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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미행.

         사전적 의미로는 행동을 감시하거나 수사에 필요한 증거를 잡기 위해 대상자 몰래 그 뒤를 밟는 행위를 뜻한다.

         

         그렇기에 범죄수사학에서 ‘목표에게 들키지 않게 미행’하는 기초적인 미행 방식을 가르친다.

         

         가령 단순히 도보로 미행을 할 경우, 대상과 동일한 속도로 보행하라던지, 절대 시선을 마주치지 말고 살짝 밑을 바라볼 것이라던지, 자신의 형체를 감출 수 있는 지형지물이 있다면 최대한 활용하라던지, 모퉁이를 돌 때는 항상 주의할 것 등등….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인간형 몸체를 가진 깡통이 해당 수칙을 활용해 의심되는 무리들을 추격하는 건 괜찮은 방법처럼 보였다.

         

         …그래, 아나스타샤가 일부러 신경 써서 맞춰준 복합 저항성 장갑이 유달리 눈에 띄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으슥한 골목길. 작업을 마친 건물을 빠져나오기 전, 먼저 주변을 살피던 남자가 침음을 토해냈다.

         

         대로를 경비하던 병력들이 아무리 기다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적대세력을 찾고자 간혹 이런 곳까지 검문을 하니, 주의하라는 통신이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만큼 당연한 행동이었으나….

         

         “음…….”

         

         “뭐야, 왜 그래?”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분위기가 물씬 풍겼음에도. 그는 어쩐지 마음을 놓기가 힘들었다.

         

         그래봐야 눈에 띄는,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지저분한 지면을 정리하느라 바쁜 원통형 청소 로봇과… 그늘에서 벽에 덕지덕지 붙은 불법 포스터를 잡아뜯는 로봇밖에 없었거늘.

         

         “……아니, 그냥 요즘엔 저런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형 로봇) 타입도 청소 로봇으로 쓰는구나 싶어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거슬리는 감각에 그는 별일 아니라며 다른 이유를 찾아 얼버무렸지만. 그건 비밀 작전을 수행하느라 긴장한 몸에서 보낸 거짓 신호가 아니었다.

         

         “별 걸 다 신경쓰는군. 용도가 다르겠지 뭐, 설치 끝났으면 얼른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고. 본부에서 온 아가씨가 꼭 행진이 광장에 도착하기 전까진 마무리해 달라고 했어”

         

         “으음… 그러지.”

         

         남자가 느낀 감각은 기시감(Déjà vu).

         

         머뭇거리면서도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는지 이내 떠나가는 두 남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대로에서부터 한참 그들을 미행해온 케어봇이 돌돌 말은 종이뭉치를 진짜 청소로봇에게 툭 던져주고는 남자들이 ‘설치를 마쳤다’고한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 ……. –

         

         음성 모듈에 할당할 메모리도 아껴, 스캐너와 중앙 연산 장치를 최대로 가동했다.

         

         타일에 남은 옅은 신발 자국, 흐트러진 먼지 뭉치, 그리고 말한 뉘앙스로 보아 프로그램 같은 게 아닌 실체가 있는 장비를 여기 어디에 숨겼을 것이라 판단한 깡통은 그들의 흔적을 더듬어 나갔다.

         

         굳게 닫힌 사무실이나 방 안으로 무단 침입을 한 자국은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 거주자나 직원이 오고 갈지 모르는 복도에 대놓고 수상한 물건을 놔두었으리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깡통은 아나스타샤에게서 공유 받았던 임무 개요를 되짚어봤다.

         그들은 분명 억울한 테러 누명에 대한 보복으로 퍼레이드에 참견을 걸겠다고 했었다.

         

         지하 조직들은 기본적으로 찬탈자다.

         정상적인 방식으로는 절대 허물 수 없는 기업의 벽을 뛰어넘어 상위 지배계층에 안착하려는 야심가들.

         

         하지만 파이브 아이즈는 그 중에서도 이상 국가 재건을 주된 기치로 내걸은 집단일진대, 과연 정말 기업의 예상처럼 큰 관련도 없는 민간 건물 폭파나 직접적인 공격을 보복 수단으로 삼았을까?

         

         – 여기입니까…. –

         

         파이브 아이즈 요원들이 들락날락한 자취가 남은 문 앞에 깡통이 섰다.

         

         내부에서 따로 탐지되는 진동이나 인기척은 없었지만 방심은 금물, 케어봇에 달린 열 감지 관련 장비라고 해봐야 물이나 음료 온도를 확인하기 위한 비접촉 온도계밖에 없었으니 확신은 일렀다.

         

         덜컹…!

         

         거칠게 방문을 밀어냄과 동시에 바닥을 굴러서 진입한다.

