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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 * *

       

       

       

       

       혹시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아니면 기자 놀이?

       

       그렇구나. 차르께서도 일을 많이 하니까 이렇게 기분 전환이라도 하시는 거 아닐까.

       

       기분 전환 하시는데 뭐, 욕심부리면서 아, 식사 좀 더 개선되었으면 좋겠는데요. 라고 말하는 건 좀 철이 없는 짓이고.

       

       그 외에 자신은 만족하고 있었다.

       

       굳이 뭐 솔직히 말해도 불만이랄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러니 세르게이는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 음. 불만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솔직히 말씀하셔도 되는데. 저 높으신 분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드릴 테니까요.”

       

       

       글쎄. 애초에 불만이 있어도 뭐 무기개발한답시고 보이지도 않는 공장 주인인 표도로프란 사람에게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어린 시절부터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다가 볼셰비키 치하 모스크바에서 한참을 굴려지던 세르게이도 알 건 아는 나이였다.

       

       혹시 차르께서는 신민들이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건 아닌지. 확인하려고 나온 것이 아닐까?

       

       딱 이렇게 보면 답이 나온다.

       

       일명 아나스타샤 개혁이라고 불리는 5개년 개혁을 하고 나라가 점점 나라다워진다는 말이 나이 많은 아저씨들 입에서 툭하면 나오는데.

       

       그래. 그것이다. 요즘 공장에서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차르께서는 임금은 임금대로 받고 노동자들이 놀기만 하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살피려고 온 것이다.

       

       합중국의 국민이, 차르의 신민이 되어 어찌 놀 수 있을까!

       

       아나스타샤의 의도와 달리 세르게이는 성대한 착각을 해버렸다.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에게는 어떠한 불만도 없습니다. 지금도 이제 막 점심을 다 먹고 일하려고 하던 차였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어.어어. 그렇지.”

       “애초에 볼셰비키 때나 선대 차르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엄청나게 좋은 시대지.”

       

       

       공장 노동자들이 다 함께 입을 맞춘 듯이 세르게이의 물음에 얼떨결에 대답했다.

       

       아나스타샤는 모르고 있었다.

       

       개혁이 진행되면서 러시아가 부강해지고, 그만큼 국민 생활 수준도 올라, 노동시간을 줄여달라, 빵을 더 달라 애원하던 시대가 아닌, 오히려 임금만큼 일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시대가 되어버린 것을.

       

       아나스타샤는 모르고 있었다.

       

       이 공장 직원들은 적군에 징병 되었던 사람들이고, 모스크바가 백군에 탈환될 때, 백군의 선두에 선 여제를 본 사람들이라는 것을.

       

       공장 직원들과 세르게이는 한마음 한뜻으로. 차르의 깊은 뜻을 알아차렸고.

       

       아나스타샤는 성녀의 미소로 대답했다.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러시아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합시다!”

       

       

       그 온화한 미소가, 세르게이에게는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

       

       

       ‘정말로 아름답다.’

       

       

       이분이 이끌어가는 러시아는 필시 세계 위에 우뚝 서리라.

       

       차르가 기자로 변장하고 있는 것은 직원들끼리 비밀로 묻어가기로 했다.

       

       

       * * *

       

       

       

       

       집무실로 돌아와 편하게 앉았다.

       

       와, 기자로 위장하는 것도 재미있네.

       

       차르인 줄 모르고 다 말하는 게 웃겼다.

       

       그 와중에 불만이 없는 것은 충격적이기는 했다.

       

       볼셰비키가 토벌되는 과정에서 정말 대가리 깨진 블랙기업 노동자만이 남은 거 아닐까?

       

       대가리 깨져도 차르! 이러는 사람 말이다.

       

       애초에 불만 있는 사람들은 정말 적백내전에서 백군들에게 보복당해 죽었을 테니까.

       

       

       “그 저 폐하.”

       “왜 그러십니까?”

       

       

       장관들은 뭔가 굉장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그래. 내가 기자로 변장한 것이 좀 그래 보이겠지.

       

       

       “아닙니다. 그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겠지요. 합중국 국민들은 아직은 불만이 없습니다. 애초에 이전같이 시위가 일어나지 않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아, 그래.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좀 신이 나서 공장 구경하느라고 잊고 있었다.

       

       

       “흠.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내가 잊고 있었네.

       

       피의 일요일 같은 사건이 있었지.

       

       그래. 그런 시위가 없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잖아, 내가 너무 좀 그랬다.

       

       

       “네.”

       “그 직원이 세르게이라고 했던가요? 일 열심히 하는 젊은 친구던 데요.”

       

       

       참 마음에 들더라고.

       

       이 시대에 차르에 대해 충성을 다하는 젊은이라니. 나는 저런 타입 싫어하지 않는다.

       

       저런 자야말로 국가가 위기일 때 알아서 총대 메고 나올 거 아니냐고.

