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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2

    <782 – 용사답게(28)>

     

    아름다움이란 인간을 기쁘게 만드는 모든 것.

    미학이란 그런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누군가 오크노디에게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에 수백 회차의 시간을 쏟아부은 이유를 묻는다면 그 이유는 미학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진짜 열심히 사네.’

    ‘툭 하면 픽픽 쓰러지면서.’

    ‘다들 그렇게나 졸업한 뒤에 성공하고 싶나?’

     

    NPC들의 강한 열망은 세상의 온갖 게임을 섭렵하며 권태를 느끼던 한 플레이어에게도 잔잔하고도 깊은 감정을 일으켰다.

    부럽다.

    한 번뿐인 인생에 충실한 저들이 부럽다.

    너무 많은 삶을 경험할 수 있기에 어떤 인생에도 진지할 수 없는 플레이어인 자신과의 괴리감이 느껴지는 이들이 어떤 의미로는 부럽기까지 했다.

    때로는 질투가 났다.

    그래서 직접 부수기도 했다.

    곧바로 후회했다.

    전과 다름없는 진지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 앞에서 지루함이나 권태보다 앞서는 감정은 자신이 업신여겨도 좋을 리가 없을 한 사람의 인생이었다.

    그런 인생이 수십, 수백, 수천이나 존재하는 아카데미에서의 삶.

    그 삶에 가까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달라.’

     

    저들처럼 대단한 재능을 지니지 못했다.

    가진 것이라곤 플레이어의 시야, 지식, 공략법 정도.

    처음의 수십 번은 앞서나가는 이들을 따라가기도 급급했다.

    다음의 수십 번은 어느 시점부터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교내위기와 챕터보스의 대처에 급급했다.

    백 번을 넘고 나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세계의 불합리한 구조가.

    플레이어가 아니면 변치 않을 ‘비극’의 트리거들이.

    누군가를 구하면 같은 시간에 또 다른 누군가가 비극에 처한다.

    하나의 이벤트를 저지하면 같은 시간에 다른 이벤트가 악화된다.

    그런 자잘한 교내 이벤트에 치중하면 지역의 위기, 세계의 위기가 성큼 찾아온다.

    지역의 위기, 세계의 위기를 막고자 치중하면 교내에서 동기들이, 동료들이, 친구들이 위기에 처한다.

     

    ‘빨라져야 해. 조금 더, 한 턴이라도 더 빠르게, 하나라도 더 많은 이벤트를 밀어버릴 수 있도록!’

     

    시험의 답안을 외우고, 족보를 암기하며 공부에 투자할 시간을 없애고 이벤트 제거에 특화된 빌드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 결과로 탄생한 첫 번째 공략시리즈가 <민 첩올인만렙회피가좋아 도적>이었다.

    하지만 민첩올인 시리즈에게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단점이 있었다.

     

    “속도 하나만은 인정해 드리죠. 네에, 오직 속도뿐입니다. 당신이 제게 받을 수 있는 인정은!”

    “피해도 상관없다. 결국은 너 또한 사회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일개 인간에 불과할 뿐.”

    “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피해라. 네가 지키고자 하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광경을 홀로 살아남아 지켜보고 싶다면.”

     

    일정규모 이상의 강자가 행사하는 범위공격이 본인을 제외한 모든 동료를, 지역을, 국가를 유린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것.

    아무리 피하고 나아가도 그사이에 모두를 잃을 뿐이라면, 속도는 답이 될 수 없었다.

    홀로 빠르게 히든피스를 모아 독점한들 결국은 삼대거악이라는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상처뿐인 승리 끝에 베드엔딩을 맞이한다.

     

    “그런 패배라면 몇 번이고 겪었다.”

    “지독하리만치 많이도 겪었지.”

    “하지만 이번만은 다르다.”

     

    그런 민첩올인들에게 <체 력올인패턴파악이좋아 전사>들이 목숨과 맞바꾸어 얻어낸 패턴 정보가 일제히 공유되었다.

     

    ‘암흑마나를 이용한 피폭공격.’

    ‘대규모 마나퍼즐 재조립을 이용한 기습공격.’