         혹시나 피격당할 수 있는 면적을 최소화하면서도 선공을 놓치기 않기 위한 그 영리한 선택은… 아쉽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전투도 각오한 깡통의 앞에 나타난 건, 테러에 쓰일 설비라고 하기엔 다소 얌전한 물건들.

         

         신호 수신기의 역할을 대신할 걸로 보이는 단말기가 덩그러니 상자위에 놓여있었고, 열린 창문 근처에는… 눈동자가 그려진 탐조등과 대형 스피커.

         어수선한 행사장 창고가 연상되는 광경에 그는 스캐너를 깜빡였다.

         

         – 상당히. 온화한 방식의 저항 운동을 선호하시는 모양이군요. –

         

         딱히 원한관계는 없었으나, 오늘의 그는 주인의 일을 돕기로 한 만큼 취해야 할 행동은 명확했고 주저함도 없었다.  

         

         픽! 하는 기운 빠지는 마찰음과 함께 조명과 음향 장치에 연결된 전원선을 시원하게 뽑아버린 깡통은 또 다른 의심자들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고….

         

         – 아? 장비들. 제대로 연결한 거 맞아요? 방금 4팀이 켰다는 곳이 신호 없음으로 바뀌었는데? –

         

         – 현장에 연락해보겠다. 혹시 뒤가 잡혔냐고. 그런데 이 난리를 피운 원인인 그 관문 테러리스트와는 연락이 닿았나? –

         

         – ……내가 이기고나서 접촉해야 좀 관심을 가지지 않겠어요?! 바쁘니까 끊어요!! –

         

         – …해커들의 자존심 싸움은 도무지 알 수가 없군. –

         

         본부에서 파견 나온 아가씨와의 짧은 통화를 마친 지부장은 곧바로 현장 요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기업의 끄나풀이라면 잘라내고 그게 아니라면…… 현장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꼬리가 길어지면 잡히는 것에 기계라고 예외는 없었으니.

         서서히 땅거미가 지고, 크리스마스의 어둠이 도시에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야. 파이브 아이즈 측은 기업이라 믿고 쫓던 꼬리를 잡아 끌어 마침내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때로는 길가에 있는 청소 로봇인 척. 가끔은 그저 지나가는 무관계한 드로이드인 척.

         잠재적 적들을 기만하며 그들이 중얼거리는 얘기를 엿듣고, 설치한 장비를 무력화하던 깡통은 물러날 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 너무 열중했을지도 모르겠군요. –

         

         행사와 퍼레이드가 한창 진행중인 대로변 인근에서 술래잡기를 했다고 해도, 해커 용병들이 집결해 있을 상황실까지의 거리는 조금 멀다.

         

         반기업 조직 활동을 방해한다는 하찮은 소일거리에 열중하다가, 주인을 마중 나가는 중대사를 소홀히 해서야 완전히 본말전도.

         상대편도 딱히 본격적인 전투를 바라는 모양새는 아니었으니, 이쯤해두고 돌아가면서 아샤에게 알아낸 사실을 보고하기 위해 수집된 정보를 정리하던 찰나.

         

         끼긱….

         

         – ……. –

         

         깡통이 뒤돌아 떠나가려 하자, 오히려 그가 뒤쫓던 의심자들이 반전해서 이쪽으로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노골적인 발소리와 아울러 언제 모여들었는지도 모를 사람들이 얕은 포위망을 형성한 채로 좁혀오고 있었다.

         

         수중에 적당한 총기도 없는 상태로 적진 한복판에 갇히는 건 절대 좋은 그림이 아니었다.

         판단은 신속했고, 결정을 내린 이상 머뭇거릴 요소 따위는 없었다.

         

         쾅!!

         

         “씹!! 잡아!”

         “보나마나 징수 부대일 거라고 입 턴 새끼는 누구야?! 저건 완전 싸제 로봇이잖아!!”

         

         지면을 박차는 깡통이 일으킨 굉음에.

         뒷골목을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관련 있는 모두가 달려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들도 상대가 기업 소속이라 보기 애매한 걸 보고 괜한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화기를 자제했다는 것 정도?

         

         “흡!!”

         

         – 제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말아주시겠습니까? –

         

         돌연 코너에서 튀어나온 현장 요원이, 활공하는 케어봇의 골반 언저리를 향해 다짜고짜 망치를 휘둘렀다.

         허나 우선 기동성부터 제압하고 찬찬히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고식적인 의도가 담긴 일격은, 전혀 기계적이지 않은 깡통의 대응에 이해 수포로 돌아갔다.

         

         “뭣?!”

         “저게 무슨 개 같은…?”

         

         공중에 떠있던 기계 몸체가 한 번 더 위로 치솟는다.

         도약해서 머리너머로 넘어갔다고 여긴 철덩어리가 무슨 날개라도 단 것처럼 점점 수직으로 올라갔다.

