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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그…그걸 어디서.”

   

   조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다.

   

   너무도 쿨해서 그 누구도 쉬이 다가설 수 없다 여겨지던 조이가 눈에 띌 정도로 동요하다니.

   

   단 것에 환장하는 그녀에게 이 티켓이 종이의 모양을 한 다이아몬드처럼 보이나보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사치스러운 물건일지도.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은 구하고 싶다고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돈으로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면 공작 가문의 영애께서 이걸 보고 침을 질질 흘리겠어?

   

   ‘우연히 구했어요.’

   “왜 궁금해 얼빵영애? 우연찮게 기회가 생겨서 구했는데.”

   

   “말도 안 돼. 제가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구할 수 없었던 걸 우연찮게 구했다고요?!”

   

   조이의 말이 옳다.

   

   원래 이걸 구하기 위해서는 스토페의 절친인 NPC가 주는 여러 귀찮은 사이드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 하거든.

   

   그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한 캐릭터의 호감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려주는 아이템을 주는데도 그 퀘스트를 클리어 하지 않는 게 정석이라 여겨졌다니까?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얼빵 영애라면 알려나? 이 티켓은 한 명 동행을 데리고 갈 수 있어.”

   

   “…원하는 게 뭐죠?”

   

   조이가 책상을 두 손으로 짚은 채 얼굴을 들이 밀었다.

   

   열기가 새겨진 눈동자는 눈앞에 있는 것을 집어삼켜 재로 만들 것처럼 뜨거워서 거기에 데이고 싶지 않았던 난 슬며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원하는 건 없는데요.’

   “얼빵 영애. 내가 그런 허접한 속물로 보여?”

   

   나는 조이에게 다른 걸 요구할 생각이 없다.

   

   이걸 가지고서 무언가를 달라고 말한다면 그건 협박을 하는 거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조이 너한테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아.

   

   네가 내 최애캐란 말야!

   

   같이 스토페의 디저트를 먹으러 가서 네가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

   

   겸사겸사 호감도를 올려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행복사를 할 자신도 있어!

   

   그러니까 그 이외의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진심을 담아서 그리 이야기를 했지만 조이는 내 말을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니었다.

   

   “알른 영애. 괜한 신경전 하지 마시죠.”

   

   ‘진짠데요!’

   “의심이 많네. 얼빵 영애가 아니라 망상 영애였던거야?”

   

   어깨를 으쓱이는 나를 본 얼빵 영애는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내쉬고서 다시금 얼굴을 들었다.

   

   “있잖아요. 전 알른 영애 당신이 더 이상 소문처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진짜?

   

   아서를 불쌍 왕자라고 부르고. 3학년 선배를 때려눕히고. 비시를 협박하고. 너한테 반말을 까고 있는데?

   

   그래도 좋게 생각을 해주다니.

   

   조이에게 기쁘다 못해 감사할 지경이네.

   

   근데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나오는 거야?

   

   “그렇지만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처럼 귀한 물건을 호의로 줄 정도는 아니죠. 페이비도 그러진 못 할 걸요.”

   

   응? 이거 그 정도로 귀한 거야?

   

   성녀님도 망설일 정도로?

   

   게임에선 호감도용 아이템 이외로는 사용할 수 없어서 몰랐는데 어마어마한 물건이었구나.

   

   귀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티어라 마스의 티켓과 비슷한 수준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한 가 보네.

   

   “당신이 저에게 그만한 빚을 졌냐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오히려 진 빚은 제가 더 많죠. 목숨을 구해주셨으니까. 그러니 말해주세요. 무얼 원하시죠?”

   

   원하는 거 없대도?

   

   왜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내가 겨우 먹을 걸 사준 거 가지고 백지 계약을 한 것 마냥 널 휘두르고 다닐 리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음.

   

   빙의하기 전의 루시 알른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감이 안 잡혀서 단언하기가 어렵네.

   

   걔가 쌓아둔 업보가 한 두 개가 아니니까.

   

   어쨌든!

   

   애초에 조이 내가 너한테 진 빚이 없다는 말도 이상해!

   

   ‘티어라 마스에 데려다 주셨잖아요!’

   “얼빵 영애. 날 티어라 마스에 데려다 줬던 건 까먹은 거야?”

