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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기사단은요?”

         

       파스텔은 테러 목적으로 비공정이 날아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런 질문을 했다.

         

       “비공정의 무단 침입을 막는 건 우리 아카데미가 아니라 기사단 담당이잖아요.”

         

       경비대원이 머뭇거렸다.

         

       “내부 문제가 발생했다고 전언을 보내왔습니다. 저희가 해결해야 할 듯합니다.”

         

       으잉.

         

       파스텔은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학생 안전이 위험한데 내부 문제 가지고 이러쿵저러쿵하고 있는 건가?

         

       경비대원이 움찔했다. 자세를 바로잡더니 힘차게 외쳤다.

         

       “즉각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아, 그전에 제가 가져온 여유분 마석을 돌려주시겠어요? 직접 날아가 비공정을 확인해 봐야겠어요.”

         

       해볼 만하면 선제공격도 시도하고.

         

       파스텔은 마석을 받고 하얀 빗자루를 탔다.

         

       “최고 수위로 경계를 강화하고 테러를 대비하세요. 비공정까지 띄우고요. 부탁할게요.”

       “예!”

         

       대원이 경비대장을 만나러 떠났다.

         

       파스텔은 지면을 박찼다. 빗자루에 안정적으로 안착된 몸이 가볍게 떠올랐다.

         

       힐끔 지상을 내려보니 멜리사와 앨시어가 아직도 원거리 교전을 주고받고 있었다. 지면 파편과 빛 탄환이 충돌하며 빛을 냈다.

         

       교전이 숨 막히게 이어지는 건 아니었고 중간중간 도발과 대화도 하는 모양새였다. 귀족 예법을 지키는 여유로운 대결 같았다.

         

       뿌뿌.

         

       “저도 여유롭게 즐기고 싶었는데 말이죠.”

       『권력을 쥘수록 바라는 대로 살기 어렵지.』

         

       으잉.

         

       파스텔은 빗자루를 움직였다. 속도감에 몸이 뒤로 쏠리고 분홍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받은 마석을 빗자루에 댔다.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빗자루에 흡수됐다.

         

       빈 찌꺼기나 다름없는 마석을 입에 털어 넣었다. 얼음을 먹듯이 마석을 씹었다.

         

       콰득콰득.

         

       우물우물.

         

       불량식품 중에서도 저급한 단맛이 났다.

         

       빗자루의 속도감에 뒤섞여 가을바람이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흔들었다.

         

       “그 누구지. 트마우트 씨? 테러범 수장이던 마족 용병대장은 진작 잡았는데 어디서 비공정이 튀어나온 걸까요? 아무 인원도 없이 날아오는 것도 아닐 테니 테러범이 더 있다는 건데.”

         

       그응.

         

       “하수도에서 선발대 잡았고, 용병단 비공정에서 후발대도 잡았으면 테러범들이 인력 부족을 겪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너무 현대인 감각인가? 치안이 안전한 세계에서 살던 감각으론 난감하다.

         

       『과격파 마족들의 단독 범행이었으면 그렇게 봐도 됐을 거다. 하지만 교단과 엮인 시점에서 인력 부족을 겪을진 모르겠군. 교단은 이해득실로 상당한 인원을 모집하기도 하니.』

         

       흐에.

         

       같이 테러할 사람 구합니다. 돈 드려요. 같은 것?

         

       국제 마피아 보는 기분.

         

       오잉.

         

       진짜 국제 마피아 아닌가?

         

       마약 판매로 자금을 얻는 마피아와 약물 제조가 특기인 교단이라니.

         

       “더욱더 뿌리 뽑아야 해요!”

         

       빗자루의 속도를 높였다. 지상으로 축제로 바쁜 교내가 빠르게 지나갔다. 축제 분위기라 왁자지껄했다.

         

       축제와 동떨어지고 학생 인파도 적어진 교내 상공에 당도할 때쯤이었다.

         

       저 평화로운 하늘 너머에서 하늘고래를 모방한 테러 비공정이 날아왔다.

         

       “나쁜 테, 흐에에!”

         

       빼곡 채운 함포들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인원을 긁어모은 건지 무장한 용병들과 수상한 로브 차림의 교단 인원도 뒤섞여 갑판을 채웠다.

         

       완전 무장!

         

       저 정도면 그냥 군함!

         

       이건 좀 아닌 듯……!

