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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프레다! 아직도 후작가에 있었다니 대체 무슨 소리냐. 2황녀님과 제도로 나간다고 하지 않았느냐. 듣자 하니 내가 후작에게 준 금화를 빌미로 폐를 끼치고 있다지!

     

    “아뇨, 그게 아니고요….”

     

    수정구 앞에 다소곳이 앉은 프레다는 쭈구리가 되어버렸다.

     

    쌍방 통화 정도의 고급 기술은 없기에 녹화된 영상인데도 저렇게 움츠린 걸 보면 어지간히 공작이 엄한 모양이다.

     

    ―3황녀께서 직접 서신을 보내왔단 말이다. 기껏 월광궁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해 놨더니 네가 겨우 금화 만 개로 전부 망칠 셈이야! 당장 자택으로 돌아와라!

     

    팟, 영상이 끊기고 프레다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아셀라가 특급 전서구로 후작가의 상황을 적어 공작에게 날려 보냈다.

     

    고풍스러운 어휘를 사용했지만 요약하면 ‘네 딸이 내 혼약자에게 꼬리 친다. 상도덕이 없냐?’는 내용이었다.

     

    사흘 만에 아셀라에게 사죄를 담은 답장이 도착했고, 프레다에게도 메시지가 왔으리라 생각해 아침을 먹다 말고 달려 나와 그녀를 지켜보던 중이었다.

     

    “봐, 내 말이 맞지?”

     

    아셀라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정말 공작 모르게 공녀가 혼자서 벌인 일이었군요.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월광궁의 주인으로서 공작과 교류해오고 있으니까. 그는 은인인 너를 곤란하게 할 상황을 일부러 만들 성격은 아냐.”

     

    벌써 공작에 대한 정치적인 분석을 끝냈나. 역시 아셀라다.

     

    “그리고 공작도 기사들을 위한 약제 납품을 기다리고 있거든. 금화 1만 개는 선금이야. 내 심기를 거스르는 건 선금의 가치를 깎는 행동이니 그럴 이유가 없어.”

     

    “현명하시군요.”

     

    “그럼.”

     

    공작에게 잔뜩 혼난 프레다가 패잔병 마냥 터덜터덜 우리에게 걸어왔다.

     

    “전하께서 그렇게나 주치의 선생님을 아끼시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 제가 눈치가 없었어요. 사과드릴게요.”

     

    “알았으면 사라져. 더 볼일도 없잖아.”

     

    “매정하시네요. 선생님도 불쌍하셔라. 황녀님께 단단히 잘못 찍히셨네요.”

     

    “나 때문에 공자가 불쌍하다고? 아핫.”

     

    이미 승리를 거머쥐어서인지 아셀라는 여유가 넘쳤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맞는구나. 공녀여, 그대가 본녀의 경치를 볼 일은 평생 없을 거야.”

     

    “그게 대체 무슨 말이람.”

     

    프레다가 툴툴대며 아셀라에게 예를 표하고는 홱 몸을 틀었다.

     

    그녀의 시종과 호위기사가 뒤를 따른다.

    후작가에서 얌전히 나가준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오히려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보다 좋은 결과가 됐다. 프레다만 아니면 금화 만 개는 맘대로 운용해도 되니까.

     

    “공자, 앞으로 팔천 개 더 필요하지.”

     

    “계획상으로는 그렇죠. 3년간 찬찬히 소모될 액수니 조달은 서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준비해올 테니 신경 쓰지 마.”

     

    아셀라가 자신 있게 선언했다.

     

    나름 든든하긴 했다.

     

    “아, 공녀님. 지금부터 귀택하십니까?”

     

    아버지가 네리아와 함께 지나가다가 프레다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네. 공작가로 돌아가려고요. 그간 폐를 끼쳤네요.”

     

    “무슨 말씀을요. 공녀님처럼 기품있는 분을 모실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음? 눈가에 이슬이 맺히셨군요. 괜찮다면 사용해 주십시오.”

     

    아버지가 프레다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프레다가 몸을 멈칫하고는 천천히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후작님의 배려 덕에 좋은 추억만 남기고 가네요. 생각해보면 여기서 편히 지낼 수 있었던 것도 후작님이 일일이 신경 써주신 덕분이었어요.”

     

    “저희 저택을 찾아주신 귀빈께는 당연히 드려야 할 정친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말씀을 기분 좋게 해주시네요. 그러고 보니 고트베르크 후작님, 실례지만 부인께서는 타계하셨다고… 하셨던가요?”

     

    “그렇습니다. 아들을 낳고 몸이 병약해졌던 탓이었습니다.”

