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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

       인수인계가 끝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 ‘인수인계’의 기간은 정하지 않는다.

        

       바꿔말하자면 인수인계의 기간을 무한정 늘리면서 양혜인이 이곳에 있는 것을 허락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양혜인의 업무 패턴은 정형화되어있는 편이지만, 그 종류는 자잘하게 꽤 많은 편이었고, 그중에서 꽤 섬세한 손기술을 요구하는 부분도 있었다. 물론 아무나 못 할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사실 기술보다는 몸동작을 더 배웠던 것 같기도 하다. 주인에게 걸맞은 우아하고 차분한 몸동작.

        

       원래는 메이드가 되기 전에 따로 교육받아야 했지만, 신소희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룹 내에서 유능한 인재를 뽑아, 막대한 양의 연봉을 제시하고 철저하게 메이드 교육을 해 보내는 것이 원래의 절차였지만, 신소희는 무려 담을 넘어와 일하겠다고 했고, 이 저택의 주인인 사라가 그걸 허락해서 메이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메이드로서의 업무는 물론이고, 메이드로서 가져야 할 자세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몰랐다.

        

       하긴, ‘마음가짐’ 같은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사실 이 저택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기계적으로 자기 할 일만 하니까. 오히려 진심으로 사라만 도와주고 싶다는 그 마음가짐만 두고 보면 사라에게 꼭 맞는 메이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이 너무 지나쳐서 일을 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것이 사라도 원하는 것이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일부러 그 편지를 보여준 이상은, 신소희가 그런 일을 벌일 일은—

        

       “으흐흐.”

        

       —없을, 까?

        

       양혜인은 드물게도, 회장과 사라 이외의 다른 이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날 아침, 사라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모습을 봤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사라가 자기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로만 봐서는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은 아니리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의 불안을 완전히 떨쳐버리기는 어려웠다.

        

       아직 마르지 않아 물기를 머금은 사라의 머리카락을 앞에 두고, 신소희는 다소 음습하게 웃고 있었다.

        

       두 친구는 집으로 돌아간 뒤.

        

       이 집 안에서, 사라의 방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이는 사라 본인을 제외하면 이제 둘 뿐이었다.

        

       ……그리고 사라의 방에서 지낼 이는, 사라를 제외하면 둘이었고.

        

       “……왜 그렇게 웃어?”

        

       정작 신소희에게 여기서 일하는 것을 허락한 사라도 조금 불안했는지, 살짝 돌아보며 그렇게 물었다.

        

       “어, 아니, 그냥.”

        

       신소희는 그렇게 얼버무려버렸다.

        

       그런 모습을 보던 양혜인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아내고 말했다.

        

       “헤어드라이어는 최대한 약한 바람으로 맞춰 주십시오. 아가씨의 머릿결이 상하게 해서는 안 되니까요.”

        

       “네, 선배님!”

        

       선배님이라.

        

       언제 들어도 어색한 말이었다. 양혜인이 저 말을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은 대학교에서였다. 그 이후로는 누군가에게 선배 소리를 들을 일도 할 일도 없었다.

        

       그저 조용하게 자기 할 일을 했을 뿐.

        

       ……그러고 보면, 이 저택은 얼마나 삭막한 곳이던가. 결코 어린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

        

       신소희가 사라의 머리카락을 만질 때마다, 사라는 불안한 듯 뒤를 슬쩍슬쩍 돌아보았다. 그 눈은 신소희가 아니라 양혜인을 향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하긴, 적어도 머리카락 말리는 것에 대해서는 신뢰하고 있을 수는 있겠다. 매일같이 이 결 좋은 머리카락을 만졌던 것은 양혜인이었으니까.

        

       그것도 언젠가는 못하게 될 일이긴 했지만.

        

       “……조금 더 천천히. 헤어드라이어는 더 멀게 떨어뜨려서. 아무리 약하게 틀었다고 해도, 매일같이 인공적인 바람을 맞으면 머리카락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네.”

        

       그래도 신소희는 보이는 태도보다는 진지하게 임했다.

        

       “…….”

        

       처음에는 조금 어색하던 신소희의 손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조심스럽게 머리카락 사이를 헤치고 빗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그 사이를 부드러운 바람이 훑고 지나가며 축축한 수분을 날렸다.

