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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하르키아는 심호흡을 하더니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 곳에 무슨 구멍이라도 있는 것처럼 손이 빨려 들어갔다.

       

       그가 허공에서 꺼낸 것은 보랏빛의 보석이 끝에 달린 지팡이였다.

       

       아무리 보아도 장식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만. 저걸 어찌 쓰려 하는 거지?

       

       의문은 빠르게 풀렸다. 하르키아가 한 번 지팡이를 흔들자마자 다섯 개의 마법진이 생겨난 것이다.

       

       난장판이나 다름없던 벽이 움직이며 형상을 바꾼다. 방 안을 어지럽히던 잔해들이 저들끼리 뭉쳐 모양을 구성한다.

       

       내가 직접 엉망으로 만들었던 방이 이름 모를 여신의 석상을 중심으로 한 사원의 모습을 이룰 때까진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이건 좀 보는 맛이 있구나. 어디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 같지 않으냐.

       

       하르키아가 재차 지팡이를 휘두르려 하기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내 돌격을 눈으로 포착했으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마법을 펼쳤다.

       

       나의 권을 막아낼 수단을 준비했나보지?

       

       멍청하단 말밖에 돌려줄 수 없구나. 그토록 당하고도 나를 가로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그렇담 그대가 준비한 것 째로 박살을 냄으로써 그 허술한 생각을 바로 잡아 주마.

       

       내질러진 주먹은 멈춤을 모르는 들소와도 같았으니. 가속을 얻은 권은 가로 막은 것을 모두 박살내며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하르키아는 그 짧은 사이에 방어막을 하나 더 구성함으로써 충격을 최소화했으나 모든 걸 흘려내진 못했다.

       

       “어떻게 여신의 보호를 뚫은 것이냐!”

       “방금 그대를 지킨 게 신의 손길이었단 말이더냐?”

       

       허어.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의 신이란 작자도 별 것 없는 존재로구나.

       

       하르키아는 쉴 새 없이 마법을 쏘아냈다.

       

       불이나 물 같은 원소부터 시작해, 내 몸에 힘을 빠지게 만드는 무언가를 사용하기도 했고, 내 정신을 뒤흔들려 하기도 했다.

       

       그 과정은 굉장히 깔끔해서 위력은 그렇다 쳐도 속도 하나 만큼은 도마뱀보다 낫다 싶을 지경이었다.

       

       대마법사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 하다만 안타깝게도 본인에게 위협을 주기엔 한참 모자라구나.

       

       나는 하르키아에게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계속해서 따라 붙으며 그가 펼치는 모든 마법을 정면에서 박살냈다.

       

       바란다면 언제라도 끝을 볼 수 있었지만 오롯이 하르키아에게 절망을 새겨주기 위해 손속을 조절했다.

       

       이는 하나의 촌극이었다. 하르키아는 억지로 무대 위에 세워진 불쌍한 배우이고, 난 그 배우를 이끌고 극을 진행하는 각본가일지니.

       

       아직 극은 서장을 지나는 중이었기에 급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또 다시 주먹을 허용한 하르키아의 몸이 저 멀리로 날아가 벽에 처박힌다.

       

       충격이 어느 정도 쌓인 건지 그가 기침을 내뱉을 때마다 입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간신히 재정비를 하는 그에게 느긋이 다가가자 하르키아가 웃음을 흘렸다.

       

       무어냐. 미쳐버리기라도 한 것이야? 어찌하야 자신의 수세에서 미소를 짓는 게냐.

       

       벌써부터 고장이 나선 곤란하다. 아직 내 그대에게 제대로 된 위협조차 주지 않았거늘.

       

       다행히 하르키아는 정신이 나간 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지팡이에 박힌 보석을 쥐더니 그걸 자신의 손으로 깨부쉈다.

       

       그러자 하르키아의 몸 안에 머무르던 마력이 급격히 증가했다.

       

       “설마 여태 모아왔던 마력을 해방하게 될 줄은 몰랐군.”

       

       실은 난 여유로웠다라는 어필을 하는 것은 좋다만 눈가에 멍이 들고, 피를 토하는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해봐야 전혀 멋있지 않다.

       

       하려면 전투를 시작할 때 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무언가 달라지는 게 있더냐?”

       “물론이지. 자아. 네놈을 나의 세상으로 초대하마.”

       

       하르키아의 손 안에서 시작된 검은 연기는 일순 만에 방 안을 빛 하나 없는 검은 색으로 물들였다.

       

       무슨 수작을 부리나 했더니 겨우 이런 것인가.

