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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플레임 캐논. 

       

       범위가 크지 않은 단일 대상의 화염 마법 중에서는 거의 최상급의 화력을 자랑하는 강력한 마법이다.

       

       ‘아르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 번 본 적이 있었지.’

       

       동굴 안에서 내가 커먼 울프의 주의를 끄는 동안 아르에게 도망가라고 했었을 때.

       

       아르는 결국 다시 돌아와 늑대에게 플레임 캐논을 쏘아 나를 구해 주었다. 

       

       ‘하지만 그때의 플레임 캐논은 마법의 형태만 플레임 캐논이었지, 위력은 그렇게 세지 않았는데.’

       

       커먼 울프가 그 자리에서 재가 되어 사라지지 않고 까맣게 탄 것에서 그친 걸 보면, 그때의 위력은 사실상 파이어 애로우 수준이었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아아!!

       

       바로 지금 아르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플레임 캐논은, 단 한 방에 변종 크랫의 무릎 위, 몸통부터 머리 전체를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다. 

       

       “…….”

       

       나는 입을 떡 벌린 채, 눈앞에서 흩날리는 재를 바라보았다. 

       

       툭.

       

       변종 크랫이 방금까지 거기 있었다는 걸 알려 주는 듯한 종아리 두 개만이 까맣게 탄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혹시라도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 보았지만, 아프기만 할 뿐.

       

       ‘그리고 방금전 느꼈던 어마어마한 압력…. 그것만큼은 생생했어.’

       

       후욱.

       

       그때 주위를 짓눌렀던 마력이 사라졌고, 나는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곧바로 아르 쪽을 돌아보았다. 

       

       “아르야…. 방금 어떻게….”

       “루비! 레온이 쥰 루비…!”

       

       하지만 아르는 내 말이 잘 들리지 않는 듯, 곧바로 온 힘을 다해 변종 크랫이 있던 곳으로 팔을 뻗은 채 도도도 달려갔다. 

       

       “여기 이써…!”

       

       그리고 변종 크랫이 옆에 고이 내려 놓았던 루비를 집어 들고 품에 소중하게 꼬옥 안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댜….”

       

       휘청.

       

       그렇게 말한 아르가 휘청이며 뒤로 넘어지려는 순간. 

       

       턱.

       

       “아르야. 괜찮아?”

       

       나는 아르를 조심히 받아 엉덩이를 받쳐서 품에 안아 들었다. 

       

       “우응…! 아르 갠차나! 헤헤. 레온, 미아내.”

       “응? 왜 미안해?”

       “레온이 준 루비 잃어버릴 뻔 해써…. 손에 꼭 쥐고 있는 줄 아랐는데 실수로 놓쳐써.”

       

       아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루비를 만지작거렸다. 

       

       “레온이 아르한테 첨으루 선물 준 건데 업써져서 가스미 철렁 내려앉아써.”

       “아니야. 괜찮아, 아르야. 난 아르만 무사하면 다른 건 상관없어. 루비는 다른 데서 구하면 돼.”

       

       하지만 아르는 고개를 저었다. 

       

       “루비는 갠차나. 근데 이건 구냥 루비가 아니라 레온이 첨으루 준 루비자나. 그러니까 소중히 해야 대.”

       “아르야….”

       

       나는 그 말에 아르의 손을 바라보았다.

       

       혹시나 또 떨어뜨릴까 봐 루비를 꼭 쥐고 있는 손을 보니 문득 그간 아르에게 뭔가 선물 같은 걸 준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아르는 오롯이 자기 거라고 할 만한 게 없었지.’

       

       아르를 키우면서 돈이야 내가 다 쓰니 먹고 자는 데에 문제는 없지만, 한편으론 딱히 용돈을 준다거나 장난감을 사 준다거나 한 적은 없었다. 

       

       ‘어릴 땐 뭔가 애착 인형 같은 게 하나씩 있는 법인데 말이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어릴 땐 내가 뭔가를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기 마련.

       

       ‘그간 내가 너무 무심했던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던전에서 얻은 루비 같은 거 말고 좀 제대로 된 걸 선물해 줄 걸 그랬네.

       

       ‘그래도 아르가 좋아하는 것 같으니 일단은 그대로 둘까.’

       

       그러고 보면 드래곤들은 보석이나 금, 은 같은 귀한 물품들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지.

       

       카르사유의 레어는 아르를 숨기기 위해 전용으로 만든 공간이라 그렇다 치지만, 대부분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서 드래곤의 레어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걸로 나오곤 하니까.

       

       사실 아르가 있던 공간에 있던 발광석도 품질은 최상급이었고.

       

       ‘나중에 저 루비를 제대로 세공해서 목걸이 같은 걸로 만들어 주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어.’

       

       아닌가? 아르는 저대로를 더 좋아하려나?

       뭐, 그럼 예쁜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하나 더 사서 주면 되지.