         

       파스텔은 빗자루를 급브레이크하려 했다.

         

       권력자로서 개인플레이는 좀 아닌 거 같아!

         

       후퇴! 후퇴!

         

       눈에 잘 띄는 하얗고 분홍 진 비행체를 저쪽도 발견했는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비공정이 경로를 바꾸며 회전하더니 선박 옆면을 보였다. 무수한 포문이 드러났다. 함포들이 비행체를 겨눴다.

         

       으엣.

         

       설마 쏘시려는 건 아니죠?

         

       의심의 여지 없이 쏘려는 상황.

         

       “그러지 마세요……!”

         

       파스텔은 비명을 질렀다.

         

       일제히 불꽃이 일고 굉음이 울렸다. 무수한 포탄들이 시야를 채웠다.

         

       “우와악!”

         

       살려주세요!

         

       전 그냥 선량한 권력자예요……!

         

       으아아!

         

       선두의 포탄이 근접했다. 새겨진 마석 마법진이 빛을 냈다. 이치가 마법을 만들어 냈다. 작은 불씨가 일었다. 불씨는 마른 평야를 뒤덮듯 포탄을 휘감았다.

         

       순간 소녀는 불꽃의 변화를 몽롱하게 바라봤다. 마법의 신비도 화염의 열기도 잊은 채 생명이 경각에 달린 짜릿한 감각을 응시했다.

         

       안녕.

         

       호르몬 친구.

         

       검격이 포탄을 벴다. 화염이 쪼개지고 빗자루를 탄 소녀는 질주했다. 주홍빛 폭발이 일었다.

         

       이후의 포탄들이 전방을 덮었다.

         

       소녀는 빗자루를 한 손으로 잡았다.

         

       『마상 전투는 오랜 시간 숙련된 자만이 할 수 있다. 말과의 호흡, 시기적절한 기동, 두려움 없는 충돌. 모두 막대한 숙련이 필요하지.』

         

       하얀 빗자루가 푸른 하늘을 비행했다. 분홍 머리카락을 꼬리처럼 달며 무수한 포탄 사이를 파고들었다.

         

       은빛 검격이 연달아 일었다. 포탄이 베이고 폭발하며 주홍빛 화염을 일으켰다. 연쇄적인 폭발은 하늘을 뒤덮고 테러범들의 시야를 가렸다.

         

       『하지만 네겐 숙련이 필요 없겠어.』

         

       갑판의 테러범들은 하늘을 멍하게 올려봤다. 푸른 하늘은 일렁이는 주홍색이었다. 개인이 만들어 내는 자연의 경관을 멍하게 바라봤다.

         

       화염 속에서 빗자루를 탄 소녀가 튀어나왔다. 불길을 휘감고 연기에 휩싸인 채 그대로 질주해 비공정 갑판을 덮쳤다.

         

       검을 뽑으려던 용병이 빗자루와 충돌했다. 권능이 마석 에너지를 소모하며 충격량을 만들어 냈다. 가죽 갑옷이 뭉개지고 용병이 튕겨 나갔다.

         

       비명이 일었다.

         

       사람 사이로 빗자루가 비행했다. 검격이 물결치듯 이어져 갑판을 휩쓸었다. 신체가 썰려 나갔다. 붉은 광경이 갑판을 채웠다.

         

       문을 열고 실내로 도망치는 테러범들을 빗자루가 뒤쫓았다. 일자 통로가 드러나자 소녀는 빗자루를 가속시켰다. 검날이 통로와 벽면을 가로로 베며 굉음을 냈다. 무수한 상체와 하체가 저항 없이 절단되고 허물어졌다.

         

       빗자루는 모든 통로를 지나쳤다. 벽면에 흔적을 남기고 선실과 객실에 유리병을 던져댔다.

         

       노란 연기가 실내를 채웠다. 비명과 혼란이 잦아들었다. 어느새 평화로운 고요가 찾아왔다.

         

       『한데, 날 수 있는 것을 기병으로 쳐야 하는가? 흥미롭군.』

         

       악마가 중얼거렸다.

         

       파스텔은 몽롱한 정신으로 빗자루를 멈췄다. 저공비행이 끝나고 발이 땅에 닿았다. 바닥의 핏물이 찰박이며 소리를 냈다.

         

       『잘했다.』

         

       파스텔은 움찔 떨었다.

         

       “네에? 뭐라고요?”

