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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오늘은 구름한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다.

    창문을 열기만해도 졸음이 사라지고, 어딘가로 나가고싶어지는 그런 날씨를 경험해본적 있다면, 오늘이 딱 그런 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날씨가 참 좋군. 그렇지 않느냐, 파이?”

    파이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루크는 그 화창한 날씨에 베란다에 기대어 바람의 향기를 느끼며 빌딩의 높음을 감상하고 있다.

    꽤나 한가한 상황이다.

    반면 한가함을 만끽하는 중인 루크와는 달리, 루크가 본의 아니게 수많은 연구감들을 자각없이 연구소에 투척해버린 연구소는 유래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연구소에선 루크의 가설을 뒷받침할 증거자료를 찾겠다며 한때 마계화까지 진행되었던 해외국가로 출장을 나간 상태에, 그나마 남아있는 인원들도 샤에흐의 기적식을 재증명한답시고 바빠졌기 때문이다.

    둘 다 언제쯤 완료될 지 모를 작업이다.

    덕분에 루크는 연구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할 일 없이 그저 베란다에서 자신의 머릿결을 흩날리는 감각에 집중했다.

    2서클을 이룩하며 이러한 바람따윈 언제든 일으킬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그럼에도 자연이 직접 전해다주는 바람의 향취는 새로운 감각을 준다.

    그러고보면, 이런 감각조차 낯설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이제 고작 두달하고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수인의 적응력은 인족중 제일이라더니, 어쩌면 그 탓일지도 모르겠다.

    “루, 그렇게 얇은 옷 입고 바람쐬면 감기걸려.”

    예르나는 머리에 핀을 끼우며 걱정스런 어투로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네. 날씨도 좋고, 그리 춥지도 않으니까.”

    예르나는 루크의 작은 몸 너머로 더없이 푸르른 하늘색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날씨가 되게 좋네. 이런날엔 어디로 놀러가고 싶은데.”

    하지만 꼭 날씨가 좋은 날에는 출근을 해야 하더라, 예르나는 휴우 하고 한숨을 쉬고 말았다.

    그것과 정확히 동일한 심정을 현재 연구소에 틀어박힌 연구원들도 느끼고 있을테지만 말이다.

    그 사정을 모르는 루크는 그저 천진하게 묻는다.

    “오늘부터는 나도 숲에 갈 수 있는가?”

    “가능은 한데, 내일까지는 참는게 좋을것 같아. 아직 뒷정리가 남아있거든.”

    진짜 힘들었지, 라며 푸욱 한숨을 쉰 예르나는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다음주까지 이렇게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루크도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뭐, 그럴거라네.”

    마치 안심시키듯한 말투로.

    아무리 루크라고해도 일주일 뒤의 기후를 맞추는 재주는 없지만, 왠지 그럴거라는 기분이 들었기에.

    예르나가 핀이 잘 고정되었는지 고개를 돌려가며 거울로 살펴보는 모습을 보고 루크는 문득 그녀가 저 두 핀은 언제나 끼우고 다닌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예르나, 그 핀은 항상 차고 다니는구나. 무슨 의미라도 있는건가?”

    금속제의 핀에는 얼핏 마력마저 느껴지는것이 무언가 인챈트라도 박혀있는 듯 했다.

    아마 재질은 마력합금중 하나이리라.

    “아, 이거.”

    예르나는 마치 그 질문이 의외라는 듯이 조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 선물해주신 거거든. 별로 안 어울리니?”

    “아닐세. 잘 어울리는군. 그저 매일같이 착용하는것이 신경쓰였을 뿐이라네.”

    “그런거라면 다행이야. 내겐 굉장히 소중한거라, 매일 착용하고 있거든.”

    굉장히 소중한 부모님의 선물이라.

    무언가 심상치않은 분위기에 루크는 아주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설마, 그……. 어머니께서 어떻게 된 것은……?”

    예르나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직 살아계셔! 이건 그, 내가 옛날에 받은거라서 소중하게 간직하는 중인거지, 어머니의 유품이라거나 그런게 아니라고!”

