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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은막의 서커스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키네마’는 수십 명의 마법사가 동원되는 대규모 환상 쇼였다.

         

       커다란 무대 위를 삼차원으로 구현된 환상들이 빼곡히 뒤덮었다.

       가짜 성이 세워지고, 그 뒤로 가짜 산이 솟고 가짜 강이 흘렀다.

       가짜 대포가 불을 뿜는 전장의 한가운데, 가짜 기사단이 가짜 마귀들을 향해 돌진했다.

         

       수천 개의 정교한 미니어처들이 각자의 역할에 따라 동시에 움직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피와 살점은 관객들을 배려해서 생략되었지만, 폭연과 흙먼지 속에서 부딪치는 전투는 확실히 박진감이 넘쳤다.

         

       전장의 몇몇 인물들은 종종 확대되어 서사를 진행했다.

       잘생긴 젊은 청년 기사가 이야기의 주인공인 듯했다.

       그는 선두에 서서 용감히 기사단을 이끌었다.

         

       “진짜 군대는 저렇지 않아! 지휘관이 최선봉에서 왜…….”

       “관람하는 중엔 조용히 좀 해요!”

         

       한 퇴역 장교가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부인의 면박에 금방 조용해졌다.

         

       초장부터 대규모 전쟁 장면을 볼 줄 몰랐던 관객들은 압도적인 규모의 환상에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나 폭발 소리 같은 효과음은 지나치게 덧입힌 티가 났지만, 그 정도만으로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 데는 문제 없었다.

         

       전투가 인간 진형의 승리로 끝나고 성 위에 깃발이 걸렸다.

       초반부의 전쟁 장면이 끝나고, 개선식과 성의 무도회 장면, 여왕과의 로맨스 장면이 이어졌다.

         

       -여왕이시여, 제가 가는 길을 축복해주십시오.

       -좋아요. 이리 오세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내리겠습니다.

         

       키네마에는 이 시대의 연극에 드물게 나오는 성애 장면이 들어가 있었다.

       연극에서는 보통 가림막에 비치는 그림자, 그 사이로 들려오는 신음만으로 등장인물들의 사랑을 표현했다.

         

       그러나 키네마의 성애 장면은 다른 공연에 비해 노골적이었다.

       남주인공의 벗은 몸과 여주인공의 살빛 실루엣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지구의 포르노에 비하면 감질나는 것이었지만, 이것만으로 이곳 관객들에게는 충분히 외설적이었다.

       몇몇 점잖은 이들은 무대에서 시선을 돌렸지만, 대부분은 관람을 즐겼다.

         

       민망함에 옆 사람을 붙들고 떠들어대는 이도 있었다.

       원더스타인 일행 중에는 유라크네가 대표적이었다.

         

       “어머머, 어떡해요. 어떡해.”

         

       그녀는 원더스타인의 팔을 붙잡고 이리저리 몸을 꼬며 그의 어깨를 퍽퍽 쳤다.

       그의 조직 경도는 4.0으로 판금 갑옷에 해당했다.

       설사 유라크네가 몽둥이를 들고 친다고 해도 다치지는 않겠지만, 고통이 어딜 가는 건 아니었다.

         

       웃는 남자가 없었다면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로 그녀는 무자비하게 그의 팔을 비틀어댔다.

         

       “유라크네 씨, 좀 얌전히…….”

       “꺅, 엘라! 마야! 눈 가려!”

         

       그녀의 말을 듣고 원더스타인도 애들이 보기에는 좀 그렇지않나 생각했지만, “진짜 사람도 아닌데, 뭘”이라는 엘라의 말을 듣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네마의 환상은 규모와 동적인 장면에 치중하다 보니 섬세함에서 많이 뒤떨어졌다.

       특히 인물의 얼굴이 확대되는 부분에서 티가 많이 났다.

       마치 2010년대 초중반에 나온 게임의 CG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젊은 기사는 서쪽으로 원정을 떠났습니다. 여왕의 약속을 품에 안은 채.

         

       모든 등장인물의 대화, 독백은 물론 심지어 해설까지도 모두 한 사람이 맡고 있었다.

         

       변사(辯士)라는 별명이 붙은 은막 서커스단의 부단장.

       키 작고 통통한 마녀는 환상의 변화에 맞춰 온갖 목소리를 흉내 내며 실감 나게 영상의 내용을 전달했다.

         

       무대 뒤에선 몇 개의 메모리 디스크를 중심으로 마법사들이 둘러앉아 환상을 구현하고 있었다.

