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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9

    <79 – 별난 입장>

     

    용사는 정의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용사된 자.

    악행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초짜 용사파티라도 알 수 있는 상식.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 고뇌에 빠졌다.

     

    “알파. 저 트롤을 벨 수 있겠습니까?”

     

    알파는 디스트로이어의 허리만큼 굵은 팔뚝을 부풀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3초면 충분하다.”

    “오.”

    “내 허리가 접혀서 죽기까지.”

     

    가오만 잡지 존나 쓸모없는 새끼.

    디스트로이어는 속으로 욕했다.

     

    “디스트로이어. 트롤을 속여서 왔던 길을 돌아가거나 용병들을 풀어서 함께 싸울 수 있겠습니까?”

    “무리야. 저 트롤새끼, 눈깔 번들거리는 꼬라지 좀 봐. 수작 부리면 들고 있는 바위부터 던져서 마차부터 뽀개고 볼 심보야.”

     

    정작 속으로 흉을 보던 디스트로이어도 쓸모없긴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트롤은 중형몬스터.

    무장한 병사 백 명이 몰려와서 길이가 3m는 되는 양심 터진 창으로 쿡쿡 찌르기만 삼일밤낮을 해야 겨우 뒤지는 양심 터진 토벌난이도를 지녔다.

    그것도 앞에서 탱킹을 해주는 기사나 방패병이 있다는 전제 하의 계산.

    탱킹도 안 되면 백 명의 장창병들은 트롤 앞에 나타난 골라먹는 뷔페가 된다.

     

    “그냥 하나 골라서 치고 지나가야겠군.”

    “그래도 되냐?!”

     

    니알라토텝의 쿨한 대답에 디스트로이어는 솔직히 당황했다.

     

    “거,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하면 용사의 자격이 상실된다거나 그런 거 있지 않냐?”

    “정의란 상대적인 겁니다. 책임질 수 없는 객기를 부려서 살릴 수 있는 마부마저 함께 죽게 만들거든 그것이 가장 정의롭지 못한 최후 아니겠습니까.”

     

    니알라토텝은 현실적인 용사였다.

     

    “다섯 명을 치고 갑시다.”

    “아니, 진심이십니까?”

    “말은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다섯 명을 살리고 한 명만 치겠답시고 벼랑길로 마차를 몰거든 겁을 먹고 전속력으로 달리지도 못할 겁니다. 그러면 트롤의 요구를 저버리게 되죠.”

     

    디스트로이어가 생각하기에도 제법 날카로운 분석능력이었다.

    용사로서는 좀 어떤가 싶지만.

     

    “사람 몇 명 살리자고 무리했다가 마차에 탄 저희까지 다 죽으면 결과적으로 이곳의 모든 사람이 죽게 되는 겁니다. 살 사람은 살아야죠.”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된 동료들은 입을 꾹 다물고 용사의 결정을 따랐다.

    마차가 사람을 짓밟는 끔찍한 감각에 대해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고만 말해두겠다.

    트롤은 약속을 지켰고 그들을 무사히 보냈다.

    갈림길을 지난 뒤.

    니알라토텝이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우린 방금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트롤을 만난 걸지도 모릅니다.”

    “그냥 지랄 맞은 퀴즈나 내는 트롤일 뿐이야.”

    “이런. 디스트로이어. 당신은 아직 눈치 채지 못했습니까? 저 트롤이 정말로 똑똑한 이유를.”

     

    그 무렵의 디스트로이어는 깨닫지 못했다.

    니알라토텝을 재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그때의 니알라토텝과 같은 정답에 도달한 것은 모험을 마치고 홀로 예전 모험길을 처음부터 되짚으며 따라 걷던 도중이었다.

     

    “분명 이 마을이었지?”

     

    기억 속 마부를 찾아 교역마을에 들르고 우연히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트롤을 함께 겪었던 마부와 마주쳤을 때.

    디스트로이어는 마부와 멋쩍은 인사를 나누었다.

     

    “동료 분들은 보이지 않는군요.”

    “뭐, 그렇게 됐수다.”

    “이것도 나름 인연인데 가시는 길까지 함께 가시겠습니까?”

    “거 심장 한 번 굵으시네.”

     

    디스트로이어는 마부의 옆자리에 탔다.

    정처 없이 길을 따라 가는 길.

    그는 마부와 세 번의 문답을 나누었고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예전의 니알라토텝이 무엇을 깨달았는지.

     

     

    * *

     

     

    “그럼 이번에도 오크노디 학생이 나설 차례다. 본인이 베테랑 용사 디스트로이어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마부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져라.”

    “디스트로이어는 질문을 참 좋아하시네요!”

    “아니면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실제로도 매번 세 번씩 질문을 했어요?”

    “했겠냐? 자꾸 귀찮게 굴면 그것도 질문으로 친다.”

     

    역시나 매 회차마다 이야기가 달라지는 디스트로이어의 모험기담.

    이번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모티브는 트롤리 딜레마인가?’

     

    현대인에게는 제법 유명한 윤리학의 사고실험.

    이해득실이 명확하게 갈린 선택지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위기를 자신의 선택으로 더 적은 사람의 희생으로 바꿀 수 있을 경우.

    당신은 자신의 의지로 더 적은 사람을 희생시킬 수 있는가, 그대로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되게 방관할 것인가를 묻는 실험이다.