   

   “그건 제 목숨을 구해주신 걸로 갚고도 남으셨답니다.”

   

   말이 안 통하네.

   

   정신 나간 마이페이스인 프레이랑 대화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답답함이야.

   

   어떻게 해야 설득을 할 수 있지?

   

   <여아야. 그냥 아무거나 하나 부탁을 하거라.>

   ‘진짜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조이한테 요구할 만한 게 진짜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건 지금의 내가 모두 다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안다. 그래도 어떻게든 만들어 내거라.>

   

   이런 경우에는 그냥 상대에게 적당한 걸 요구하는 편이 오히려 상대를 돕는 일이라고 할배는 말했다.

   

   일방적으로 마음의 빚을 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 거라면서.

   

   적당한 요구 하나를 하는 편이 상대를 배려하는 일이라고.

   

   할배의 설명을 어느 정도 이해한 나는 괜찮은 부탁이 뭐가 있을 지를 고민했다.

   

   너무 큰 걸 부탁하면 오히려 내가 부담스러우니까 적당한 게.

   

   아. 그거면 되겠다.

   

   ‘조이…’

   “알겠어. 그토록 부탁을 해달라니까 어쩔 수 없네. 얼빵영애. 나랑 같이 던전에 들어가 줘.”

   

   또 비시를 협박해서 데리고 가기엔 나한테 휘둘리느라 고생하던 모습이 생각나서 미안하던 참이었거든.

   

   조이라면 비시처럼 인원수만 채울 뿐만 아니라 던전 공략에도 도움이 되는 인선이니까 딱 맞네.

   

   “던전…인가요?”

   

   조이는 내 부탁을 듣고서 쉽게 고갤 끄덕이지 못했다.

   

   왜 저러지?

   

   ‘무슨 문제가 있나요?’

   “뭐야. 얼빵 영애. 이것도 못해?”

   

   지인들이랑 같이 던전을 공략하기로 했다던가 뭐 그런 걸까?

   

   아니면 던전에 들어갈 수 없는 사정이 있다거나.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다른 부탁을 생각해봐야겠네.

   

   “아뇨! 할 수 있어요. 던전 공략 쯤이야 얼마든.”

   

   다른 걸 떠올리기 위해 고심하려던 순간 조이가 소리를 쳤다.

   

   못하겠으면 굳이 안 해도 괜찮다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조이의 눈동자에 새겨진 의지가 너무 짙었다.

   

   으음. 여기서 사양해도 괜찮다고 이야기 해봐야 메스가키 스킬로 번역돼서 도발이 될 뿐이겠지.

   

   ‘그럼 약속한 거에요?’

   “얼빵 영애. 약속한 걸 어기는 허접은 아니라고 믿을게.”

   

   “물론이에요. 알른 영애.”

   

   나중에 던전을 공략하러 가기 껄끄러워 보이는 것 같을 때 다른 걸 부탁해도 되는 거니까.

   

   일단은 넘어가자.

   

   ‘그런데 조이…’

   “근데 얼빵 영애. 너 가볼 곳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급하게 근처의 시계를 확인한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내게 이리 고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죠!”

   

   나랑 헤어지기 위한 핑계 같은 게 아니라 진짜로 급한 사정이 있는 거였어?

   

   *

   

   거울을 보며 머리 모양을 다듬던 조이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욕에 져서 던전에 들어가겠다고 말을 하다니! 그게 될 리가 없잖아!

   

   조이는 여전히 아그라에게 간섭당했던 날의 꿈을 꿨다.

   

   시간이 오래 지나 그 빈도가 줄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 풍경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조이는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왠지 저 안에 발을 디디면 그 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조이도 안다.

   

   소울 아카데미에서 공언을 한만큼 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는 걸.

   

   정 걱정스럽다면 그 어떤 위험에도 대비할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가면 그만이라는 걸.

   

   그래도 어쩌겠는가.

   

   던전으로 들어가는 문을 보고 있으면 숨이 턱하고 막혀 버리는데.

   

   그 때문에 조이는 그녀의 주변인들이 던전에 들어가 보자는 권유를 모두 다 거절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여전히 악몽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알른 영애가 이상한 거잖아.

   

   한 순간의 실수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내던져 졌는데.

   

   그 상황에서 나와 리즈 영식이라는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우리 둘을 살리기 위해 전위에 선.

