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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 ***

         

       호천안이 객잔 마당의 먼지를 온몸으로 쓸며 기뻐하고 있을 시각.

         

       여일예는 호천안과 흑묘를 발견했던 자리에서 산채를 관찰하고 있었다.

         

       ‘돌아왔군.’

         

       산채에는 술이 제법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산적이라도 비상사태 때 술을 즐길 수는 없었던 모양. 여일예는 상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응시했다.

         

       “허억, 허억…거, 허억!”

         

       “용케 여기까지 따라왔군?”

         

       “아니 왜 객잔에 사람이 저리 많아진 거요? 독의는 또 뭐고?”

         

       전후담이 여일예 옆에 널브러졌다.

         

       “그럴 일이 있었다.”

         

       “이런 제기랄…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전후담은 흑묘와 여일예 두 여자를 떠올리며 불평했다.

         

       전후담 입장에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개왕채 채주 막여부의 행방을 찾기 위해 월복당과 접촉하기 위해 산을 내려갔더니 갑자기 서류와 함께 객잔에서 대기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객잔에 도착했더니 갑자기 독의와 호천안 그리고 흑묘가 나타났다. 흑묘에게 서류를 전달해 준 전후담은 여일예의 뒤를 쫒아 산을 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당주와 여일예를 떨어트리는 게 작전 목적이 아니었나?’

         

       여일예와 흑묘가 마주치지 않도록 형귀산으로 여일예를 유도하는 임무인 줄 알았더니 무슨 조화가 일어났는지 여일예와 흑묘가 동행하고 있는 상황. 흑묘는 그냥 본래의 목적대로 움직이라는 전음만 보냈을 뿐 딱히 무언가를 알려주지도 않았다.

         

       “부채주로 보이는 자는 이름이 뭐지? 강해 보이는군.”

         

       “잔혈대도 기경찬. 저자도 근래 초절정에 올랐다고 하더군.”

         

       전후담은 허리춤의 물주머니를 들어 한 모금 마신 뒤에 입을 열었다.

         

       “그러니 일단 빈틈을 봐서 산채에 잡입한 뒤에 칠보옥대부터 찾아봅시다. 칠보옥대를 찾으면…”

         

       “독의께서 협조해 주기로 하셨다.”

         

       “오..? 과연 점창파의 후예십시로구만. 독의님께서 직접 산채를 토벌해 주신다니.”

         

       “토벌? 아니. 독의님께 막여부를 데려가면 그 입을 열어 주시겠다 하셨지.”

         

       “아니…”

         

       전후담은 기가 막히는 것을 느꼈다. 초절정 고수 둘에 백여 명에 달하는 산적이 있는 산채에서 어떻게 초절정 고수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산채로 데리고 나올 수 있단 말인가?

         

       “거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쇼! 뭐 무인에게 경지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인 것은 알지만 따질 건 따집시다! 초절정 초입 아니오? 아무리 점창파의 제자라고 할지라도 제 집 안방에 있는 초절정 둘을 상대하는 게…”

         

       “그건 결과를 보면 알 일이다.”

         

       전후담은 여일예의 자신감이 말문이 막혔다.

         

       “돌아가지. 준비를 하고 내일 새벽에 들어가면 되겠군.”

         

       “아니 잠…”

         

       휘리릭!

         

       급경사를 너훌 너훌 내려가는 여일예를 바라보면서 전후담은 그제야 깨달았다.

         

       간신히 오른 산을 내려가서 먼 길을 달려 또 객잔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제기랄…”

         

       *** ***

         

       여일예가 돌아온 것은 호천안이 일류에 오른 것을 침을 튀기며 자랑하고 있을 때였다.

         

       “오, 자네 왔는가!”

         

       처음에야 ‘오래간만에 경지가 올랐으니 신났겠지’라는 마음으로 흐뭇하게 호천안의 이야기를 들어 주던 일행이었지만 이미 한 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으니 죽을 맛이었다.

