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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부우우웅-.

         

       “다 왔다, 예린아.”

         

       “아…, 넵. 사장님.”

         

       멍하니 있다 보니 차는 빠르게 호텔 앞에 도착해 있었다.

         

       상념에 빠져 있던 나는 강형만의 말에 정신을 되찾고 서둘러 차에서 내리려 했다.

         

       그런데….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사장님.”

         

       “…예린아.”

         

       “…예?”

         

       문을 열고 내리려던 내게 강형만이 특유의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힘든 일 있거나 우리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

         

       나아아 세트장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강형만과 상구 오빠는 기분이 안 좋은 듯한 나를 배려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처음 꺼낸 말이 이것이라니….

         

       가슴이 뭉클해지다 못해 따뜻해지는 게 느껴진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사장님.”

         

       “그래, 주말 동안 푹 쉬고 월요일 등교 시간에 다시 데리러 오마. 그럼 이만….”

         

       “저…, 사장님.”

         

       “음?”

         

       나는 강형만이 지금껏 내게 은혜를 베풀어 준 것에 대해 아무것도 보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게 일방적으로 따뜻하게 대해주는 그가….

         

       “감사합니다. 늘…, 감사해요.”

         

       “…….”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에 내가 진심을 다해 감사함을 표하자 강형만이 순간 표정을 멈칫했다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없기는. 그래, 알았다. 인사 잘 받았다. 우리는 이만 가마.”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사장님. 상구 오빠도요.”

         

       “…안녕.”

         

       그렇게 무뚝뚝한 상구 오빠에게까지 인사를 마친 나는 짐을 챙기고 나와 강형만의 차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 보니 강형만의 차가 아까 봤던 서유진 부모의 차와 기종이 같다.

         

       그 사실을 상기하니 나는 강형만과 있는 동안 내 마음에 일어났던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사실 아까 화목했던 서유진네 가족을 보고…, 나는 씁쓸함을 느꼈었다. 정확히 말하면…, 부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서유진네 가족을 떠올려도 부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방금 전 강형만 그리고 상구 오빠와 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기한 일이야.’

         

       나와 강형만은 채무자 가족과 사채업자로 시작해…, 지금은 단순한 직원과 사장의 관계일 뿐인데…, 나는 왜 강형만과 함께만 있으면 이렇게 안정감을 느끼는 걸까.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이…, 내 부모였다면….’

         

       만약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에이, 내가 무슨 생각을.”

         

       나는 그런 상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결혼도 안 한 홀아비 강형만에게 나 같은 큰 딸이라니….

         

       안 그래도 험상궂은 얼굴 때문에 여자가 안 꼬일 텐데 그랬다간 이번 강형만 생에 결혼은 아예 꿈도 못 꾸게 될 터.

         

       ‘아닌가? 애초에 사장님은 결혼 생각이 없는 건가? 돈도 많고 솔직히 못생긴 건 아닌데도 아직까지 결혼을 안 한 거 보면….’

         

       나는 그렇게 실없는 생각을 하며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강형만이 손수 잡아 준 호텔이다. 5성급 고급 호텔은 아니지만 내가 지금까지 잤던 곳 중 가장 깨끗한 잠자리를 갖춘 곳.

         

       벌써 일주일 넘게 장기 투숙을 해서 그런가 이제는 내 집처럼 익숙하기도 했다.

         

       ‘피곤하다…, 얼른 쉬어야지.’

         

       나아아 촬영이 끝나면 몸이 탈진 상태 급으로 힘이 빠지곤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기에 나는 얼른 방에 올라가 씻고 잘 생각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때….

         

       “…예린아?”

         

       “……?”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 방으로 올라가려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고개를 돌려보니….

         

       “예, 예린아…! 여, 여보 얼른 일어나 봐요…! 정말 예린이에요!”

         

       “…으음, 어? …어어! 흐아-! 예린아-!!”

         

       “…아니, 어떻게.”

         

       호텔 로비 구석 소파에 몸을 뉘이고 있던 내 친부모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인간들이 도대체 어떻게 알고 여기를 찾아온 건지….

         

       그리고 두 사람은 내가 당황한 틈을 타 울고불고 소리치며 내게 달려들었다.

         

       “아이고~ 예린아…!! 이게 얼마만이야…!”

         

       “흐어엉-! 보고 싶었어, 예린아!!”

         

       “이, 이거 놓으…, 읏.”

         

       순식간에 형사들이 범인 제압하듯 양팔을 붙잡힌 나는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 했지만….

         

       꾸욱-, 꾹.

         

       ‘윽…, 힘이….’

         

       내 체력이 완전히 방전된 채인데다 날 붙잡는 부모의 힘이 워낙 거세서 그럴 수 없었다.

         

       내 양팔을 결박한 두 사람은 물귀신처럼 나를 붙잡은 손을 놓지 않으며 얼굴을 내 팔에 딱 갖다 붙였다.

