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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5

    <785 – 용사답게(31)>

     

    패배의 기록이 거듭될수록 사람의 정신은 마모된다.

    상처입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소중했던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애써 무덤덤하게 군다.

    고인물에게는 별난 일이 아니다.

    감각차단.

    통각을 제어하는 기술부터 일찍이 ‘효율적인 진행’을 위해 인간이 당연히 지니는 감각기관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배제하고 있으니까.

    감정차단.

    감각차단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도달하는 경지를 플레이어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특전 얻으면 더 강하게 시작해서 우리 애들 살릴 수 있는데 눈 딱 감고 한번 배드엔딩 밟아볼까?

    -하면 되잖아 뭐가 문제임

    -울 애들 죽는 모습 보기가 넘 맘 아파 ㅠㅠ

    -감각차단 왜 안함?

    -그냥 좀… 싸이코패스 같고 그러잖아

     

    감각차단조차도 말이 많은데 감정차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고인물들 사이에서도 종종 나오는 화제였다.

     

    -감정차단 오래하면 진짜 싸이코패스 되는 거 아니야?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면 공감도 못 하고 플레이 자체가 애초에 배드엔딩이 목적이라 대놓고 나쁜 짓 저지르고 다녀야 하잖아

     

    부족한 능력.

    지나친 랜덤성.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변치 않는 확실한 무기인 ‘엔딩특전’이 필요하다.

    그 특전에 눈이 멀어 감각을 속이고, 감정을 속이며 악행을 거듭한다.

    이런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의 구조적 문제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고심 끝에 게임을 접기에 이르렀다.

    자신의 감각과 감정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한 번의 일탈조차도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는 플레이어들이 이 부류에 속했다.

    사실 대부분이 그랬다.

    인간의 악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극한의 환경을 조성하는 사회실험에서도 외부의 개입 없이는 사람들이 의외로 평화로운 선택만을 고르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악하지 않다.

    연구자들의 의도와 달리, 서로를 돕고 챙기는 사회성이 강한 생물이기 때문이다.

     

    1981년 스탠퍼드 대학의 실험용 작은 교도소에서 벌어진 실험이 이를 증명했다.

    교도소는 평범한 대학생들에게 12명의 간수와 12명의 죄수로 역할을 분배했으며, 각 역할에 속한 이들이 어떤 몰입과 변화를 일으키는지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죄수들은 빠르게 소요사태를 일으키고 갈등이 심해졌으며, 간수들은 죄수를 신체적, 정신적으로 억압했다.

    교수는 예정보다 일찍 실험을 중단했다.

    몰입이 지나치게 강해서 학생들이 서로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역할이 바뀌며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

    사회심리학적 주요한 연구 결과로 유명해진 이 실험은 훗날 실험 참가자에 의해 거짓과 연기, 실험자의 개입으로 인해 조작된 결과임이 진술되었다.

    간수들의 가혹행위도, 죄수들의 돌발행동도 모두 실험을 주도한 교수와 연구진의 지시였다.

     

    -나약한 녀석들.

    -고작 감각차단 가지고 왜 난리지?

    -그러게 말이야. 사람 억 단위로 좀 굶겨죽여도 선황보다 더 죽인 것도 아닌데 왜 난린지 모르겠어.

    -…….억?

    -와 시발, 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또라이인줄 알았는데 진짜 광인은 따로 있었네;

    -진짜광기ㄷㄷㄷ

     

    만들어진 연구 결과.

    조작된 실험 절차.

    그런 외부개입이 없는 환경에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고인물의 경지에 올라서지 못했다.

    심지어 같은 고인물들도 오크노디의 플레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두가 같은 고인물이라고, 세계를 구하려는 마음이 남들보다 더 크고, 감수할 수 있는 아픔이 남들보다 더 큰 책임감 있고 멋진 고인물이라는 공통된 인식이 깨진 시초가 <매력올인> 시리즈였다.

     

    -oknodie : 혁명가의 영혼폭탄 장전했다가 써보니까 진짜 좋더라? 필살기는 역시 적의 필살기를 베껴야 제맛이지

    -민트초코 : 히익;;

    -마을주민 : 이 괴물! 당장 우리 커뮤니티에서 나가!!

    -이사벨의흰스타킹이되고싶어 : 선생님 저희까지 도매급으로 괴물 취급당할까 무섭습니다 그런 무서운 공략은 혼자 써주세요…

    -죽음의신 : 진짜 뭐가 문제지? 참신하고 좋은데

     

    대부분의 고인물들이 조작된 실험절차를 견디지 못하고 실험 중지와 감옥 이탈을 요청한 죄수들처럼 강한 혐오감과 두려움을 내비쳤다.