         

       처음에야 적극적으로 축하해 주던 흑묘나 독의도 여일예가 들어오기 전에는 바닥만 쳐다 보고 있던 상황.

         

       호천안의 입장에서야 7년치 한이지만 일행에게 있어 일류라는 것은 이미 한참 전에 통과한 간단한 전환점에 불과했으니까.

         

       독의는 여일예가 나타나자 반색하며 맞이해 주었다.

         

       “내일 새벽 출발하고자 합니다.”

         

       “음…혼자서 괜찮겠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야 존중하겠네. 그래…그 자를 잡아올 때를 대비해서 준비를 좀 해야겠구만. 이놈아! 그만 쉬고 일어나라.”

         

       “으아악! 밤에는 좀 쉽시다!”

         

       “아직 할 일이 산더미다! 휴식이란 일이 끝나야 할 수 있는 법!”

         

       “아니 사람 끌고 갈 힘이 있으면 직접 하시라고요!”

         

       막이가 질질 끌려 나가는 것을 지켜 보던 흑묘가 호천안에게 물었다.

         

       “정말 여일예가 개왕채를 홀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호천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궁금하면 한번 따라가 보는게 어때?”

         

       “음….”

         

       호천안의 말에 흑묘는 솔깃했다.

         

       여일예가 복수의 단서를 잡는다면 사천에는 그야말로 피바람이 불 터였다. 그리고 흑묘는 그 피바람 속에서 여일예가 패배할 것이라 가늠하고 있었고.

         

       그런데 정말 여일예가 산채 하나를 홀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라면?

         

       흑묘가 예상했던 판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번 지켜볼까.’

         

       흑묘는 내일 새벽 여일예의 뒤를 밟기로 결심했다.

         

       *** ***

         

       여일예는 굳게 닫힌 산채의 문을 응시했다. 어제의 연회가 거하기는 했는지 망루에 사람 한 명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 일은 아니었다.

         

       누가 꼭두새벽부터 험한 산세를 타고 올라와 산채를 습격하겠는가.

         

       여일예는 단번에 산채의 담장을 넘었다. 나름대로 수고를 들여 나무를 뾰족하게 갈아 놓았지만 초절정 고수에 상승신법을 익히고 있는 여일예는 그 위에 여유롭게 서서 산채를 둘러보았다.

         

       ‘두령이 있는 곳이라면 저기겠군.’

         

       백여 명의 산적이 살아가는 곳이라 건물이 몇 개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진 건물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나름 수호신상을 흉내내고 싶었던 모양인지 장대에 맹수의 머리 박제가 내걸려 있었다.

         

       끼이이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바로 접견실 형태의 공간이 여일예를 반겼다. 여일예는 인상을 찡그렸다. 두 단 높은 곳에 위치한 옥좌를 연상시키는 상석. 그 위에는 호피 가죽이 놓여 있었다.

         

       “산적 주제에 권위는 차리려 하는 모양이지.”

         

       여일예의 또렷한 목소리가 건물 안에 울려 퍼졌다.

         

       “흐흐흐…눈치를 챈 모양이군.”

         

       막여부는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6척 장신에 범인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어깨.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거대한 도끼까지.

         

       “나를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 그 꼬장꼬장하기로 유명한 늙은이가 내 수하들까지 풀어주면서 친절하게 경고를 해 준다고 할 때부터 구린내가 진동을 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도망치지 않았군.”

         

       “하하하하! 내가 왜? 확실히 독의야 경계 대상이지만 고작해야…너 정도는 내 충분히 감당 가능하지.”

         

       막여부가 여일예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자태가 제법 곱구나. 어디 침상에서 이 어르신에게 어떤 원한을 품었는지 구석구석 살펴볼 필요가 있겠군.”

         

       ‘능구렁이 같은 놈.’

         

       여일예는 막여부를 바라보면서도 기감으로는 문 쪽을 살폈다. 희미한 기척이 문 바깥에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 정도로 기척을 숨길 수 있는 자라면 초절정이라는 잔혈대도 기경찬밖에는 없겠지.

