 파멸시킬 거라는 예언을 받은 자신을.

       

       

       “직설적이네. 그럼 나도 솔직하게 말할게. 너희를 데려오는 것은 리스크가 엄청나게 커.”

       

       

       그건 펜리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펜리르와 늑대들은 사실상 법국의 대역죄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수를 사용해도, 반드시 죽여야 하는 존재들.

       

       

       근데 그런 펜리르를 기드온으로 데려와서 살게 해준다? 당연히 정치적인 리스크가 엄청나게 클 수 밖에 없다. 자칫 잘못하면 법국과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스터가 그렇게 하겠다고 정했으니까.”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마스터가 그렇게 하겠다고 정했고. 나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럼 거기서 이야기는 끝이다. 리스크? 그딴 건 이미 신경 껐다.

       

       

       “……그런가.”

       

       

       한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오랜만에 다시 되찾은 광명과도 같았다. 너무 눈이 부셔서, 차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그런 빛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나도 믿어봐도 되는 건가.

       

       

       너희가 나를. 아니, 우리를.

       

       

       구해줄 수 있을 거라고.

       

       

       ‘낙서 재밌다. 힣힣.’

       

       

       지금 제일 다행인 사실은.

       

       

       머리에 과부화가 오는 바람에, 바닥에 나뭇가지로 낙서하고 있는 아이작을 그녀들이 보지 못 했다는 사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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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Status: Ongoing
I possessed the body of a guild master who ruined the guild. "We are all family." Since I was already possessed, I decided to stick to the concept hard. The guild members' obsession is no joke. Hel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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