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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머리 아파.”

       

       

       끔찍한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아멜리아가 만들어 준 술을 마시고, 그리고···.

       

       

       “기억 안 나···.”

       

       [아, 독자님. 일어나셨어요?]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난기가 섞인 듯한, 웃음을 참는 목소리.

       

       도대체 왜 그런 건가 했더니, 작가님의 말에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이야, 남자와 여자가 밤중에 그런 몸으로 도대체 뭘 했을까요···?]

       

       “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자마자 보이는, 검은 머리의 남성.

       

       누군지 말 안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그 모습.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무심코 생각난 무서운 생각에 내 몸을 확인하자 남사스러울 정도로 노출된 부위가 많은 비키니가 눈에 들어왔다.

       

       어? 어?

       

       순식간에 안색이 파래지고,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머리가 멍해지는 게 느껴졌다.

       

       설마, 아니···. 아니겠지···?

       

       

       [남녀가 여행지에서 단둘이, 이렇게 노출한 상태로···! 히, 어젯밤은 즐거우셨나요?]

       

       “아니야!!!!”

       

       

       끔찍한 상상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자마자 당황했다.

       

       이렇게 소리 지르면 유시우가···!

       

       

       “하암···. 잘 잤어, 아르테? 왜 소리를···.”

       

       “솔직하게 말해요! 어서!”

       

       “깜짝이야···. 뭘?”

       

       “어젯밤에! 제, 제가 술에 취해서 무슨 이상한 행동을 한 건 아니겠죠?!”

       

       “어제?”

       

       

       시우가 반쯤 뜬 눈으로 나와 주위를 바라보며 무슨 일인 건지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잔뜩 당황한 나의 모습, 같은 방에 있는 두 사람. 그리고 반쯤 헐벗은 두 사람의 복장.

       

       

       “···아, 미안.”

       

       “네?!”

       

       

       갑작스럽게 사과하는 시우의 모습에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설마, 설마.

       

       진짜로? 정말? 해버린 거야?

       

       히죽거리며 웃는 작가님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어제의 나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해버린 거냐고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을 내지르려던 찰나, 시우가 말했다.

       

       

       “어제 조금 피곤해서 잠들었나 보네. 내 방에서 잤어야 했는데. 미안해.”

       

       “···잠들었다?”

       

       “응. 네가 좀 취했길래 부축해줬는데, 무심코 잠들어버린 것 같아.”

       

       

       유시우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잠들었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

       

       [아잇, 그걸 말해버리네. 재미없게.]

       

       

       작가님이 작게 혀를 차며 불평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 일도 없었구나!

       

       

       “까, 깜짝 놀랐잖아요···.”

       

       “뭐야, 아르테. 이상한 거 생각하고 있었어?”

       

       “아, 아아아, 아니에요!”

       

       

       시우가 의미심장하게 웃는 모습이 얄미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시우도 눈치챈 모양인지, 웃으며 내게 장난을 치려고 하는 모양이었으니까.

       

       

       “놀리지 마세요!”

       

       “알았어, 알았어.”

       

       

       능청스럽게 넘기는 시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많이 변했구나.

       

       처음 만났을 때의 시우라면 이런 장난은 칠 생각도 못 했을 텐데.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조금이나마 대범해진 모양이었다.

       

       이런 것도 성장이라고 보아야 할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아무리 성장형 주인공이라고 해도, 이런 건 성장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아멜리아가 시우에게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끼쳤구나.

       

       히로인이 아니라 먹물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람들을 물들이는 속도가 먹물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도로시도 점점 아멜리아에게 물드는 것 같던데.

       

       

       “하아. 그래요. 다른 사람들은요?”

       

       “글쎄. 내가 자리를 벗어날 땐 술 먹고 있었는데.”

       

       “둘이서요?”

       

       “뭐, 그렇지. 셋이서 먹고 있었는데 내가 빠졌으니까. 빠지기도 힘들었어. 네 핑계 대고 잠깐 다녀온다고 했으니까.”

       

       “잠깐? 지금은 아침인데요?”

       

       “···아.”

       

       

       정신을 놓기 전에 보았던 아멜리아의 모습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잔뜩 오른 텐션으로 다른 사람에게 술을 권하며 흥을 돋우고 있었으니까.

       

       취하면 흥이 오르는 타입이구나, 싶기도 했고 자꾸 나한테 술을 권해서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런 상태의 아멜리아를 도로시 한 명한테 떠넘겼다고?

       

       잠깐 다녀온다고 해놓고 그대로 잠들어버렸고?

       

       

       “큰일 났다···.”

       

       “가봐야겠는데요. 으엑, 머리가···.”

       

       

       숙취로 인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도로시와 아멜리아를 찾기로 했다.

       

       어디더라. 분명 모래사장에서 파티를 했었지.

       

       

       “자, 여기. 받아.”

       

       “네? 옷은 왜···.”

       

       “네 옷이랑 수영복, 거기 두고 왔잖아. 몸이라도 좀 가려. 아침이기도 하고, 바다 근처라 추울 테니까.”

       

       “···고마워요.”

       

       

       시우가 건네준 옷을 받아들였다.

       

       숙소에 푼 짐에도 옷은 있었기에 내 옷을 챙겨입어도 괜찮았지만, 나를 생각해서 준거니까.