         

       여일예가 양면으로 초절정 고수에게 포위되고 있는 시각.

         

       “흐음.”

         

       흑묘는 산채가 잘 보이는 나무 위에 올라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이거…혹시 선배의 설계에 당한 건가…?”

         

       상황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초절정 둘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하나 제압한다면 여일예에게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여일예가 초절정 둘에게 앞뒤로 포위당한 형국이 아닌가.

         

       아무리 기경찬이 갓 경지에 오른 자라고 해도 여일예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도였다.

         

       ‘칫..이거 결국 여일예가 위기에 처하면 구해줘야 하는 구도였잖아.’

         

       여일예를 따라갔다는 것을 호천안이 알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일예가 죽거나 포로로 잡힌다 치자. 그럼 그 상황에서 다시 유유자적 돌아갈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흑묘는 여일예를 따라온 시점에서 여일예를 도울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호천안을 원망했다.

         

       흑묘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건물을 응시하고 있을 때. 기경찬이 발을 멈추고 대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나무 문이 막고 있었지만 초절정 고수에게 저 정도 문이라는 건 종잇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종잇장이 터졌다.

         

       아니 막여부의 숙소 겸 산채의 중심이었던 건물의 한쪽 벽면이 폭발했다.

         

       쿠우우우웅!

         

       “…세상에.”

         

       흑묘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후두두둑!

         

       “큭!”

         

       벽면과 문이 터져나간 파편에 휘말린 기경찬이 황급히 몸을 뺐다.

         

       쿠우우우웅!!

         

       갑작스러운 돌풍이 나무 먼지와 잔해들을 순식간에 쓸어내 버렸다. 기경찬은 한 발자국 물러나며 생각했다. 이건 그냥 돌풍이 아니다. 이것은…내공이었다.

         

       “이…무슨…”

         

       기경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쓸데없는 잡기술을 부리는구나.]

         

       여일예가 구사한 육합전성이 주변을 울렸다. 이제야 잠에서 깨어난 산적들이 무기를 챙겨 허둥지둥 뛰쳐나왔다.

         

       그런 산적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한쪽 벽이 처참히 터져나간 막여부의 숙소와…

         

       전신에 강기(剛氣)를 휘감고 있는 여일예였다.

       

       잔혈대도 기경찬은 여일예와 눈이 마주하는 순간 그야말로 전신이 얼어붙는 것과 같은 공포를 느꼈다.

         

       ‘대적할수…없다!’

         

       기경찬의 눈이 자신의 도 쪽으로 돌아갔다. 전력을 다해 내뿜는 도강. 그러나 그 도강은 간신히 도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태생이 산적인 기경찬의 내공은 일천했고 운이 좋아 초절정에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내공은 부족했으니까.

         

       내공이 몇 배 차이일까? 세 배? 다섯 배?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차이가 날 수도 있었다. 전신에서 강기를 피워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이라니! 기경찬은 저런 행동이 실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여일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기의 폭풍이었다. 마치 세상 전체를 쓸어버릴 듯이 불어오는 폭풍!

         

       “이놈들, 뭣들 하는 거냐! 상대는 고작 계집 하나일 뿐이다! 모두…!”

         

       [그 계집에게 덤비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흑묘는 여일예가 육합전성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건 육합전성도 뭣도 아니었다. 그냥 전신으로 내공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목소리마저 강화되는 것일 뿐.

         

       ‘이런 미친…’

         

       흑묘는 혀를 내둘렀다. 호천안이나 독의가 왜 그리 태평했는지 이해가 가는 광경이었다. 한 사람이 다루는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막대한 내공!

         

       “차하아압!”

         

       기경찬은 여일예의 시선이 막여부에게 돌아가는 순간 전신의 모든 내공을 쥐어짜 도강을 형성하며 달려들었다.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그야말로 화살처럼 날아가 도강을 찔러 넣는 기경찬.

         

       초절정에 어울리는 한 수!