    ‘이계 지식을 동원한 핵무기 폭격.’

    ‘인위적인 마나재해테러.’

    ‘세계수를 이용한 기능판정 강제 반복.’

    ‘지배영역의 탈취를 이용한 즉각적인 마나간섭능력.’

     

    하나같이 강하다.

    기본적으로 이사장은 대군공격에 능하다.

    히든보스를 넘어서 월드레이드보스로 손꼽힐 정도로 그 위험도가 하늘을 찌른다.

    동료를, 지역을, 국가를 상실하고 회차가 무너질 요소를 수도 없이 갖추었다.

    그러나 겪기 전에 알아차렸다.

    목숨을 걸어도 대신 싸워줄 이들이 이 뒤로 잔뜩 기다리고 있다.

     

    ‘너희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 주마.’

    ‘이 목숨을 걸어서라도!’

     

    가장 먼저 삼면에서 빠르게 거리를 좁히는 민첩올인들의 돌진에 이사장의 지배영역이 빠르게 주변공간을 쥐어뜯었다.

     

    <에테르화>

    <안개화>

    <이단점프>

    <공간도약>

    <신속>

    <초신속>

    <가속>

    <초가속>

     

    본체와 같은 성질의 마나에 휩싸인 형상이 사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가며 실체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동시다발적인 움직임을 선보인다.

    개중 더러는 이사장을 향해 역으로 달려들어 간격을 좁힌다.

    타인에게만 소모를 강요하던 이사장 특유의 범위공격은 그 무시무시한 돌진속도에 자신마저 휘말릴 위험을 앞두고 능력 전개가 봉쇄되었다.

     

    “대륙십대도둑에 필적하는 기동력. 과연, 이것은 성가시군요.”

     

    이사장의 전율스러운 지배영역의 공세가 파장형으로 발산되며 자신에게 접근하는 분신들을 가까운 것부터 차례대로 모조리 터뜨린다.

    흩어지는 형상을 뒤로 하고 다가오는 형상을 파괴하고자 더욱 멀리 뻗어나가던 지배영역이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급히 제동이 걸렸다.

     

    “팔 하나를 대가로 간격을 좁힌다. 충분히 남는 장사 아니냐?”

    “…!”

     

    흩어지던 분신 사이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팔 하나를 내주고 분신처럼 쓰러지던 본체 하나가 이사장에게 달려든다.

    되돌아오는 지배영역의 속도보다도 빠르게 뻗어진 일격이 이사장의 목을 갈랐다.

     

    까앙!

     

    <지배영역 – 차원방벽>

     

    공간의 틈새에 맞물린 단검이 이사장의 목을 앞두고 부러졌다.

    낭패를 금치 못하는 얼굴이 다음 순간, 앞서 전개했던 에테르계의 차원과 함께 동시에 짓뭉개졌다.

    하지만 그 뒤를 잇는 것은 나머지 민첩올인 둘의 연계공격.

    모든 종류의 회피기능을 섭렵한 이들의 침투는 이사장에 힘의 배분이나 여유를 남겨둘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제 수에 당해보고 싶다면 소원대로 저승으로 보내드리죠.”

     

    이사장의 수중에서 두 개의 영역이 동시에 펼쳐졌다.

     

    <지배영역>

    <유희영역>

     

    모든 마나술식을 의지대로 지배하고 왜곡할 수 있는 지배영역.

    모든 감정을 의지대로 지배하고 왜곡할 수 있는 유희영역.

    두 개의 영역이 중첩발현되는 순간, 두 명의 민첩올인은 자신들의 최후를 떠올렸다.

     

    -역시, 이 빌드로는 무리야. 피할 수 있는 공격을 내 목숨을 던져서 막아서야, 회피력을 올린 이유가 없잖아……

    -그래도 가능성은 보았다. 만일 내게 어떤 공격이든 전부 버텨낼 체력이 있다면, 적의 모든 마나가 고갈될 때까지 공격을 받아낼 정신력이 있다면, 오늘의 실패는 내일의 성공이 될 거다!

     

    자신의 의지로 피할 수 있는 공격을 맞으며 최후를 맞이했던 순간들.

