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8

        

       “내 지나가다가 이 아이를 보았는데, 어찌 3대에 걸쳐 액운이 끼어있길래 내가 끼어들게 되었다. 보잘것없는 주술사라지만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에 걸쳐 액운이 끼어 나락으로 떨어질 판인데 차마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웬 이상한 주술사 놈의 오지랖이라 생각하고 내 말을 경청하거라.”

       [ 3, 3대요? 세 사람? ]

         

       진성은 사심 하나 없이 오지랖으로 끼어들었다고, 그런 어투로 말했다.

         

       “하다못해 천기로 인한 것이라면야 그냥 지나칠 것이었으나, 사람으로 액이 끼어 사람으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즉. 이 끔찍한 악업의 피해자가 될법한 이들을 어찌 지나가겠느냐. 그냥 지나간다면 죽어서 지장보살의 지팡이가 나를 엄히 꾸짖을 것이오, 보고도 외면을 한다면 어찌 내가 좁디좁은 하늘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으랴? 하여 이리 나서게 되었으니, 마녀야. 너는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속삭임은 교묘했다.

         

       “내가 사악한 주술사의 흔적을 보았느니라. 움직이기는 하늘에 꿈틀거리는 뱀과 같고, 눈알을 굴리기를 하늘의 태양이 움직이듯 하는 괴물의 형상을 한 문양이었으니. 아주 오래전 좁디좁은 섬에서 끔찍한 공물을 받던 이의 문양이었느니라. 그 이름을 크롬 크루어히라 하느니, 너는 그 이름을 모를 것이다. 그러하지 않으냐?”

       [ 네. 처음 듣습니다만….]

       “나는 너를 책망하지 않느니라. 어찌 마녀가 그런 것까지 알 수 있으랴? 게다가 너는 룬의 상징을 들고 세상을 불과 철로 뒤덮었던 이들을 알고 있으니, 상징이라는 것에 극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터. 네가 모르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며, 나무가 제가 심어진 땅의 성질에 맞춰 자라나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라.”

         

       진성의 어조는 낮고 음산했지만, 동시에 뇌를 자극하는 소리를 품고 있었다.

       마치 호랑이의 울음소리에 20Hz 미만의 초저주파가 섞여 뇌에 영향을 주듯, 진성의 목소리에서도 사람을 현혹하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주술적인 효과가 있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사람의 뇌에 영향은 분명히 주는 소리였다.

         

       “크롬 크루어히란 인신공양을 받는 신의 문양이니, 이 아이가 바로 그 표적이 되었느니라.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이 아이의 스승에게도 불운이 닿을 것이요, 그 스승 다음에는 너 대마녀에게도 그것이 닿을 것인즉. 한 사람의 이기적이고 끔찍한 의식이 세 사람에게 영향을 주니 이 어찌 끔찍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있으랴?”

       [ 인신공양?! 어떤 하수구 구멍 같은…!]

       “너 대마녀야. 네가 얼마나 제자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제자의 진전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마땅찮은 이 아이를 얼마나 미워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죽음을 바랄 정도는 아닐 것이며, 하물며 그 죽음이 인신공양으로 끔찍하게 바쳐지기를 원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었으리라. 또한, 그 끔찍한 죽음이 네 사랑하는 제자에게도 닿을 것이오, 마침내 너에게도 닿아 너를 끔찍한 절망과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죽음에 이르게 할 것인즉. 너는 온 힘을 다해 나를 도와 이 아이를 지켜야 할 것이다.”

         

       진성은 계속해서 대마녀를 현혹했다.

       상황에 따라 말을 길게 늘이기도 하고, 혹은 말을 빠르게 만들며 대마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일부 단어는 또박또박 귓가에 잘 들리도록 말하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슬쩍 스마트폰과 거리를 벌리며 발음을 살짝 뭉개며 말을 이어가면서 특정 구간과 특정 단어가 머릿속에 박히게 했다.

         

       그렇게 얻을 것을 모두 얻어내었다.

         

       엘라를 돕기 위해 거금을 쓰게 만들었다.

       엘라를 돕기 위해 사람을 파견하게 했다.