    오크노디는 조금씩 소외감을 느꼈으나, 그의 곁에도 아직 든든한 고인물 동료들은 남아있었다.

     

    -참수의골고다 : 악당들을 꼭 이용하지 말고 그냥 보이는 족족 참수해서 선한 친구들의 호감도를 우주돌파 최대치 찍고 플레이하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oknodie : 오오오

    -사랑의아타락시아 : 친구들은애기야… 애껴줘야해…

    -실천의프랙시스 : 그 아낌의 마음을 실천으로 드러내려면 악업의 굴레를 견뎌내며 엔딩특전을 모두 모아야 하는 건 아닌가? 진정한 선함이란 악의 오명을 무릅쓰고 가장 깊은 어둠을 헤쳐 나간 뒤에야 찬란하게 빛나기 마련이지

    -oknodie : 오오오오오

    -평화의트란퀼로 : 시기와 질투가 없는 진정한 평화란 시기와 질투를 품는 모든 생명체를 죽여 없앰으로서 찾아오지. 한 번쯤은 절멸의 평화를 누려보기를 추천하고 싶군

    -oknodie : 오오오오오오오옹!!

    -사랑의아타락시아 : 안돼애애애애애!!!

     

    컨셉플레이에 단단히 심취했는지 신의 관장영역과 이름을 커뮤니티 닉네임으로 삼은 고인물들.

    오크노디는 만신단이라 부르는 이 고인물 동료들만이 마지막까지 오크노디와 고인물 플레이에 대해 토론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보다 다양한 플레이를 가능하도록 도와주었다.

    그 과정에서 매력올인의 회차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수많은 흥미로운 공략법이 나왔다.

     

    ‘내가 하지 않아도 지식으로는 알고 있는 공략법들.’

     

    상대의 모든 수를 파악하고 그 수를 카운터치는 압도적인 물리력을 갖추어 모든 적을 일격에 분쇄하는 근력올인빌드.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예지로 엿본 미래처럼 행세하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인류의 선지자 행세를 하는 선지자빌드.

    세상의 모든 신벌을 강제적으로 유발해서 자신의 주변에 광역신벌딜을 퍼붓는 신벌빌드까지.

    온갖 기상천외한 전략이 존재했다.

    그 모든 지식을 단독으로 실행할 여력은 없다.

    하지만 지금의 매력올인에게는 최고위 언데드 리치가 된 매력올인 두 기가 함께 한다.

     

    “리치A. 가라. 신벌을 유발해서 오크노디에게 돌격하는 거다!”

    “우우우…”

     

    리치A는 매력올인이 자신의 고유 아공간에서 꺼낸 신성모독도구를 꺼내들었다.

    철테 사이에 두 개의 렌즈가 들어간 그 도구는 안경이라 불리는 물질이었다.

    리치A가 차마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없다고 멈칫하자 리치의 절대지배권을 지닌 매력올인이 강제로 고통을 선사했다.

     

    <감정부여 – 능력치가 70을 넘었는데 70 이하일 때 먹어야만 효과가 있는 마석을 먹었음을 알아차렸을 때의 절망감>

    <감정부여 – 호감도가 99일 때 선물해도 호감도 1을 올려줄 수 있는 절대상승아이템을 실수로 호감도 69인 캐릭터한테 선물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의 절망감>

    <감각부여 – 엔딩특전을 열람하고 같은 분기의 다른 엔딩특전을 불러오려고 로드를 누르려고 했는데 실수로 세이브 덮어씌우기를 했을 때의 절망감>

     

    “우우우우우우!!!!”

     

    리치A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잘못했다고 제말 그만 괴롭히라며 울부짖었다.

    결국 반항을 포기한 리치 A는 자신의 뼈마디로 안경렌즈를 마구 문지르며 시야를 더럽히고는 신들에게 기도를 올렸다.

    매력 하나는 기깔나게 높은 리치A가 기도를 올리니, 이 싹수가 대단한 신자를 포섭하려고 중간계를 내려다보러 온 신들의 의식이 리치A의 시야에 깃들었다.

    그렇게 신들의 앞에 펼쳐졌다.

    지문 자국이 가득한 더러운 안경의 시야가.

    신들은 불같이 격노했다.

     

    [이 고약한 쓰레기가 감히 신을 가지고 놀다니, 천벌을 받아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신의 눈을 가리려 들다니, 네놈의 눈도 그 더러운 시야를 누리도록 해주마!!!]