   

   위기가 생길 때마다 맨 먼저 앞으로 달려나간 사람이.

   

   어떻게 아무렇지 않다는 것처럼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거야.

   

   그 누구보다 두렵고 무서웠을 텐데 왜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거냐고.

   

   이상하잖아.

   

   나도 리즈 영식도 던전에 들어가는 게 두려워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데 당신이란 사람이 여유롭게 웃을 수 있다니.

   

   심지어 당신 3왕자님이랑 던전에 들어갔을 때도 아그라의 개입에 휘말렸다면서!

   

   죽음의 위기를 또 한 번 넘어섰다면서!

   

   근데 던전에 대한 이야기를 별 것 아니란 것처럼 꺼낼 수 있는 당신을 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알른 가문의 핏줄에는 사람이 아닌 다른 생물의 피라도 섞여 있는 거야?

   

   “아. 실수했다.”

   

   평소 하던 것과 반대로 컬을 타버린 조이는 어릴 적부터 유지해 온 롤머리의 모양이 이상해진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짜증나.

   

   이게 다 스토페의 스페셜 티켓이라는 물건의 유혹에 넘어가버린 나 때문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어서 더 그래.

   

   그치만 그 티켓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걸.

   

   대륙에서 제일가는 디저트 장인이지만 지금은 후진 양성을 아느라 현업에서 일하지 않는 스토페.

   

   그가 직접 만든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게 바로 스페셜 티켓이다.

   

   스토페가 만든 디저트를 먹었다는 사실은 여러 유력 귀족가문이 모인 사교계에서도 자랑거리로 쓸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일.

   

   그런데 그 기회가 눈앞에 찾아온 것이다.

   

   그걸 어떻게 놓치겠는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다고 공언하고 다니는 조이에게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이제와서 후회해서 뭘 하겠어.

   

   어차피 난 주사위를 내던져 버렸는데.

   

   좋게 생각하자.

   

   알른 영애와 함께 간다는 건 그녀의 기사도 함께한단 소리겠지?

   

   그녀의 능력에 알른 가문 기사의 무력이 합쳐지면 그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돌파할 수 있을 거야.

   

   던전에 들어가더라도 위험해 질 일은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괜찮아.

   

   괜한 걱정 하지 말고 스토페의 디저트를 즐길 생각이나 하자.

   

   그러고 보면 신기하네.

   

   그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알른 영애는 어떻게 손에 넣은 걸까?

   

   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물건인데 말이야.

   

   품 안에서 티켓을 꺼내며 의기양양하게 웃으시던 걸 보면 쉽게 구하신 건 아닌 것 같고.

   

   알른 영애만이 지닌 루트 같은 게 있는 걸까?

   

   루시에게 권유받던 그 순간을 떠올린 조이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그 때 갑자기 반말을 하시길래 엄청나게 당황했었지.

   

   가족들이나 3왕자님처럼 어릴 때부터 친했던 사람이외에게 반말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무례한 말을 하긴 해도 존대를 하시던 분이 갑자기 반말을 하시기에 내 귀를 의심했었다니까.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구하는 데 성공해서 들뜨셨던 게 아닐까 싶네.

   

   항상 도도한 모습으로 틱틱거리기만 하던 알른 영애가 들떠서 자랑을 한 건가.

   

   나한테 스토페의 가게에 함께 가자고 권유하신 것도 분명 내가 티어라 마스에 데려다 준 걸 빚이라 생각해서 그걸 갚기 위해 그러신 거겠지?

   

   예전 같았으면 니 건 내 거고 내 것도 내꺼니까 감사하단 마음조차 품지 않으셨을 텐데.

   

   진짜 많이 달라지셨어.

   

   사교계에 나와 가시를 쏘아대던 알른 영애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지경이야.

   

   알른 영애가 특유의 말버릇만 바꾼다면 사람들의 시선도 많이 달라질 텐데 참 아쉽다니까.

   

   그래도 이번에 3왕자님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인정을 받은 걸 보면 서서히 알른 영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긴 할 테지.

   

   언젠가는 알른 영애를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날이 올 지도 몰라.

   

   그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알른 영애가 저질러 놓은 게 너무 많아서 쉽지는 않겠지만 말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콩깍지가 씌여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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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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