       

       그도 아니면 공장을 열심히 돌려서 우리 백군. 일명 하얀 군대를 무장할 총기를 마구 만들어내지 않겠나.

       

       마음에 드는데?

       

       지금 남은 노동자들이 다 그런 쪽이란 거 아니야?

       

       답이 나오지 그럼.

       

       적백내전에서 정말 빨갱이들이 잔뜩 갈린 덕에 진짜들만 남은 거다.

       

       그러니까 그분들에게는 특별히 뭔가 임금을 더 올려주던가 그럴까.

       

       

       “예.”

       “그 친구와 뭐 아무튼 그 공장 직원들에게는 취재에 잘 응해줬으니 뭐 약간의 상품 같은 것도 내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원래 좋은 말을 할 줄 아는 자들에게는 상을 내리는 법이다.

       

       왜 군주가 간신들의 말에 잘 귀를 기울이는지 알 거 같았다.

       

       

       “그리하겠습니다. 폐하. 아무래도 입막음 하려면 그쪽이 좋을 듯합니다.”

       “예?”

       “아닙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래. 일하는 만큼 상을 받는 법이고, 말을 잘 듣는 만큼 보너스를 받는 법이다.

       

       표도로프 공장은 내가 그래도 미국 신문 때문에 긴장하고 있었는데, 조금이나마 긴장이 풀리게 했다.

       

       

       “그러고 보니 표도로프 공장은 다른 공장과 달리 총기를 더 많이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예. 아마 모스크바에 있는 공장이다 보니 더 열심히 생산하는 모양입니다만.”

       

       

       아무래도 차리나가 머무는 도시다 보니 그렇겠지.

       

       표도로프가 신경 쓰는 것도 있을 테고.

       

       

       “그만큼 다른 분야에서도 좀 많았으면 좋겠네요.”

       “이미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을 독려하여 석탄 생산량도 늘리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주의자가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그건 다행이네요.”

       

       

       석탄 채굴도 그렇고 러시아는 자원이 많은 나라니까.

       

       자원은 열심히 채굴해서 우리의 장점으로 써먹어야지.

       

       아, 그러고 보니, 스타하노프 운동이라는 것이 떠오른다.

       

       스탈린 치하에서 2차 5개년 개혁이 시행되고 있을 때, 카다옙카의 광산에서 기준치보다 14배에 해당하는 석탄을 채굴해서 프로파간다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이번 역사에서도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공산 독일이 상대라면 이쪽은 조금 더 서둘러야지.

       

       

       “우리도 빨갱이들처럼 선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무기 공장에서는 흘러나오는 무기야말로 러시아를 지켜줄 군사력-이라는 선전을 하는 거죠.”

       “자칫 전쟁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전쟁 준비는 늘 해야지.

       

       우리 공산 독일 친구들이 언제든 인민 자위대를 인민군으로 바꾸고 당당히 폴란드를 치며 빨갱이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를 할 수 있는데 말이야.

       

       게다가 우리가 전쟁을 준비하는 것으로는 안 보일걸?

       

       최근에 공장에서 나오는 무기는 러시아 아시아 기마사단까지 포함된 극동군까지 무장하고 나서 중국 호법군에 팔리고 있으니까.

       

       웃긴 건 일본 측에서 남만주 쪽을 활짝 열어줘서 호법군에 무기를 쉽게 팔 수 있었던 점이지만.

       

       

       “어차피 중국에 무기를 팔아 돈을 버는데, 상관없겠죠.”

       

       

       지금 상황을 보건대, 우리 일본 친구들이 북양 정부에 무기를 팔고 있다더라.

       

       그러니까. 우리는 호법에 팔고, 일본은 북양에 팔고.

       

       사실상 서로 무기 테스트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그놈들도 지금 당장 북양군벌에 뜯어낼 게 없으니, 무기라도 더 팔겠다 이런 속셈이겠지.

       

       그러니 우리가 무기를 파는 걸 오히려 도운 것이다.

       

       어차피 호법군에 우리 의용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문득 뭔가 떠오른 나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아아, 폴란드. 폴란드에도 부족함 없이 무기 꽉꽉 채워주세요. 러시아제 무기로 폴란드 전군이 무장할 정도로요. 아예 무상 공여는 안 되고 싸게 판다고 하시죠. 어쨌든 방공협정의 국가가 아닙니까?”

       

       

       이렇게 하면 딱 전쟁 좋아하는 국가가 아니라 나름 공산주의 방패막을 위해 방어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일 터다.

       

       

       “그렇게 무장한 군으로 우릴 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해야죠. 우리 러시아제만 쓴다면 저놈들이 우리를 어떻게 공격하겠습니까?”

       

       

       만일을 대비하자는 거다.

       

       겉으로 보면 잘 싸워 하면서 아낌없이 무기를 지원해주는 거 같지만, 딱 우리 무기 맛만 들리게 해버리는 거지.

