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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때로, 진실은 거짓보다 잔혹하다.

         

       리브가는 처음으로 제 능력이 저주스럽다고 느꼈다. 이 능력만 없었다면 악마의 말을 그저 헛소리로 치부할 수 있었을테니까.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 성녀. 설령 안다고 한들, 네가 아는 것은 티끌에 불과하지.]

         

       [삶이 끊임없이 반복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미쳐버린다. 아무리 숭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끝내 미쳐버리는 것이다.]

         

       [네년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을테지. 필멸을 사는 이가 영원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차라리 거짓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악마가 말을 계속하면 계속할수록, 현실은 갈수록 비참해져만 갔다.

         

       [백 년? 천 년? 오천 년? 장담하건데, 그보다는 더 살았을거다.]

         

       대륙의 지배자가 열 번도 더 바뀔 시간.

         

       드래곤들의 수명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태산이 모래 알갱이로 마모되기 충분한 시간.

         

       한낱 인간의 정신으로 그런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리브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가족을 잃은 사람의 고통은 가족을 잃은 사람만 이해할 수 있듯이, 영겁을 살아온 자의 고통은, 마찬가지로 영겁을 살아온 자만 이해할 수 있을테니까.

         

       [이 몸의 주인이 지금 이 모습을 보게 된다면……어떤 기분일까?]

         

       악마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고 있다. 마음을 동요시킨 다음, 주박에서 풀려나기 위해 그런 말을 지껄인 것이 분명했다.

         

       성역에서는 올리비아의 정신을 침식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다짐했다. 어떤 말을 듣더라도 풀어주지 않겠다고.

         

       미움 받게 되더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설령 증오로 점철된 말을 듣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일 결심을 했다.

         

       그래야 악마로부터 올리비아를 지켜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걸 지킨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일이 올리비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것이라는 것.

         

       리브가의 손끝이 파들파들 떨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탓에 두 손으로 맨 땅을 기며 올리비아에게 다가갔다.

         

       리브가는 올리비아를 단단히 속박하고 있던 사슬들을 하나씩 끊어냈다.

         

       “아, 아으으……아으……!”

         

       사슬을 끊어낼 때마다, 리브가의 울음소리는 커져만 갔다.

         

       올리비아의 손은 부드러웠다. 등에도, 얼굴에도, 다리에도, 발에도, 팔에도. 그 어디에도 상처 하나 없었다.

         

       그래서 알지 못했다. 마음 속이 그렇게까지 곪아 있을 줄은.

         

       “언니…….”

       

       왜 도와달라고 말 안했어요?

         

       내가 다칠까봐 그런거에요?

         

       내가 믿지 못할까봐 그런거에요?

         

       답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말 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투욱.

         

       마지막 사슬을 끊어내자 올리비아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리브가는 온 몸으로 올리비아를 받아냈다. 성인의 무게라기엔, 올리비아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아으으……으으.”

       

       리브가는 올리비아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알 수 있었다.

         

       알고자 했다면 얼마든지 알 수 있었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남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만큼은 알고 있었어야 했다.

         

       물어봤어야 했다.

         

       언니는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어야 했다.

         

       내가 이렇게나 힘든데, 당연히 당신도 힘들거라고 생각했어야 했다.

         

       희생이었다.

         

       당신이 하는 것이 헌신인 줄만 알았는데, 희생이었다.

         

       헌신은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해 타인을 돕는 것. 하지만 아무리 기쁜 마음으로 임한다고 한들, 필연적으로 지치는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겨내지 못할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자기 만족으로, 때로는 진심 어린 감사로.

         

       – 칭찬 받으면 기분 좋잖아.

         

       그리고 때로는 칭찬 한 번으로 그를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희생은 다르다.

         

       헌신은 그저 지칠 뿐이지만, 희생은 곪는다. 마음 깊은 곳을 갉아먹는다.

         

       자신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때,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수단이 바로 희생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곪아들어간 상처는 치료할 수 없다. 도려낼 수도 없다.

         

       부모를 잃었던 그날의 정경이 아직까지 깊은 흉터로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 흉터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안 돼…….’

         

       더 이상 올리비아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

         

       어째서 그런 미련한 짓을 했던 걸까. 악마가 소멸할 때까지 구속해 놓겠다는 끔찍한 생각을 도대체 왜 했던 걸까.

         

       리브가는 온 몸을 신성력으로 강화한 다음 올리비아를 들쳐맸다. 그리고 신께 빌었다. 올리비아가 기구한 운명에서 구원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품에 안긴 올리비아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깨어나려는 것이다.

         

       안 돼.

         

       보면 안 돼.

         

       “……조금 더 자요. 언니. 더 자요. 아직 일어나지 마요.”