    [천년의 사랑도 식는 지문 묻은 혐경이라니, 당신 같은 끔찍한 존재는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돼요!!!]

     

    수많은 신계로부터 리치A를 중심으로 발현되는 수많은 마나재해가 공간을 잠식했다.

    그 무시무시한 신벌들을 한 몸에 사로잡은 리치A가 신벌과 함께 돌진하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마왕노디조차도 인상을 찌푸렸다.

     

    “으. 극혐. 무슨 저딴 빌드를 다시 발굴한담?”

     

    가슴을 받치는 자세로 팔짱을 끼고 있던 마왕노디가 손가락을 퉁기며 지면에 떨어진 배낭배낭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소환했다.

    소환된 아이템은 정교한 마나제어술을 통해 즉각적으로 리치A에게 날아들었다.

     

    ━━━

    <보호막> + <견고> + <금강> + <철괴> + <반탄> + <요새화> + <부여>

    7연계 방어연계기 <절대방어부여>

    ━━━

     

    모든 공격에 살인적인 내성의 방어와 반사효과를 지닌 절대방어부여가 마왕노디의 공간전이를 저지하고자 펼쳐졌으나, 그 물질은 절대방어를 가볍게 돌파하며 리치A의 주변에 침투했다.

    공격이 아닌 버프계열의 효과는 방어마법으로 막을 수 없다는 시스템적 특징을 이용한 침투였다.

     

    <다중버프 일제부여>

     

    위기감을 느낀 이사장이 뒤에서 자신이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버프를 걸었다.

    특정 버프의 ‘중첩효과 적용불가’ 시스템과 ‘최대중첩횟수제한’을 이용해 버프가 걸리는 현상 자체를 막아 마왕노디의 수를 저지하겠다는 응수였다.

    그러나 매력올인과 이사장의 합동저지가 무색하게도 공간전이 아이템은 기어이 제 사명을 완수했다.

     

    찰칵!

     

    [캐쉬아이템의 교환이 완료되었습니다.]

    [캐쉬아이템은 장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초의 1회만 교환이 가능합니다.]

    [해당 아이템이 리치A 매력올인에게 귀속되었습니다.]

    [아이템 고유효과에 의해 자동으로 장착됩니다.]

    [<캐쉬아이템 : 특수코디 – 안경자물쇠>의 장착이 완료되었습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혐오를 유발하는 안경에 안경알을 지문으로 마구 더럽힌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자물쇠까지 채운다.

    그 끔찍한 감각을 몸소 체험한 신들은 역린을 자극받은 용처럼 격노하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신벌들을 쏟아내었다.

     

    투콰과과과과과광!!!

     

    공간이 갈려나간다.

    차원이 분쇄되며 생긴 틈으로 마력이 새어나오기도 전에 공간이 짓눌리고 무너지며 역으로 중간계의 마나가 틈새로 빨려 들어갔다.

    차원의 저편.

    어디에도 닿지 못한 공간.

    허수공간의 저편으로 리치A의 영혼이 추락해버린 것이다.

    마왕노디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리치A는 뼈마디도 남기지 못하고 소멸했다.

     

    “큭, 신벌메타가 무적이 아니었다니…!”

     

    매력올인은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흥. 고작 매력올인 시리즈 따위의 진행도와 나를 비교하니 이렇게 되지. 네가 떠올릴 수 있는 메타의 카운터나 약점은 모두 알고 있어.”

     

    마왕노디의 철벽과도 같은 반격에 매력올인은 기존의 지식만으로는 그녀를 넘어설 수 없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동시에 자신이 어떤 메타를 새롭게 떠올려도 결국 오크노디에게는 이미 지나간 과거일 가능성을 염두하였다.

    그 자신의 힘으로는 이 국면을 돌파할 수 없다.

     

    “이사장.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끔찍한 메타나 빌드를 말해라. 그것이 뭐든 내가 실현시켜주지.”

     

    그러니 새로운 메타를 이 자리에서 창조한다.

    자신도 본체도 알지 못하는 히든 월드레이드보스NPC 제일 와이히엠하이를 통해서.

     

    “하하. 신벌을 이용한 발칙한 공격법을 보니 한 가지 추천드리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매력올인의 판단은 옳았다.

    혁명가에게 영혼폭탄이라는 빌드를 소개시킨 자.

    온갖 살인적인 광격공격패턴을 지닌 자.

    메타정립과 빌드개발에는 도를 튼 이사장.

    마왕노디에 대적할 새로운 빌드를 만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는 실패한 플레이어인 자신이 아니라 제일 와이히엠하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매력올인과 마왕노디의 비인간적인 공격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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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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