        

       “…….”

        

       한동안, 양혜인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면, 딱히 자긍심이라는 것을 가질 수 없는 직업이었다. 문자 그대로 가정부가 아닌가. 그저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을 뿐, 하는 일의 수준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직원들을 통솔하는 것? 어차피 이 저택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자기들 정해진 대로만 일한다. 청소? 저택이 이상하게 넓긴 해도 쓰는 곳만 쓴다. 그리고 쓰는 곳의 대부분은 창고였다. 청소를 그녀 혼자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몹시 어려울 일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양혜인 본인이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던 적이 없었다.

        

       ……그랬다. 없었다.

        

       그저 운 좋게 얌전한 애 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운 좋게 그만큼 돈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회장이 소름 끼친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자신도 결국 여기서 일하는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반면에, 신소희는 달랐다.

        

       본인이 정말로 하고 싶어서. 정말로 이곳에 있고 싶어서.

        

       ……진심으로 사라를 지키고 싶어서.

        

       여기에 있는 것이, 너무나 즐거운 것이다. 사라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는 것으로도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릴 정도로.

        

       그녀에게 이 일은 그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저 사라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있을 수 있는 일.

        

       좋아한다고 했던가.

        

       ……양혜인은, 언제부터 자신이 이런 인간이 되었는지 잠깐 생각해보았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불의에서 눈을 돌리고, 그저 자신의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멍하니 시간만 보낸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돈’이라는 것만 보고 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장은 사람을 참 잘 골랐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조차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라가 없었다면, 자신은 아직도 그렇게 기계적으로 살고 있었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으헿.”

        

       “아, 미안.”

        

       —아니다. 긴 머리카락을 만지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등을 쓰다듬는 자가 ‘이상적인 메이드’일 수는 없었다.

        

       양혜인은 신소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소희는 그제야 ‘이크’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얼른 다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 이 정도면, 다 된 건가……?”

        

       신소희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러면서 양혜인을 슬쩍 바라보는 모습이, 마치 확인해달라는 것 같았다.

        

       양혜인은 사라의 뒤로 다가가 머리카락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 말했다.

        

       “네, 잘 끝났네요. 다만, 앞으로는 이렇게 시간을 너무 오래 들이지는 말아주십시오. 아까도 말했지만, 머리카락에 인공적인 바람을 너무 오래 쐬는 것은 그리 좋지만은 않으니까요.”

        

       “네, 선배님!”

        

       저 말투도 바꾸도록 해야 할까?

        

       하지만, 왠지 사라는 그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 같았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다음은—”

        

       거기까지 말했을 때, 양혜인의 메이드 복에 달린 앞치마의 주머니가 지잉, 하고 울렸다.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휴대전화에 진동이 오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절대로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지만, 양혜인은 침착하게 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빠른 걸음으로 방 밖으로 나가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

        

       손님이 왔다고 하기에 정문으로 나가보니, 아까 전까지 이 저택에 와 있던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옷은 여전히 교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교복도 아까와는 상태가 달랐다. 왼쪽 어깨와 흉부의 이음새 부분이 터져서 안쪽의 셔츠가 살짝 드러나 있었다. 치마 옆도 어딘가에 쓸린 듯 회색 먼지가 묻어있었다.

        

       어딘가에 머리라도 부딪혔는지, 이마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아마 여기까지 걸어왔다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충분히 끌었으리라.

        

       무릎도 까져 있었고, 왼쪽 허벅지도 어딘가에 쓸린 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뛰다가 넘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저 좀 숨겨주세요.”

        

       이수아는 당당하게 그렇게 말했다.

        

       “지금 쫓기고 있어요.”

        

       “…….”

        

       양혜인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물었다.

        

       “혹시 누구에게 쫓기고 있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저희 아버지한테 쫓기고 있어요.”

        

       “…….”

        

       양혜인은 다시 한번 이수아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쫓기고 있다’는 말은 맞는 것 같았다. 정말로 열심히 뛰다가 어디서 넘어지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에게 쫓긴다니.