       

       붉어진 눈가가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돌리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악문 이빨 뒤에 감췄다.

         

       리브가는 재빨리 올리비아를 제 방 침대 위에 눕혔다. 사슬에 묶인 탓에 벌겋게 부어오른 살갗을 치유했다.

         

       그리고 올리비아가 깨어났다

         

       “여긴……?”

       “제 방이에요.”

         

       방 문을 열고 리브가가 들어왔다. 그녀의 눈가는 방금까지 눈물을 머금었던 탓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울었니?”

       

       리브가는 잠시 망설였다.

         

       어떻게 답해야 올리비아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 고심하는 것이다.

         

       “……네.”

       “뭐 때문에 울었니?”

         

       리브가는 침묵했다.

         

       거짓을 말할 수는 없다. 신성력의 총량이 줄어든다면 올리비아는 곧바로 눈치챌테니까.

         

       그렇다고 곧이 곧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필멸을 사는 이가 영원을 이해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건가?]

         

       올리비아는, 자신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좌절할테니까.

         

       ‘저는 이거 알면 안 되는거죠? 언니는……제가 이걸 몰랐으면 하는거죠?’

         

       쪼르르 달려간 리브가가 올리비아의 품에 안겨들었다. 리브가는 올리비아의 손을 잡은 뒤, 제 머리를 향해 가져갔다.

         

       “그냥……힘든 일이 있었어요.”

        “힘든 일?”

         

       리브가는 대답하는 대신 쓰다듬어 달라는 듯 고개를 부볐다.

         

       올리비아는 묻고 싶은 것이 많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순순히 리브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리브가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은 올리비아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원을 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의지가 마모되어 오로지 목적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독한지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질문을 하는 것은 최소한 후자를 이해한 후가 되어야 했다.

         

       마침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지독한 책임감 속에서, 본인의 의지를 한없이 죽이며 살아가는 사람이.

         

       ‘……한 번 찾아가 봐야겠어.’

         

         

         

       *****

         

         

         

       나름 단서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페널티를 부여하는 규칙들도 전부 고려했다고 생각했다.

         

       [현재 단서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사유는 간단했다.

         

       [현재 ‘성녀 리브가’와 ‘파도잡이 에스티’가 같은 장소에 존재합니다.]

         

       규칙 1번, 회귀자 2명과 동시에 접촉할 수 없다……가 그 원인이란다.

         

       물론, 단순히 그것 때문이었다면 이렇게 어이없는 얼굴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락테아를 플레이하면서 회귀자들과 삼자대면한 적이 없지는 않았으니까.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많아졌지.’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만나야 할 사람은 많은데, 언제까지고 단일 대면을 고집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필 단서를 사용하려는 시간대가 ‘삼자 대면’ 시간대인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삼자 대면’ 때문에 단서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단서에 진입하자마자 페널티를 받고 튕겨나갈 바엔, 아예 들어가지 않는 편이 나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리브가하고 에스티가 만난거지?’

         

       올리비아가 당황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리브가와 에스티는, 몰살 회차에서 만난 적이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둘이 만난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올리비아가 리브가와 만나기 훨씬 전의 이야기였다.

         

       성국의 성녀와 이카일의 파도잡이가 대면한 시기는, 올리비아가 한창 멜리나의 밑에서 수학(受學)할 때다.

         

       그리고 그 때가 둘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확실히 기억한다.

         

       왜냐하면 둘은 절대로 같은 장소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카니스 왕국의 항구도시, 이카일.

       

       그 이카일의 파도잡이가 바로 에스티였다.

       

       그리고 에스티는, ‘절대로’ 이카일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고로 둘이 만나려면, 리브가가 이카일까지 직접 가야 한다.

         

       하지만 리브가의 직책은 성녀. 그리고 성녀는 교황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성국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래도 에스티보다야 낫지만, 이쪽도 외부 활동이 어려운건 매한가지다.

         

       ‘……미치겠네.’

         

       현실에서의 변수도 따라가기 벅찬데, 이제는 단서 안에서도 변수가 생긴다니.

         

       이 세계에 떨어진지 반 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곧 미래가 ‘경험한 적 없는’ 형태로 뒤틀려 버릴 것이다.

         

       ‘……그냥 이카일로 가?’

         

       기억대로라면 다음 단서의 주인은 에스티일 것이다.

         

       성격이 막무가내기는 하지만, 이카일 바깥으로 도망간다면 쫓아오지도 못할테고. 다른 회귀자들과의 교류도 전무하니 정보를 흘릴 가능성도…….

         

       그 순간이었다.

         

       무릎에 누워 있던 리브가가 입을 열었다.

         

       “……언니.”

       “……!”

         

       갈색 눈동자가, 이쪽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망가각님 5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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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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