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84

        

       검은 안개가 사람을 집어삼킨다.

         

       귀를 떨리게 만드는 날갯짓 소리와 함께 사람을 집어삼키고, 피부를 물어뜯어 상처를 입힌다. 가려움과 따가움이 엄습하는 고통과 함께 모래파리는 사람의 안에 내장리슈만편모충을 집어넣고, 그렇게 안으로 들어간 내장리슈만편모충은 잠복기간 따위는 없다는 듯 활발하게 움직이며 증식하기 시작한다.

         

       악순환.

         

       생태계의 기본적인 법칙조차 어그러진 악몽 같은 풍경.

         

       그 속에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비명을 지르면서 안개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 노력하고, 안개에 집어삼켜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앞선 ‘환자’ 꼴이 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것뿐.

         

       벌레로 이루어진 파도.

       벌레로 이루어진 안개.

       그것이 휩쓰는 광경이란 이 얼마나 잔혹하고 초현실적인지.

       악몽보다도 더 악몽 같은 두려운 광경이 아니겠는가….

         

       “도저히 모르겠군. 알 수가 없어….”

         

       그 두려운 광경을 보며 길게 수염을 기른 노인이 조용히 읊조린다.

         

       언제 나타난 것인지.

       벌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다급하게 뛰는 사람들을, 겉옷을 벗어 벌레를 후려치려 하다가 어마어마한 수의 벌레에게 집어삼켜지고 물어뜯기는 사람을 바라본다. 비명을 지르느라 벌려진 입 안으로 모래파리가 들어가고 그 안에서 물어뜯고는 기생충을 넣어버리는 광경을 보았고, 자신이 믿는 종교의 힘을 빌려서 위기를 타파해보려는 사람을 바라본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과도 맞닿아 있는 광경.

       사람의 원초적인, 생명의 본질과도 닿아있는 모습이다.

         

       그것을 바라보며 노인은.

       아슈토쉬 싱은 조용히 읊조린다.

         

       “어렵구나 어려워. 불꽃이란, 인간이란, 진리란….”

         

       그의 몸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가 속으로 외운 주언은 부싯돌처럼 불똥을 뿌리고, 그 불똥은 마른 그의 몸을 장작처럼 삼아 불꽃을 서서히 피우기 시작한다. 그의 피부에 나 있는 잔털이 가장 먼저 불타오르고, 푸른색의 불꽃이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리며 그의 몸 위에 붙는다.

       주술로 피부에 한 겹 막을 씌워놓았기에 직접적으로 타들어 가거나 익지는 않았지만, 대신에 대가가 그의 몸을 서서히 좀먹기 시작한다.

         

       끔찍한 고통.

       피부에 끓는 물을 부어서 익혀버리는 듯한 강렬한 고통.

       피부가 익어버리는 고통이 그의 정신을 괴롭히고, 어서 주술을 당장 멈추라는 듯 미친 듯이 경종을 울린다.

         

       하지만 아슈토쉬 싱은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우묵한 눈으로 병원을 바라보며 수염을 쓰다듬을 뿐이다.

         

       “타자에 대한 이해란 무엇인가. 나와 타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불꽃이란, 진리란.”

         

       지옥 일부를 불러온 것 같은 모습을 보고서도 떠오르는 것은 연민이 아닌 상념.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던 하나의 화두가 그의 머리를 지배한다.

         

       “미욱한 나의 이해를 뛰어넘는 광경이로다. 이해하였다 생각하였지만 그렇지 않았으니.”

         

       아.

         

       “진리란, 신과 함께가 되는 것이란 참으로 어렵구나 어려워….”

         

       아슈토쉬 싱은 푸념과도 같은 말을 내뱉고는 불꽃을 더더욱 키웠다.

       그러고는 팔을 한 번 휘두르기를.

         

       화아악!

         

       검은 수프 안개를 태워버린다.

         

         

         

         

        * * *

         

         

         

         

       벌레 일부가 지워졌음이 느껴진다.

       재에서 태어난 벌레가 다시 재로 돌아갔음이 느껴진다.

         

       박진성은 인도 국경선 근처에서 느껴지는 신호를 감지하였다.

         

       어디쯤일 것인가.

       좁은 지역에 뭉쳐있는 것이 느껴졌으니 병원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곳의 벌레가 한순간에 지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몰살.

         

       약품이나 불꽃 같은 것으로 몰살했음이 느껴진다.

         

       단순히 모래파리뿐만이 아니라 기생충까지 몰살당했으니, 아마 불꽃이 가능성이 높겠지.

         

       그렇다면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불꽃의 현인이 국경선 근처에 있었구나.’

         

       불꽃의 현인, 화염술사 아슈토쉬 싱이 국경선 근처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진성이 중국 안으로 들어가려 하던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경고했던 것도 있었으니…. 오히려 허를 찔러서 인도-중국 국경을 통해서 들어가려 할 가능성을 떠올리고 국경선 근처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장작’이라고 일컬은 시크교도 사람들은 다른 국경 쪽으로 보냈을 테고 말이다.

         

       나쁜 판단은 아니다.

       특히 박진성 ‘장작’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한다고 인도에 테러할 가능성까지 떠올리고 그런 것이라면, 정말로 훌륭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거슬리거나, 누군가와 싸워야 할 때 그 본진에 테러를 먼저 하는 것은…박진성이 회귀 전부터 행했던 방법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본다면 가장 강력한 패이자 박진성의 주술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본인이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인도를 지키는 것은 확실히 좋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슈토쉬 싱은 실패했다.

         

       박진성은 이미 중국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으니까.

         

         

         

        * * *

         

         

         

       팔각(八角)의 향기.

       중국 남부에서 주로 사용하는 향신료 특유의 냄새.