         

       사람의 몇 배 크기는 되는 바위조차도 산산조각낼 수 있는 파괴력의 초식이었지만 기경찬은 그저 태풍 속으로 도를 찔러 넣는 것과 같은 막막함을 느꼈다.

         

       압력.

         

       여일예의와 거리가 한 발자국 좁혀질 때마다 어깨가 무거워지고 도가 떨렸다. 마치 깊은 물 속에서 도를 찌르는 것과 같이 전신에 저항이 붙는다.

         

       기경찬은 막여부가 그 커다란 도끼를 치켜올린 채 마주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기경찬의 것보다 훨씬 선명한 도끼의 강기. 여일예의 내공이 일으키는 압력에 절망하면서도 동시에 희망을 품었다.

         

       결국 여일예의 검은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기경찬의 도나 막여부의 도끼나 강기를 두른 것은 매한가지.

         

       여일예의 내공이 정말로 괴물 같은 것은 사실이었다. 전신에 호신강기(護身剛氣)를 두를 수 있다니! 그러나 호신강기로는 무기에 두른 강기를 완벽히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방어자 쪽이 더 뛰어난 호신강기를 형성하더라도 강기를 활용한 공격은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 무기를 휘두른 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더라도 그 힘이 주는 충격은 몸이 견딜 수 없는 법.

         

       ‘어느 한쪽이든 공격이 닿을 수만 있다면…!’

         

       바위도 순두부처럼 잘라내는 것이 강기의 파괴력. 닿기만 한다면…승산이 있다!

         

       어느 쪽이냐..!

         

       기경찬은 여일예의 검이 막여부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야말로 별무리가 빛나고 있다고 여겨질 법한 짙고 선명한 검강이 서린 검이 막여부의 대부가 떨어지는 경로를 막아섰다.

         

       기경찬은 승부의 기로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수의 승부일수록 대저 한수에 승부가 갈린다.

         

       경지가 낮은 자들은 제힘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 한다. 최고의 한 수라고 모든 것을 쥐어짠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경지가 낮은 자들은 강력한 한 방을 날리지도 못한다. 힘의 고하를 떠나서 자신이 가진 힘을 한 번에 털어 넣지도 못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전력을 단 한 수에 담아내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고절한 무학의 경지.

         

       그렇기에 기경찬은 온 몸의 집중력을 끌어 올려 땅을 박찬 뒤에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기경찬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탓일까. 괴물과 같은 여일예의 모습에 생존본능이 자극받은 것인지 그야말로 그림과 같은 찌르기가 튀어나갔다.

         

       극도의 집중력이 발휘되어 느려진 시계 속으로 기경찬은…

         

       자신을 날카로운 눈으로 응시하고 있는 여일예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런 여일예의 왼손에 잡힌 검집 역시.

         

       투둑.

         

       검집을 허리에 단단히 붙잡아 주던 허리띠가 여일예의 힘에 아무런 저항 없이 끊어졌다. 그러면서 튀어나간 검집에 어린 검강이 기경찬의 찌르기에 맞서 쏘아진다.

         

       ‘하필이면 찌르기를 골랐나.’

         

       어차피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테지만. 여일예는 그렇게 생각하며 검집을 찔렀다.

         

       점창의 찌르기는 천하제일. 해를 쏘아 떨어트리는 검이다. 쏘아지는 검집에 기경찬과 막여부의 눈이 커졌다.

         

       검과 검집. 양쪽에 서린 검강이 그야말로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막여부와 기경찬은 그제야 여일예의 의도를 깨달았다.

         

       왼쪽과 오른쪽 양쪽 다 전력. 나누어도 남고 남는 내공이었다.

         

       그러니 한번에 둘을 상대한다.

         

       쩌적!

         

       여일예의 검집과 충돌한 기경찬의 대도에 단번에 금이 내달렸다. 비록 검집에 불과하지만 태양과 같은 이글거림과 별무리의 빛을 발하는 여일예의 강기와 간신히 구색만을 갖춘 기경찬의 강기.