     

    “저런, 정말 유감이에요.”

     

    “괜찮습니다. 옛날 일이기에.”

     

    프레다가 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팔을 쓰다듬었다.

     

    어어,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공자, 저거 내버려 둘 거야?”

     

    “아뇨, 절대 안 되죠.”

     

    정 이상해질 것 같으면 직접 프레다를 쫓아내야겠다 생각하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프레다가 우수에 젖은 눈으로 아버지를 올려다본다.

     

    “혼자서 힘드시겠어요. 후작령처럼 큰 영지도 운영하셔야 하고, 육성소도 관리하시고, 자식도 두 분이나 계시니까요.”

     

    “우수한 부하들이 많아서 도움받고 있습니다. 아들도 이제는 훌륭하게 제 몫을 다해주고 있지요.”

     

    “그래도 사교계를 관리할 아내는 필요하지 않겠어요? 어떠신가요, 후작님?”

     

    사락, 프레다의 손가락이 아버지의 손등을 훑었다.

     

    눈앞에서 미친 새엄마가 생기고 있는데 방치할 수야 없지.

     

    내가 발을 뗀 순간 아버지가 대답했다.

     

    “신경 써주신 건 고맙습니다만 저는 한 여자만을 가슴에 품고 있기에. 다른 아내를 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의지가 느껴지는 단호한 태도였다.

     

    프레다도 이건 절대 무너뜨릴 수 없겠다고 직감했는지 아버지의 팔을 놓고는 한 발짝 물러섰다.

     

    “…그렇군요, 아쉽네요.”

     

    “제 사정에 그리 깊게 공감해 주시다니, 공녀님은 굉장히 자애로운 분이시군요.”

     

    혹시 아버지는 프레다가 자기를 꼬시고 있었다고 눈치도 못 챘나?

     

    아예 여자 범주에 안 들어있어서 발상조차 도달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리 둔감하나. 답답하네.”

     

    “공자, 그게 네가 할 소리야?”

     

    “뭐가요.”

     

    그냥 혼잣말인데 왜 거기에 대고 아셀라가 화를 내는지 모르겠네.

     

    코로 한숨을 푹 내쉰 프레다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그녀의 시선이 한 군데에서 멈추었다.

     

    아버지의 조금 뒤에 서 있던 네리아였다.

     

    “어머, 네리아 아가씨.”

     

    “저는 여자예요.”

     

    프레다의 의도를 깨달은 네리아가 즉시 방어벽을 구축했다.

     

    하지만 프레다는 포기하지 않고 웃음을 흘리며 허리를 숙여 네리아와 눈을 맞췄다.

     

    “성별이 문제가 되나요. 북부는 보수적이군요? 서부에서는 말이죠…”

     

    “자자, 공녀님. 텔레포트 게이트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결국 내가 끼어들어 프레다의 입을 막았다. 브루노를 시켜 그녀의 무리를 당장 저택 밖으로 쫓아내도록 했다.

     

    행렬의 뒤를 바라보며 내가 아버지에게 슬쩍 물었다.

     

    “한 여자만 가슴에 품어요? 네리아는 저랑 이복남매잖아요.”

     

    “음… 그건 나중에 설명해 주마.”

     

    아버지는 대답을 얼버무리고는 자리를 피했다.

     

     

     

    ***

     

     

     

    네리아와 사업계획서를 손보고 얼추 정리를 끝내니 며칠이 더 지나갔다.

     

    앞으로 사업 관련 최종 결정권은 네리아가 갖도록, 아버지는 자문만 하는 형태로 구성해 문제를 방지했다.

     

    네리아는 아직은 어리지만 적어도 아버지보다는 믿음직하다.

     

    경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도 보면서 노하우도 배우고 있다.

     

    정 혼자 판단하기 힘들면 내게 바로바로 보고할 거고.

     

    그동안 아셀라는 아셀라 나름대로 휴가를 만끽했는데, 놀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루에도 열 번은 그녀 앞으로 전서구가 날아들고, 프레다가 나간 이후로는 독서나 마법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를 덜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공자, 버블티 만들어 줘.”

     

    “공자, 창문 쪽 추워. 내가 안쪽에서 잘래.”

     

    “공자, 나 산책 갈래. 따라와.”

     

    황실을 나와서 들뜨셨는지 에너지가 아주 넘처나신다.

     

    식단을 너무 건강하게 바꿨나. 조금은 후회하고 있다.

     

    “그래도 대낮에 이렇게 누워있는 게 어디야. 황실에선 꿈도 못 꿨는데. 너야 항상 누워있으니 몰랐지?”