         

         튀어나온 간판을 딛고 모자란 추진력을 보충한다.

         늘어진 전선을 붙잡고 반동을 이용해 다음 디딤대까지 몸을 날린다.

         

         주변에 독이 바짝 오른 의심자들이 깔린 걸 눈치챈 순간부터, 깡통은 이 자리를 순진하게 달려서 빠져나가겠다는 계획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렇게까지 허술한 이들이었다면 진즉 기업에게 일망타진 당했을 것이다.

         

         차라리 이번에 명확한 첩보를 바탕으로 그 활동을 엿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깡통은 생각했다.

         다음에 또 아나스타샤가 이들과 엮일 일이 생긴다면 유의미한 실전 데이터를 자신이 제공할 수 있을테니….

         

         까드드드득—!!!

         

         – ……? –

         

         비교적 낮은 건물의 옥상 난간을 붙들었던 팔이 기울어진다.

         아니, 기울어지는 걸 넘어. 중력을 거스른 채로 솟구치던 몸이 다시금 그 사슬에 얽매여 골목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그 원인은… 잘 빠져나왔다고 여긴 시점에 날아온 한 자루의 손도끼.

         기업의 사냥개들이 도로 인근에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는 중이기에 무작정 총을 쏘지 못할 거라는 예측은 맞았으나, 이렇게 정확한 투척 솜씨를 가진 실력자의 등장은 상정 외의 변수였다.

         

         한데 대체 어디를 맞췄길래 자신이 이리도 깔끔하게 낙하 운동 중인 걸까?

         구태여 자가진단을 시행할 필요도 없었다. 추락하는 도중에 깡통은, 난간에 걸쳤던 손가락 중 두 개가 중간쯤부터 깔끔하게 도려내진 걸 확인했으니까.

         

         끼기기긱!

         쿠구구궁…!!

         

         더 이상의 추가적인 손실을 막고자, 외벽을 긁어 가속도를 줄인 그는 무사히 지면에 안착할 수 있었다.

         

         “…좋아. 이제 차분히 얘기 좀 나눠 보실까?”

         

         “어? 야!! 니 미친 주인은 대체 무슨 생각이야?! 사람이 기껏 신경 써서 찾아왔는데 아주 쌍으로…!!”

         

         – ……. –

         

         도끼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장이 손을 툭툭 털며 중얼거리는 말.

         직전까지도 단말기에 대고 바락바락 악을 쓰던 소녀의 외침.

         거의 완성된 포위망.

         

         그 어느 것도 깡통의 사고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인간이라면 골수에 해당되는 깊은 부분까지 짙은 불쾌감에 침식당한 상태이기에.

         그저 멍하니 잘려 나간 손가락 단면을 바라보며 사고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자신이 현재 사용하는 케어봇 의체가 아쉽다고 여긴 건 맞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애하는 주인에게 새 생명을 하사 받은 한 인공지능, 오직 깡통이라는 이름을 쓰는 그만 가질 수 있는 배부른 투정. 감히 다른 떨거지들이 흠집을 내기는커녕 폄훼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행여나 어디가 파손될까 봐. 집에 있으라는 아나스타샤의 명령까지 어겼는데… 이런 감추지도, 변명하지도 못할 상처를?

         

         – …교전 등급 조정. 잠재적 위협에서 고위험 적으로 상향 책정하겠습니다. –

         

         말은 거창하게 했어도 자신이 품게 된 원한만으로 저들을 죽이긴 어렵다는 걸 깡통은 알았다.

         

         막대한 전력차를 뒤집을 수 있는지는 둘째 치고, 로봇의 신체말단이 손상된 건 잘 쳐줘야 재물 손괴. 반면 기계가 사람을 죽이면 그 책임은 물론 주인에게 돌아간다.

         

         자신의 섣부른 판단으로 이런 단체와 척을 지어도 괜찮을지 깡통이 고민하던 와중.

         귓가를 쩌렁쩌렁 울리는 그녀의 통신에 그 또한 대응 방침을 결정할 수 있었다.

         

         

         – 깡통아! 이 바보야!! 집에 얌전히 있으라니까 그런 데서 뭐해?! 너 설마 파이브 아이즈랑 마주쳤어? 또 박살 난 건 아니지?! –

         

         

         “고위험 적이라… 그것 참 영광이지만. 너는 무장도 없나? 소유주가 꽤 매정하군.”

         

         – ……운 좋은 줄 아시길. 그 매정한 분을 봐서 이번만 양보해드리는 겁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하. 걱정하시니까, 무리는 안 해야겠다.
    ??? : 이미… 다쳤다고…????

    한국산라쿤 님의 100코인 후원 너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아샤의 꼬장(…)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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