    그 때의 기억과 감정을 자극받은 민첩올인들이 스스로 이사장의 재해급 연계기에 몸을 날려 쓰러진다.

     

    “아직도 새 패턴이 있었군.”

    “이래서 전사 녀석들은 답이 없어.”

    “딜찍누 메타가 제일이라니깐.”

     

    세 명의 <마 력올인마법난사가좋아 법사>가 민첩올인들이 목숨을 던져 벌어낸 시간 동안 쌓아올린 대마법을 일제히 사출하기 시작했다.

    하나라도 더 많은 마나가 충돌해서 서로 소실되기를 유도하는 대마법의 충돌.

    그 목적은 분명했다.

    단 한 줌의 마나도 지배할 수 없는 마나공백지대를 이 자리에 형성시킨다.

    아무리 거대한 마나재해가 그 반동으로 뒤따를지라도 이사장만큼은 반드시 없애겠다는 의지가 담긴 대마법의 맹폭격이었다.

     

    더.

    조금 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쉴 새 없이 날리지 않으면 안 돼.

    조금의 방심조차 허락되지 않는 괴물 같은 강적을 상대로는 절대로 멈출 수 없어!

     

    마나회로가 비명을 지르고 육신에 반동으로 힘줄이 솟구치며 혈도가 뒤틀려도 마력올인들은 고통어린 신음 한번 흘리지 않았다.

     

    -큭큭. 아직도 모르겠나? 인간의 힘을 벗어난 신물에는 언제나 신의 함정이 뒤따른다는 것을…

    -마력올인. 우리가 의지했던 신물이야말로 신들이 인간에게 절망을 안겨주기 위한 함정이었을 뿐일진대, 이 고통뿐인 세상에 대체 무엇이 남는 거야?

    -우리의 싸움에 정말로 의미가 있었어?

     

    더 많은 마법을, 더 강력한 화력을.

    마법의, 마법에 의한, 마법만을 이용한 공략법.

    그 끝에 자리한 신물급 마도구와 그 안에 새겨진 종말급 마법의 습득에는 챕터보스를 증발시킬 강력한 힘과 동시에 세계멸망을 앞당기는 함정이 있었다.

    인간의 마법은 언제나 한계가 있었다.

    마법의 길은 드래곤 교장의 아성을 넘어설 수 없는, 넘기 위해 외도의 힘을 빌려도 신에 의한 배드엔딩이 뒤따르는 막다른 길이자 명백한 오답이었다.

     

    “그럼에도, 헛되지 않았다.”

    “우리가 겪었던 모든 실패, 모든 발버둥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대마법이 되지 않았는가.”

     

    지배영역과 유희영역.

    둘 중 어느 하나의 영역조차도 일정범위 너머로 나아갈 수 없는 대마법 맹폭격 앞에서는 천하의 이사장조차 꼼짝할 수 없는 마나공백지대가 형성된다.

    형성된 틈새로 침범하는 각 차원의 이형의 마나가 재해를 유발하고 공간을 찢으며 부차적인 피해를 가하니, 어떠한 신의 기적이나 신물의 도움 없이도 최흉의 월드레이드보스의 패턴 하나가 소실되었다.

    실패의 역사.

    패배의 기록.

    오랜 좌절이 일으킨 성과에 화답하듯 중간계에 융화될 리 없을, 그래서도 안 될 일백차원의 정령마나들이 돌연 이사장에게 흡수되었다.

     

    <선조화 – 진혈의 뱀파이어>

    <선조화 – 순혈의 라이칸스로프>

    <선조화 – 용혈의 드라고니아>

     

    “큭큭. 수인부흥회의 이면에서 수집해왔던 왕들의 피를 개화시킬 정도로 저를 몰아붙이다니, 과연 화신체란 불합리하군요. 당신들의 그 편리한 힘, 너무나도 질투가 납니다. 그러니 제게도 조금만 나누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재단은 오랜 역사 동안 수많은 금기와 신비를 수집하고 중간계를 식민차원으로 만들고자 했던 타 차원의 힘을 이용해왔다.