       

       러시아에서 받은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하는 건 인지 부조화 오지 않냐?

       

       

       “아. 그렇겠군요.”

       “이렇게 되면 그놈들도 나중 가서 오히려 독일을 칠 테니 무기 더 달라고 할지도 모릅니다.”

       

       

       러시아 무기에 너무 의존하게 되면 그게 그렇게 된다는 거지.

       

       아무리 분노조절 장애 걸린 놈들이라도 무기를 퍼준 무기보다 정당하게 적으로 지목할 수 있는 공산 독일을 확장용으로 써먹을 테고, 그럼 필연적으로 공산 독일을 잡을 수밖에 없다.

       

       몇 번이나 말하는 거지만.

       

       독일이 러시아보다 더 잡기 쉽잖아.

       

       적어도 지형으로 볼 때는 말이다.

       

       우랄까지 넘어야 하는 러시아와 모두에게 고립되어있는 독일은 폴란드에게 선택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폴란드와 지금도 서로 죽고 죽이는 중국은 우리가 무기를 열심히 생산해서 내다 팔 수 있는 시장이고.

       

       언뜻 보면 죽음의 상인 느낌이 드는데.

       

       그 무기로 전쟁하는 것보다는 낫지. 안 그런가?

       

       

       “방공협정 관련해서 아직 뭐 나온 건 없습니까?”

       “다들 긍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래요?”

       

       

       그건 참 다행이다. 루마니아가 좀 걸리긴 했거든.

       

       하기야 결국 너 어느 편에 설래 이거인데, 세계에서 고립된 독일 편을 들만 한 국가가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군주정도 아닌 빨갱이이잖아.

       

       절대 방심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저 발칸 놈들에게 정해진 건 그만큼 한정적이다.

       

       루마니아나 불가리아는 일단 군주정이고.

       

       지금 공산 국가들을 보라, 적백내전에서 진 볼셰비키는 차르일가를 죽여 댔고, 공산 독일도 카이저를 잡으려고 추격하다가 기어이 일가를 조졌지.

       

       여기에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죽이진 않았어도 독일의 후원을 받아 이탈리아를 뒤집고 왕가를 연금시켰다고 들었다.

       

       루마니아 왕국이나 불가리아 차르국은 좀 그럴 거다.

       

       괜히 독일과 친하게 지냈다고 자기네 나라에서도 공산 혁명이 나올 수도 있을 테니.

       

       그걸 경계해서라도 독일과는 거리를 둘 터. 생각해보니 군주정인 곳이 참 많다.

       

       

       “오스트리아와 불가리아에서는 카이저와 차르가 직접 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그거 나쁘지 않군요.”

       

       

       이 무렵의 불가리아가 지금 보리스 3세였나.

       

       2차대전 중에, 아돌프 히틀러와의 회담 이후 죽는 걸로 아는데. 이 역사에서 보리스 3세는 러시아에 붙게 되는 건가.

       

       전제정을 수립하고 2차대전 때 독일에 붙어서 땅을 넓힌 인물이 아니었던가.

       

       유고슬라비아가 공산화가 되면. 그쪽은 원래 역사대로 영토를 넓힐 수 있겠네.

       

       하지만, 좀 불안하다.

       

       로자 룩셈부르크나 카를 뭐시기. 둘 다 원래 혁명 실패로 죽는다.

       

       여기서 협정 같은 것으로 어떻게 편 가르기를 미리 해도 변수라는 것은 늘 생각해야 한다.

       

       빌헬름도 레닌을 러시아에 투하할 때, 정말 러시아가 뒤집어져서 적화 될 거로 생각은 했을까.

       

       전쟁 이탈 정도만 생각했을 거 같은데.

       

       

       “반공 선전을 하는 김에 우리 측 반공선전가들을 각국에 보내는 건 어떻습니까?”

       “반공 선전을요?”

       

       

       그건 좀 귀가 솔깃해지는 발언인데.

       

       공산당원이 열심히 공산주의를 위해, 혁명 선전을 하는 건 봤어도, 러시아의 반공선전가는 처음 들어본다.

       

       아니, 국내에서 하긴 했지만, 외국으로 보내는 경우는 없었지.

       

       오스트리아에 보내면 재밌으려나.

       

       

       “공산 독일이 공산당원들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 밀어 넣어서 은근히 음지에서 선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들만이 선전하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오, 그래. 그거 좀 일리가 있다.

       

       바로 그런 마음가짐이지.

       

       착한 빨갱이는 죽은 빨갱이니까 말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퇴고가 좀 오래 걸렸습니다!

    문득 예전 댓글을 보고 생각해봤는데, 러시아 해군이 재건되면 아마 소련과 달리 위인 이름이 붙을 거 같습니다.

    아나스타샤팬클럽의 ‘소설너무재밌당’독자님이 1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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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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