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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끼이익.

         

       녹슨 경첩 소리가 유난히 귀를 긁는다.

       허나 녹슨 경첩보다 신경 쓰이는 건 코를 찌르는 곰팡이와 먼지, 오물 등이 섞이며 나는 악취다.

       남보다 몇배는 더 악취에 민감한 기사는 본의 아니게 절로 미간이 일그러졌다.

         

       움찔!

         

       허나 찌푸려진 미간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걸까, 소년은 저가 화난 줄 알며 몸을 움찔거렸다.

         

       “그, 죄송해요.”

       “응? 갑자기 왜 사과하냐? 나 화 안 났다.”

       “그, 근데 표정이…”

       “악취가 심하잖아. 넌 잘도 이런 환경에서 표정 하나 안 바뀌네.”

       “저, 저야 자주 오는 공간이다 보니…. 아마 적응했나 봐요.”

       “그러냐.”

       “네에….”

         

       화가 나지 않았다는 말에 그제야 안심하는 소심이었으나, 녀석은 여전히 눈치를 보았고 이한은 괜히 미안해졌다.

       동시에 답지 않은 측은지심이 생긴다.

         

       ‘저것도 버릇 들면 안 좋은데….’

         

       주변 환경이 어땠기에 죄송하단 말이 말버릇 수준이고, 눈치 보는 게 패시브일까.

         

       기사는 쓴웃음이 나왔다.

         

       ‘나랑 똑같네.’

         

       마치 전생 시절 할아버지를 잃고, 이곳저곳 치이고 산 어린 날의 그가 떠올라 공감마저 간다.

       그래서 더욱 마음 쓰이고, 오지랖을 부리게 되나 보다.

         

       “굳이 이런 건강 나빠질 것 같은 곳에다 작업실을 차리는 것도 참….”

       “그, 그게, ……죄송해요.”

       “사과 좀 그만해라. 내가 나쁜 놈이 된 것 같잖아.”

       “…….”

       “…그래, 미안하다. 내가 나쁜 놈이지, 썩을.”

       “…하하.”

         

       장난스레 투덜거리니 그제야 긴장이 풀린 걸까, 소심이는 자그마하게 웃으며 조금은 눈치를 덜 보았다.

         

       그러더니 곧.

         

       “아! 여, 여기에요, 교관님.”

       “…오.”

         

       녀석이 멈추고 가리킨 곳에는 두터운 벽면만이 보일 따름이었다.

       제3자가 같이 있었다면 ‘자길 농락하려 이 냄새 나는 하수도까지 끌고 왔나?’ 의심하며 짜증이 팍 생길 테지만, 그는 아니었다.

       소심이가 알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감각은 두터운 벽면 건너에 빈 공간이 있음을 알려주었으니까.

         

       “힘껏 치면 되나?”

       “그, 보통은 들어가는 방법을 궁리하지, 벽을 깨버릴 생각은 안 하지 않을까요?”

       “굳이 지름길을 놔두고?”

       “…으음, 평범한 사람은 맨손으로 1미터 두께 벽을 깰 수는 없어요.”

         

       소년은 볼을 긁적이며 반론했고, 벽면을 익숙한 듯 두들겼다.

         

       툭, 투둑, 툭툭.

         

       일정한 리듬감.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님을 알 수 있었고, 보통 사람은 아마 저게 어떠한 패턴인지도 모를 터.

         

       ‘아래로 4번, 위로 약하게 2번 친 뒤 강하게 한 번. 이후 중간에서 쓸어내리듯 다섯 번인가?’

         

       다만 보통 사람의 얘기일 뿐, 남들은 눈치도 못 챌 만큼 미세한 차이를 용케 모두 잡아내며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으려니.

         

       끼기기긱….

         

       녹슨 경첩 소리완 비교도 되지 않는 소음이 발생하며 벽면이 천천히 아래로 꺼져갔다.

       그리고 드러나는 건-.

         

       “어, 어서오세요, 제 [공방]에.”

         

       데릭은 한 번쯤 말해보고 싶은 대사였다는 듯 입을 열면서도 어딘지 낯간지러워보였다.

         

       …그래도.

         

       ‘확실히 자랑할 만하네.’

         

       경탄이 나올 만한 웅장한 공간임은 맞았다.

         

         

       이토록 깊은 하수도에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비밀 공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지하 하수도.

         

       위대한 군신의 5대 업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 시설.

         

       처음엔 모든 귀족이 반대를 외치며 예산타령을 했지만, 군신이 밀어붙인 끝에 하수도를 완성한 이후 왕국은 군신을 칭송하며 울부짖었다는 말마저 있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원래는 길마다 오물이 넘치고, 썩은 악취를 풍기던 흙탕물 등이 있던 거리가 일상적이었는데, 하수도를 완공한 이후부터 깨끗한 식수를 저렴하게 구하게 됐으며, 공공화장실 같은 게 생겨나 더는 길가에 오물 등을 싸질러 놓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며 거리의 청결 상태가 좋아지며 배탈이나 열병도 줄어들었다고 하는 바.