       

       여튼.

       

       “내 선물을 소중히 해 주는 건 고마워, 아르야. 하지만 그래도 다음부터는 너무 무리하면 안 돼. 지금도 쓰러질 뻔했잖아. 응? 알겠지?”

       

       나는 추욱 늘어져 있는 아르의 꼬리를 팔로 받쳐 주었다. 

       

       “우응! 헤헤…. 그래두 아르 결국 루비 잘 지켜써.”

       “잘했어, 아르. 덕분에 안 다치고 크랫을 잡을 수 있었어.”

       “지짜? 아르 덕부니야?”

       “응. 다 아르 덕분이지.”

       “헤헤헤…. 레온….”

       “응?”

       

       아르는 나를 올려다 보며 눈을 끔벅였다. 

       

       “아르 졸려…. 잠이 쏘다져….”

       

       역시 방금전 어마어마한 마력을 소모한 반동이 오는 모양이었다. 

       

       “응, 아르야. 이제 코오 자. 고생했어.”

       

       어릴 때는 어디 놀러만 나가도, 부모님 차 뒷좌석에 가만히 타고만 있어도 피곤해서 졸음이 쏟아지기 마련.

       

       험준한 산길을 넘는 동안 나한테 업혀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했을 텐데, 던전에 들어와서 나를 뽈뽈 쫓아다니며 마법까지 난사하고, 그것도 모자라 보스까지 한 방 컷을 냈으니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우응…. 아르 쪼끔만 자께쀼우우….”

       

       너무 졸렸는지 이제는 음성화조차도 풀리며 아르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큐우우…. 큐우….”

       

       아르는 내 품에서 새근새근 잠들었다. 

       그 와중에도 루비는 품에 안은 채였다. 

       

       ‘귀여운 아르.’

       

       나는 아르의 엉덩이를 가볍게 토닥여 주었다. 

       

       “뀨우….”

       

       아르는 잠든 상태인데도 기분이 좋은지 만족스런 뀨 소리를 냈다. 

       

       “그럼 이제 나가 볼까.”

       “레온 씨이이!”

       

       내가 막 입구 쪽으로 몸을 돌리자 마침 실비아의 모습이 보였다. 

       

       “실비아 씨!”

       “괜찮아요? 뭔가 굉장한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앗, 그…그게. 마법이 빗나가면서 벽에 맞은 소리일 거예요, 아마.”

       

       당황한 나는 대충 대답한 뒤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실비아 씨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여기 도착하신 거예요? 신호 보낸 지 오래 안 된 거 같은데….”

       

       생각나는 대로 뱉긴 했지만 타당한 의문이었다. 

       

       내가 반지로 신호를 보낸 걸 받고 바로 출발했다고 해도, 입구로 다시 돌아왔다가 여기로 찾아와야 했을 텐데.

       

       아르랑 사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루비를 발견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있긴 했지만 그걸 생각해도 이렇게 빨리 올 수가 있나…?

       

       “어, 그게…. 반대쪽 길을 뚫고 들어가다 보니 생각보다 금방 막다른 길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돌아오고 있던 중이라 신호 보내셨을 때에 입구에서 멀리 있진 않았어요.”

       

       이번에는 실비아가 조금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아하. 그랬었군요.”

       

       크랫 던전은 보통 양쪽 다 비슷한 깊이로 파져 있는데, 이번 던전은 좀 구조가 달랐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실비아 씨 실력이면 보스도 없는 쪽에서 얼마나 빨리 크랫들을 잡고 들어갔겠어.’

       

       우리랑 헤어지자마자 질풍처럼 달려 들어가며 크랫들을 썰어 버렸다면 금방 막다른 길에 도착했겠지.

       

       “아르는 자고 있네요? 피곤했나 봐요.”

       “펜던트를 발견하고 나서 긴장이 풀렸나 봐요.”

       “귀여워라…. 근데 품에 뭘 꼭 안고 있는데요?”

       “아아, 이건 운 좋게 여기서 발견했어요.”

       

       나는 주머니에서 에메랄드를 꺼내 보였다. 

       

       “루비랑 이거 두 개를 발견했는데, 아르가 루비를 너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줬더니 아까부터 저렇게 소중하게 꼭 끌어안고 있어요.”

       “세상에….”

       

       실비아는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 아르를 바라보았다. 

       

       “아 참, 실비아 씨 몫은 이 에메랄드를 팔아서 돈으로 배분해 드릴게요. 루비는 아르가 좋아하니 그대로 두고요.”

       “당연히 그대로 둬야죠. 사실 에메랄드 값도 전 괜찮긴 한데.”

       “그럴 수는 없죠. 어쨌든 같이 던전에 와서 얻은 아이템이잖아요. 그리고 이거 팔면 2~3골드는 나올걸요? 실비아 씨 몫으로 1골드 이상 떨어지는 거예요.”

