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9

    코 앞까지 다가온 돌멩이를 보면서, ‘아, 이제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눈앞에서 황금색 빛이 번쩍였다. 

    사라졌던 황금 사신이 눈앞에서 튀어나와서 돌멩이를 쳐낸 것이다.

    “사신아!”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지만, 황금 사신은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회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의 열풍과 흩날리는 모래와 돌멩이. 

    돌멩이에 몸이 뚫려서 죽은 연구원들과, 탁자 같은 것 뒤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

    햇살에 타버린 모래 냄새와 후끈하게 느껴지는 열기.

    흩날리는 돌멩이를 피하려고 몸을 최대한 낮추며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간간이 낮게 날아오는 돌멩이는 당당한 자세로 앞에 선 황금 사신이 쳐내고 있었다.

    황금 사신이가 강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만약 황금 사신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지 상상하기만 해도 끔찍했다.

    그극. 그그극.

    허공에서 유리가 갈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분명 좋은 일은 아니겠지.

    황금 사신은 후다닥 뛰어와서 내 뺨에 달라붙었다.

    쨍! 

    뭔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찢어졌다.

    찢어진 공간 너머에서는 붉은 달이 마치 우리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크게 보였다.

    그와 함께 엄청난 양의 모래와 열풍이 밀어닥쳤다.

    나는 모래의 급류에 휩쓸려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그러기를 몇분.

    “하아.”

    급류가 멈추자, 모래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숨을 들이쉬었다.

    여기저기 찢기고 상처 입었지만, 아직 살아 있었다.

    사신이는 우울한 표정으로 내 상처를 보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괜찮아. 이 정도로는 안 죽어.”

    그렇게 말하면서 사신이의 머리를 토닥였다.

    황금 사신이를 품 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까치산 연구소는 온데간데없고 전혀 새로운 광경이 날 반겨줬다.

    광활한 사막이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모래알 하나, 울퉁불퉁한 바위, 흔들리는 모래 언덕이 모두 타는 듯한 붉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에는 달치고 너무나 밝은 붉은색 달이 떠 있었다.

    분명 밤처럼 어두운데, 달빛에 닿은 피부는 태양 빛에 닿은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공기 중에 가득한 열기는 마치 무거운 담요처럼 온몸에 달라붙었다.

    “하, 엄청나게 덥네.” 

    절로 땀이 주륵주륵 흐르는 환경.

    조명 없이 어두운 찜질방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거대한 전열기가 조명 대신 달린 원룸 같다고 해야 할까.

    지구에서 겪기 힘든 이례적인 환경이었다.

    사신이는 내 어깨 위에 서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손부채를 해주고 있었는데, 너무 손이 작아서 별로 효과는 없었다.

    “사신아. 이제,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답답한 마음에 사신이를 쓰다듬으며 한숨을 뱉었다.

    오브젝트로 인한 사건이 분명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

    ***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여기저기 찢긴 검은 요원과 달리 금발의 소녀는 멀쩡했다.

    “괜찮아요.”

    금발 소녀는 머리와 옷에 붙은 모래를 툭툭 털면서 말했다.

    소녀 곁을 떠나지 않는 10명의 비서와도 떨어진 상황.

    긴장할 법도 했는데, 소녀는 태연해 보였다.

    “오히려 아저씨가 엄청나게 다친 것 같은데요?”

    “활동에 지장이 갈만한 깊은 상처는 없습니다.”

    검은 요원도 모래를 털고 복장을 점검한 뒤,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빨리 움직여서 상황부터 파악해야 할 것 같군요. 지금 당장은 안전해 보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신속함이 생명입니다.”

    검은 요원은 손가락으로 가장 높은 모래 언덕을 가리키고, 그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말소리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세를 낮춰서 천천히 이동했다.

    “아저씨. 지금은 밤인 것 같은데도, 엄청 덥네요.” 

    소녀는 손으로 땀을 훔치며 말했다.

    그 잠깐의 이동만으로도 땀에 푹 젖어버렸다.

    “저도 그게 우려스럽습니다. 밤이 이 정도면 낮에는 얼마나 더울지 상상이 안 가는군요. 어쩌면 일찌감치 땅을 파고 숨을 준비를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높은 모래 언덕에 도착해서 바라보자, 드넓은 사막이 한눈에 들어왔다.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쫓는 오브젝트들. 

    그중에 가장 위협적으로 보이는 것은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정육면체의 큐브들이 이리저리 얽히며 회전하는 오브젝트였다.

    붉은 바위로 된 큐브들의 크기는 거의 성인 남성만 했고, 그런 바위가 10여 개가 뭉쳐서 돌아다니는 오브젝트는 그 물리력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게다가 그 오브젝트는 극도로 공격적이기까지 했다.

    사막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찾고, 그대로 빠른 속도로 쫓아가 갈아버리고 있었다.

    “힉.”

    사람이 짓이겨진 장면을 본 금발의 소녀는 숨을 삼켰다.

    원래라면 검은 요원이 눈을 가려줬겠지만 비상사태였다.

    도망가는 중에 끔찍한 일이 얼마나 발생할지 모르니, 미리 보고 느끼는 편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후아. 후아. 숨을 억지로 몰아쉬던 소녀는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빨리 움직이죠. 우리도 저 꼴이 될 수는 없잖아요?”

    소녀의 당찬 말.

    하지만 무리하고 있는지 여전히 얼굴이 창백했다. 

    “우선 은신처를 찾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더위에서는 오래 움직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구조대를 기다리는 편이 현명하겠죠.”