         

       가히 위대한 업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하수도가 생긴 이래로 배탈로 죽는 이들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래요, 원래는 배탈로 죽는 사람이 백 명 중 30명이었는데, 3명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하니 말이에요.”

       “갑자기 역사 강의냐?”

       “나, 나름 역사학부 생도니까요.”

       “흐음, 그런 역사학부 생도께서 선왕의 업적에다 대놓고 공방을 차려놓는 패기를 보였군.”

       “이, 이 공간 자체는 원래부터 있었어요. …그래도 공방 차린 건 비밀로 지켜주셔야 해요? 저 걸리면 그대로 단두대로 가야 해요.”

       “걱정 마라. 나도 여기 온 이상 오늘부터 공범이 된 거니까.”

       “……그럴 생각으로 데리고 온 건 아니었는데.”

         

       멋쩍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긁적이는 데릭이었고, 그런 데릭을 두며 이한은 조용히 공방을 관찰했다.

         

       ‘이거 완전 돈을 덕지덕지 처발랐네.’

         

       이한은 10평 남짓한 공간을 차지한 물품을 확인하며 혀를 내둘렀다.

         

       값어치는 정확히 측정할 수 없으나,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기에.

         

       약초 향이 가득한 서랍장.

       이건 뭐 한의원을 갔을 때 보았던 것보다 더욱 빼곡하며, 서랍장 하나마다 맡아지는 약초 향이 심상치 않다.

       가마솥보다 큰 약탕기(藥湯器)는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고, 그밖에 절구나 비커들 같은 경우는 낡았지만, 낡은 것과 달리 비범함이 서려 있다.

         

       연금술사와 한의사의 연구실을 합쳐놓은 듯한, 그야말로 동서양의 조화가 엿보이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 언제부터 만든 거냐?”

       “으음, 한 달 정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요.”

       “…….”

       “왜, 왜 그렇게 보세요?”

       “…아니다, 아무것도.”

         

       역시 상태창.

       남들은 수십 년 노력해야 이만한 공방을 갖출 수 있을 텐데, 겨우 한 달 만에 이러한 공방을 구축한다?

       이건 뭐 대학원도 안 간 녀석이, 바로 교수도 부러워 할 랩부터 가진 거랑 다를 바가 없다.

         

       ‘하여튼 상태창 없는 놈은 서러워서 살겠나….’

         

       못난 건 알지만, 좀 질투가 나는 바.

       하지만 질투는 빠르게 사라진다.

       그도 그럴 게.

         

       “그, 그럼 이제부터 ‘연단(鉛丹)’을 진행하겠습니다.”

         

       그 엄청난 상태창 찬스를 자신이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지금은 고마움을 느낄 때겠지.

         

         

       추정 직업 도적, 하지만 서브 직업으로 연금술사마저 가진 소년이 귀왕의 심장을 연단하기 시작했다.

         

       * * *

         

       – 제, 제가 할 줄 알아요, 그…, 약을 다루는 거라면.

         

       데릭은 드물게 처음으로 당당히 제 실력을 어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만한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대박이다, 설마 이만한 초희귀 소재를 다룰 기회가 생길 줄이야!’

         

       데릭으로선 행운이 아닐 수 없는 바.

         

       그의 메인 직업은 [도적].

       원래는 전사 클래스를 원했지만, 그는 자신의 성정을 잘 안다.

       용맹과는 한없이 거리가 먼 그이기에 차라리 도적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도적 클래스도 키우다 보면 장점이 많고, 전날 보인 만천화우처럼 어마어마한 스킬도 쓸 수 있으니까.

         

       ‘아직은 리스크도 크고, 한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데릭은 나름 열심히 노력했고, 그런 자신의 성장을 위해 선택한 서브 직업이 [연금술사]였다.

       손재주를 키워주고, 약과 독을 다룰 수 있는 연금술사 직업은 도적과 상성이 좋다.

       하여 그는 연금술에 최선을 다했고, 원래는 학술원을 진학할 때도 연금술 쪽 학부로 갈 예정이었지만….

         

       ‘…수준이 너무 낮았지.’

         

       다루는 수준이 아직도 포션 두세 개밖에 안 되는 걸 확인하며 얼마나 당혹스럽고 실망스러운지 모를 거다.

         

       도리어 손재주가 떨어질 것 같아서 데릭은 역사학부로 길을 바꿨다.

       차라리 역사학부에 있는 히든 피스나 먹을 셈으로.

         

       그러나 연금술사 직업을 키우는 것을 포기하진 않았다.

       가진 재산과 역량, 그리고 당장 사용 가능한 히든 피스마저 사용하여 그는 마침내 이 비밀 공방을 완성했다.

         

       그리고 공방을 완성한 후 ‘개방된 스킬’이 다름 아닌 만천화우였다.

         

       만천화우를 쓰기 위한 암기와 독, 약 등의 제작법이 그의 뇌리에 새겨진 것.

