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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89

        

       그것은 털이 곤두설 만치 섬찟하고 이질적인 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단단하고 빼곡하게 털이 박혀있는 브러쉬로 바닥을 상냥하게 쓸어내리는 것 같은 소리. 혹은 저 멀리에서 바스락거리는 천을 질질 끌고 이동하는 듯한 그러한 소리.

       사람의 발소리가 섞이지 않은, 명백하게 이질적인 그러한 소리와 함께 그 사람은 나타났다.

         

       그리 크지 않은 신장.

       그리 큰 인상이 남지 않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얼굴.

       누가 보더라도 중국인이구나 싶을 인상과 분위기까지.

         

       그 사람은 심히 평범해 보였다.

       이러한 장소에 발을 디뎠다는 것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스스스슥.

         

       코를 찌르는 오물의 냄새.

       미끈거리는 슬러지가 바닥을 가득 메우고, 바닥에 쥐똥이 널브러져 있다.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통로의 벽면에 껴 있는 것은 이끼인가, 찌꺼기인가?

       혹은 그것조차 아니라면 곰팡이나 버섯과도 같은 것인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의 식도나 대장과도 같은 느낌의 통로.

       오물과 악취가 가득 차 있는 그곳.

       그곳을 가만히 걷고 있자면 나 자신이 토사물이라도 된 것처럼, 혹은 배설물이라도 된 것 같은 그러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든다면 이어서 이곳에서 정신을 잃으면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기 마련이겠지.

         

       이곳은 하수도.

       도시의 대장(大腸).

       먹고 남은 찌꺼기와 배설물이 지나가는 통로.

         

       평범해 보이는 남자는 그곳을 걷는다.

       숨을 몇 번 들이쉬면 몸에 악영향이 가고, 계속 들이키면 산소 부족으로 기절해버리기 충분한 거리를 그 어떠한 보호장비도 산소통도 없이 그렇게 걸어갔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는 것처럼, 인형이나 로봇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목적지에 다다른다.

         

       하수도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약점.

       중국이 넓은 국토 곳곳에 만들어놓은 수많은 시설 중 하나에.

         

       스스스슥.

         

       벌레의 다리가 움직이는 소리.

         

       분명 남자는 두 다리로 걷고 있건만 나는 소리는 사람의 발소리가 아닌 벌레의 발소리.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남자는 사람 흉내를 내는 벌레인가? 벌레 흉내를 내는 사람인가?

         

       잠겨있는 문을 따지도 않고 스며들 듯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 밀폐된 것이 분명함에도 어떻게 들어가는지 참으로 기괴하기까지 하니. 누군가가 저 남자를 본다면 허깨비나 악령이 아닐까 의심을 할 것이다….

         

       그렇게 남자는 하수도와 연결된 ‘어떠한 시설’에 들어갔다.

         

       다만 남자는 불청객인지라 그를 맞이해주는 사람은 없어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환영해줄 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서. 그래서 불조차 켜주는 이 없고 환대해주는 소리 하나도 없이 적막한 어둠 속을 헤치며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더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금속으로 만든 드럼통.

       폐기물이나 유독성 물질을 담아놓을 때 사용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듯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곳곳에 독이나 위험 표시를 알리는 문양이 마크되어 있고, 무언가가 가득 들어차 있는지 묵직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수도 쪽 통로와 가까운 곳에 있었던 이유는 저것을 하수도에 그대로 버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남자는 그것을 지나쳐 계속해서 나아간다.

         

       벌레가 움직이는 듯한 기묘한 소리를 내면서.

       아무것도 질질 끄는 것이 없음에도 바닥에 질질 끌리는 듯한 자그마한 소음을 내면서.

         

       “…비밀스럽고 중요한 쁘로제(Projet)….”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나아갔을 때 남자의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는 늙은 남자의 목소리 같기도, 중년 남성의 목소리 같기도, 혹은 약간 목이 잠겨있는 젊은 남성의 소리 같기도 한 것이었다. 동굴을 한 번 지나쳐 오기라도 한 듯 조금은 울리는 듯한 목소리에 무언가 강세가 이상한 듯한 소리여서, 그래서 그것을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든 목소리.

         

       그 목소리는 저 멀리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하는 미지가 가득한 공간이지…. 우리는 하늘을 경외하는 한편 바다와 지하를 두려워하였지…. 그것은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생기는 두려움…. 발 디딜 수 없는 미지, 모험할 수 없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서 애써 눈을 돌리기 위한…그러한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지….”

         

       뜬구름을 잡는 듯한 소리.

       저 멀리에 있는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성은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지하라는 공간은…금고가 되었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야…. 두려움과 미지가 비밀을 숨겨놓는 공간으로 변하고…. 그 금고에 대한 탐욕이 사람을 불러서…. 그 미지를 탐사하기 위한 원동력이 되다니 말이야….

       아…값진 것을 들고 땅에 묻힌 죽은 이들…. 안식처를 금과 보석으로 꾸미고자 하였던 권력자들…. 그들의 부장품을 노리는 도굴꾼들과, 있을지 모르는 저승에서 그들의 안녕을 축복하는 수많은 사람…. 그림자가 지고, 그림자로 채워지고, 축축하고 어둠이 가득 서려 있을. 누군가는 타오르는 유황불이 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영혼조차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위가 가득 차 있고, 누군가는 영혼들이 사람을 고문하는 고문장이 있으리라 말하는….