       

       얼굴을 비틀어 연기 속에서 튀어 나온 검을 피한다.

       

       무구의 수는 하나가 아니었다. 연기 속에서 무수한 병사가 자라나 나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허나 거기에 정밀함은 없었다. 있는 거라곤 무의미한 숫자놀음 뿐이었다.

       

       <화령 씨. 연기 속에서 뭐가 보여요?>

       “안 보인다.”

       <근데 어떻게 피하는 거에요?!>

       “오감 중 하나가 사라졌을 뿐이지 않느냐.”

       

       무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철이 움직이며 바람을 가르는 것이 촉감을 통해 전해진다. 저 멀리서 하르키아가 운용하는 마력이 느껴진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눈이 없어도 그 곳에 있는 게 누구이며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이 쏘아지는 지 알 수 있다.

       

       자신만만하기에 무언가 대단한 것을 준비했다 생각했거늘 겨우 이 정도인가. 실망스럽구나.

       

       대기를 짓밟아 풍압으로 연기를 걷어낸다.

       

       그 여파에 휘말린 수십의 해골 병사가 바닥에 쓰러지고 남은 것은 저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하르키아 뿐이었다.

       

       “이것뿐이더냐?”

       

       이게 그대가 생각한 비장의 수였다면 슬슬 촌극의 서장을 끝내야겠구나.

       

       하르키아의 앞에 다가가 권을 내지른 순간 하르키아가 똑같이 권을 내질렀다.

       

       서로의 권이 부딪히며 주변으로 충격이 퍼진다.

       

       “호오. 무를 펼칠 줄 알고 있었나?”

       “네 놈이 쓰는 마법은 특이하지만 결국 마법일 뿐! 천 년을 넘게 산 대마법사인 내가 그걸 따라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느냐!”

       

       내가 이치를 따라 보낸 마력을 보고서 그걸 흉내 내었다는 소리더냐.

       

       재밌는 방식이긴 하다만 몇 가지 착각하는 부분이 있구나.

       

       첫 번째로 내가 사용하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무공이니라. 마력을 이용했다하여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음으로 그대는 내 권을 흉내내는 데 성공했다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단 것이다.

       

       나의 주먹과 맞닿아 있던 하르키아의 팔이 터져나간다.

       

       <엑?! 뭐에요? 뭐에요?!>

       “황새를 따라가려다 다리가 찢어진 것이다.”

       

       본인이 쌓은 무의 경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만일 이를 한 순간 보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 이치라는 것을 만들어 낸 존재일 터.

       

       무의 티끌에 관해서도 알지 못하는 그대가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설프게 무를 따라하려 한 대가는 무거웠다. 본래는 순식간에 재생되어야 할 흡혈귀의 팔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그 증거다.

       

       하르키아의 몸속에서 마력이 미친 듯 날뛰고 있었다. 중심을 잃은 막대한 마력은 자신의 몸을 갉아먹는 독충이나 다름없으니.

       

       건드릴 필요도 없다. 가만 내버려 두면 하르키아는 자신의 마력에 의해 자멸하게 될 예정이었다.

       

       설마 장난감이 제 손으로 자폭 스위치를 눌러버릴 줄이야.

       

       하르키아도 자신이 죽음을 예상한 듯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런 표정을 연기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도록.

       

       내 마법에 관해 잘 알지 못해 확언하지는 못하겠다만 그대는 마법보단 연기에 재능을 지닌 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봤다면 정말 이 허무한 끝을 믿어버릴 것 같지 않으냐.

       

       <이렇게 허망한 보스전은 처음이네요.>

       “엔리. 그래서 이 자의 본체는 어디에 숨어 있느냐.”

       <…네? 무슨 소린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거 아느냐. 그대는 거짓을 말할 때 잠시 말을 멈추는 버릇이 있느니라.”

       <그랬어요?!>

       “방금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방금 전의 동요로 그대가 거짓을 말했음이 들통나버렸구나.

       

       따로 말을 하지 않고 웃어 보이자 엔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남의 몸을 탈취할 수 있는 자가 위험 앞에 몸을 내밀리 없잖느냐.”

       

       내가 혈교주 그 놈한테 몇 번이나 놀아났었는데 또 같은 수에 당할 리가 있나.

       

       하르키아 저 놈이 혈교주와 닮았단 걸 안 순간부터 예견한 일이니라.

       

       <원래는 한 번 돌아갔다가 다시 벨라랑 만나서 와야 하는 건데.>

       “돌아가기 귀찮으니 말해다오.”