        

       이수아의 집안은 이원양행의 집안이 아닌가. 선행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매년 내놓는 기부금이 유진전자가 내놓는 기부금보다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탈세도 한 번도 걸리지 않았고, 가족조차 화목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하긴.

        

       당장 자신이 일하고 있는 유진 그룹 내만 해도 이런 상황이었다. 다른 그룹의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어도 외부에서 아는 것은 힘들 것이다.

        

       경호원들이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대체 무슨 약점이라도 잡힌 것인지, 그들은 그저 양혜인을 불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평소대로라면 그대로 내쳤을 사안인데.

        

       ……신소희가 담을 넘어왔다고 했었지.

        

       그걸 막지 못한 것으로 약점을 잡혔다면 이상할 것은 없긴 했다.

        

       “일단 들어오십시오.”

        

       “감사해요.”

        

       그렇게 인사하는 이수아는 전혀 소심해 보이지 않았다.

        

       유서를 보던 그녀와는 이미지가 다소 달라 보였다.

        

       “…….”

        

       양혜인은 말없이 앞장서서 이수아를 안내할 뿐이었다.

        

       *

        

       “수아!?”

        

       방 안으로 들어온 수아를 본 사라는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게, 깜깜한 바깥이 아니라 환한 방 안에서 본 이수아의 상태는 보기보다 꽤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다.

        

       “너무 놀랄 거 없어. 그냥 넘어졌을 뿐이니까.”

        

       “그게 그냥 넘어진 거야?”

        

       옆에서 보고 있던 신소희가 그렇게 태클을 걸 정도로.

        

       양혜인은 말없이 걸어가, 벽에 늘어서 있던 옷장 중 하나를 열었다. 그 깊숙한 곳에 비상용으로 넣어둔 약상자가 있었다. 각종 상비약과 연고가, 유통기한이 되기 전에 최신화 시켜두는 식으로 언제나 그곳에 있었지만, 잘 꺼낼 일은 없었다. 처음으로 사용하는 상대가 주인인 사라가 아니라 손님이라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는 괜찮은데…….”

        

       “그냥 두면 흉이 집니다.”

        

       약상자를 가지고 온 양혜인의 말에 사라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은 이수아의 흐른 피와 상처에 집중되어있었다.

        

       마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

        

       사실 이 방 안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사라가 조금 얼빠진 목소리로 물어보자, 이수아는 사라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이 조금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하지만 이수아는 사라를 보면서, 웃었다.

        

       “나, 가출했어.”

        

       다만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웃으면서 할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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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쓰는 것이 아무리 즐겁더라도 어려운 부분이나 잘 생각나지 않는 부분들이 있는 법이지만, 독자 여러분이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해결할 방법을 찾게 됩니다. 저도 저의 글을 끝까지 쓰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지만, 아무래도 성격 때문에 혼자 끝까지 쓰는 것은 너무 힘들어요. 웹소설 플랫폼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글 쓰는 즐거움을 다시 찾은 것도, 제가 글을 올리면 실시간으로 읽어주실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덕분에 요즘에는 공지사항 쓰는 것도 즐겁습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꾸준히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께서 저의 소설을 읽으시며 사용하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도록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너무현란한몸놀림님, 후원 감사합니다!

    1월달에 노벨피아에 미성년자간 애정행위는 어느 정도의 수위로 해야하는지 문의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메일로 문의해놓고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2월이 되어서야 확인했는데요. 거기서 미성년자간의 애무행위(혀 포함)는 안된다고 해서 생각했던 키스신이 좀 뒤로 밀렸습니다. 다만 ‘가벼운 포옹’이나 ‘입맞춤’정도는 성행위라기보다는 애정행위로 보는 것이 더 맞지 않겠느냐는 말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죄송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소설이 통째로 날아가거나 플러스가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작중 주요 등장인물들이 미성년자인 이상 등장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다만 본편 이후에는 쓸 생각이 있습니다. 소재로는 그… USB… 라던가… 아무튼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소재 자체는 이것저것 많이 떠오르긴 하네요. 아직 써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독자 여러분을 만족시켜드리기 위해 열심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후원까지 해 주신다는 것은 그만큼 저의 소설이 마음에 드셨기 때문이겠죠?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성실하게, 독자 여러분께서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도록 열심히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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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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