    뭐, 서류상으로 과거의 자신은 죽은 것이니까 되도록 가족을 보지 않는게 좋기는 하지만, 아주 가끔 일년에 한두번 정도는 몰래 만나기도 한다며 횡설수설 늘어놓는 예르나의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면서 루크는 한숨을 쉬며 안도했다.

    “그런겐가……. 그렇다면 참 다행이로군.”

    좋은 날에 분위기를 종칠 뻔했군, 이라고 생각하면서.

    “갔다올게, 루! 어디 나갈때는 꼭 연락하고!”

    “알겠네, 예르나.”

    예르나가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자 루크도 나름대로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샤워실에 들어갔다.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만한 이유도 없고, 날씨가 외출을 부르는지라, 실내에서 돌기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음. 외출해서 첼로라도 켜면 어떨까.’

    최근 집에서는 도통 연주를 할 수 없었던 탓에 파이도 꽤나 불만이 쌓여있는게 보였다.

    이따금씩 첼로를 세워둔 근처를 배회하며 루크를 향해 우울한 현악기음성을 냈기 때문이다.

    “파이, 오늘은 나가서 첼로라도 켜보자꾸나.”

    -루크?……?

    “그래, 진짜라네. 지금 씻고 준비할테니 기다리게.”

    -……!

    빠라람-! 하는 관악기소리를 내며 기뻐하는 정령을 뒤로하고, 루크는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

    첼로를 메고 산책을 하던 루크는 이윽고 조금 넓은 광장에 자리를 잡고 적당한 의자를 찾아 앉았다.

    학교는 당분간 가지 않을 생각이다.

    일전의 그 음악동아리실 사건으로부터 생겨난 괴상한 관심이 걸렸기 때문이다.

    또 괜히 과도한 관심이 쏠려서 할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은 사양이다.

    자의식 과잉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몇번이고 겪은 상황이라면 조금쯤은 생각을 해야 지능을 가진 사람이겠지.

    예전에도 여기서 사람들이 연주하는걸 보았으니 아마 자신이 하는것도 괜찮으리라.

    통행에 방해가 될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잘 하면 지금의 내게도 돈을 벌 수단이 생길지도 모를일이니.’

    당장 예르나에게 보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루크는 첼로를 꺼내서 몸에 기울여 기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조금 신기한 듯 자신을 쳐다보고는 그저 갈 길을 갔다.

    루크는 심호흡을 하고는 첼로의 현을 활로 긁었다.

    흐으응-. 하고 마치 사람이 성대를 울려서 낸 것같은 소리가 났다.

    연주는 단순하고 가벼운 곡이었다.

    누가 듣더라도 크게 거슬릴 부분이 없는, 단조롭지만 첼로로 연주하는구나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하지만 이렇다할 특색은 딱히 없었다.

    몇명이 모여서 루크가 연주하는걸 슬쩍 슬쩍 구경은 하고 지나갔지만 그건 이 시간에 첼로를 연주하는 10살짜리 수인혼혈 여자아이가 신기해서 쳐다본것이지, 첼로연주가 그들의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 아님을 안다.

    그 단순한 선율의 연주는 정령이 없다면 그다지 흥미를 끌만한 구석따위는 없다는걸 루크도 잘 알고 있었다. 음악은 잘 모르더라도 분석은 그의 특기이므로.

    파이는 그저 루크가 연주를 하기만 해도 좋아라 하였지만, 글쎄.

    사람은 정령이 아니다.

    사람은 이해할 수 있는 음율의, 화음적으로 아름다운 음들의 나열을 좋아한다.

    루크가 연주한것이 화음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정적이었다.

    제자리에서서 듣고싶은, 그런 음율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중 한명도 세우지 못하다니.

    이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하긴, 다들 바빠보이니 어쩔 수 없나.’

    그러고보면, 이 시대의 사람들은 다들 무언가 바빠보였다.

    이 평화로운 세상에서도 꽤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너무나 평화롭기때문에 일상을 바쁘고 충실하게 살아가는게 아닐까?