         

       어느 쪽이 제압당할지는 이미 정해진 문제였다.

         

       콰아아앙!!

         

       강기와 강기의 충돌. 기와 기의 폭발에 휘말린 기경찬은 부서진 도의 파편과 함께 쏘아진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지면에 처박혔다.

         

       “네 이년!”

         

       막여부는 악을 쓰며 도끼를 내리찍었다. 여일예의 검이 일순 수비식을 취하며 변화했다.

         

       쿠우우웅!!

         

       막여부의 도끼와 여일예의 검이 충돌하는 순간 커다란 동심원이 생기며 흙먼지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나무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정도로 강렬한 충격! 산적들은 분분히 얼굴을 가리며 뒤로 물렀다.

         

       촤르르륵!!

         

       [흠. 역시 그 자리에서 받아내는 것은 조금 무리였나.]

         

       여일예는 이 장이나 밀려난 자신의 신형을 살피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산적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부채주는 도가 박살난 채 바닥에 처박혀 있는 상황. 내상을 중하게 입었는지 쿨럭거리며 입으로 피를 토하고 있었다.

         

       반면 채주인 막여부의 공격이 일부 통용되기는 했지만 그냥 가볍게 밀려난 수준. 태풍과 같은 내공은 여전하고 이글거리는 강기를 머금고 있는 검 역시 웅웅거리기만 할 뿐 그대로인 상황.

         

       “이놈들! 공격해라! 어서 빈틈을 만들어야 살 수 있다!”

         

       산적들은 막여부의 종용에 서로 시선을 주고 받으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보며 여일예는 담담하게 말했다.

         

       [독의를 피해 저 혼자만 살겠다고 산채를 버리고 도망친 채주를 위해 누가 목숨을 걸까.]

         

       그 말 그대로였다. 독의 앞에서 꽁무니를 뺀 막여부를 산적들이 곱게 볼 수 있을까. 그런데도 막여부의 귀환을 받아들인 것은 결국 강호는 힘의 논리가 앞서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산적질을 하기 위해서는 초절정 고수인 채주의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막여부의 귀환을 환영할 수밖에 없었다.

         

       여일예는 작전을 제안했던 날 호천안과 한 대화를 떠올렸다.

         

       ‘산적들에게도 원한을 풀 생각이시오?’

         

       ‘막여부가 원수인지 아닌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시점입니다. 딱히 산적들에게까지 원한을 전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채주는 살려 두시지요. 그러면 다른 산적들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볼일이 있는 것은 채주인 막여부 한 사람 뿐. 나머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독의의 위협에 한달이나 방치된 산적들이 무슨 충성심이 있어서 막여부를 따르겠소?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산적질을 할 수 있을 뒷배 겸 무리의 중심이 필요한 것 뿐이오. 부채주 정도라면 그들에게도 납득할 만한 대체재가 될 테지.’

         

       ‘그들을 보내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면 막여부를 잡은 뒤에 다시 추적하면 그만 아니겠소.’

         

       [가령 저 부채주를 데리고 다른 산에 자리를 잡던지…내 알 바는 아니지.]

         

       노골적인 여일예의 중얼거림에 산적들이 눈이 마주쳤다. 

         

       “이, 이년이..! 속지 마라! 저 여자가 너희들을 살려 둘 것 같으냐!”

         

       산적들의 선택을 직감한 것인지 막여부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 다 죽일 거다! 저 여자가 우리 모두를 다 죽일 거라고! 각개격파할 속셈이다! 속지 마라!”

         

       막여부가 목에 핏대를 올리고 침을 튀기며 이야기했지만 산적들의 움직임은 이미 노골적이었다. 어차피 전원이 달려들어도 남는 것은 개죽음 뿐. 채주인 막여부나 살아남지 부나방처럼 뛰어들어야 할 산적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한 달이나 자리를 비운 채주를 위해 나설까. 잔혈대도 기경찬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올린 산적 무리는 한 덩어리로 뭉쳐 산채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막여부가 날뛰어 보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여일예의 검이 겨누어지니 막여부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산적들이 다 빠져나가고 산채에 적막이 흐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 이제야 둘이 되었군.”