         

       정신이 해롱해롱했다.

         

       흐에.

         

       『잘했다.』

         

       파스텔은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아까 악마가 말했던 내용을 떠올렸다.

         

       붉게 물든 빗자루를 잡았다. 손의 핏물이 빗자루를 적시며 붉은 손자국을 남겼다.

         

       “이건 하늘을 나는 오토바이에요!”

         

       우와아, 오토바이!

         

       “부릉부릉! 빵빵!”

         

       사람이 없게 된 통로를 비행했다. 분홍 머리카락에서 핏방울이 떨어졌다.

         

       파스텔은 불량아야!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배덕감!

         

       악마님을 발아래 두는 즐거움!

         

       “악마님! 존댓말 써주세요! 존댓말!”

       『흠.』

         

       흐에.

         

       『일단 호르몬 영향에서 벗어나기 전에 씻는 게 좋겠군.』

         

         

         

       #

         

         

         

       빠르게 씻은 파스텔은 무릎을 껴안듯이 앉았다. 양볼을 문질렀다. 볼이 살짝 뭉개지며 분홍 입술이 오물거렸다.

         

       “으잉.”

         

       그냥 으잉…….

         

       묘한 탈력감이 찾아왔다.

         

       원래는 따끈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정신을 회복해야 하는데 정말 샤워만 나온 상황이라 멀쩡한 상태가 아니다.

         

       『상태가 별로군. 목욕을 즐기는 게 어떻지. 온수가 나오지 않았던 건가?』

         

       항행 마법진을 조작하던 악마가 돌아봤다.

         

       “아뇨, 온수는 잘 나왔어요. 그냥 장소가 장소다 보니.”

         

       양볼을 꾹꾹 문질렀다.

         

       입술이 뻐끔거렸다.

         

       “살인은 어째 익숙해지질 않네요. 호르몬 친구가 도와주는데도 말이에요.”

       『흠.』

         

       악마가 턱을 문질렀다.

         

       『누구나 그렇다. 자책할 필요는 없어.』

         

       파스텔은 악마를 응시했다.

         

       “악마님도요?”

       『나는…….』

         

       악마가 생각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손길이 항행 마법진을 조작했다.

         

       『그러기엔 너무 많은 시일을 보냈지.』

         

       비공정이 근처 정박장으로 비행했다. 경비대 비공정이 날아오고 있을 테니 중간에 넘겨주면 될 거다.

         

       파스텔은 턱을 괬다.

         

       “악마님 나이가 구약 이후 공백기부터 계산해서 거기에 30년을 더하면 된다고 하셨죠?”

       『그래.』

         

       헤에.

         

       나이 차가 세자릿수…….

         

       조상님 세대인 악마님께 존댓말을 들어도 괜찮을까?

         

       파스텔은 골몰했다.

         

       입꼬리가 슬쩍 풀렸다.

         

       “헤헤.”

         

       기분 좋을 듯.

         

       『무슨 생각하는 거지?』

         

       파스텔은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휘저었다. 분홍 머리카락이 파닥였다.

         

       “아무것도요!”

         

       악마가 미심쩍게 바라봤다.

         

       그래도 속마음은 들키지 않아!

         

       『또 하극상이니 배덕감이니 생각했군.』

         

       허억.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어떻게 알았지?!

         

       으아아.

         

       속마음조차 들키는 파스텔!

         

       투명투명 거울거울 파스텔……!

         

       허억.

         

       글자 수 똑같음.

         

       파스텔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아아!

         

       “글자 수조차 똑같다니!”

         

       진짜인가 봐!

         

       나는 투명투명 거울거울 파스텔이었어!

         

       악마가 쳐다보다가 무시했다.

         

       순항한 비공정은 찾아온 경비대 비공정에 무사히 전달할 수 있었다.

         

       다만 상황이 영 좋진 않았다.

         

       비공정끼리 연결되자 마자 경비대원이 황급히 건너오더니 테러 소식을 전했다.

         

       “다른 테러 비공정이 토너먼트 경기장에 충돌했습니다! 대규모 가스가 퍼졌고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학생들이 고립됐습니다!”

         

       사과 주스를 마시던 파스텔은 유리잔을 떨궜다. 유리잔이 깨지며 주스가 갑판을 적셨다.

         

       “기사단……!”

         

       일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내부 문제가 있다고 미룰 만큼 우리 아카데미가 만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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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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