       아무리 은막 아르노라고 해도 무대 하나를 다 뒤덮는 동적 환상을 혼자서 몇 시간씩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각각의 메모리 디스크는 배경 담당, 소품 담당, 인물 담당, 효과 담당을 맡은 마법사들이 교대로 작동시켰다.

         

       은막의 키네마는 지구의 초기 영화랑 유사했다.

       그러나 그것보다 나은 점도 있었다. 바로 3D 기술이었다.

         

       -크와아아!

         

       “우아악!”

       “저거 좀 봐!”

         

       몇몇 사람들이 무대 뒤 2층 발코니를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그곳에는 송아지만 한 크기의 날개 달린 검은 드래곤이 네 다리로 난간을 짚고 어둠 속에서 일어나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깊은 산맥 안 속에 웅크리고 있던 용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세로로 쭉 찢어진 파충류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주인공 일행을 향했다.

       거대한 검은 용이 날개를 펼치고 객석을 향해 활공했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거친 숨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용은 사람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환상에 물리력은 없었다.

       그러나 용의 몸을 두른 불꽃은 진짜 불이 사용되었고, 뜨거운 기운이 사람들의 머리 위를 핥고 지나갔다.

         

       드래곤에 놀라는 관객 중 유라크네만큼 목청을 뽐내는 이는 없었다.

         

       “꺄아악!”

         

       그녀는 용의 울음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는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일 정도로 비명을 지르고는 원더스타인을 꽉 붙들고 몸을 떨어댔다.

         

       “다, 단장님! 용이에요!”

       “유, 유라 씨, 진정하세요. 지건 환상입니다…….”

       “꺄아악! 이쪽으로 와요!”

         

       그녀가 원더스타인의 어깨와 등을 마구 두들기며 호들갑을 떨었다.

       주변의 이목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옆에서 엘라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무감한 마야도 부끄러움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며, 이런 형태의 시선을 즐기는 스벤조차 자신의 머리통을 떼서 자리 아래로 숨기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이게 무슨 망신이람.

         

       엘라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은막 아르노는 무대 뒤편에서 미소지었다.

       환상 쇼들이 발전하면서 점점 관객들에게 얌전함을 요구하는 풍조가 생겨났다.

         

       그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서커스의 여명기부터 활동해온 사람이었다.

       손에서 신비한 것을 만들어내면 놀란 눈으로 환호하고, 무서운 것을 만들어내면 비명을 질러대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의 시선이 유라크네에서 시작해 마야를 거쳐 원더스타인에서 멈췄다.

       저 여인도 저기 소속이었군.

         

       그는 마야의 모습을 바라봤다.

       한때, 그가 사랑했던 이와 그의 연적의 모습이 동시에 남아있는 아이.

         

       아이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자신이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저곳에 들어가 있다니.

         

       “단장님?”

         

       무대 뒤에서 단원 한 명이 그의 상념을 깨웠다.

       중간에서 각기 다른 환상끼리의 충돌을 조율해줘야 하는 그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자, 주인공 일행이 숲을 그래도 관통해 걸어가고 있었다.

         

       “미안하다.”

         

       그는 마야에게서 시선을 떼고 재빨리 오류를 수정했다.

         

       -환상이 걸려 있는 숲인가 봐.

       -정신 차려!

       -리더가 정신 줄을 놓으면 모두가 죽는다!

         

       다행히 방금의 실수는 부단장이 즉석에서 대사를 날려서 적절하게 메꾸어주었다.

         

       그는 원더스타인 일행을 완벽하게 머릿속에서 치우고는 공연의 구현에 최선을 다했다.

         

       키네마 역시 탈출왕의 마술처럼 관객들의 극찬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괜찮긴 하네. 이 정도 규모로 세세하게 구현된 환상은 처음이야.”

         

       엘라는 만족했는지 미소를 지었다.

       옆에서 유라크네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정찰의 의미는 조금 없네. 다른 팀이 어떤 전략을 쓸지 보러 온 거잖아? 그런데 둘 다 정석적인 공연만 펼쳤어.”

         

       옆에서 스벤이 낄낄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핫핫, 전력을 탐색하긴커녕. 전력 노출만 시켜줬죠! 우리 팀에 엄청난 고음을 낼 수 있는 겁쟁이가 있다는 걸 사방에 알려줬으니.”

       “우으으.”

         

       유라크네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키네마에서 그녀가 보였던 리액션은 변사를 맡았던 은막의 부단장이 무대 인사에서 짚고 넘어가서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옆에서 원더스타인인 놀리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후, 스벤 씨의 말에 동의합니다. 심지어 전력이 깎일 뻔도 했어요. 제 팔 하나가 부러질 뻔했거든요.”