     

    마당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으니 막스가 왕, 하고 대답해왔다.

     

    궁에서는 바빠서 막스랑 놀 시간도 없다.

     

    육포를 찢어 던져주니 육중한 몸을 치타 마냥 쏜살같이 이끌고는 텁, 입으로 받아 질겅질겅 씹어먹는다.

     

    새하얀 막스의 턱을 긁어주며 상태창을 열었다.

     

     

    ―――――――――――

    ○ 연금술 C

    · 강화 C – 성질변화 B

    · 압축 C

    · 합성 C – 추출 C

    · (미습득)

     

    ○ 의학 C

    · 진단 B – 혈액검사 C – 엑스레이촬영 C

    · 처방 C

    · 응급처치 C – 수술(기본) C

    · (미습득)

    ―――――――――――

     

     

    ‘슬슬 경험치가 쌓이는 속도가 더뎌.’

     

    우선 연금술.

     

    내가 신약을 개발하며 주로 쓰는 성질변화는 B까지 올랐지만 나머지는 경험치 바가 차오르는 게 지렁이 기어가는 속도다.

     

    연금술이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르면 그야말로 만병통치약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엔딩 전까지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한 가지 메시지를 확인했다.

     

    [의학의 새로운 스킬이 개방 대기중입니다]

    [곧 스킬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방 루트에서 이어지는 [처방전 발급] 외에도 세 개의 스킬이 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학에서는 상세한 검사나 고급 수술 스킬이 나왔으면 좋겠다.

     

    휴고가 아셀라의 저주를 파악하기도 애를 먹고 있기에 단서가 더 필요하고, 제거 수술 때도 비상사태를 상정하면 스킬은 얼마든지 더 필요하다.

     

    ‘이쪽은 외과수술 경험을 쌓으면 금방 열리겠지만 좀처럼 수술할 기회가 없는 게 큰 문제야.’

     

    이 세상에서 외과 수술은 사실상 불법이다 보니 할 일이 없다.

     

    수술 랭크가 올라야 같은 계열의 상위 스킬도 습득할 수 있을 텐데.

     

    자원봉사는 지금도 시간이 될 때마다 꾸준히 나가지만 주로 처방이나 응급처치만 쓰게 된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황제가 내 약을 쓰면서 이제 막 의학이 퍼지기 시작했다.

     

    괜히 서둘러서 망치는 것보다야 한계까지 느긋하게 준비하는 쪽이 좋다.

     

     

    햇살이 따가워져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쯤, 멀리서 소란이 일어났다.

     

    후작가 입구 쪽이었다. 큰 목소리가 들려왔기에 다가가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한 번만 문을 열어주십쇼! 그게 그렇게 힘듭니까요?!”

     

    “여기는 후작가 저택이오. 선약이나 허가도 없이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오.”

     

    경비 중인 기사들이 한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선생님, 무슨 일인지 확인해 올까요?”

     

    타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란 피우지 말고 물러나시오. 계속 이러시면 우리도 곤란하오.”

     

    “이쪽은 사람 목숨이 걸렸습니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여기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부탁드립니다요!”

     

    타냐가 곧 돌아와 내게 상황을 전해줬다.

     

    “후작령의 평민입니다. 선생님이 여기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찾아왔답니다. 위독한 환자가 있다는군요.”

     

    “환자라.”

     

    그 말을 들으니 몸이 먼저 움직였다.

     

    나는 철 울타리로 막힌 정문까지 단숨에 걸어가 그 평민과 마주했다.

     

    “환자가 어쨌다고?”

     

    “아, 도련님.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이 남자가 도저히 말을 안 들어서….”

     

    나는 기사에게 손을 내밀어 저지하고 평민에게 말을 허가했다.

     

    땀범벅인 것이 여기까지 쉬지도 않고 단숨에 뛰어온 모양이었다.

     

    “이야기해봐. 어떤 환자야?”

     

    “고, 고트베르크 선생님! 부, 부탁드립니다! 아내가… 아내가 하루 넘게 아이를 못 낳고 있습니다요!”

     

    그가 내게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

     

    “제발 아내를 살려주십쇼!!”

     

    난산인가.

     

    나는 사탕을 꺼내 입에 물며 명령했다.

     

    “거기, 마차를 준비해. 단장, 왕진가방과 가운 가져다주고 클로에 불러와 줘.”

     

    “예.”

     

    “아, 한 가지 간호사에게 전해.”

     

    “뭐라고 할까요.”

     

    나는 힘을 주어 강조했다.

     

    “수술 준비도 하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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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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