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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9

    <789 – 용사답게(35)>

     

    재단의 기함이 해역으로 추락했다.

    용사파티는 성녀 유피의 보호막에 의지해서 낙하의 충격을 간신히 견뎌냈다.

     

    “살았…어?”

    “끝이야. 정말로 끝났다고.”

     

    맑게 갠 하늘.

    고요한 바다.

    수면에 반쯤 잠긴 거대한 체력올인의 얼굴과 그 위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는 오크노디.

    그 모든 광경이 어딘지 멀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방금 그거, 뭐였을까? 오크노디의 그거.”

    “필살기 같은 거 아니었을까?”

    “사도급의 강자를 수도 없이 배출하는 필살기가 세상에 어딨어?”

    “사다코 교수님이면 할 수도 있지.”

     

    스콜라는 유피의 체념에 가까운 주장에 휩쓸리는 기분을 느꼈다.

    멀다.

    감히 따라잡을 의지가 생기거나 질투 같은 감정을 품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경지가 아니었다.

    불가해.

    이해조차 허락하지 않는 격차가 오크노디와 나머지 사이에 생겼다.

     

    “게다가… 꼬맹이가 아니었다고.”

    “폭주기였겠지. 작은 몸에 다 억누를 수 없는 출력을 끌어올리는.”

    “전부 납득하는 거냐?”

    “납득하지 않으면, 뭘 할 수 있는데?”

    “…”

    “포기해. 급이 달라.”

     

    용사파티조차도 굴욕을 느꼈으나, 유일하게 오크노디의 지척에 다가선 이가 한 명 있었다.

    지금, 오크노디의 뒤에 선 용사 이슈타르.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유피는 기도했다.

    그녀가 느낀 절망감이 자신들의 것보다 크지 않기를.

     

     

    * * *

     

     

    이슈타르는 오크노디의 뒤에 가만히 선 채로 말을 건넸다.

     

    “몰랐어. 네게 그런 힘이 있었는지.”

    “저도 몰랐어요! 설마 제가 그런 나이스바디가 될 수도 있었다니!”

    “왜 온 거야?”

    “그야, 제가 없으면 모두들 곤란했잖아요?”

    “전부 기억해?”

    “뭐를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가까이서 말을 건네지만 이렇게나 거리감이 느껴질 수가 없다.

    이슈타르는 오크노디를 어떤 얼굴로 대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나 대단한 이사장을 끝내 토벌해버린 오크노디의 강함을 목격했는데.

    그런 오크노디만도 못한 자신이 용사를 자칭하고 곁에 머무를 자격이 있는지.

    사실 진짜 용사는 용사의 힘 없이도 용사보다 더한 일을 해낸 오크노디가 아닌지.

     

    “이슈타르도 참 피곤하다니깐. 사람이 그렇게 생각이 많으면 어떡해요?”

    “내가… 피곤해?”

    “또 그런다. 쉽게 상처받고 쉽게 심마에 걸리고. 툭하면 그러니까 여신님도 개복치 용사 키우기 싫어서 아스타로트에 눈길 주고 고블린도 키우고 그러죠.”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부족하다는 뜻이구나.

    순욱노디마냥 멘탈이 터지려는 이슈타르의 피폐한 꼬라지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오크노디가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폴짝 뛰어 일어서더니 발끝으로 빙글 돌아 이슈타르를 돌아봤다.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요?”

    “가능할 리가 없잖아. 너처럼 대단한 아이가 있는데.”

    “제가 없으면 자신감이 생겨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

     

    또 네가 앞에서 사라져버리면, 그때야말로 나는…!

    이슈타르의 목끝까지 차오른 말과 위태롭게 흔들리는 감정에 오크노디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참 손 많이 간다니깐.”

     

    툭 하고 이슈타르의 몸에 기대는 오크노디.

    등을 기댄 채로 고개만 들어 올려다보는 눈가에는 신기하게도 작은 아이에게 어울리지 않을 모성애와 비슷한 감정이 엿보였다.

    부모 따위는 진즉 잊어버린 이슈타르조차 엄마가 있다면 이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봐 줄까, 싶은 따스함이.

     

    “저, 한동안은 절전모드에요.”

    “절전모드?”

    “왕 지침! 암것두 못해!”

    “…!”

     

    이슈타르가 급히 오크노디의 양 어깨를 손으로 짚고 이마에 이마를 맞대었다.

    마나감응으로 들여다보고 세심히 컨트롤하여 진단한 내부상태는 그야말로 엉망진창.

    폭급하게 날뛴 암흑마나가 지나간 길마다 마나회로가 아주 개박살이 났다.

    영혼이 흐르는 길이라고도 불리는 영맥은 한술 더 떠서 신들의 폭력적인 압력을 분산하여 내보낸 것만으로도 영혼의 샘이 말라붙어 금이 쩍 갈라졌다.

     

    “지켜줄게. 이번에야말로.”

    “흐음~ 정말 할 수 있겠어요?”

    “깨달음을 얻었어.”

     

    이번에는 오크노디가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이슈타르의 목덜미를 홱 잡아당겨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는 머리가 꽁 부딪칠 정도로 거세게 이마를 대었다.

    마나를 동원하는 것만으로도 비명이 나올 정도로 아픈 몸으로 신음 한번 없이 마나스캔을 벌이는 오크노디.

    진단을 마친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헤에. 영역 4단계 각성하셨구나!”

     

    기를 분출해 영역을 전개하고, 더 많은 기로 영역의 범위를 확장하며, 영역에 기능을 실어 특화영역을 형성하고, 세계에 기능을 각인하여 각인영역을 펼친다.