       <으으. 이 건물 지하 5층이에요.>

       

       그럼 여태 올라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가야 한다는 소리인가.

       

       귀찮다. 설령 엔리가 안내를 해준다 치더라도 그 길을 되짚어 가야 하는 건 본인이지 않은가.

       

       쓸데없는 수고를 들일 바에 조금 단순하고도 무식한 방법을 사용해볼까.

       

       발로 땅을 내리 찍는다. 그러자 이전처럼 바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바닥에서 주저앉아 고통에 신음하던 하르키아가 갑작스런 진동에 고개를 들었다.

       

       “네 놈. 도대체 뭘 하는 것이냐.”

       

       그리고는 의문을 표했다. 내가 뭘 하는 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단 것처럼.

       

       “기다리고 있거라. 만나러 갈 터이니.”

       “무슨 말을.”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바닥이 부서지고 낙하가 시작된다.

       

       나는 가속을 줄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낙하의 속도를 이용해 다음 바닥을 부수고, 또 다음 바닥을 파괴하고.

       

       그런 식으로 아래로 향하다 보니 저 멀리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는 막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저기로구나. 그 곳에 숨어 있는 것이냐.

       

       멍청한 녀석 같으니. 혈교주였다면 다른 곳에 은신처를 준비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 은신처 또한 자신의 자취를 감추기 위한 미끼에 불과했을 터.

       

       그에 비하면 하르키아 그대는 정말 정직하기 그지없구나.

       

       지하로 향하는 마지막 바닥을 부수고 난 후 하르키아의 본체가 있는 방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주름으로 가득한 노인 하나가 있었다.

       

       이것이 그대의 본질인가?

       “자아. 이제 이제 연극의 중장에 돌입해 보자꾸나.”

       

       도망은 허하지 않겠다. 무대의 주연 배우가 된 이상 그대는 이 극에서 내려갈 수 없는 몸이니라.

       

       그대가 살아남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이 극을 그대의 희극으로 만드는 것.

       

       그렇지 못한다면 그대에게 남은 것은 비극적인 죽음뿐일 터이니.

       

       살기 위해 발악 하거라.

       

       *

       

       엔리는 바닥을 부숴버리는 아라를 보며 훈수를 두는 걸 포기했다.

       

       하르키아의 본체가 있는 방까지 안내를 해 줄 생각이었는데 아라는 조언 따위 필요 없다는 듯 자기 스스로 길을 창조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어떻게 안 건지는 몰라도 바닥을 부수는 와중에도 정확히 하르키아의 본체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 ??? : 길을 모르면 길을 만들면 된다.

       – 나 화령이 다음에 할 행동 예상을 못하겠어.

       – 상식에서 너무 많이 벗어난 사람임.

       

       아라 씨는 왜 VR게임에만 들어오면 사람이 아예 달라지는 걸까.

       

       현실에서는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사람인데 VR에 들어오기만 하면 막무가내로 모든 걸 해결해 버리는 사람이 되어 버리니.

       

       건물을 반파시키며 지하로 내려가던 아라는 어느새 성의 지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르키아의 본체를 마주하고 있었다.

       

       – 님들아. 하르키아 본체 이기려면 퀘스트 몇 개 깨고 와야 하지 않음?

       – ㅇㅇ. 기믹 해제 안 하고 오면 못 이기지.

       

       그랬다. 하르키아의 본체를 상대하기 위해선 그 전에 벨라를 만나서 하르키아를 상대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특정 장소에 가 마법을 해제하고, 특별한 무구를 얻어 오고, 하르키아에게 대적하기 위한 동료를 모으고.

       

       몇 시간 동안 뺑뺑이를 쳐야 겨우 도전할 기회를 얻는 게 하르키아의 본체였다.

       

       그러니 상식대로라면 지금 아라는 하르키아를 쓰러트릴 수 없는 게 정상이었다.

       

       그렇지만.

       

       아라씨라면 그냥 쓰러트려버리지 않을까?

       

       엔리는 어째서인지 아라가 지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은 제 투정에 응원을 보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단 말을 전합니다.

    예전에 작가는 개복치라는 글을 읽었을 때 재밌는 이야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제 성이 개고 이름이 복치가 되어 버려서.

    얼굴이 화끈화끈하네요.

    개복치도 성체가 되면 튼튼해져서 장수한다고 하는데 저도 성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슈타이어님 100코인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작가의 투정에 응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사랑해주시는 독자님들이 있음을 아는 작가 되겠습니다.

    닉네이이임님 10코인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작가에게 응원의 코인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체중을 불려 거대 개복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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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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