    이사장의 직속삼장인 집사장조차 그럴진대 결사의 총수였던 그를 굴복시키고 재단의 정점에 올라선 이사장은 얼마나 많은 힘을 지배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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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해급 정신제어기 <>

    ━━━

     

    힘을 전개했던 이사장은 제 손에서 뻗어나가기 무섭게 소실되는 기운에 당황했다.

     

    “연계기는 기능발현을 약탈하면 발현 그 자체가 봉쇄된단 말이지.”

    “세상 모든 잡기능을 연마해서 연계기의 발현 자체를 막아버리는 <약탈영역>의 발현. 전지의 시야를 피해 미지의 기능으로만 연결 짓는 마법이 가능할 리가 없지.”

    “순수한 무투기능에서는 한없이 뒤처지는 너 따위는 우릴 넘어설 수 없다.”

     

    전장에 가세하지 않고 대기하던 <지 력올인판정사기가좋아 현자>들의 회심의 기습에 어렵사리 발현한 신비가 무색하게 계속해서 날아드는 대마법이 이사장의 선조화의 힘을 매 순간 갉아먹는다.

     

    “하하하! 좋습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외계의 화신을 자처할 자격이 있지요!”

     

    ━━━

    <ㅍㅏ괴>+<ㅈㅓ주>+<혼ㅈㅐ>+<격ㄹㅣ>+<소ㅅㅣㄹ>+<관ㅊㅡㄱ>+<전ㅇㅕㅁ>+<증ㅅㅣㄱ>

    ㅈrlㅎrl급 정신오염기 <인ㅈㅣ폭탄>

    ━━━

     

    이사장의 뒤틀린 술식이 정형화된 현대술식의 구조를 모조리 빗겨나가 고대의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이제는 사어나 다름없는 고대의 룬어를 따라 엉망진창의 형태로 탑을 쌓아올렸다.

    언제나 최선의 길, 최고의 선택, 최강의 결론만을 뒤쫓으며 수집했던 플레이어의 분신인 지력올인 시리즈의 판정사기는 이사장의 인지폭탄을 막지 못했다.

     

    푸확!

     

    신을 마주한 존재들이 강제적으로 겪는 <신벌>.

    존재 자체만으로 너무나도 거대한 힘으로 인해 필멸자의 영혼을 찌그러뜨리고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격의 범람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뇌리에 그대로 쏟아진다.

    가뜩이나 마법난사의 한계로 내몰리던 마력올인 시리즈가 즉사하고, 판정을 약탈하고자 안법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던 지력올인 시리즈가 모조리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진다.

     

    “자아, 어떻습니까. 인류의 오랜 신비의 역사를 한 몸 안에 축적한 저는 수많은 차원계가 핍박하고 침공하였던 중간계의 역사 그 자체나 다름없습니다. 머나먼 미래로부터 불러온 화신체들의 시간이 저를,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중간계의 역사를 넘어설 수 있겠습니까?”

     

    그 모든 참상을 세모꼴의 눈으로 새침하게 쳐다보던 마왕노디는 파파의 의기양양한, 그러나 미처 다 감추지 못한 긴장감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 역사의 힘, 빨리 쓰면 좋겠네. 다음 웨이브를 시작하기 전에.”

     

    죽어 쓰러진 모든 화신체의 힘을 거두어 빛을 내뿜기 시작하는 열두 개의 소환진.

    그제야 이사장은 소환진의 너머에서 차례를 앞다투며 서로가 먼저 나오겠다고 거대한 힘을 격돌하는 화신체들의 기척을 감지했다.

    이사장의 경직된 미소 위로 눈동자가 가파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누굴 닮아서 이런 흉악한 빌드를 만든 겁니까? 이 파파는 도무지 모르겠군요.”

    “그러게. 파파 같은 허접한테 배운 건 아닐 텐데.”

     

    마왕노디.

    그녀의 공략은 화신체의 소멸로 시작해서는 안 됐다.

    끝도 없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화신체를 무시하고 마왕노디 본인을 쓰러뜨려야 했다.

     

    패턴의 흉악함.

    전투경험과 빌드의 악랄함.

     

    한계를 모르는 이기적인 고인물의 빌드 앞에서는 이사장조차도 최흉의 타이틀을 반납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무한리필 고인물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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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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