         

       여일예는 악에 받친 막여부의 눈을 보며 물었다. 독의에게 막여부를 데려가면 독의가 어련히 막여부의 입을 잘 열어줄 테지만…여일예는 그 전에 막여부의 입에서 진실의 편린을 듣고 싶었다.

         

       “네가 가지고 있다는 칠보옥대…그것은 여가산장에서 훔친 것이더냐.”

         

       “너….!”

         

       막여부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여일예를 살피고는…웃음을 터트렸다.

         

       “크, 크크큭…큭큭..! 그래 네년이 그 여가 산장에서 살아남아 점창에 들어갔다는 그 년이었구나! 하하하…하하하! 그래 내가 그랬다! 내가 그 산장을 불태우고 약탈하고 사람을 죽였다!”

         

       여일예는 말없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막여부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더 확실히 했어야 했어! 그야말로 뒤주 속 쥐새끼까지 다 잡아 죽이고! 불태웠어야 했는데! 재물을 빼돌리느라고 사람을 잡아 죽이는 것을 소홀히 한 업보가 이리 돌아오는구만…! 으하하..으하하하하하!”

         

       “…사람을 잡아 죽이는 것을 소홀히 했다라.”

         

       여일예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드넓은 산장. 백 명이 넘던 가솔들은 모조리 죽고 오직 여일예 한 명만이 살아 남았는데…

         

       “독의님에게 협조를 구하길 잘 했구나.”

         

       막여부는 웃음이 뚝 그치는 것을 느꼈다. 담담하고 차가운 여일예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살기가 어렸기 때문이었다.

         

       아주 차갑게 정련된 살기. 보통 살기란 뜨겁게 타오르기 마련이다. 불타오르는 증오의 감정에서 파생되는 것이 살기이기에. 그러나 여일예의 살기는 그야말로 날붙이처럼 서늘했다.

         

       복수심을 향한 그 증오의 불꽃은 정련되어 금속의 형태로 바뀌었기에.

         

       “네 입에서 모든 정보를 빼낸 뒤. 독의님께 내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네놈에게 지옥의 고통을 맛보여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십 일에 걸쳐 내장이 녹아내리는 독은 어떨까? 아니면 백 일에 걸쳐 네놈의 살을 파먹는 벌레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군.”

         

       화륵!

         

       여일예의 검에서 검강이 타올랐다.

         

       “물론 그 이전에 내가 갈고 닦은 검부터 맛을 봐야겠지.”

         

       여일예는 기수식을 잡았다.

         

       사일검법(射日劍法).

         

       “어렸을 시절부터 지금까지. 원수를 상대하기 위해 갈고 닦은 무공이다.”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그 물집이 다 터져 피가 흐르더라도 단련을 멈추지 않았던 검술. 그 증오는 물극필반 화련냉조의 화두에 따라 불꽃에서 철이 되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 역시 있었으니.

         

       그 증오를 불태우며 쌓아올렸던 검술 그 자체였다.

         

       “참으로 아쉽군.”

         

       “으아아아아! 내 쉽게 당해줄 것 같으냐!”

         

       막여부가 사방으로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여일예에게는 그런 막여부의 발악을 눈에 담으며 담담히 말했다.

         

       “똑똑히 보여 주고 싶은데. 네놈 따위가 쫓기에는 점창의 검은 너무나 빠르구나.”

         

       사일검법(射日劍法). 제일초(第一招). 일수초현(一手初弦).

         

       섬광이 내달리고.

         

       대부를 쥔 막여부의 두 손이 허공을 날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늦어 죄송합니다.

    무려 한 시간 17분이 늦은 비인간적인 처사!!!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내일은 진짜진짜 늦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무려 7천자나 써버렸지만 딱히 잘라낼 기점이 없어서 두 화로 나누지 못하는 슬픔…

    여기 2화 같은 1화요!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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