       엘라의 스승에게 연락해서 러시아로 방문하게 했다.

         

       그리고.

         

       [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완전히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말한 대로 모든 게 이루어지고, 엘라와 네스, 그리고 제가 액을 받지 않게 된다면 제 능력이 되는 한 원하는 것을 들어드리겠습니다. ]

         

       백지수표를 받았다.

         

       “네 능력이 닿지 않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떠돌아다니는 주술사가 어디 대단한 것을 원하겠느냐?”

         

       엘라를 무사히 구하고 재앙의 싹을 완전히 잘라내서야 받을 수 있었지만, 진성은 그거면 됐다는 듯 승낙했다.

         

       그렇게 진성과 대마녀의 통화는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것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엘라와 이세린.

       그리고 세상모르고 자는 이아린.

         

       “와….”

         

       통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이나 이어진 정적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이세린이었다.

       그녀는 얼이 빠진 듯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탄성을 내질렀고, 이윽고 질문하기를.

         

       “오, 오빠…. 대체 뭐 하고 다닌 거야…?”

         

       그 눈초리는 마치, 한동안 못 본 혈육이 사기꾼이 되어서 돌아왔을 때 보일법한 표정이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 심할지도 몰랐다.

         

       이세린이 본 것은 그 이상이었으니까.

       잠시 일본에 갔다 온다던 오빠가 러시아에 오더니 엘라를 수준급으로 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옆에서 보았고, 그리고 지금 노인의 목소리를 내면서 대마녀를 현혹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내. 내 오빠는 이렇지 않아….”

         

       급기야는 현실도피까지 할 정도였다.

         

       “대체…. 대체, 헤어(herr) 박은 뭐하는 분이시죠?”

         

       하지만 엘라는 이세린과는 다른 충격을 받았는지 놀라운 표정으로 진성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에 드러난 감정은 경이(驚異).

         

       염세적이고 히스테릭한 데다가 남을 제대로 믿지도 않는.

       소위 말하는 ‘무식하고 고집 센 데다가 성격까지 더러운’ 대마녀를 자유자재로 말로 구슬리는 모습에서 온 놀라움이었다.

       게다가 엘라도 알지 못했던 대마녀에 대한 과거를 줄줄이 말하는 것이, 진짜로 예언자 같은 모습이었기에 더더욱 놀라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뒷조사를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주술사라는 진성의 직업과 ‘대마녀만 알고 있던’ 비밀을 말했다는 것에 그 의심은 대부분 희석되었다.

         

       진성은 놀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엘라를 보며 다시 방긋 웃었다.

         

       “그냥 주술사입니다.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그러고는 과거부터 보아왔던 진성의 모습과 지금 본 진성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차이 때문에 혼란에 빠져 있는 이세린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어떠냐. 제대로 된 주술사 같으냐?”

         

       이세린이 방금 진성이 보인 모습을 ‘주술에 미쳐있는 오빠가 한 노력’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슬쩍 말을 던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을 던지고는 방에서 나갔다.

         

       다만 나가기 전에 엘라에게 신신당부했다

         

       “프라우 빈터. 대마녀께서 당신에게 지원을 보내고, 사악한 주술사에게서 안전을 확보하기 전까지 당신은 이곳을 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게…언제까지인가요?”

       “흠. 글쎄요? 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그는 웃었다.

         

       “생각보다 운이 좋아서, 일이 잘 풀리게 생겼거든요.”

         

         

         

        * * *

         

         

         

       ‘허, 참으로 기이하다.’

         

       진성은 자신의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

         

       ‘회귀 전의 인연이 시공을 뛰어넘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참으로 기이하고 또 기이하다.’

         

       그는 묘한 감상을 느끼고 있었다.

       회귀 전에 담비가 사용하는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엘라 B 빈터를 만났고, 그녀의 가슴 속에서 영양분을 공유하며 죽지 않은 상태로 간신히 존재하고 있는 아나스타시아 알렉산드로브나 베스나를 보았으며, 둘을 바꿔치기 한 원흉이었던 주술사도 보았다.

         

       게다가 과거 진성이 죽였던 진상과도 연이 닿아있었으니.