    검은 요원과 금발의 소녀는 최대한 조심히 움직이며, 안전한 곳을 찾아 나섰다.

    ***

    경솔하게 돌아다닌 것이 잘못이었을까?

    붉은 모래로 만들어진 병사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아마 황금 사신이가 없었다면 진작 죽었겠지.

    등 뒤까지 쫓아온 모래 병사에게 황금 사신이가 돌진했다.

    머리를 잃어버린 병사는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평범한 붉은 모래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흩어진 모래 너머, 또다시 모래로 된 병사가 나타났다.

    모래 병사는 아무리 죽여도 계속,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입안에 씹히는 모래를 무시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안 그래도 체력을 순식간에 갉아먹는 더위 속인데, 계속 뛰려니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아 위험해. 

    이러다가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어느새 어깨 위에 다시 올라온 황금 사신이는 아직 멀쩡해 보였다.

    ‘아 이제 한계다.’라고 생각이 들 때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추격은 갑자기 끝이 났다.

    “어?”

    숨을 몰아쉬면서 뒤를 돌아보자, 나를 집요하게 쫓아오던 모래 병사들이 추적을 멈추고 돌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와, 살았다! 그치, 사신아?”

    바닥에 주저앉은 채, 사신이를 쓰다듬어 주며 돌아보았다.

    하지만 황금 사신이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고 있었다.

    우우웅.

    낮게 울리는 진동음.

    그 소리가 들리자, 황금 사신이가 앞으로 뛰쳐나갔고 그와 동시에 모래가 폭발하듯이 흩어졌다.

    그 모래의 격류에 힘없이 튕겨 나갔다. 

    튕겨 나가 대굴대굴 구르다가 멈춰서 고개를 들고 폭심지를 보니, 뭔가가 둥실둥실 떠올라 있었다.

    붉은 바위의 정육면체가 어지럽게 뭉쳤다가 흩어지고, 사방으로 흐르는 오브젝트였다.

    그 오브젝트 중앙에는 누가 봐도 중요해 보이는 붉은 유리구슬이 하나 있었다.

    황금 사신은 그 사람 머리통만 한 붉은 구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사이에도 붉은 바위로 된 큐브들이 나를 둘러싸고 시시각각 나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지만 내가 보기엔 엄청난 속도로.

    황금 사신이 막아주기는 너무 큰 바위들.

    이제야말로 죽겠구나 싶었을 때, 유리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붉은 바위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낙하를 시작했다.

    쿵. 쿵. 쿵.

    수없이 떨어져 내리는 붉은 바위 정육면체.

    모래 먼지가 가시고 보인 것은 반으로 쪼개진 붉은 구체였다.

    아, 저게 약점이 맞았구나.

    그리고 구체 옆에 널브러져 있는 황금 사신.

    “사신아!”

    나는 깜짝 놀라서 황금 사신이에게 달려갔다.

    황금 사신은 눈을 감고 쓰러져 있었는데, 팔 한쪽이 사라진 상태였다. 

    어… 어째서?

    거칠게 찢긴 것 같은 어깨에서는 황금색 불꽃이 핏물처럼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어떡해, 어떡해.”

    손으로 필사적으로 상처를 막으려고 했지만, 불꽃은 물질이 아닌 것처럼 내 손가락을 그대로 뚫고 떨어져 지면으로 흘러 들어갔다.

    ***

    황금 사신이 정신을 차리고 처음 본 것은 박서아의 눈물이었다. 

    울고 있는 박서아를 보고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황금 사신에게는 비는 손이 없었다.

    황금 사신의 남은 손은 상처를 틀어막는 데 쓰고 있었다.

    황금 사신의 장작은 너무 작아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상처에서 새어 나오는 불꽃을 막아야만 했다.

    “사신아. 괜찮아?”

    황금 사신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하지만 걱정이 담겨 있는 말.

    그리고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손길.

    황금 사신은 그런 애착 인간을 향해, 고통을 참고 애써 웃어주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참고 웃는 표정에 박서아는 더 슬픈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붉은 바위로 된 오브젝트가 하나 더 나타났다.

    오브젝트의 등장으로 걱정스러운 표정의 서아.

    황금 사신은 애착 인간의 걱정이 가득한 두 눈을 마주 보며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황금 사신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서 오브젝트를 향해서 뛰어갔다.

    걱정하지 마!

    아직 한쪽 팔이 남아있어!

    ***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황금 사신이는 해맑게 웃으면서 뛰어나갔지만, 적들의 숫자는 많았다.

    그리고 팔을 잃어버린 황금 사신이는 명백하게 수척해져 있었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훅 불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무릎이 꺾이고 모래가 우리를 통째로 삼킬 것만 같은 절망의 순간, 흙먼지 너머에서 갑자기 실루엣 하나가 떠올랐다.

    1m 남짓한 신장. 

    긴 머리카락.

    등장만으로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만 같았다. 

    희망, 안도감이 뒤섞인 이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

    웃으며 달려 나갔던 황금 사신도 어느새 내 품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라졌던 팔 한쪽도 어느새 생겨났고, 생기가 넘쳤다.

    그 자그마한 그림자의 발밑에선 황금 사신들이 뿅뿅하고 튀어나왔다. 

    잔뜩 긴장했던 황금 사신이의 표정도 부드럽게 풀어졌다.

    우리 연구소의 최고 위험등급 오브젝트.

    회색 사신이 나타났다.

    다음화 보기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