         

       “예린아-!! 우리가 잘못했어! 허엉-!!”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그러니 용서해 줘-!! 흐으-!”

         

       “하아…, 이거 놓으세요.”

         

       “아니…! 절대 못 놔줘!! 얼마 만에 본 우리 딸 얼굴인데…!!”

         

       “용서해다오! 예린아!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가족이잖아!”

         

       “…사장님 부르기 전에 이거 놔요.”

         

       “……!!”

         

       강형만을 부르겠다는 말에 두 사람은 잠시 흠칫했다. 하지만….

         

       꼬옥-.

         

       “그래도 안 돼-! 절대 못 놔줘-!”

         

       “차라리 우리를 죽이고 가-!! 그 깡패 새끼가 아무리 협박해도 나는 딸을 지킬 거야!!”

         

       오늘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온 건지 두 사람은 나를 잡는 힘을 더욱 주었다.

         

       ‘아…, 진짜….’

         

       눈은 감기고 몸에 힘은 점점 빠지는 나와 달리 두 사람은 너무 쌩쌩하다.

         

       ‘민폐라고 생각해서 연락 안 하려고 했는데….’

         

       나는 지금 상황을 단순히 내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에 정말로 강형만에게 전화를 하려고 폰을 꺼내든 순간….

         

       “아이고오-!! 예린아-!!”

         

       “우리를 버리지 말아줘어어-!!!”

         

       위기라도 직감한 건지 부모가 호텔 로비가 떠나가라 빼액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시간이 늦긴 해도 이곳은 서울 중심에 있는 호텔이다.

         

       당연히 지나가는 사람은 많았고…, 부모의 비명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 쪽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시선들 중에는….

         

       “…뭐야?”

         

       “몰라, 가족끼리 싸우나?”

         

       “완전 선남선녀 연예인 가족이네. 어? 근데 쟤….”

         

       “어디서 본 것 같은….”

         

       …나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아.’

         

       그 순간 나는 몹시 낭패감을 느꼈다.

         

       나는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아직 데뷔를 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화제성 가장 높은 프로그램 중 하나인 나아아의 주역이 되는 출연자고…, 인터넷에는 내 팬을 자처하는 이들도 많다.

         

       반쪽짜리긴 해도…, 연예인은 연예인.

         

       여기서 괜히 구설수에 휘말리면 내게 악영향이 끼칠 게 분명했다.

         

       ‘사장님이 돌아오려면…, 적어도 5분 이상은 걸리겠지….’

         

       5분….

         

       짧게 보여도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사진이라도 찍힌다면….’

         

       …….

         

       “흐어어엉-! 예린아-!!”

         

       “우리 딸 예린아-!! 엉엉-!!”

         

       “…겠으니 …세요.”

         

       “흐아아아-! …응? 뭐라고 예린아?”

         

       “…알겠으니 놓으시라고요.”

         

       그래…, 나와 부모의 관계는 그리 간단하게 끊길 게 아니었다.

         

       지금 당장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부모에게 말했다.

         

       “여기 말고…, 올라가서 제 방에서 얘기해요.”

         

       “……!”

         

       그 말을 듣자마자 세상이 떠나가라 울던 우리 부모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람들은 배우를 해야 했다.

         

         

         

         

       **

         

         

         

         

       “…그냥 갈 테니까 이것 좀 놔주세요.”

         

       “…안 돼, 적어도 방 안까지는 이러고 가야 해.”

         

       ‘…쳇.’

         

       여차하면 방으로 혼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강형만을 부를 생각도 있었는데…, 이런 방면에서 우리 부모는 철두철미했다.

         

       그렇게 내 부모는 범인 연행하듯 내 팔을 강하게 붙잡은 채 기어코 내 방 안까지 들어왔고….

         

       쿵.

         

       방 안까지 들어온 후에야 내 팔을 놔주었다.

         

       그리고는….

         

       “…자, 이제 왔으니 할 말 있으면 어서 하시고 가세….”

         

       털썩.

         

       “……!”

         

       “예린아-!!!!! 용서해 줘-!!!”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곧바로 내 앞에 무릎 꿇고 간청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잘못했어-!!”

         

       “그때는 우리가 너무 어리석었어!!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야! 약속할게! 흐엉-!”

         

       “…….”

         

       당연하지만 그런 부모를 내려다보는 내 시선은 엄동설한처럼 싸늘했다.

         

       이미 셀 수 없이 내 뒤통수를 친 부모였고…, 이번 일 또한 선을 넘었다.

         

       내가 이들을 용서해줄 일 따위 만무했다.

         

       그리고 이런 내 기색을 눈치챘는지 부모가 이번에는 내 양쪽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다시는-!! 다시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는 일 없도록 할게-!!”

         

       “사치 부리지도 않을게-!!”

         

       “그냥 집으로 돌아와만 줘…, 예린아-!! 흐으윽!!”