       이 어찌 기이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오딜리아 A 라이히(Odilia A Reich).’

         

       대마녀는 일종의 호칭이다.

       오래 살고, 강한 힘을 가진 마녀에게 붙이는 호칭.

         

       그리고 방금 그와 통화했던 오딜리아는 나치가 독일에서 힘을 얻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할머니라고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나이임에도 곱상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고강한 마녀였다.

       하지만 오래 살고 강하다고 해서 성격이 착하다고는 할 수 없는 법.

         

       오딜리아는 사악하고 고약한 마녀 같은 성격을 가진 여자였다.

         

       고집이 세서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남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눈꼴 시려하는 데다가, 돈이면 뭐든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게다가 자신보다 아랫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온갖 갑질을 하는 데다가, 한 번 못마땅하다고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로 사람을 갈궈대는 통에 신경쇠약까지 걸린 용병이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자신은 떠받들어져야 하며 자신에게 부려지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을 다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어찌나 심한지 제대로 된 대가도 주지 않고는 ‘나를 위해 일했으니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며 되지도 않은 개소리를 지껄이기까지 했다.

         

       이 끔찍한 성격을 가진 대마녀의 최악의 단점은 바로, 고집이 센 만큼 사람을 한 번 믿으면 답이 없을 정도로 믿는다는 것. 전형적인 사이비나 사기꾼에게 걸리면 큰일이 나는 성격이었다.

         

       회귀 전에는 웬 종교인이랑 얽혔었는데, 어찌나 지극정성이던지 돈이란 돈은 그 여자에게 다 갖다 바치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용병에게 줄 돈과 직원들에게 줄 돈까지 빼다가 갖다 바쳤는데,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개소리를 지껄이며 후려치려고 해서 모두에게 분노를 일으켰었다.

         

       덕분에 회귀 전에 오딜리아는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녀를 담당한 것이 같은 여성이었다는 것.

       다만 그 여성이 고문의 스페셜리스트였다는 것은 불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뭐, 본래 행운과 불행은 한 몸인 법.

       어쩌면 오딜리아가 겪었던 죽음은 호상(好喪)과 악상(惡喪)의 사이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타이밍이 아주 좋구나, 좋아.’

         

       진성은 한스를 말하자마자 과격한 반응을 보였던 오딜리아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웃고는, 자신의 여동생을 떠올렸다.

         

       이아린.

         

       회귀 전에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에 비해 크게 개화하지 못했던 자신의 여동생을 말이다.

         

       ‘조건에 맞지 않았으니 회귀 전에도 제물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인신공양 의식의 혜택을 받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담비의 출현은 엘라의 죽음과 같은 말.

       어쩌면 이아린은 엘라의 죽음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게 심마가 되어 경지를 올리는 데 걸림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일말의 해가 될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담비를 버릴 수는 없었다.

       아나스타시아는 그의 옛 동료이자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주술에 대한 정보를 가져오던 여자였으니까.

       인연으로 보나, 쓸모로 보나 담비는 존재해야만 했다.

         

       살아있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간신히 존재한다고 표현해야 할 아나스타시아.

         

       그녀를 어떻게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태아도 아기도 되지 못한 것을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본래라면 엘라의 스승을 끌어들이려 했건만, 일이 훨씬 잘 풀렸다.’

         

       진성은 기분 좋은 오산으로 일이 훨씬 잘 풀려감을 느끼며 웃었다.

         

       ‘운이 좋다면 담비도 살리고, 엘라도 살리고, 이아린도 과거보다 훨씬 잘 나갈 수 있을 것이며, 내가 행하려 했던 의식보다도 훨씬 좋은 의식을 행하는 데다가, 더 품질 좋은 주물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되기 전에 가족에게 복을 나눠주고 싶었을 뿐인데 이런 행운이 오다니.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니던가.

         

       이는 선업으로 말미암은 마땅한 결과이니, 참으로 복된 일이었다.

         

       게다가 이 모든 복의 대가는 또 다른 선업을 쌓은 이가 감당할 것인즉.

         

       이 얼마나 좋은 일이랴!

         

       ‘좋구나, 좋아. 참으로 좋아.’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