       “단장님!”

         

       유라크네가 소리를 빽 질렀다.

       그는 그녀를 향해 한 번 웃어준 뒤 단원들 모두를 돌아봤다.

         

       “하지만 전력을 탐색한 성과는 있었습니다.”

         

       원더스타인은 은막의 매점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관객들이 줄을 서서 은막에서 파는 디저트를 구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다리는 사람의 숫자가 판도라의 매점보다 상당히 많았다.

         

       “상당하네. 배가 많이들 고팠나?”

       “그럼 판도라 매점에서 밥을 사 먹는 게 낫지 않아? 다들 디저트를 왜 저렇게 줄 서서 먹으려는 거지?

         

       원더스타인은 단원들의 반응을 보며 빙그레 웃으며 매점 간판에 그려진 메뉴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레몬 치즈 케이크와 달콤한 탄산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여러분은 저기 있는 디저트들이 끌리지 않으십니까?”

       “레몬 치즈 케이크? 처음 듣는 음식인데. 달콤한 허니 탄산수? 저런 게 맛있나?”

       “나도 처음 봐. 그런데 왠지 많이 익숙한 느낌인데.”

       “뭐지? 상당히 끌리는데…….”

         

       단원들의 반응을 들은 원더스타인은 마야를 보며 말했다.

         

       “마야 양, 스케치북에 기록은 잘했습니까?”

       “네.”

         

       키네마를 관람하던 도중 원더스타인은 그녀보고 갑자기 스케치북을 통해 공연을 기록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마야의 스케치북은 그녀가 보는 대상을 자동으로 그림으로 담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움직이는 대상이라면 고속카메라처럼 여러 장으로 나누어 담았다.

         

       “하지만 스케치북의 장수 제한 때문에 1분 정도밖에 못 담았어요.”

       “그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원더스타인은 마야의 스케치북을 받아 한 장 한 장 넘겼다.

       마도구라서 그런지 두께는 얇았지만, 무려 1000장이 넘는 그림을 한꺼번에 저장할 수 있었다.

         

       그림을 자세히 살피던 그는 일행을 향해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이것 좀 보시죠.”

         

       단장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던 단원들은 그가 내민 스케치북의 그림들을 자세히 살폈다.

       그들이 봤던 공연의 일부 장면이 그림으로 옮겨져 있었다.

         

       “그 숲에서 마귀 정예들과 싸우던 장면인가?”

       “이야, 그림 진짜 잘 담았네.”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넘기던 그들은 중간에서 손이 멈췄다.

       그곳에는 공연과 전혀 상관없는 그림이 있었다.

         

         

       [레몬 치크 케이크 맛있습니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

       뜬금없이 끼어든 광고 문구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지?”

       “레몬 치즈 케이크?”

       “이런 장면이 있었나?”

       “마야, 너 중간에 뭐 딴 곳 본 거 아니야?”

       “전혀. 공연에서 눈을 뗀 적 없어.”

         

       원더스타인은 계쏙해서 스케치북을 넘겨볼 것을 권했다.

       다음 장면에서 그들이 보던 공연이 계속 이어졌지만, 10장인가 20장 쯤 넘기자 또 아까 봤던 것과 비슷한 그림이 끼어들었다.

         

         

       [허니 탄산수를 마시자!]

         

         

       단원들은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은막의 서커스에서 파는 매점의 음식들과 물건들을 선전하는 문구와 그것을 생생하게 구현한 환상 그림들이 중간에 계속 끼어드는 식으로 나타났다.

         

       스케치북을 덮은 마야는 가만히 그것을 노려봤다.

         

       “이게 뭐죠?”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종의 암시입니다. 환상 중간중간에 이 광고 문구와 그림을 끼워 넣는 환상 팀이 배치되어 있었던 거예요. 아주 짧게. 사람이 ‘이것은 무엇이다.’라고 분석하고 인지하기 힘든 속도로. 하지만 분명 읽을 수는 읽는 속도로. ‘감각’과 ‘인지’의 중간 속도로 말이죠. 사람은 익숙한 것에 손이 가기 마련이잖아요? 공연하는 2시간 내내 우리 머리는 무의식중에 이 그림과 문구를 수천 번은 봤을 겁니다. 덕분에 각인 된 거지요. 은막의 매점에서 파는 물건들의 긍정적인 선전과 이미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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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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