       중국이 사랑하는 서예가, 왕희지(王羲之)의 필체로 쓰인 간판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손님을 끌어모으려는 듯 사람을 현혹하는 LED의 불빛이 눈을 어지럽히고, 중국어 특유의 성조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엉덩이가 뚫려있는 바지를 입은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어가고, 명품을 하나씩 들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이곳은 시장.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어지럽게 얽혀있는 야시장이다.

         

       그리고 그 야시장에서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중국인이라고 여길법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외모.

       키도 그리 크지 않고, 몸도 딱히 두드러지는 부분이 없다.

       조금 특이한 것이 있다면 드러난 피부 곳곳에 점이 좀 많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것 역시도 점이 크다거나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점이 좀 많은 평범하게 생긴 사람’ 수준에 그친다.

         

       남자는 곳곳에 풍겨오는 음식의 냄새를 몸에 휘감은 채 암시장을 가로질러서 지나간다.

         

       그러고는 택시를 타고는 능숙한 중국어로 목적지를 말했다.

         

       택시 기사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차를 출발시킨다.

       그렇게 어느 정도 차를 운전했을까.

         

       심심해진 것인지 뒤에 탑승한 평범하게 생긴 남자에게 물었다.

         

       “관광 온 거야?”

         

       “예. 여기 야시장이 유명하다고 해서 구경을 좀 와봤지요.”

         

       “어디서 왔어? 사투리가 조금 있는 것 같긴 한데.”

         

       “아, 사투리가 느껴졌나요?”

         

       “어. 그래도 내가 여기서 손님 받은 게 얼만데 그걸 몰라볼 리가 있나. 그래도 보통화 솜씨가 아주 기가 막혀. 나같이 눈치 빠른 사람 아니면 북경 사람이겠거니 했을걸?”

         

       뒷자리에 탄 남자는 운전자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정확하십니다. 시골에서 살다가 북경으로 올라가서 좀 살았거든요.”

         

       “그렇지! 역시 내 눈치는 정확하거든. 이게 바로 경험에서 얻은 눈치라 이거란 말이지.”

         

       “오. 그렇단 말은…많은 손님을 태우셨다는 말이로군요. 좀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아이고. 물론이지. 내가 말이야. 얼마 전에는 얼마 전에 손님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와중에 담배를 피우면서 딱 기다리고 있었는데, 웬 터번을 쓴 사람이 딱 다가오는 게 아니겠어. 그런데 다른 택시 기사 놈들이 그 사람을 외국인으로 보고 영업을 하려고 했는데, 나는 그때 눈치로 딱 알았지. 아, 저 사람 서쪽에서 온 중국인이구나….”

         

       택시 기사는 남자가 말을 받아주자 신나게 자신의 무용담을 풀기 시작했다.

       외국인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회교(回敎) 문화가 남아있는 서쪽 지역에서 온 중국인이었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중국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관찰해서 베트남에서 온 화교라는 것을 알아챘다는 것 등….

       하나같이 자신의 눈썰미를 자랑하는 내용들이었다.

         

       그렇게 남자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택시 기사의 무용담을 들었다.

         

       그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QR코드를 찍어 택시비를 내고는, 방긋 웃으며 택시 기사를 바라보았다.

         

       “좋은 하루 되시길.”

         

       “어 그래. 손님도 잘 지내고.”

         

       그렇게 택시 기사와 손님은 헤어졌다.

       택시 기사는 차를 돌려 그대로 저 멀리 사라지고, 남자는 택시 기사가 내려준 길가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

         

       그리고는 택시 기사가 떠들었던 말을 하나둘 곱씹고는, 피식 웃었다.

         

       ‘과연. 오래 별 탈 없이 장사할 사람이기는 하겠어….’

         

       택시 기사는 쉼 없이 이야기했다.

       자신이 얼마나 눈치가 있는지, 눈썰미가 대단한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가볍게 들으면 그저 주책맞은 아저씨의 자랑처럼 들리는 이야기고, 실제로 내용도 그렇긴 했다.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다만 택시 기사가 가진 특유의 입담 때문에 지루하게 들리지 않았을 뿐이었지.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참 영리하다 싶다.

         

       정치와 얽힐 수 있는 그 어떠한 내용도 안에 들어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심지어는 남자가 ‘시골에서 북경으로 올라왔다.’라고 말했을 때 으레 입에 담을만한 ‘그래? 시골? 어디 시골에서 왔는데?’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고 능숙하게 자신의 이야기로 옮기지 않았던가.

         

       저건 꽤 영리한 행동이었다.

       위험한 곳에 다가가지 않고, 위험한 주제를 입에 담아 화근이 될만한 일을 원천 차단하고, 위험한 사람에게는 무해하게 보이게 만들어 화를 입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래. 참으로 영리하기는 해….’

         

       남자는.

       박진성은 택시 기사를 떠올리며 하하 웃었다.

         

       『 인터넷 통신 장애 발생. 해커의 디도스 공격인가? 』

       

       『 공안 당국, “테러리스트는 무사히 제압되었고, 피해는 경미하다.” 』

         

       『 …

       …

       범죄자가 테러를 시도하였으나 공안과 특수부대가 나서서 무사히 진압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인명피해는 경상 14명, 중상 3명으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으며….

       …

       …

       해당 지역은 복구 조사를 위하여 출입이 통제되었으며….』

         

       『 …당에서는 신(新) 경제정책으로 경제 성장률이 대폭 뛰어올랐음을 발표하였다. 금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서는 삼두마차의 폭주를 늦추고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중장기 지역 개발 정책을 발표하였다. 내수 확대를 위한 투자와 지역 개발을….』

         

       박진성은 스마트폰에 떠올라 있는 기사들을 보며 웃었다.

         

       ‘이렇게나 이야기할 것이 많은데 말이지.’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