    그리 생각하면 바쁜 삶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리 생각하고 루크는 조금씩 연주를 해나갔다.

    점차 점차, 루크의 첼로는 마치 음을 더욱 풍성하게 키워나가며 존재를 퍼트려나갔다.

    격정적이지는 않지만, 경쾌하고 부드럽게.

    낮게 울리다가 문득 새처럼 날아오르기도 하고, 가볍게 활강하듯이 음이 비행한다.

    마치 작은 새가 푸른 하늘을 날았다가 바닥의 모이를 주워먹고 다시 하늘로 올랐다가 하는 과정을 담은듯한 연주.

    다행히 그 연주는 몇명정도의 발걸음을 멈출 수 있었다.

    몇명이 바라본다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들떴다.

    누군가에게 기대받는다는 감각은 싫어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그들에게 기대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연주라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라고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루크는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보여주면 될 뿐이라 생각했다.

    연주는 계속되었고, 이윽고 몇푼정도는 첼로케이스에 담겨질 수 있었다.

    ‘힘내라’, ‘좋은 연주였어’ 같은 칭찬의 말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욕이 아닌게 어딘가.

    잠시 휴식을 취하며 머리 위에 날아다니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으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날씨 탓인가, 기분이 들떠서인가. 새의 소리가 마치 노래같군.’

    잠깐, 노래라?

    루크는 순간적으로 뭔가 깨달음이 머리를 스치는 것만 같았다.

    소리라는것은 떨림, 현악기의 진동과 성대의 진동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악기라고 특별한게 아니고, 목소리라고 특별한것이 아니다.

    성대 역시 악기의 일종이 아닌가.

    루크는 기대감에 가득 찬 파이와 눈을 마주치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런 거였어.”

    -……?

    생각해보면, 음유시인은 그저 ‘연주’만 하지 않았다.

    그들이 어째서 시인이라 불렸던가?

    그래, 그들은 ‘노래’ 했다.

    루크는 문득 ‘세렌갈의 대평원과 12인의 기사’를 떠올렸다.

    물론 그것을 그대로 연주할 생각은 없다.

    남의 노래로 돈을 번다니, 그건 도둑질이잖은가?

    그렇다면 잘 참고해서 새로 하나 만들어보기로 하자.

    노래는 처음으로 불러보는 거지만…….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늦은 시각,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무게감과 리듬감으로 볼때, 예르나의 것임을 금세 눈치챈 루크는 미리 현관으로 다가가 마중한다.

    “예르나, 다녀왔는가?”

    “다녀왔어, 루크 오늘은 무슨 일 있었어? 표정이 되게 좋네.”

    “아, 그렇지. 이것 좀 보게나.”

    루크는 예르나에게 첼로케이스를 벌컥 열면서 미소지었다.

    “맙소사, 이게 다 뭐니?”

    “광장에서 오늘 하루동안 벌어들인 돈이라네. 연주를 했지.”

    “네가……? 대체 이게 다 얼마야……?”

    루크는 조금 곤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확히 2,340,200길이더구나. 아마 내가 어려보여서……. 다들 더 넣어준게 아닌가 싶다. 분명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했거늘…….”

    어린데도 공연을 하는게 기특하다며 아이취급을 받는것도 꽤 곤욕이었다. 귀엽다는 말도 너무나 많이 들었고. 나름 어른스러워보이게 신경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걸 주고 싶었다네, 예르나.”

    “이걸 내게?”

    “마나요금에 보태주겠는가. 나는 그것이 항상 미안했다.”

    예르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어떻게하면 하루만에 234만길을 벌어들인걸까……?

    연주를 했다지만, 평일이라 다니는 사람도 적었을텐데.

    아무리 그래도, 10살짜리 애한테 이만큼이나 준다니.

    정말 알 수 없는 후원자들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은 이유 : 노래 가사써보려다가 멘탈터짐
    저는 아무래도 작사가는 못 될 인물인 모양입니다.

    하여튼, 후원자가 누군지 정말 알 수가 없다니까요.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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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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