         

       “집안일도 우리가 다 할게…!! 우리랑 연 끊겠다는 소리만 하지 말아 줘…!!”

         

       “우리는 가족이잖아…! 미워도 서로 보듬어 줘야 하는 가족이잖아…!”

         

       “할 말은 다 끝나셨죠? 나가세요. 지금 당장 안 나가면 사장님께 연락….”

         

       “자, 잠깐만…!”

         

       아무리 간청해도 통하지 않자 작전을 바꿀 생각이었는지 아빠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바로….

         

       “흐엉, 예린아. 아빠가 뭘 가져 왔는지 한 번 봐보렴….”

         

       “…이건.”

         

       …내 어린 시절 사진이었다.

         

       아빠는 정말 여러 가지 취미를 갖고 있었는데 도박, 술, 골프…, 아빠의 여러 가지 취미 중 가장 돈이 적게 드는 것이 바로 사진 찍기였다.

         

       덕분에 우리 집에는 내 아기 시절 사진부터 중학교 때 까지의 사진이 넘쳐 났다. 아무래도 그중 몇 개를 가져왔나 보다.

         

       아빠가 애틋한 얼굴로 내 사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흐윽…, 예린이 너 없는 동안 아빠랑 엄마랑 이 사진들 보면서 얼마나 네 생각을 했는지 너는 감히 상상도 못 할 거야.”

         

       “후우….”

         

       “아빠 친구가…, 이 사진들 예린이 네 팬들한테 팔면 하나당 수백만원까지 받을 수 있을 거라고도 말했는데….”

         

       “…그게 무슨.”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포토카드를 사기 위해 많게는 수십 만원도 쓰는 게 아이돌 팬들이다.

         

       그들 입장에서 우리 부모가 가진 사진들은 리미티드 에디션이나 다름없다. 분명히 장당 수백만원을 기꺼이 지불할 극성팬들은 넘쳐 날 터.

         

       “당연히 ‘아직’ 팔지는 않았어! 이건 우리 가족의 추억인데 어떻게 남에게 팔 수 있겠어!”

         

       “…….”

         

       아빠의 반응을 보아 다행히 사진을 팔거나 하진 않은 듯했지만 ‘아직’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그리고 이걸 봐봐, 예린아…!”

         

       그렇게 내가 굳은 사이 아빠가 입고 있던 윗옷을 벗고 자신의 등을 가리키며 말했다.

         

       맨살이 드러난 아빠의 등과 허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파스들이 붙어 있었다.

         

       “…아빠 일자리 구했어. 매일 아침 물류센터 가서 상하차하고 있어.”

         

       “아빠가…, 상하차를 한다고요…?”

         

       평생 막일이라곤 해 본 적 없는 아빠가…, 저 가냘픈 몸으로 상하차를 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예린아, 엄마 손도 봐봐…!”

         

       그러자 이번에는 엄마가 자신의 손을 내밀며 말했다.

         

       평소 잘 관리되어 백옥 같던 엄마의 손에는…, 울긋불긋 주부습진이 올라와 있었다.

         

       “…엄마는 지금 식당에서 일해.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있어.”

         

       “…….”

         

       …아무래도 거짓은 아닌 듯했다.

         

       아빠는 상하차, 엄마는 식당일.

         

       평생 개백수로만 살 줄 알았던 두 사람이 그 무엇보다 궂은일을 시작했다는 말에 당혹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이것을 기회라고 여겼는지 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맹공을 펼쳤다.

         

       “흐윽…, 이게 다 예린이 너한테 손 벌리지 않으려고 시작한 일이야.”

         

       “예린아…, 그동안 우리가 많이 너무했지…. 하지만 우리는 정말 달라졌어….”

         

       “우리 돈은 우리가 벌게, 예린아. 아빠 엄마한테 땡전 한 푼 안 줘도 돼….”

         

       “우리는 그저 우리 딸 얼굴이 사무치게 그리웠을 뿐이야. 그러니까….”

         

       “제발 다시 돌아와 줘….”

         

       “…….”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 집은 그 말의 반대인 듯싶다.

         

       나는 눈물 흘리며 간청하는…, 등에 파스를 붙인 아빠의 모습과 손에 습진이 올라온 엄마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쿵쾅댔다.

         

       19년이라는 세월은 정말 무섭고도 무섭다.

         

       나는 정말 우리 부모에게 길들여지기라도 한 걸까.

         

       꽉.

         

       금방이라도 알겠다고 대답할 것 같아 나는 손으로 입을 꾹 닫았다.

         

       ‘속지 마, 하예린. 제발 속지 마.’

         

       나는 그대로 눈을 꾹 감은 채로 속으로 속지 말라는 말을 되뇌었다.

         

       “예린아아…!!”

         

       “엄마 아빠는 정말 너를 사랑해애….”

         

       그 사이에도…, 내 부모는 나를 향한 아찔한 유혹을 그만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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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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