       

       굳이 호의를 차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따뜻하다.”

       

       

       시우가 준 옷은 전혀 몸에 맞지 않았다.

       

       어깨도 훨씬 크고, 나보다 키가 크기에 너무 길어서 신경 쓰이고.

       

       마치 내가 아르테 이시스의 몸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같았다.

       

       ···다른 존재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할,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아르테, 가자.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거기서 자고 있으면 깨워야 하니까.”

       

       “아, 네. 금방 갈게요.”

       

       

       헐렁거리는 상의를 꼭 부여잡고 시우와 함께 다급히 방을 나섰다.

       

       

       

       ***

       

       

       

       [원래라면 독자님을 따끔하게 혼내줘야 하는데. 그런 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인공한테 말하면 큰일이잖아요, 독자님. 저번에도 한 번 봐줬더니.]

       

       

       정신이 불안정해 보이길래 한 번 용서해줬더니 또 저질러버렸다며, 그녀는 작게 불평하며 웃었다.

       

       

       [뭐, 이건 이것대로 재밌으니까 용서해줄게요.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에요, 재미만. 최종 보스 후보를 조금 바꿔볼까요.]

       

       

       시우가 아르테를 둘러메며 전날 밤에 걸었던 길을 이번에는 함께 걸으며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 세상은 참 재미있네요. 제 힘으로도 어디로 튈 줄 몰라서 당황하기도 하고. 그래서 더 재밌지만요.]

       

       

       독자님과 함께하는 생활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가끔 평소에 하던 대로 스케일을 키워보려고 할 때마다 독자님이 말하는 대로 문제가 터져 나와서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뭐.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벌어지면 그걸 해결하는 과정도 참 즐거우니까 괜찮지 않을까.

       

       다른 존재들의 반응도 생각보다 괜찮고, 이대로 독자님과 즐거운 창작 생활을 언제까지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아,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게 참 아쉽네요.]

       

       

       하지만 언젠가 독자님과도 이별해야겠지.

       

       독자님의 정신상태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으니, 길어봐야 일 년에서 이 년 정도일까?

       

       아카데미 소설이 항상 일 년 정도가 지나면 더는 아카데미가 메인이 아니게 된다고 독자님이 불평했었던 적이 있었던가.

       

       정말 그렇게 되어버렸네.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놈 중에 시간을 다룰 수 있는 녀석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녀석들의 손을 빌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 이야기는 나와 독자님의 이야기니까.

       

       

       [과연 어떻게 끝날지가 기대되네요!]

       

       

       모래사장에 누워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 독자님과 주인공이 황급히 그들을 깨우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역시 나는 틀리지 않았어.

       

       완성된 이야기도 분명 매력 있지만, 미완성인 채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도 특유의 맛이 있는 법이다.

       

       내가 실시간으로 보여주겠다고 했을 때 비웃던 놈들이 잔뜩 기대한 채로 지켜보고 있는 꼴이란.

       

       그따위로 전개를 하면 어떡하냐고, 내가 해도 너보다는 잘하겠다고 불평해도 결국 지켜보고 있는 모습엔 실컷 웃었다.

       

       성격 급한 놈들은 자기도 따라 해보겠다면서 원하는 장소를 물색해보고 있던데.

       

       뭐, 하고 싶으면 하라지. 나는 독자님과의 시간을 즐기기에도 바쁘니까 다른 놈들이 뭘 하는지는 관심 없다.

       

       

       [오늘은 무슨 일이 생길까요, 독자님. 오늘도 저희를 즐겁게 해주세요.]

       

       

       독자님은 내가 정말 웹소설 작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뭐.

       

       그렇게 생각해도 별문제는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품은 또 다른 세계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세계를 작품으로 전시해도 문제없지. 작가라고 불려도 될 거야.

       

       독자님을 이 세상에 집어넣는 건 상당히 힘들었지만, 지금까지의 독자님은 내게 언제나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독자님을 믿고 기다리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주겠지.

       

       순수한 소녀가 맑게 웃었다.

       

       앞으로의 일이 기대된다는 듯이.

       

       

       

       ***

       

       

       

       “실망이에요.”

       

       “미안하다니까···.”

       

       “용서할 수 없···우웩.”

       

       “···자, 다 됐어요. 도로시는 저기 짐 속에 숙취해소제 있으니까 그것부터 좀 먹고요.”

       

       “가, 감사합니다···.”

       

       

       시체 같은 발걸음으로 도로시가 숙취해소제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도 시우를 향한 눈빛이 살벌한 게, 나중에 두고 보자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역시 삐졌나···.”

       

       “그야 당연하죠. 우와, 도대체 몇 병을 마신 거람.”

       

       “···우윽, 거의 다 먹은 것 같은데.”

       

       “아, 아멜리아.”

       

       

       머리를 부여잡고 아멜리아가 걸어왔다.

       

       항상 활기차던 아멜리아가 오늘은 어젯밤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는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완전 노숙자 같은 꼴이네.

       

       

       “그걸 다 먹다니, 제정신이에요?”

       

       “제정신이 아니니까 다 먹었지. 으, 머리야···.”

       

       

       숙취로 고생하는 아멜리아에게 해장국을 건네주었더니 순식간에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숙취로 고생하는 거 맞아? 엄청 빠르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오늘도 좋은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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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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