     

    ‘트롤 주제에 인간을 상대로 윤리실험을 하다니, 정말 이상한 트롤이네!’

     

    그렇지만 첫 번째 강의에서 <줄지 않는 양>을 이야기했을 때, 이야기 속에 힌트가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트롤의 딜레마> 속에 힌트가 있다.

    세 번의 문답은 그것을 되짚고 확신을 얻기 위한 과정일 뿐, 이미 힌트는 잡아냈다.

     

    “마부의 마차에는 혹시 여분의 바퀴가 달려있나요?”

    “좋은 지적이군. 그럼 너는 마차 뒤에 실린 여분의 바퀴를 발견할 수 있다.”

     

    덕분에 확실해졌다.

    마부는 트롤의 딜레마를 치렀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 한다.

    여분의 바퀴를 준비할 정도로 치밀한 준비를 하면서까지 말이다.

     

    “두 번째 질문이에요. 이번에도 마차보다 먼저 지름길로 간 사람들이 있어요?”

    “마부는 그렇다고 대답하겠군.”

    “마지막 질문이에요. 영지병이나 모험가길드에서 트롤을 토벌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나요?”

    “마부는 자신이 아는 바로는 없을 거라고 상당히 확신하며 대답하네.”

    “그럼 됐어요. 대충 알 것 같아요.”

    “그럼 한 번 맞춰봐라.”

     

    딱히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도덕성과 관련된 문답이 힌트라면 정답도 그와 관련된 것이니까.

     

    “트롤의 윤리실험은 결과적으로 인간들을 ‘공범’으로 만들었어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각오하면서도 동족을 살리려는 정의로운 마부들은 벼랑길의 한 명을 치고 지나가려다가 전부 죽었죠.”

    “반대로 널따란 대로의 다수를 짓밟고서라도 살려는 이기적인 마부들은 냉정하게 다수를 치고 살아서 탈출할 수 있었겠죠.”

     

    디스트로이어는 더 해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트롤의 딜레마는 두갈래길 자체에는 있지 않아요. 벼랑길은 ‘함정’이고 대로변은 ‘정답’이니까요. 진짜 딜레마는 그 뒤에 있죠.”

    “트롤의 윤리실험에 협력하여 사람 다섯을 친 사실을 영지병이나 길드에 알리고 살인자로 낙인찍힐 것인가, 이 기이한 사고를 없던 셈 치고 입을 닫아서 자신의 안전을 우선시 할 것인가.”

    “전자를 고르면 교역마을 인근에 주둔하는 위험은 사라지지만 자신의 안위가 위태롭고, 후자를 고르면 지역사회의 위험은 여전하지만 자신은 안전하죠.”

     

    인간사회의 적이 될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인류의 적이 존속하는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트롤은 황당하리만치 지적인 고뇌를 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딜레마를 통과한 사람은.

    모두 대로변의 다섯을 치고 지나간 마부다.

    동족에 대한 이타심보다 자신을 향한 이기심이 앞선 결정을 내린 자들이 뒤늦게 자기희생이 전제되는 판단을 할 가능성보단 제 안위를 챙길 가능성이 높다.

    살아남은 마부는 공범이 되고, 자신이 지나간 길에 존재하는 위험에 대해서는 입을 다문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죽은 이들에 대한 정보를 은폐하고 왜곡할 가능성도 있다.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면 곤란해지니까!

     

    “전대용사 니알라토텝은 모험 초기부터 단숨에 그 사실을 깨달은 거 맞죠?”

    “정답이다. 반대로 궁금하군. 넌 그 사실을 어떻게 단숨에 깨달았지?”

    “니알라토텝씨의 정의관은 보편적 정의와는 다른 이기적인 정의관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플레이어니까 알 수 있다.

    어떤 이야기든 플레이어가 죽으면 그 뒤의 이야기는 지켜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스펙이 약한 플레이어들은 때때로 이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선택이거나 불의한 선택임을 알면서도 고르기도 한다.

    리세마라를 모르던 시절에는 온갖 잡캐로 게임을 했었기에 더욱 잘 안다.

    약한 자들은 비겁하고 이기적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때도 있기 마련이라고.

    니알라토텝은 용사지만 그 사실을 깨닫고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마치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의 입장처럼 말이다.

    참 별난 NPC가 아닌가.

     

    “네가 15년만 더 일찍 태어나서 니알라토텝의 동료가 되었다면 죽이 아주 잘 맞았겠군.”

    “엑. 전 싫은데요.”

    “용사파티의 동료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데?”

    “그거야 약한 사람이니까 그런 거고요. 전 강하거든요?”

     

    알통이라도 만드는 것처럼 팔을 굽히며 끙 하고 힘을 주자 교수양반은 고놈 참 귀엽네, 하는 얼굴로 “그래 너 힘세다.”하고 말했다.

     

    “음? 갑자기 얼굴은 왜 붉히지. 징그럽게.”

    “안 징그럽거든요! 그냥, 요즘은 제가 힘이 세다고 하면 다들 오크 소리나 하는데 교수님처럼 덤덤하게 대해준 사람은 처음 같아서 그랬어요.”

    “허.”

     

    디스트로이어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츤데레 제자, 곤란.”

    “아 뭐래요 진짜!”

     

    고마운 마음이 싹 사라지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ㅁㅇㅁ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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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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