       

       1골드면 얼마나 큰 돈인데. 

       

       “아하, 1골드. 큰 돈이긴 하죠. 고마워요, 레온 씨.”

       

       …방금 굉장히 영혼 없는 대답이었는데.

       역시 B급 용병이시라 이건가.

       

       “어쨌든 돌아가죠. 의뢰도 완료했으니.”

       

       나는 오늘의 메인 아이템인 펜던트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

       

       캐머해릴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뀨웅….”

       “깼어, 아르? 다 왔어.”

       

       아르는 정말 많이 피곤했는지, 험준한 산을 다시 넘어 캐머해릴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 

       

       “뀨우우…?”

       “나는 괜찮아. 이제 의뢰품 길드에 맡기기만 하면 들어가서 쉴 수 있으니까.”

       “뀨우.”

       

       아르는 고생 많았다는 듯 후드 안에서 꼬물꼬물 일어나 잠이 덜 깬 상태로 내 어깨를 꾸욱 꾹 마사지해 주었다. 

       

       “오우, 시원한데?”

       “뀨!”

       

       아르의 마사지를 받으며 용병 길드에 도착한 나는 바로 의뢰품인 펜던트를 창구에 맡기고, 직원에게 사진을 확인시켜 준 뒤 의뢰비를 받아 나왔다. 

       

       아마 꼬마는 내일 용병 길드에 찾아와서 의뢰가 완료되어 있는 걸 보고 기뻐하겠지. 

       

       ‘그보다 너무 피곤해.’

       

       어째 던전에서 마물과 싸우는 것보다 갔다 오는 길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았다. 

       

       우리는 의뢰 완료 기념으로 먹을 걸 잔뜩 사들고 여관으로 들어가 먹은 뒤, 물이 데워지자 목욕을 했다. 

       

       실비아가 먼저 들어가 씻고 나온 후, 아르와 들어가 몸을 담그자 저절로 단전에서부터 깊은 ‘씨워어어언하다’ 소리가 나왔다. 

       

       “크으…. 진짜 피로가 싹 풀리는 거 같네.”

       

       그러고 보면 언젠가부터 뭔가 목욕을 할 때마다 몸에 활기가 돌고 피로가 좀 더 잘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뭔가 평소보다도 더 좋은 거 같아.’

       

       피로가 풀리는 것뿐 아니라 몸에 뭔가 깨끗한 기운이 흘러 들어오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너무 좋다.’

       

       슬쩍 눈을 떠 보니 아르도 같은 생각을 하는 듯, 이마에 젖은 손수건을 접어 얹은 채 물에 둥둥 떠서 헤벌쭉한 표정으로 작게 뀨 소리를 내고 있었다. 

       

       “끄으! 좋았다! 흐아암!”

       

       한동안 힐링을 하고 나오자 긴장이 쭉 풀려서 그런가 잠이 솔솔 왔다. 

       

       “뀨우움.”

       

       아르도 오는 동안 잤지만 또 졸리다는 듯 하품을 했다. 

       

       나와 아르는 곧바로 침대에 몸을 던졌고, 실비아도 머리를 마저 말리고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고생했어요, 실비아 씨.”

       “레온 씨도요.”

       “아르도 고생했어.”

       “뀨우.”

       “귀여워라…. 아르야, 오늘은 내 품에서 잘래?”

       “엇, 실비아 씨. 그렇다고 아르를 가져가시면….”

       

       나는 은근슬쩍 우리 가운데에 있던 아르를 안으려는 실비아를 보며 얼른 아르의 배를 잡았다. 

       

       “뀨우, 뀨?”

       “아르야, 나랑 자자.”

       “뀨!”

       “후후, 역시 우리 아르야.”

       

       가운데에 있던 아르는 역시 날 선택해 주었고.

       

       내가 아르를 품에 안으려는 순간.

       

       후욱.

       

       “너무해요. 아르가 안 오면 제가 갈 거예요. 이러면 됐죠?”

       

       실비아가 내 쪽으로 확 붙어, 우리는 아르를 동시에 안은 모양새가 되었다. 

       

       “후우. 이렇게 나오시면 제가 양보할 줄 아셨나 본데, 오늘은 안 됩니다.”

       “바라던 바예요.”

       

       그렇게 티격태격하던 나와 실비아의 눈이 마주쳤고. 

       

       “푸흣.”

       “푸흐흐.”

       

       우리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뀨우…. 큐우….”

       “엇, 먼저 잠들었나 봐요.”

       “저희도 자요.”

       

       나는 목소리를 낮추며 눈을 감았다. 

       매우 노곤한 상태였기에 잠은 솔솔 왔다. 

       

       아르의 온기, 그리고 실비아의 온기를 느끼며 나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독자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 한 해 하시는 일 잘 풀리셨으면 합니다.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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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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