    자신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넓혀나가는 영역 4단계의 경지.

    이슈타르의 영역4단계 도달 소식은 제법 기뻤다.

    졸업 할 때나 도달할 줄 알았는데.

    족히 2년은 앞당긴 성취가 아닌가.

     

    “오크노디는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야?”

    “어쩌다니, 뭐를요?”

    “재단도 끝났잖아. 그러니까… 더는 그런 세계에 얽매여서 살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딱히 다를 거 있나요? 살던 대로 사는 거죠.”

    “크읏… 재단이 없어져도 찾아내지 못한 영혼의 파편이 이렇게 영향을 주는 건가…”

    “?”

     

    평소처럼 영문모를 소리를 하는 이슈타르.

    그런 그녀가 오크노디는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재단이 없어도 암흑상회가 있잖아요.”

    “?”

    “재단이 하던 일도 누군가는 해야 하고, 지젤이 대신 해주면 딱이네. 음음!”

     

    그런 신뢰가 있기에 나오는 솔직한 생각들.

    세계의 이면에서 타 차원의 침공을 저지, 위험대상을 수집, 격리, 이용하는 시스템을 암흑상회가 물려받아 중간계를 지킨다.

    오크노디의 그런 발상은 유감스럽게도 오늘도 남들에게는 불길한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게 했다.

     

    ‘지젤이… 이사장의 자리를 대신해? 그게 무슨 말이야, 오크노디. 암흑상회는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 이전에 암흑상회는 뭘 하는 조직이냐고.’

     

    편리하게 각종 도움을 베풀기에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암흑상회의 호의.

    연합군의 결성과 보급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조직.

    뒷세계의 2인자이자 이사장의 뒤를 바짝 따라붙어 세를 불리던 지젤의 조직.

    당연히 같은 편이라고.

    경계할 이유가 없다고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암흑상회가 처음으로 이슈타르의 눈에 들어왔다.

    친구의 친구가 만든 조직이 아닌, 한없이 수상한 뒷세계의 조직으로서.

     

    “정말 대사건이었군요. 이걸로 일단락 되어서 다행입니다. 전후처리는 저희 암흑상회가 맡을 테니 꼬마숙녀와 용사님은 저희 상회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 그만 휴식을 취하심이 어떻습니까.”

    “와, 유령 호텔! 내성작! 사탕은 이제 약빨 떨어지는데 더 강한 건 없어요?”

    “하하. 듣는 사람이 오해합니다. 수련용 캔디라고 제대로 불러주시지 않겠습니까.”

     

    한 번 의심의 물꼬가 트자 이슈타르의 눈에는 지젤의 상냥한 실눈도, 친절한 태도도, 자연스럽게 재단의 기함을 회수하겠다는 주장도 모두 수상하게만 보였다.

     

    “지젤. 암흑상회의 목적은 뭐야?”

    “목적 말입니까?”

     

    이슈타르의 진지한 표정에 지젤은 난감한 듯이 볼을 긁적였다.

     

    “목적이라고 해도 그리 거창한 건 아닙니다. 상인들의 목표야 돈벌이가 최우선 아니겠습니까. 그저 남들보다 많은 상품을 취급하고,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이 뭉친 조직일 뿐입니다.”

    “…그래?”

    “두 분 모두 고된 하루였을 겁니다. 전후처리는 잊고 편히 쉬십시오.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중에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아카데미 복귀 일정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지젤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

    이슈타르의 기감은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좋지 않다.

    오크노디는 크게 지쳤다.

    힘을 다루기도 어렵다.

    이슈타르 본인도 마찬가지다.

    만일 지금 암흑상회와 척을 지고 연전을 치른다면, 두 사람 모두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신세 지는 처지에 이런 부탁을 하기는 미안하지만 가능하다면 용사파티의 모두와 함께 쉬고 싶은데.”

    “물론 용사가 가는 곳에는 용사파티가 함께 해야지요. 객실은 충분히 준비해 두겠습니다.”

     

    당장은 물러선다.

    그리고 지켜볼 것이다.

    지젤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확신이 선다면, 다시 검을 쥐어야겠지.

    그때는 오늘처럼 무력감을 느끼지 않겠다.

     

    ‘강해져야 해. 오늘의 오크노디가 보였던 정도로는.’

     

    이슈타르는 강해졌다.

    그리고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러면 오크노디에게도 새로운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황제파파와 재단파파.

    두 파파를 모두 잃어버린 그녀에게는 새로운 보호자가 필요했다.

    적어도 그 보호자의 자리를 한없이 수상한 실눈 따위에게 내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앗. 근데 티토는 어쩌지?”

    “티토소가? 걔한테도 무슨 문제가 있어?”

    “재단파파가 죽고 저도 당분간 차원문 소환이 불가능해서 고블린월드에 간섭할 길이 사라졌어요!”

    “고블린월드? 그러고 보니 아까도 고블린 용사가 어쩌고 수상한 소리를 했었네. 뒤에서 또 무슨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었던 거야?”

    “별건 아니고 티토소가랑 같이 열심히 만든 응애용사가 하나 있거든요.”

     

    이슈타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응애라니.

    오크노디랑 티토소가 사이에서?

    여자랑 여자인데.

    게다가 고블린이라고.

    심지어 그게 또 용사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니 오크노디야…?

     

    “네가 아는 정보를 나에게도 똑바로 말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의사소통 기능이 상승한 이슈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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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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