       아아…. 비밀을 벗겨지기 위한 것…. 그렇기에 비밀은 역설적으로 발견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있는 것이야….”

         

       가래가 끓어오르기라도 하는 것일까?

       목을 긁는 듯한 거슬리는 말투가 들린다.

         

       “그리하여 두 사람 이상이 알고 있다면 그것은…더 이상 비밀이라도 부를 수가 없고…. 비밀이라는 은밀한 개념이 깨지기 시작한 이상 둘이 셋이 되고, 셋이 더 많아지는 것 역시 이상한 것이 없는 이유라고 할 수 있으니….”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리고.

       그리고 마침내 두 남자가 마주친다.

         

       “숨겨진 비밀을 밝혀내는 배덕감, 그림자를 지우고 그 원본을 확인하는 쾌감…. 비밀과 금기는 맞닿아 있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그것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임을 알면서도, 위험할 줄 알면서도 발을 디디게 되는 것이지….”

         

       유리로 만든 원통이 가득 차 있는 공간.

       그곳에서 얼굴 가죽을 주렁주렁 매단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팔을 벌려 불청객을 환영한다.

       문까지 나서서 맞이하지 못했음을 미안해하며, 이곳까지 도달한 초대를 받지 않은 손님을 환영한다.

         

       “환영하네…. 허상이여….”

         

         

         

        * * *

         

         

         

       적막한 공간.

       한때는 여러 연구원이 있었을 시설.

       그곳에 단 두 사람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얼굴 가죽을 주렁주렁 매달고, 찌그러진 얼굴 가죽을 가면처럼 쓰고 있는 남자.

       벌레들을 이끌고, 평범한 사람인 척 위장하고 있지만 제 몸과는 다른 형상을 한 남자.

         

       마주하고 있음에도 그것은 허상과도 다름이 없고, 형체를 이루고 서로를 볼 수 있지만 거기에 진실한 모습은 없다. 그들은 신기루나 허깨비처럼 의미가 없는 형체였으며, 그저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시각으로는 도무지 그 존재의 뿌리를 알 방도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고 한들 진실한 것이 없다면 대관절 그것이 환상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만질 수 있고 물질적으로 존재한다고 한들 그것이 거짓이 가득하다면 홀로그램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지금 이곳에 있는 두 사람은 그러하였다.

       동굴 속에 비친 그림자처럼, 그러하였다.

         

       “거울상과 그림자는 비슷한 면이 많지…. 그것은 빛에 의해서 생성되고, 관측할 수 있네…. 또한 그것은 원본을 비추지만, 원본과는 달라서….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허상임을 알면서도 본질과 연관이 되어있음을 알 수가 있어서….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옆에 두고서도 차이를 느끼면서, 진짜와 가짜의 명확한 구분을 하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얼굴 가죽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가면을 쓰고 있기에 그 아래의 얼굴은 보이지는 않지만, 그 남자는 분명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는 친근감의 표시인가?

       혹은 남자가 말하는 것처럼, 거울과 그림자가 비슷한 것처럼, 그렇기에 비슷한 이들끼리 필히 느낄 수밖에 없는 동질감에서 나오는 미소인가?

         

       “비슷한 이가…. 같은 비밀에 도달한 것은 우연인가? 운명인가? 숙명인가? 아…. 진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 그것을 가르는 경계는 무엇인가…? 비밀과 그림자, 어둠, 빛이 부재한 곳…. 그곳에서 빛으로 빚어지는….”

         

       그렇게 두서없이 말을 내뱉는 남자를 보며, 벌레를 이끄는 남자.

       박진성이 입을 열어 말한다.

         

       “비슷한 것과 비슷한 것. ‘비슷함’을 만드는 그 차이를 벌리고, 부각하기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과연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켜 색색으로 분리하고, 그 색을 자르고 토막 나고 차이를 만든다면 빛이라는 본질은 같되 그 색과 파장이 다르게 된다면, 과연 그것은 진실로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박진성은 얼굴 가죽을 주렁주렁 매단 남자를.

       아니, 영술사라고 불리는 주술사를 바라본다.

         

       아프리카 대륙의 공포.

       그림자와 관련된 주술을 다루고, 그림자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

         

       “피에르 마틴(Pierre Martin).”

         

       흐.

       흐흐흐….

         

       박진성의 입에서 나온 이름.

       그리고 그 뒤에 흐느끼는 것 같은 웃음소리.

         

       영술사 피에르 마틴은 얼굴 가죽을 쓴 채 웃는다.

         

       “허상아, 허상아…. 그 이름은 혹 꿈을 걷는 이가 알려주었는가…? 비밀의 개념을 주무르는 이가 귀띔이라도 했나…?”

         

       피에르 마틴은 도무지 사람 같지 않은 눈빛으로 박진성을 바라본다.

         

       “기척, 존재의 흔적, 삶의 냄새가. 허상처럼 사라져버릴 그것이 느껴진다. 아…. 꿈과 비밀, 허상과 현실…. 감춰져 있지만 존재하는 것, 감추려 하지 않지만 감추어진 허상….”

         

       썩은 생선 눈깔에 피가 도는 것 같은 느낌.

       번들거리는 눈동자에는 광기가 헤엄치고 있다.

         

       “환영하네, 무슈(Monsieur)….”

         

       피에르 마틴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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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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