       결론적으로 연금술사 직업은 필수였던 셈이었고, 전날 마물들을 향해 날렸을 때 위력을 확인하며 연금술사 직업을 키운 게 자랑스럽기까지 하더라.

         

       …그래도 마냥 만족스럽지 않은 점은.

         

       ‘만천화우…, 이건 진짜 돈 잡아먹는 괴물이야.’

         

       종결급 스킬답게 한 번 펼쳐내려고 쓰인 독과 약재만 해도 예산이 어마어마했다.

       만약 두 번 연속으로 펼쳐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파산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렇게 직업 스킬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연금술사 스킬은 발전할 필요가 있었고, 발전을 위해 필요한 건 다루기 어려운 ‘레어 소재’의 존재유무였다.

       레어 소재를 다룰수록 손재주가 더욱 좋아지니 말이다.

         

       한데 그런 상황에서.

         

       ‘귀왕의 심장이라니…! 이건 그냥 레어 소재가 아니라, 단숨에 끝판왕이 나온 수준이잖아….’

         

       끝판왕급 레어 소재.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귀왕인지라, 소재의 품질이 다섯 단계 정도 하락한 상태이긴 하다.

         

       그럼에도 ‘귀왕의 심장’이다…!

         

       지금껏 다루었던 어떠한 소재보다 난도가 높으나, 그 값어치는 천문학적.

       솔직히 이걸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망설임은 생기지만 데릭은 기꺼이 제가 다루어보겠다 손을 들었다.

       이는 연금술사 직업을 키우기 위해서도 있지만, 아마 왕국 내에서 저 소재를 다룰 만한 실력자는 자기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이 소재를 연단하고 싶은 목적은 아무래도….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그에겐 갚아야 하는 빚이 있다.

         

       …지금도 계속 생기는 중이고.

         

       ‘……내가 곤란해 하고 있어서 일부러 편입시킨 걸 거야.’

         

       말로는 조교로 삼을 셈으로 데리고 왔다 하지만, 데릭도 눈치가 있다.

       자신이 [귀왕 토벌전]에서 큰 주목을 받으니 일부러 검술학부로 데리고 온 것이리라.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주목받을 경우, 활동의 제약이 걸릴 것을 알며….

         

       ‘……대체 뭐하시는 분일까?’

         

       데릭은 힐끔 그를 보았다.

       귀한 소재를 맡겼음에도 조금의 동요도 없이 공방을 구경 중인 그를 말이다.

       저가 이 귀한 소재를 태워버릴 걱정도 없는 걸까?

       간이 큰 건지, 아님 재물에 연연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허나 지금 데릭이 그를 힐끔거리는 이유는 저러한 배짱 때문이 아니라-.

         

       ‘-[백팔나한]이니, [매화검법]이니…, 이건 너무 대놓고 가르쳐주는 거잖아.’

         

       그밖에도 한 번씩 그가 쓰는 단어 등에서 알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착각일 수도 있다.

       이 게임이나 [원작]을 만든 건 일단 [Made in Korea]이지 않은가?

       이 때문에 동양적 용어가 오류처럼 간간히 섞였을 가능성도 있을 테지.

         

       …하지만 데릭은 그게 아닐 것 같았으며, 다른 이유를 찾았다.

         

       그리고 내린 그의 결론은 하나.

         

       설령 그가 자신처럼 플레이어가 아닐지언정-.

         

       ‘동향, 사람일까?’

         

       동향인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 게임에 들어온 사람이 아닐까 하고.

       그리고 만약 그가 진정으로 그러한 인물이라면.

         

       ‘사죄해야 해.’

         

       이 빌어먹을 게임을 만든 개발자로서, …미안함을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화르륵!

         

       데릭은 그 일말의 미안함을 갚고자 온 정신을 집중하여 약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허나 불행하게도 그런 미안함과 함께 보인 열정이.

         

       ‘저거 진짜 물건이네?’

         

       얼마나 위험한지 행동인지를 알아야 했다….

         

       ‘…와, 농담이 아니라, 진심 조교로 삼아야겠는데?’

         

       반농담조로 말했던 조교 2호였거늘, 지금 이렇게 보니 욕심이 안 생길 수가 없다.

         

       조교(노예) 1호보다 말도 잘 듣는 데다, 성실하다.

       거기다 연금술도 쓰고, 무려 [만천화우]도 쓴다.

       추가로 아직 좀 더 나올 게 있을 예감이 든다.

         

       이건 뭐….

         

       ‘굴삭기 자격증 있는 놈보다 군침 흐르는 놈을 만나게 될 줄이야….’

         

       말 그대로 주임원사 앞에 ‘노가다 10년차’ 경력자가 등장했을 때 느낄 법한 감동이랄까.

       반드시 전문하사를 시켜야 할 인재가 나타난 격이 아닐 수 없다.

         

         

       회귀한 천재 검사?

       빙의한 마법사 히로인?

         

       다 필요 없다.

         

       숙련공 태창이가 최고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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